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아닌 사람 대산세계문학총서 172
샤오홍 지음, 이현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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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선집. 샤오쥔과 공동출판한 《고난의 여정》, 샤오홍의 단독 소설산문집 《다리》, 단편소설집 《소마차 위에서》와 《광야의 외침》 이렇게 네 권에 실린 소설 전편을 실었다고 한다. 이이의 작품은 연극으로 공연하기 위해 후에틴신이 각색해 희곡으로 만든 <생사장>만 읽어보았다. <생사장>은 지주와 소작인, 소작인도 소작인 나름이지 관리직 소작인과 비참한 생활을 해야 하는 노예급 소작인, 괴뢰정부 만주국을 세운 일본군과 앞잡이 등을 등장시킨 시대극이자 참혹극이었다.

  샤오홍은 1911년 헤이룽장성에서 유지 가문의 맏딸로 태어났다. 헤이룽장성. 우리말로 읽는 대로 발음하면 흑룡강성. 겨울이 되어 바람이 불었다 하면 바가지 만한 돌덩이가 날아와 말 머리를 때려 피가 철철 흐른다는 북간도 이야기를 외할머니한테 들었다. 맏이로 나왔지만 딸이란 이유로 냉대를 받으며 산 작가는 먼 친척을 따라 베이징에 가 중학교를 졸업했으나 가족이 압력을 넣어 스무 살에 시골로 이사한 집에서 지내며 농촌생활을 경험한다. 이때 고난 속에서 허덕이던 농민의 생활상을 목도한 것이 샤오홍의 작가 생활에 중요한 자산이 되어 <생사장>은 물론 《가족이 아닌 사람: 이하 “가족이”》의 몇 작품에서 절절한 장면으로 등장한다.

  《가족이》에 실린 열아홉 편을 구태여 주제별로 구분을 하자면 특히 동북 지역의 농촌을 배경으로 ①지주에 의하여 심각하게 수탈을 당해 거의 노예수준의 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폭력에 노출된 농민, ② 대 일본 전투에 참가한 군인이나 이들의 가족 및 탈영병, ③ 대일 투쟁이나 혁명을 위해 집을 건사하지 않고 떠나는 극빈자 출신 지식인 또는 의식화한 청년, 그리고 샤오홍 자신이 그리 했듯이 ④ 일본에 살려고 갔거나 다니러 가 적응도 하지 못해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젊은 여성 이야기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샤오홍을 읽으면서 얼마 되지 않아 머리에 번쩍 떠오르는 우리나라 작가가 있었으니, 강경애. 자칭 우리나라 국보였던 양주동과 열애를 나누었고 샤오홍보다 두 살 언니인 강경애의 십팔번은 아무래도 적나라한 가난의 참혹상이라고 할 터인데, 부모가 정해준 남자의 아들을 낳았지만 가난에 찌들어 입양을 보내야 했던 샤오홍 역시 강경애와 어깨를 견줄 정도로 가난을 묘사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1930년대의 조선과 중국 동북지역의 삶이 그리 많이 다르지 않았나 보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입에 풀칠이나 한다고 가솔을 이끌고 간도 행을 나선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 중남부, 서부 지역의 농민들한테도 동북으로 가면 땅이 기름져 먹고 살 만하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끝없이 지주에 수탈을 당했던 건 조선이건, 중국 동남부와 서부 지역이건 간에 다 거기가 거기였으며, 동북부라고 별 다를 게 있었겠는가. 이주 중국인 가운데서도 김동인 <감자>의 복녀가 틀림없이 있었다는 데 만 원 건다.

  《가족이》 속의 작품을 읽어보면, 1930년대의 샤오홍이 공산주의자였거나, 아니면 적어도 공산주의자 동맹 또는 모임의 멤버였을 거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강경애를 읽을 때와 같이. 시절이 아직 대장정 중이었거나 막 끝났을 때이다. 정치적 확신이나 배경이 없이 이런 작품을 쓰다가 재수없게 국민당 정부에 발각이라도 나면 일신 상 큰 위험을 감수해야 했을 때였다. 강경애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카프에 가입하지 않은 채 프로 문학에 헌신했지만, 샤오홍은 데뷔작 <아이를 버리다>를 발표하던 1933년에 공산당원 문인들의 조직인 “별극단”에 가입한다. 그래서 1942년, 결핵으로 숨을 거둘 서른한 해의 짧은 생, 십 년이 채 되지 못하는 문인 생활 내내 아직 유보 상태인 봉건적 사회의 계급 상황에 천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샤오홍을 읽은 솔직한 감상은, 이이가 재수없게 1960년대 중반까지 살았다면, 나이 쉰다섯, 이제 중국의 중견작가로 터를 잡고 연륜이나 경험으로 보아 가장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할 시기에, 청소년 근위대/홍위병에게 머리 끄덩이를 잡혀 조리돌림을 당했을 거 같았다는 거. 하여간 중국의 인텔리겐치아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문화혁명을 피해갔던 사람들이 행운아다.

  책은 재미있다. 작품의 주제야 위에서 이야기한 바이지만, 문학작품을 주제만 알고 넘어갈 수 있나, 교과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주제를 품은 스토리가 조금 낡았지만 하나하나 다 재미있다. 이 가운데 표제작 <가족이 아닌 사람>을 그중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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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0-12 0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올리신 글을 읽으면 자연스레 감자랑 소금이 떠올라요. 강경애 단편집을 다시 읽어볼까 마음도 들고요.

잠자냥 2023-10-12 11:27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엔... 강경애보다는 샤오홍이 좀 더 잘 쓰는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

Falstaff 2023-10-12 15:49   좋아요 0 | URL
감자랑 소금. ㅎㅎㅎㅎ
재치 만땅이셔요.

잠자냥 2023-10-12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에 몇 편만 읽고 참 잘쓴다.. 생각하고 일단 덮었는데 마저 다 읽어야겠습니다.
<가족이 아닌 사람> 저도 인상 깊었어요.

Falstaff 2023-10-12 15:50   좋아요 0 | URL
저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참혹한 가난의 광경은 읽고 싶지 않아지더라고요.
혹시 크누트 함순 때문 아닌가 몰라요. 웬수 같은 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