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와 아들
쥴퓌 리바넬리 지음, 오진혁 옮김 / 호밀밭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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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만에 리바넬리를 또 읽는다. 그만큼 <세레나데>가 좋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기대한 만큼 재미나게 읽지는 않았다. <세레나데>와 달리 튀르키예의 서민층을 등장시킨다. 튀르키예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관광도시 보드룸에 근접한 작은 어촌의 가난한 어민들. 산업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의 필연적 부조리인 부정부패가 지역 사정은 거의 감안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건설, 설치, 개발 승인을 해주었다. 그 결과 어촌 마을은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 짙은 숲을 자랑했던 천혜의 휴양지이자 항구였으나, 하늘은 화력발전소에서 날아오는 연기로, 바다는 대규모 양식장의 침전물에 의한 부영양화로, 숲은 청산가리를 사용하는 금광 개발로, 동네는 대규모 관광호텔 건설로 날이 갈수록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었다. 나라 밖에서는 아프리카,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서 대규모의 난민들의 중간거점으로 조그만 고무보트에 수십명이 몸을 싣고 유럽으로 밀항하다가 풍랑을 만나 익사한 시신들이 바다에 둥실둥실 떠다니기 시작한 201X년. 삼십대 초반의 어부 무스타파와 그의 아내 메수데 커플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무스타파는 세계적인 장수촌인 어메 마을의 백세가 넘은 노인에게 배운 대로 매일 동트기 전에 일어나 공복에 유리 찻잔 가득 올리브유를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느끼하지 않을까? 김치 쪼가리 한쪽 집어먹으면 좋겠다 싶다. 도무지 말이 없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마른 체구의 키 큰 남자는 무심하고 다른 것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한 남성미를 드러내는 어부. 험한 일을 해 먹고 사는 이 답게 어쩌면 야성적이고 거칠어 보일 수 있는 분위기를 풍긴다. 한 마디로 괜찮은 외모지만 가까이하기엔 좀 재수없는 스타일이라고 하면 될 듯. 그의 아버지도 평생 줄담배를 입에 물고 사는 가난한 어부였다가, 담배 때문에 폐암으로 죽었다. 얼른 죽지도 못해 없는 살림에 병구완을 하느라 낡은 조각배마저 몽땅 팔아먹고 집 하나만 달랑 남겨두고 숟가락 놨다. 어머니는 공무원한테 시집가서 조금 내륙지방 시내에 살고 있는 여동생 필리즈의 집에서 살고 있다. 무스타파는 어린 시절부터 노장 타흐신 선장에게 바다 일을 배우다가 세월이 흘러 선장이 은퇴를 한 후 낡았지만 멋있고 모터가 달린 고깃배를 월부로 인수해 폭풍이 불지 않는 한 해가 뜨기 한참 전에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고 돈을 얻었다.

  스무 살 때 열아홉 살의 메수데와 결혼해 아들 데니즈를 난산 끝에 낳았다. 병원에 가지 않고 동네에선 실력 있다고 알아주는 산파를 불러 출산을 했지만 굉장한 하혈을 동반한 난산으로 출산 후에 병원 진료를 받지 않을 수 없었고, 늙은 산과 여의사는(‘여’의사라 썼다고 시비 안 하셨으면 좋겠다. 이슬람 문화권 튀르키예에서는 이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자기라면 더 이상 임신 출산을 하지 않겠다고 해 데니즈를 외동아들로 알고 키웠다. 데니즈는 바다를 몹시 좋아해 어려서부터 아빠를 졸라 함께 배를 타고 조업에 나가고는 했다. 일곱 살 되던 해. 아빠와 아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고, 갑작스럽게 폭풍이 불어 닥치는 바람에 배가 뒤집어졌으며, 이 와중에 데니즈가 사라져버렸다. 무스타파는 넋이 나가 이후 몇 주일이나 아들의 시신이나마 찾으려 바다와 바다 속까지 뒤졌지만 결국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젊은 시절부터 잠수부로 이름을 날린 아버지는 이후 절대 잠수하지 않았다.

  엄마 역시 넋이 나갔다. 모든 것을 잃은 슬픔은 이들 부부 앞에서 데니즈 이야기는 물론, 아이들에 관한 어떠한 단어도 사용하지 않는 배려를 주민들은 알아서 베풀었다. 그토록 사이가 좋던 부부 사이엔 건조한 모래바람만 불고, 대화라는 것은 증발해버렸으며 어쩔 수 없는 성생활도 무미한 과정에 불과했다. 둘째 아이라도 낳았으면 하는 아내의 바람도 의사의 조언을 깊게 명심하고 있는 남편의 피임을 막을 수 없었다. 말없는 사람들. 말없는 부부.


  그러나 바다는 여전히 무스타파의 직장이고 삶이며 연인. 그는 끊임없이 고기를 잡고, 낚시 여행을 온 사람을 태우고 난바다에 나가 낚시를 던졌다. 이때 들은 헤밍웨이 이야기. 노인이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황새치를 낚았는데 밤이 새도록 황새치와 싸우느라 기진맥진 나가 떨어져, 운운. 그걸 들은 무스타파는 그 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며 시답지 않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황새치가 그렇게 굉장한 물고기고, 며칠 밤낮을 항복하지 않고 버텼으면, 어부도 줄을 끊고 ‘자, 용감한 녀석. 넌 살 자격이 있어. 바다로 들어가 잘 살아’라고 해야 맞지요. 나도 엄청 큰 물고기를 잡을 때가 있어서 배로 끌어올리다가 엄청난 녀석과 눈이 마주칠 때가 있는데요, 어찌나 슬프게 바라보는지,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그놈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냈답니다.”

  무스타파는 엄청난 물고기를 좋아하고 특히 돌고래를 더 좋아한다. 하지만 이 바다가 변했다. 할아버지 시대 때부터 알고 있던 물고기 말고 처음보는 이상한 물고기들이 번식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어종이 복어와 쏠배감펭. 쏠배감펭은 독이 든 가시만 조심해서 구워 먹으면 맛이 기막힌 흰살생선이지만 복어는 도무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다행히 정부는 복어 꼬리를 잘라오면 마리 당 5리라를 보상해주겠다고 한다. 대신 꼬리를 잘라 바다에 버리라닌 지시. 시체를 먹은 바다 속의 생명체는 죽거나 말거나.

  이래저래 날이 갈수록 팍팍해지기만 하는 어부 생활에 무스타파는 자신만 알고 있는 포인트가 있었다. 비밀의 암초지대. 


  때는 2010년대. 전세계는 내전과 정세불안으로 국민을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는 나라가 곳곳에 있었다. 아프리카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거론하지 않지만 베네수엘라를 필두로 하는 라틴아메리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걷거나 브로커의 운송수단을 이용해 이란에 도착하고, 이란에서 다시 걷거나 운송수단을 얻어 타며 튀르키예로 집결한다. 이렇게 모인 난민들은 튀르키예의 숨겨진 곳에서, 하나에 수 천 달러를 하는 고무보트에 적정인원을 훨씬 초과하는 인원을 태운 채 많고 많은 그리스의 아무 섬에나 떨구어 놓는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타 바다가 고요하더라도 언제든 빠질 수 있는데 하물며 심한 파도나 폭풍이 치면 그때는 몰살의 위험도 각오해야 한다.

  자신만 아는 어장에 도착해 그물을 올리려는 무스타파의 눈에 물에 뜬 자루 같은 것이 들어온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든 그는 작업을 멈추고 다가간다. 저런. 다갈색 피부에 얼굴에 멍이 든 이십대 여인의 익사체. 그리스의 섬으로 가다가 고무보트에서 떨어졌겠지. 힘들여 배 위로 끌어올려 서둘러 귀항하던 중에 또다른 시신을 발견한다. 이십대 남자 익사체. 배에 자리가 없어 낚시줄로 그를 묶어 배에 매달고 끌고 간다. 그러다가 만난 익숙한 돌고래. 가만히 보니까 붉은 구명환 비슷하게 생긴 작은 고무보트, 라기 보다 아동용 물놀이 보트 같은 장난감 비슷한 것을 주둥이로 무스타파를 향해 몰고 오는 거였다. 그가 배를 몰아 건져보니, 에그머니나, 겨우 숨을 쉬는, 아직 숨이 멎지 않은 갓 낳은 사내 아이가 들어 있는 거였다. 무스타파는 관광객이 놓고 간 초코릿을 햇볕에 달궈진 프라이팬에 녹여 아이 입에 문질러 주고 서둘러 항구로 돌아온다.

  그리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품에 안고 집에 데려와 아내 메수데에게 건네주는데, 알라신이여, 위대한 알라신이여, 당신의 능력은 끝이 없습니다, 바다는 아들 데니즈를 데려가더니 이제 피부는 더 짙어 다갈색이지만 또다른 아들 데니즈를 돌려주는 거였다.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한다. 리바넬리다운 여러가지 세계적 문제, 환경, 개발, 난민 이슈를 포함한 개인, 가족, 지역사회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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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1-04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 거 같네요. 세상엔 왜 그리도 죽는 사람이 많은지. ㅠ 작가가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추앙을 받고 있네요.

Falstaff 2024-01-04 16:31   좋아요 1 | URL
옙.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강추 수준까지는 아닙니다. ㅎㅎㅎ 이이의 <세레나데>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대박입니다.

그레이스 2024-01-04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길게 쓰시고,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한다...;;;
ㅎㅎ
튀르키에는 파묵만 생각나는데...
리바넬리 입력합니다.^^

Falstaff 2024-01-04 21:25   좋아요 1 | URL
튀르키예 작가들 몇 명 있는데 그새 잊었습니다. ㅎㅎㅎ 이 양반이 쓴 <세레나데> 문지 세계문학에서 나오는 데요, 재미납니다. 소위 강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