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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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쓴 작품집인데, 이거 참 난감하게 됐다. 책 읽은 느낌을 솔직하게 쓰면 많고 많은 애독자한테 얻어터질 것 같고, 그래서 한 사람한테 꿀밤이라도 한 대씩 맞는다 쳐도 워낙 팬들이 많아 최하 중상일 터인데 이제는 그까짓 것, 하고 버틸 깡다구도 없어졌으니 이걸 워쪄? 글쎄, 당신도 백수 돼 봐. 매사에 저절로 그렇게 된다니까. 좋다, 좋다. 이번이 마지막으로 솔직하게, 최대한 공손하게 쓰는 독후감이겠거니, 하고 최은영의 팬께서는 양해하옵시어 그저 딱 한 번만 쇤네의 입방정을 참아주시면 황감하겠으니, 그리 아셨으면 좋겠다. 물론 이까짓 잡문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작가한테는 굳이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되겠지 뭐. 이런 마음이었지만 그냥 간단하게 써야겠다.


  최은영의 문장은 거미줄처럼 섬세하다. 고운 결로 가로 세로에서 영롱하게 빛을 반사하는 듯한 애잔함. 책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소설 다 그렇다. 이런 아름다운 실로 묶인 관계들. 너와 나. 일인칭과 이인칭. 그리고 인칭을 벗어나면 곧바로 들이닥치는 악의 밀림. 이 틈 안에서 너와 나는 관계를 만들고, 자잘한 오해도 생기고 상처를 받고,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를 이해하거나 그저 상처를 간직하는 마모. 섬세한 아름다움은 연약할 경우가 많아 이들은 거의 언제나 폭력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이어 흉을 가진 채 남은 생을 살아야 하고. 최은영은 이 단계 이후 전망을 보여주지 않는다.

  또래 작가한테 많이 익숙한 문법이다. 전형적인 단편소설의 구성은 교과서적이라 할 수준. 표제작 <아주 희미한…> 속에 등장하는 학보사 등 학교 건물이 익숙한 걸로 봐서…….

  문득 드는 의문. 비슷한 분위기의 문장을 구사하는 비슷한 연령대 작가들이 많(은 것 같)다. 이들 작가군을 읽으면, 이들에게 교사 혹은 롤 모델이 한두 명 있는 것 같다. 물론 억측이겠지만. 억측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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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5-02 15: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그 이후의 전망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과 또래의 여성 작가들의 글이 비슷하다는 것을요.

서재 분위기상 남들이 좋다는 작품을 비핀하기가 저도 쉽지가 않네요 ㅎㅎ

Falstaff 2024-05-02 21:02   좋아요 1 | URL
에휴, 최은영만큼 굉장한 팬덤을 누리는 작가도 흔하지 않잖습니까. 좀 길게 썼다가 확 줄이고, 무려 한 달 동안 그나마 짧은 글도 숱하게 다시 써서 결국 어줍짢고 하찮은 조각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얻어 터질까봐 속으로 걱정했었는데요. ㅋㅋㅋ

공쟝쟝 2024-05-02 2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은영의 광란의(?) 애독자!! 동세대 여성으로서… (중요합니다!! 동세대 여성!) 그나마 최은영은 남성독자도 설득할 수 있는 포지션이지 싶은데요.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녀의 모든 문장은 제 맘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제가 섬세하고 영롱합니닼ㅋㅋㅋㅋ) 거기에 공명할 수 밖에 없는 세대적 경험(!)이 저를 마그마구 흔들어 놓기 땜에 저는 애껴 읽습니다. 모든 기억들이 소환되고 거기에서 나의 무고하지 않음이 나의 부족했던 성찰이 같이 헤집어져서. 전 최은영만의 어떤 윤리적 감수성으로 ‘답을 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건 언제나 화나있는 (ㅋㅋㅋㅋㅋ 사는 게 너무 바쁘며 구원따윈 없는 계속해서 돌겠는 현대 여성) 제 맘을 순하게 해줍니다. 내가 순해진다고요.

킹덤이랑 지옥을 봐야 성질이 풀리는 이 각팍한 시절에. (뭐 더 각팍했던 시절이 있었겠지만 저는 안 살아봐서 ㅋㅋㅋ) 그것 말고. 문학이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저는 최은영 없으면 안되는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ㅋㅋㅋㅋ 소포클레스 퐐님의 평가에 반발 합미다!ㅋㅋㅋㅋ (반발이래봤자 ㅋㅋㅋㅋㅋㅋ 이게 다임 ㅋㅋㅋ)

Falstaff 2024-05-02 22:07   좋아요 1 | URL
넹.
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문학은 언제나 자신이 느낀 것이 제일 중요합지요. ㅎㅎㅎ 그래서 소포클레스와 최은영이 동격이 되는 겁니다. 이의 없습니다.

공쟝쟝 2024-05-02 22:26   좋아요 1 | URL
하지만 최은영을 카슨 매컬러스나 뒤라스에 비교하면 반칙입니다 ㅋㅋㅋ!! 물 건너온 거 말고는 한국의 다른 세대 여성작가들과 비교해보고 싶은데 읽은 게 읎어요… 아쉬운대로 조만간 양귀자라도 읽고 올까봐요?ㅋㅋㅋ 퐐님의 추천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