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소녀
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김명환.김엘리사 옮김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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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아르헨티나에서 출생해 두 살 때부터 10년 동안 뉴욕에서 생활하고, 열두 살 부터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성장한 인텔리.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가 비밀 자유투표를 통해 세계 최초로 칠레의 사회주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때 도르프만의 나이가 스물여덟. 사회주의 국가의 대두는 라틴 아메리카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서 혹시라도 자국에 영향을 미칠까 싶은 미국을 자극해, 칠레의 주 산업이었던 구리copper의 국제 시장가격을 대폭 낮추어 칠레 경제는 아옌데 집권 이후에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시민들의 거의 모든 불만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시작한다. 시민 불만이 고조되자 1973년 8월에 육군 총사령관 대장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민선 대통령 아옌데를 제거하고 군사평의회 의장 자리에 취임했으며, 이듬해인 1974년 12월에 대통령에 취임해서 1990년 3월까지 17년간 칠레의 최고 권력자가 된다. 권력을 손아귀에 쥔 피노체트는 현대 세계사에서도 유래가 극히 드물 정도의 폭압적인 시민탄압을 통해 집권을 유지했는데, 1980년 광주 시민항쟁 당시, 대통령이 같은 군인 출신, 같은 독재자라서,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거의 소개가 되지 않았던 칠레에서의 민중 학살이 주로 대학가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나도 그때 칠레의 사정을 처음 알았다). 아리엘 도르프만이 서른한 살 때, 피노체트가 정권을 탈취하자마자 곧바로 피의 통치를 시작하는 걸 보고,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자신을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 또는 불평불만자로 밀고할 수 있다는 것이 비단 도르프만 혼자가 아니고 당시 거의 모든 인텔리들의 공포이자 생각, 우려였다.

  딱 그때 우리나라도 비슷하게 군인 출신의 독재자가 장기 집권을 하고 있었으나 그래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비록 형식적이라고 할지라도 합법한(합법하게 보이는) 재판과정을 거친 후에 생명을 거두었던 반면, 박정희보다 10여 년 늦게 권력을 차지한 피노체트는 별 재판도 없이, 예를 들어 진짜로 산티아고 월드컵 경기장에 1만2천 명이 넘는 별의 별 정치범들을 모아놓고 체계적인 스케쥴에 의거하여 숱한 소설작품을 통해 널리 소개된 라틴 아메리카 식 고문을 시전하고, 그러다가 다수는 다시는 햇빛 구경을 하지 못하고, 나와도 거의 불구 상태로 기어 나오기도 했다. 나무위키를 얼핏 보니까 이렇게 쓰여 있다. "박정희 시기 대한민국과 피노체트 시기 칠레, 두 나라를 비교하면 한국은 유치원 수준에 불과했다." 아리엘 도르프만도 당시에 해외로 도피한 무리 백만 명 가운데 한 명이다. 대부분의 해외도피자들은 안데스 산맥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북쪽에 접한 사이 안 좋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거쳐 멕시코까지 튀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도르프만은 몇 몇 나라를 거쳐 1976년에 네덜란드에 정착하게 된다. 이 당시 칠레에서 3천6백 명이 넘는 여성들도 체포되어 이 가운데 3천2백 명이 강간을 당했다고 하지만, 수십 만의 피해자들 대부분은 남성이었고, 숱하게 많은 남자들은 아무 혐의 없이 끌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하여 특정 마을은 성인 남자가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 이런 동네엔 당연히 과부들의 천지였을 것이다.

  76년에 네덜란드에 정착한 도르프만은 (똑부러지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이제 칠레의 기적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어느 정도 사회 경제적 안정을 찾은 피노체트 정권이 대 시민 유화정책을 펼친 시기를 주목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었으며, 독한 칠레 정권은 현재 구금되어 불구가 될 정도로 고문을 받은 사람들도 차라리 안데스 산맥 위를 나는 비행기에서 내던져 버리는 한이 있어도 숨만 붙어있는 채로 고향 집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반면에 마을의 과부들은 남편의 시신이라도 확실하게 돌려받아 장사 지냄으로 한 인간의 종말을 뒤끝 없이 마칠 수 있게 해주든지, 사내들의 죽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죽음과 밀접한 누군가의 사과와 징계를 통해 해원을 해주든지, 하여튼 이런 깨끗한 결말을 바랐을 것이라 생각했다. 누가? 아리엘 도르프만이.

  그리하여 《죽음과 소녀》를 여는 첫 작품은 <과부들>이 된다..


​  <과부들>에는 비교적 많은 등장인물이 필요하다. 푸엔테스 가족만 해도 할머니와 두 며느리, 손녀와 손자, 고문 받아 나사가 빠진 채 나중에 등장하는 할머니의 작은 아들이 필요하며, 다수의 동네 과부들, 이 마을 출신의 군인과 그와 눈이 맞은 젊은 과부, 로마 가톨릭 신부, 그리고 새로이 주둔한 군인들이 필요하다. 군인에는 될 수 있는 대로 주민들을 회유해서 잘 지내려고 하지만 과부들의 계속되는 요구사항에 지쳐 점점 예전의 폭력적인 지배자로 변해가는 대위와, 원래 잔혹한 성격을 가진 중위를 포함한다. 중위의 천성이 잔혹했겠는가. 권력을 쥐어봤고, 어쩌다 보니 그걸 함부로 사용하는데도 누가 뭐라하기는커녕 잘한다고 격려를 받고, 이런 것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 강압적으로 일을 밀어부치고, 필요하면 가차없이 채찍을 휘두르는 것이 훨씬 편리하고 신속하다는 진리를 터득해 그렇게 됐겠지. 반면에 대위는 자신도 그렇게 편하고 즉각적인 해결책을 알기는 하지만 그것을 잘못, 그리고 계속 사용하다 보면 집단적인 반발을 일으키기 쉬워 피가 더 많은 피를 부를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기도 하다. 하여간 동네 군조직의 수장은 비둘기파인 대위의 소관이니까 별 문제가 없었는데, 저 상류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이미 상당히 부패한 시신 한 구가 떠내려오면서 사달이 난다.

  푸엔테스 집안의 소피아 할머니가 부패해 머리통이 떨어져나간 시신을 잡고 자신의 아버지 유해라고 주장하면서, 푸엔테스 집안의 방식으로 매장을 하겠다고 주장한다. 할머니는 하루도 빼지 않고 이 계곡에 나와 앉아 아버지, 남편, 아들 둘을 기다리고 있어서, 천지신명이 자신을 돌보아 먼저 아버지의 시신을 자신한테 보내주었다고 주장한다. 설마 시신이 정말로 소피아 할머니의 친아버지가 맞겠는가? 그저 빈 묘지를 조성해 죽은 이의 넋을 달래는 것보다는 진짜 사람의 시신을 자기 아버지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 인간의 깔끔한 종말, 그러니까 깨끗하게 정리해서 보내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겠지. 피노체트 당시 죽거나 실종되어 다시 나타나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이라고 집계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데, 그저 계곡을 따라 떠내려온 머리 없는 시신이 자기 아버지일 확률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말이지. 그걸 정말로 소피아 할머니가 몰라서 주장할 리는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다시 강을 따라 부패한 시신 한 구가 또 떠내려온다. 이번에도 시신을 건진 소피아 할머니. 자신의 남편이라고 주장한다.

  이 동네에 대규모 비료공장을 지을 목적으로 먼저 주민들을 안정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온 대위는 확인되지 않은 시신을 수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했던 시신을 회수한 터에 다시 남편의 시신이라고 주장하는 것마저 아니라고 할 수가 없는 대위는 마을의 신부 가브리엘을 불러, 남편의 시신이 아님을 두 명 다 알고 있음에도 굳이 신부에게 누구의 시신인지 확인을 요구한다. 가브리엘 신부 역시 시신이 할머니의 남편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소피아 할머니에게 가늠할 수 없는 지옥 대신 조그마한 위안을 주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장례를 주관해주기로 한다. 평화의 이름으로. 소피아의 남편 미겔 푸엔테스의 안식을 위하여. 그러나 대위는 자기 부하가 연애하고 있는 젊은 과부의 남편 시신이라고 이미 거짓 확인을 한 상태. 일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이의 해결을 위해 가장 간단한 것은, 있다. 이 마을에 도착하기 전까지 대위와 중위가 숱하게 저질렀던 다반사. 가장 쉬운 해결방법. 대위는 시간이 갈수록 이 ‘방법’의 유혹을 감촉하기에 이르고, 마을의 숱한 과부들에게 최후 통첩을 하는 순간에도, 계곡의 강을 따라 또다른 시신 한 구가 떠내려온다.


​  이 책의 대표작은 아무래도 표제작품이기도 한 <죽음과 소녀>를 들어야 할 터. <죽음과 소녀>는 우리나라에서도 공연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리엘 도르프만은 우리나라에 청소년 소설로 소개했으나 어른이 보더라도 충분한 단편집 《우리집에 불났어》를 시작으로 창비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후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을 내고, 희곡선 《죽음과 소녀》까지 출간했다. 불과 세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죽음과 소녀》 가운데 <과부들>과 <죽음과 소녀>를 이이의 대표작이라고 꼽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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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9-12 0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도 기억
아옌데부터 읽고싶은데 기억해뒀다가 같이 읽어야겠네요.

Falstaff 2023-09-12 07:41   좋아요 2 | URL
아옌데가 더 재미있더라고요. 누가 됐든 칠레의 징글징글한 현대사는 참... 이런 식으로 문학이 발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뭐 이런 생각도 듭니다.
<죽음과 소녀>는 우리나라에도 개봉을 한 영화로 만들어졌는데요, 제목에 기함을 합니다. 뭔가하면 <시고니 위버의 진실> ㅎㅎㅎㅎ

coolcat329 2023-09-12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칠레의 독재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유치원에 불과했다니 놀랍네요.
근데 칠레랑 네덜란드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멈출 때> 작가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칠레에서 살고 있거든요.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라틴아메리가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또 읽고 싶어지네요.

Falstaff 2023-09-12 17:58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런 건(군사독재) 금메달 받는 게 좋지 않잖아요.
칠레-네덜란드는 별로 관계 없습니다 하다보니까 칠레 떠서 네덜란드에 정착했다는 것 뿐이지요. 조금 의외이긴 합니다. 유럽으로 간 라틴 아메리카 먹물들은 대개 언어가 통하는 스페인으로 간 걸로 알고 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