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사과의 주름살 문학과지성 시인선 191
이정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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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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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록의 두번째 시집. 1964년생 용띠 시인. 공주사대 한문교육과를 졸업했다. 나 중딩 때, 그러니까 1970년대 초반, 상업선생께서 평택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나 그랬다는데, 그 학교는 졸업생 가운데 서울대나 공주사대를 입학하면 전학기 장학금을 주었다고 해서 공주사대에 대해 상당히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괜히 공주사대, 그러면 듣기도 좋고 감정도 좋다. 정작 장학금을 준 선생의 모교가 기억나지 않는 건 우습기도 하지만. 근데 시집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 건 말씀이지, 이이가 사범대학을 나왔으니까 공립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여기저기서 했다. 고향 홍성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갈산고등학교 교사시절에 이 시집을 냈고, 몇 년 후 근무지를 옮겨 내 작은 아이 다니던 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할 때 낸 시집이 《정말》이다. 너네 학교 이정록 선생이라고 아냐? 응. 그 양반 시 쓴다는 것도 아냐? 당근이지, 아빤 어떻게 알았어? 야 새꺄, 다 큰 놈이 징그럽게 아빠가 뭐냐 아빠가, 아버님 또는 아버지라고 불러라. 이 작은 아이가 지금 서른이 넘었다. 아오, 세월이 훨씬 더 징그럽다.

  이정록은 1989년에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등단했다. 사실 등단이면 등단이지 뭐 눈치를 볼 건 없지만 지방신문을 통해 등단한 것이 좀 거시기했는지 1990년엔 한길문학 신인상을, 93년, 서른 살 시절에 다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중앙 시단의 말석에 방석을 놓게 된다. 92년에 소도시 아르센-루팡 빌라를 전세로 얻어 지금 사는 곳으로 전입한 나는 국가 경제발전을 위하여 당시의 미풍양속을 따라 주말 주일도 없고 공휴일도 없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척하고, 밤이면 밤마다 불철주야 미래교육을 위하여 두주불사를 마다하지 않을 때라 시 따위는 읽어볼 여유가 없었다. 이때 이정록이 등단하고 본격적인 시작을 시작했을 때라 시인이자 내 아이의 은사일지도 모르는 선생께 미안한 바 적지 않다.

  그래도 늦게나마 읽어볼 마음을 먹은 게 어디야, 그지?


  그래, 이정록이 2010년에 창비에서 낸 시집 《정말》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정말》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시집을 재미로 읽느냐고? 그럼 왜, 안 돼? 재미도 있고 당연히 뭉클하기도 하고. 시집 한 권 읽으면 계속 생각나는 시가 두어 개면 만점이지? 두어 개도 되고 심지어 콱 박힌 시 구절도 있다. <느낌표>에서 나오는 건데 지금 찾아보니 62쪽이다. 첫 연.


  원자력 병원에서 돌아온 아버지

  수덕여관에다 생의 벼랑을 부려놓았다


  시인의 아버지가 암에 걸린 듯. 결국 고치지 못한 시한부만 남았는지 거처를 수덕여관으로 옮겼다. 수덕여관. 지금은 헐어 없어졌으나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수덕사 입구에 단정한 기와집을 짓고 여관업을 하던 격조 높은 장소였다. 바로 옆에 “그때 그집”이라고 산채 비빔밥을 기가 막히게 하는 집이 있었다. 지금은 저 아래 주차장 입구로 자리를 옮겼다. 수덕여관이고 그때 그집이고 예전에 있던 자리는 싸그리 밀어버렸다. 나도 가본 지 오래라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 또 이야기가 옆으로 새 버렸다. 원자력 병원과 수덕여관이란 고유명사가, 아마 다른 독자들에겐 그러하지 못하겠지만, 내겐 콕콕 염통을 지르는 것이었고, 게다가 “생의 벼랑을 부려놓았다”는 것이 얼마나 실감이 나는지. 프라이버시 문제로 더 이상은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하여간 나는 이 한 연에 와장창, 마음의 유리창이 깨져버렸었다. 이게 시다. 다른 사람과 관계없이 특정 독자 한 명을 냅다 후려칠 수 있는 서늘한 언어의 칼.

  이거 말고도 시집 《정말》에 관해서 말을 하자면 쐬주 서너 병은 필요할 터, 오늘은 《풋사과의 주름살》을 이야기하자는 지면이니 여기까지만 하자.


  그럼 《풋사과의 주름살》은 별로라고? 에이, 별로는 아니지. 이이가 우리 나이로 서른 살, 올해 새로 바뀐 규정에 의하면 스물아홉에 중앙시단 말석을 얻어 두번째 낸 시집이 《풋사과의 주름살》이라서 그런지 14년 후에 낸 시집과 비교하면,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투박하다. 특정 사람이나 사물, 경관을 바라보는 온기어린 시각이 한 번도 애정을 놓치지 않건만 그렇게 특징적으로 소위 “이정록 표”라고 구분해지지는 않더라는 것. 그래도 내 눈을 끈 시들은 이정록이 오얏, 그러니까 자두 이씨 성을 가져서 그런지 자두와 관계있는 시가 좋았더라.



  자두나무



  개망초 꺾으며 너에게 간다

  짱짱, 햇살을 쟁이는 푸른 자두들


  바닥엔 때 이르게 물러 떨어진

  열매들, 모두 벌레 먹은 녀석들이다


  벌레가 들자, 성한 놈 제쳐둔 채

  온몸으로 단물을 올려주고

  씨알 여물게 해준 자두나무


  낮술에 골아떨어진 호주戶主에게

  부채를 부쳐주던 여자女子가, 저 자두나무

  그늘에 쪼그리고 있었다


  늙은 몸통, 갈라진 홈마다

  붉은 눈물 솔아 있다


  땅바닥 쪽으로 쏠려 있는

  한 여자女子의 오래된 눈길 (전문)



  시집이 1996년에 나왔다. 당시만 해도 한문을 습관적으로 사용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하여간 이정록은 위처럼 단어 쓰고 괄호 안에 한자를 쓰지 않고 한자를 날 것으로 그냥 썼다. 한문교육이 교과과정에서 빠진 지 오래라 원본과 달리 우리말 쓰고 따로 원래 한자어를 삽입했다. 이하 다른 시도 마찬가지다.


  자두는 자둔데, 빨갛게 맛이 오른 주먹덩이만큼 큼지막하고 슬쩍 눈길만 줘도 혀뿌리 저쪽부터 신 침이 폭폭 뿌려지는 맛난 자두가 아니라 일찌감치 툭, 떨어진 벌레먹고 떫은 풋자두들. 비록 떨어져 씨는 맺지 못했을지라도 자기가 썩어 온몸으로 단물 올려준단다. 그리고 남은 건? 쪼그랑 주름투성이 빈 껍질이겠지. 낮술 마시고 자두 나무 아래서 코를 고는 아버지 호주에게 부채를 부쳐주는 여자, 나이든 할머니, 어머니 또는 아주머니 같은 자두. 남자가 술이나 퍼마시고 자빠져 자고 있는데 왜 여자가 그깟 남자한테 부채질을 해주느냐고 치사하게 타박하지 말자. 호주, 대주大柱가 가을바람에 새까맣게 타버릴 때까지 호구지책 먹여 살렸는지 누가 알랴.

  이 자두나무, 한 번 더 나온다. 이번에도 할머니와 자두나무.



  세수



  빨랫줄처럼 안마당을 가로질러

  꽃밭 옆에서 세수를 합니다, 할머니는

  먼저 마른 개밥 그릇에

  물 한 모금 덜어주고

  골진 얼굴 뽀득뽀득 닦습니다

  수건 대신 치마 걷어올려

  마지막으로 눈물 찍어냅니다

  이름도 뻔한 꽃들

  그 세숫물 먹고 이름을 색칠하고

  자두나무는 떫은 맛을 채워갑니다


  얼마큼 맑게 살아야

  내 땟국물로

  하늘 가까이 푸른 열매를 매달고

  땅 위, 꽃그늘을 적실 수 있을까요 (전문)



  이정록 시의 매력은 쉽다는 것. 딱 읽어보면 그냥 접수가 된다. 굳이 시의 감상을 글로 쓸 이유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요즘엔 주머니에 하나씩 장만하지 않으면 도무지 시를 읽을 수 없다는 암호해독기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시-암호해독기가 요새 네이버 쇼핑에서 70퍼센트 세일을 해도 안 팔린다는 거 아닌가. 덩달아 요새 시집도 안 팔리고. 이제 소수의 잘 교육받은 탁월한 자들만 감상하고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시의 시대에 이정록 같은 시인이 가끔은 눈에 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이냐는 말이지. 근데, 암만 그렇다 해도, 글쎄, 이 시집이 나온지가 벌써 27년이나 돼서 그런지, 시집 뒤에 김주연이 쓴 해설의 첫머리마따나 촌스럽고 촌스럽다. 이 또래의 시골 풍경을 맛있게 그린 몇몇 시인들과 차별을 두기 힘들지 않나 싶은데, 시인이여, 걱정하지 마시라, 내가 아마추어 가운데서도 아마추어이어서 이 말도 틀림없이 헛소리일 터이니.

  마지막으로 시집의 표제시 읽어보고 끝내자.



  풋사과의 주름살



  어물전 귀퉁이 

  못생긴 과일로 탑(塔)을 쌓는 노파


  뱀 껍질이 풀잎을 쓰다듬듯,

  얼마나 보듬었는지 풋사과의 얼굴이 빛난다

  더 닳아서는 안 될 은이빨과

  국수 토막 같은 잇몸과, 순전히

  검버섯 때문에 사온 낙과(落果)

  신트림의 입덧을 추억하는 아내가

  떫은 핀잔을 늘어 놓는다

  식탁에서 냉장고 위로, 다시

  세탁기 뒤 선반으로 치이면서

  쪼글쪼글해진 풋사과에 과도를 댄다

  버리기에 마음 편하도록 흠집을 만들다가

  생각없이 과육을 찍어올린다

  떫고 비렸던 맛 죄다 어디로 갔나

  몸 안을 비워 단물 쟁여놨구나

  가물가물 시들어가며 씨앗까지 빚었구나

  생선 궤짝에 몸 기대고 있던 노파

  깊은 주름살 그 안쪽,

  가마솥에도 갱엿 쫄고 있을까

  낙과로 구르다 시든 젖가슴

  그 안쪽에도 사과씨 여물고 있을까


  주름살이란 것

  내부(內部)로 가는 길이구나

  연(鳶) 살처럼, 내면(內面)을 버팅겨주는 힘줄이구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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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1-13 07: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정록 시인의 동시를 좋아해서 아이랑 읽었어요. 유쾌하고 재밌어요. 엣세이집도 구수허니 좋았고요. 그런데 어른시는 약간 분위기가 어른이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3-11-13 15:25   좋아요 0 | URL
이 양반이 동시, 동화도 많이 썼더라고요. 어른 시. ㅋㅋㅋㅋ
시가 아주 편하고 알기 쉬워 좋았습니다. 현대시들 참 읽기 힘들어서 더 반가운가 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11-13 08: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오늘 뭔가 글발 쫙쫙 받게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진짜예요)

Falstaff 2023-11-13 15:26   좋아요 1 | URL
앗, 그렇습니까? 오호호...

stella.K 2023-11-13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오늘 글은 정말 꿀이 떨어지네요. 아르센 루팡 빌라라. 폴님식 표현이신거죠? 괜히 궁금해지는데요?
생의 벼랑을 부려놓았다란 표현도 궁금하구요. 자살을 그렇게 표현한 걸까요?

작은 아드님 말씀하시니까 옛날에 저랑 같이 일해던 후배 생각나네요. 키는 장대같이 크고 장가도 간 애가 아빠 아빠하는데 되게 어색하더라구요. 본인이야 습관되서 모르겠지만. 저 자랄 때 아버지께서 습관되면 못 고친다고 아예 아빠라고 못 부르게 하셨죠. 그 후배 지금 애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쯤 다니고 있을텐데 지금도 애들 앞에서 아빠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ㅋ
오늘 시집은 저도 읽고 싶네요.^^

Falstaff 2023-11-13 15:27   좋아요 1 | URL
옙. 제가 아르센 루팡 고등학교 졸업, 아르센 루팡 대학 졸업, 아르센 루팡 빌라 전세 입주 등등 했잖습니까. ㅋㅋㅋㅋ 저 운동하는 장소는 센 강 강변도로랍니다.
이 시집보다 창비에서 나온 <정말>이 더 재미나요. 한창훈의 발문도 기가 막히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