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병사 슈베이크 1
야로슬라프 하셰크 지음, 요세프 라다 그림, 홍성헌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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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로슬라프 하셰크. 처음 들어보는 작가다. 1883년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중등학교 수학교사를 하다가 은행원으로 직장을 옮겼어도 궁벽하게 살았다고 한다. 열세 살 때 그나마 아버지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더욱 가난해져 이후 빈민가에 살면서 침울하고 소심한 성격으로 변했단다. 성당의 복사를 오래 해서 그랬는지 김나지움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반 독일, 반 정부 시위에 적극 가담해 퇴학을 당했다. 이후 약학을 공부해 프라하 체코 상업 아카데미에서 약학 전공 학위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게 약사 자격증을 의미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졸업 후에 아버지가 다니던 슬라비아 은행의 행원으로 입사하지만 곧 그만두고 ‘자유로운 보헤미안의 삶’으로 접어든다. 무정부주의자로 유럽 각지를 여행했지만 흔히 작가들이 하는 풍요로운 여행은 아니고 거의 거지꼴을 하고 돌아다닌 거 같다.

  1907년에 무정부주의 활동 때문에 짧게 교도소 구경을 하는 동안에 화백 요세프 라다와 친분을 맺는데, 이이가 나중에 <훌륭한 병사 슈베이크 : 이후 “슈베이크”>의 삽화를 그린다. 이 책에 그의 삽화가 많이 들어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15년에 91연대에 자원입대해 전선으로 가지만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 체제에 반감을 가져 1915년 가을에 스스로 러시아에 투항했다. 당시 다수의 체코 병사들도 마찬가지여서 그들만 따로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을 만들어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것도 처음 알았다. 1918년 러시아 혁명 후에는 모스크바에서 체코 사회민주당에 합류해 러시아 적군에 들어가 복무했고, 우파Ufa에선 군 출판국 편집장도 지냈다.

  1920년 12월에 체코로 돌아온 하셰크는 또다시 ‘보헤미안의 삶’, 즉 방탕한 생활에 접어들어 알코올 중독 상태가 된다. 도저히 작품활동을 할 수 없었던 그는 철제 침대 위에서 책의 삽화를 그리던 요세프 라다에게 <슈베이크>의 후반부를 구술하다가 결국 끝을 맺지 못한 채 1923년, 마흔 살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다.

  체코에서는 유명하다지만 역자 해설에 다른 작품을 소개한 것도 없고, 우리나라 말로 번역한 것도 체코 작가들의 단편 모음집 두 권에 단편소설 세 편 포함된 것이 전부다.


  이 작품 <슈베이크>는 블랙 코미디다. 경쾌한 문체로 되어 있다는 점을 미리 아시기 바란다.

  슈베이크는 몇 년 전에 복무했던 군대의 의무위원회에서 정식으로 ‘바보’로 최종 판정을 받아 복무 중단 조치를 당한 개장수다. 체코 사람들도 개를 먹느냐고? 아니, 그런 개장수 말고, 개를 사고 파는 사람, ‘개고기’가 아니라 ‘개’로 장사를 하는 사람을 이렇게 번역했다. 그런데 슈베이크가 한 개 장사는 온갖 못생긴 괴물 잡종개들의 족보를 위조해 순혈의 진짜배기라고 구라를 쳐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파는 사기였으며 그것도 개 사냥꾼이 몰래 훔쳐온 똥개를 파는 일이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1권 뒷부분으로 가면 연대장이 애지중지하던 개를 훔쳐 자기가 모시던 중대장한테 줬다가 발각이 나서 편한 후방부대에 근무하던 중대 전체가, 일찍이 작가 하셰크 자신이 1915년에 입대한 91연대 산하로, 전선으로 배치되는 일이 벌어진다.

  작품은 집안일을 돕는 밀레로바 부인이 슈베이크한테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의 암살사건을 전해주며 시작한다. 이후 맥주집으로 향하는 슈베이크. 술집엔 사복경찰 브렛슈나이더와 입이 거칠고 박식한 술집 주인 파리베츠 딱 둘이 있었다. 브렛슈나이더는 자신의 건수를 올리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을 엮어 넣으려고 혈안이 된 당시의 보통 사복경찰이라 이들로 하여금 오스트리아, 체코 정부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게 만들려 자꾸 미끼를 던진다. 그러나 시민들도 밖에서 함부로 정부 욕을 했다간 치도곤을 당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여간해 넘어가지 않았다. 당연히 대공 피살 사건이 화제가 됐고, 슈베이크는 1912년 터키가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와의 전쟁 때 오스트리아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대공 부부를 죽였을 거라고, 이제 오스트리아가 터키에게 선전포고할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 세르비아와 러시아가 오스트리아-체코, 즉 우리를 도와 터키를 쓸어버릴 거란다.

  가만히 듣고 있던 사복경찰 브렛슈나이더가 술집 주인한테 묻기를, 어찌하여 요제프 황제의 초상화가 걸려있지 않느냐, 했다. 맥줏집 주인 파리베츠가 대답하기를, 초상화에 파리들이 얼마나 똥을 싸 놓았는지 얼굴이 온통 새까매져 떼어 놨노라. 그래 찾아서 보니까 정말 늙은 황제 얼굴에 까만 점이 촘촘했고, 갑자기 얼굴에 함빡 웃음이 번진 브렛슈나이더가 한꺼번에 두 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면서 슈베이크더러는 반역죄, 파리베츠한테는 황제 얼굴에 똥칠한 죄가 중하단다.

  슈베이크는 경찰서에 끌려가 브렛슈나이더가 작성한 조서가 사실이라고 읽어보지도 않고 서명을 해버려 다음날 아침 여섯 시에 지방형사재판소로 보내졌다. 근데 슈베이크가 하는 말이 좀 이상하거든. 그래 법정 의무관에게 진료를 의뢰했고, 세 명으로 이루어진 법정의무위원회는 “요세프 슈베이크의 완전한 정신적 마비상태와 선천적 백치상태증으로 미루어 요세프 슈베이크가 확실한 바보”라는 사실에 만장일치로 의견을 낸다. 그러나 곧바로 귀가시키는 대신 심리를 중단하고 혹시 주변 사람에게 위험한 지 확인 관찰을 위해 즉시 정신병원으로 이송시키라고 권고하는 바람에 병원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정신병원의 전문의들은 법정의무위원회와 의견을 달리해 슈베이크가 “이성이 박약한 꾀병쟁이”라고 진단하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싫어 그냥 퇴원조치 해버린다. 정신병원에서도 잡다한 에피소드가 있으나 생략을 하고, 퇴원을 할지언정 당연히 점심식사 하고 퇴원하겠다고 병원 수위실에서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수위가 경찰을 불러 다시 경찰서로 끌려간다. 끌려가며 보니까 프라하 중앙통이 정신없이 술렁거리는데, 늙고 노망난 프란티세크 요제프 황제가 선전포고를 해버렸던 거였다. 경찰서에서도 이젠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왜곡된 법조항을 수호하기 위하여” 오직 형무소와 교수대 건수만 생각하는 가장 멋진 관료주의적 맹수들로 변해 있어서 밥투정 때문에 들어온 슈베이크 같은 날파리는 그냥 훈방 방면해 드디어 며칠만에 집으로 돌아간다. 맥줏집 사장 팔리베츠는 어떻게 됐느냐고? 일 주일 전에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맥줏집은 팔리베츠 부인이 계속 경영하고.

  수다스럽지만 얌전한 (줄 알았던) 밀레로바 부인은 슈베이크가 없는 동안 슈베이크의 방을 불륜 커플한테 빌려주어 돈을 벌어왔는데, 이 에피소드도 넘어가자. 얼마 후 오스트리아가 수세에 몰리자 드디어 슈베이크에게 신체검사 통지서가 도착했다. 통지서가 오자마자 갑자기 류머티즘이 재발한 슈베이크는 밀레로바 부인에게 입대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류머티즘 증세를 잘 알고 있는 밀레로바 부인은 득달같이 의사를 불러와 3일 동안 관찰을 하게 하지만 날이 갈수록 증상은 더욱 나빠지기만 해서 드디어 참전은 꿈도 꾸지 말라는 진단을 받아낸다. 그러나 슈베이크는 부인이 다림질한 전에 입던 군복을 입고, 붕대를 친친 감은 다리와 목발로도 부족해 과자가게에서 예전에 쓰던 작은 수레를 빌려와 그걸 타서, 밀레로바 부인이 미는 수레 안에 누운 채 오스트리아 군가를 부르며 신체검사장으로 출발한다. 이 모습이 프라하 관보에 소개되기를, “노모에 의해 병자를 위한 수레에 실려왔던, 목발에 몸을 의지한 불구자의 아름다운 시위”라 했다.

  하지만 군의관 대장 바우츠가 딱 보고 하시는 말씀. “이 모든 것 속에 최전방과 총탄과 포탄의 파편을 회피하려는 기만적인 시도가 숨어 있다. 모든 체코 국민들은 거짓말쟁이 무리들이다.”

  판정에 의하여 영창으로 끌려가려는 순간 슈베이크는 기적같이 류머티즘이 사라지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아무리 그래도 판정이 났으니 영창으로 가기는 했는데 영창 중에서, 영창 의무대로 갔다. 이곳을 찾아온 남작 부인. 프라하 관보에 난 아름다운 광경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영창 의무대 병실로 통닭구이 12마리, 전투용 리큐어 두 병, 와인 세 병, 담배 두 갑, 잘 제본된 <우리 군주의 인생 이야기>, 초콜릿 상자, 매니큐어 세트, 과일상자, 흰 히야신스와 함께 위문차 방문한 것. 남작부인이 돌아간 후에 영창의무대의 그린슈타인 박사에게 슈베이크가 하는 말이, “남작부인이 저의 계모랍니다.”

  최종적으로 군의관들이 위원회를 만들어 슈베이크를 찾아와 결론을 낸다. 슈베이크는 “생선처럼 건강하고 꾀병을 부리고 있고, 멍청한 소리도 지껄이면서 상관을 상대로 웃긴 짓을 하고 있음. 다만 자기 재미를 위해 여기에 있고 모든 전쟁이 장난이며 코미디 같은 것이라 생각함. 전쟁은 절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함.”

  그리하여 슈베이크는 유대인이며 호색한이며 분명한 알코올 중독자인 군종신부 오토 카츠의 당번병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본문만 1,623쪽까지 달려도 결국 미완성으로 끝나는 길고 긴 전쟁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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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12-06 0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체코, 블랙코미디,,, 읽고 싶은 요소는 다 갖췄네요.^^

Falstaff 2023-12-06 16:25   좋아요 1 | URL
재미는 있는데 미완성이라 갑자기 뚝 끊어지는 바람에 김이 좀 샙니다. ^^

레삭매냐 2023-12-06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책 계의 전설적인 책이라
나오자마자 사긴 했는데... 여적
뭉개고 있네요.

다른 재미진 책들이 계속해서
나오니-

Falstaff 2023-12-06 16:26   좋아요 0 | URL
천천히 읽으셔요.
문체는 차페크의 희극 단편집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하고 매우 비슷하더라고요. 보헤미아 사람들이 이런 문체인가...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번역자도 다른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