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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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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트는 나한테 독후감을 쓰기 힘든 작가다. 제일 힘들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제발트, 이 양반 특유의 쓸쓸한 문장에 푹 젖어 있었으며 책을 다 읽고도 그런 감정에서 얼른 빠져나오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감정이 무엇이다, 어떤 종류의 쓸쓸함이다, 콕 집어서 얘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짓궂게 말하면 이 책이 다행스럽게 내게 마지막 제발트인데, 어디까지나 짓궂게 말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발트가 57년이라는 짧은 세월만 살고 가는 바람에 네 권의 픽션만 남긴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 작품집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독자는 지금 작가가 서술하고 있는 것이 정말 W.G 제발트의 독백인지, 아니면 그가 만든 픽션의 등장인물의 서술인지 헷갈릴 정도로, 얼핏 작가와 비슷한 연배, 동향 인물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느낌이다. 게다가 어떻게 구했는지 진짜 관련 사진이라고 해도 독자가 믿지 않을 도리가 없을 만한 사진 자료를 첨부하는 바람에, 처음 《토성의 고리》를 읽을 때부터 마구 혼돈스러워 한 것처럼, 글쎄, 여태까지 그렇더라니까. 《이민자들》 앞부분에서 달릴 생각은 아예 못하고, 제발트 비슷한 문체의 글을 읽을 때 줄곧 그러듯이 템포 아다지오, 당연히 꼼꼼하게 읽으면서, 지금 내가 픽션을 읽고 있다, 하고 스스로를 각성을 시킨 후에 비로소 작품과, 쓸쓸한 문체, 문장과 거리를 두고 셈을 할 수 있었다. 글쎄, 제발트가 이렇다니까.
《이민자들》은 네 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차례로 <헨리 쎌윈 박사>와 <파울 베라이터>는 30~40쪽으로 짧은 편이고, <암브로스 아델바르트>와 <막스 페르버>는 중편 정도 분량이다. 네 작품 모두 어린/젊은 시절에 고향을 떠나 이방의 나라에서 살아온 사람들로, 자살이나 완만한 자살 또는 자살과 거의 마찬가지 방법으로 생을 소멸시킨다. 세번째 작품을 빼고 유대인이 주인공이다. 나는 제발트의 대표작 《아우스터리츠》를 읽어서 그런지 꽤 오랫동안 이이가 유대계 독일인인 줄 알았다. 이런 건 W.G 제발트가 소년 시절에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에 노출된 경험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는 자연스럽게 전쟁과 학살, 그리고 이런 것들을 발생시킨 20세기 유럽의 근대성에 대한 회의를 초래했을 수 있다. 이쯤에서 지금 독후감을 쓰기 위해 위키피티아와 제발트의 다른 책들을 참고하고 있다는 걸 밝혀야 하겠다. 제발트는 후에 나치 협력자들에 관해 대단히 세밀한 필터를 적용한 듯하다. <잔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라는 짧지만 훌륭한 작품을 남긴 알프레트 안더쉬가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편협한” 태도로 그를 비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가 알기로 안더쉬는 나치의 눈 밖에 나 퇴폐문학자라고 탄압받은 작가 가운데 한 명인데, 이 정도면 목숨이나마 건사하고자 협력하는 척했던 거 아닌지 모르겠다. 같은 독일 평론가들도 제발트더러 “비판받을 만큼 편협”하다고 했다니까.
그렇다고 제발트가 과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가 소년시절에 어떤 홀로코스트 관련 경험을 했는지 나는 모르니까. 다른 시절도 아니고 혈관을 타고 니트로 글리세린이 흐리기 시작하는 남자들의 십대 때 경험한 충격이라면 그게 평생 갈 수 있고, 세월이 감에 따라 진짜 경험했던 실제보다 더욱 과장된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한 시절 혈관 속에 다량의 혈중 니트로 글리세린 농도를 지녔을 때, 부모가 자식들 앞에서 귓속말을 하고, 그것도 혹시 알아들을까봐 일본어로 의사소통을 했으며, 그저 입 끝에 ‘어디 가서 이런 말 말아라, 큰일난다.’라는 단서조항을 달았으며, 수업시간에 갑자기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 누군가가 생물 교사를 데리고 가더니 그걸로 마지막 수업이 된 것을 경험한 것이, 여태까지 박정희, 그리고 유신, 하면 두드러기 증세가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드니, 내 나름대로 제발트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다.
네 작품의 주제를 누가 딱 한 단어로 말해보라면, 작품집의 제목 《이민자들》를 연상하면 단박에 알 수 있듯이 “향수homesickness”다. 물론 제발트가 누군데 아무리 제목이 《이민자들》이라고 해서 주제마저 “향수” 이렇게 칼로 자르듯이 말할 수 있겠는가? 비슷한 다른 말도 골라보자. 상실. 공허. 우울. 고독. 또 많은 단어가 있겠지만 바람직한 양성positive 명사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전부 자살을 하거나 의사 자살을 하는 거겠지만. 가장 짧은 작품이면서 제일 앞에 실린 <헨리 쎌윈 박사>, 한 작품만 들여다보자.
화자 ‘나’는 1970년 9월 말에 영국 동부 노퍽주 노리치의 새 직장을 얻어 아내 클라라와 함께 노리치 근교인 힝엄으로 갔다. 실제로 W.G 제발트가 이 때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독문학 강사를 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고목과 건물 등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개업소에서는 주변에서 가장 큰 집을 소개해주었고, 스코틀랜드 소나무와 주목이 늘어선 교회 옆에 딱총나무 무리와 루시타니아 월계수, 그리고 사람 키 정도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집에 들게 된다. 정원과 나무를 포함한 식물에 대한 제발트의 수식은 전작에서 이미 충분히 경험해본 것이다. 제발트 자신이 정원 가꾸기에 큰 관심이 있는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집엔 키도 크고 어깨도 넓지만 항상 고개를 수그리고 안경 너머로 다른 곳을 보는 습관 때문에 자세가 구부정해 왠지 좀 땅딸막해 보이는 나이든 사람이 있었다. 이이가 헨리 쎌윈 박사다. 집은 아내의 것이고 자기는 말하자면 일종의 장식용 은둔자일 뿐이라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노부부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기는 있다.
지금은 황폐해져 버렸지만 테니스 코트까지 딸린 넓은 정원을 깔끔하게 가꾸어 소소한 작물 정도는 직접 농사를 지어 살았더랬지만 이젠 두 부부만 살아 늙은 하녀 한 명을 빼고 다른 하인들은 전부 보냈으며, 아내도 각지에 있는 다른 집의 임대 같은 업무와 여행을 즐기기 위해 일년의 반 이상을 집 밖에서 보내 거의 혼자 살고 있다.
쏄윈 박사는 리투아니아의 흐로드나 근처 마을에 살다가 일곱 살이던 1899년 늦가을에 이민길을 떠나 영국에서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런던의 화이트채플의 지하 셋집에 터를 내렸다. 공부를 잘해 전교 일등 자격으로 장학금을 받아 케임브리지 의과대학에 진학할 때 견진성사를 받으면서 헤르슈라는 이름을 헨리로, 쎄베린이란 성을 쎌윈으로 바꾸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져 인도로 보내는 동안 아내 헤디와 결혼을 했다. 헤디의 집안이 워낙 부유해서 이들은 1920~30년대에는 아주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고, 이를 위해 박사 역시 열심히 종합병원 의사로 일을 했으나 거의 대부분이 처가집 덕분이었다. 이런 생활이 지나자 박사는 당연히 가난뱅이가 되었지만 아내는 쓰고 남은 돈을 훌륭하게 운용하여 지금은 다시 확실히 돈이 많은 부인이 되었단다.
박사의 잘못이 무엇인가 하면, 자신이 어떤 출신인지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사가 견진성사를 한 성공회 교도이긴 하지만 할례를 한 유대인의 아들이라는 걸 적어도 십 년 이상 아내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물론 특별하게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나, 그걸 알게 된 아내 헤디는 그만 조금씩, 조금씩, 이게 켜켜이 누적이 되다 보니 이젠 돌이킬 수 없이 남편한테 정나미가 떨어져 버린 거였다.
물론 이건 스토리일 뿐이다. 그러나 누가 제발트의 작품을 스토리 때문에 읽을까? 이것 외에 헨리 쎌윈 박사가 살아온 이야기, 스위스 알프스를 올랐던 장면들 같은, 제발트 표 문장을 감상하는 것 만 가지고도 충분히 시간 값, 돈 값을 하리라 본다. 오랜만에 내돈내산 책 읽은 독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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