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영역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쓰시마 유코 지음, 서지은 옮김 / 마르코폴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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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시마 유코라고 하면 8년 전이었던 2015년 이이의 장편 소설 <불의 산>을 참 재미있게, 흥미롭게 읽은 것이 워낙 기억에 남은 작가다. 그리하여 단박에 다른 작품 <웃는 늑대>까지 내달렸지만 아쉽게도 전작보다는 감흥이 덜 해 이후 좀 뜸했던 작가다. 그저 <불의 산>의 강렬한 느낌만 간직한 채 세월은 흘렀다. 올해 이이가 신인시절에 쓴 연작 장편 <빛의 영역>을 번역 출간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다가, 동네 도서관 개가실에 들렀더니 신규 구입 도서 테이블에 놓여 있기에 주저하지 않고 빌려 읽었다.

  이이의 생부가 본명, 쓰시마 슈지, 유코가 첫 돌을 지나자마자 유곽의 호스티스와 함께 동반자살에 성공한 <인간실격>의 저자 다자이 오사무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것이니 살을 붙여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터. 돌 때 죽은 아버지라는 건 사실 아무 의미도 없다. 쓰시마 유코가 평생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자에 대한 뒷이야기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 말고는. 그래 홀어멈이 된 엄마하고 둘이서 열심히 살다가 유코 역시 작가가 되어 서른두 살 때 연작소설 <빛의 영역>을 발표해 노마문예 신인상을 받는다. 새삼스레 쓰시마 유코의 살아온 행복하지 않은 내력을 소개하기가 좀 거시기하지만, 이이의 작품과 비교하기 위하여 중요한 것만 간추려보면, 스물다섯 살이던 1972년에 결혼을 하고, 딸을 출산하지만 곧바로 이혼을 한다. 그래서 미운 다섯 살의 딸 하나를 키우며 이혼에 성공해 홀어멈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작품이 오늘 독후감을 쓰는 <빛의 영역>이고, 쓰시마 엄마의 경우, 여덟 살에 다운 증후군에 죽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웃는 늑대>다. <빛의 영역>은 1979년, <웃는 늑대>는 2000년에 일본에서 문학상을 받는다. 어차피 집구석에서 작가가 한 명 나오면 그 집안은 거덜이 나는 거니까.


  책 뒤편엔 일본인 카와무라 미나토의 해설이 붙어 있다. 같은 글에서 카와무라는 해설을 “빛, 소리, 꿈” 이렇게 세 가지 측면에서 관찰하고 서술한다. 길어봐야 2백쪽도 되지 않는 작은 소설이지만 명색이 훗날 일본을 대표할 작가 가운데 한 명이 될 인물이 신인상을 받은 연작소설이라서 이런 거창한 제목의 해설을 쓰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거 참, 꿈보다 해몽이다. 작품에서 쓰시마가 빛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소리에 관해서는 생각보다 덜 묘사하고, 꿈은 현대 소설가치고는 과하게 많이 등장시킨다. 과장 좀 하자면 꿈 꾸는, 꿈 속 장면이 한 열 페이지 될까 싶다. 이런 거 말고 해설의 핀트를 1970년대 중후반의 일본에서 아이 딸린 홀어멈이 꿋꿋하게 홀로 서는 과정, 즉 페미니즘 적으로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이 책이 투쟁적 페미니즘 작품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도 세계적으로 여성 인권이 향상되지 않은 최악의 나라 가운데 하나로 “매년” 지목되는 일본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남편 후지노와 이혼하려 한다. 시작은 후지노에게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낳은 김에 혼인신고도 했으나, 변변한 직업도 없이 연극 영화 판에 빌빌거리며, 새로 생긴 처자식이 나름대로 부담이 되는 철부지 남편. 반면에 ‘나’는 TV 방송국의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커리어 우먼으로 남편한테 크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적지 않은 돈을 사업자금이나 성공을 위한 종잣돈으로 대주고 돈을 날려 먹는 걸 손 하나 까닥하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아이 키우는 것도 시간 많은 남편이 가끔 유아원에 데려가는 것 정도만 도와주었을 뿐이다. 이렇게 지극 정성으로 남편을 위해 보필을 할지언정 부부간 의견차이가 생기면 가끔, 아주 가끔 귀싸대기를 얻어터지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하루는 남편 후지노가 정색을 하고 ‘나’와 진지한 대화를 해보자 하더니, 이제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리셋해서 처음부터 다시 살고 싶다고 주접을 떨더니 이혼을 전제로 별거에 들어간다. 이혼을 하더라도 후지노는 아이를 부양할 형편도 안 되고, ‘나’가 양육권을 가지게 되더라도 육아비용과 향후 교육비도 보태줄 처지가 아니며, 결혼 생활 도중에 ‘나’에게 얻어 쓴 적지 않은 돈도 갚지 못하겠노라고 선언하고, ‘나’는 묵묵부답, 그저 그런 줄 안다. ‘나’는 1940년대 생이며 1970년대 중반의 일본에서 여성은 당연히 찍 소리 하지 못해야 했던 거니까.

  ‘나’가 방송국 다니면서 억대 연봉, 일본이니까 천만 엔 이상의 연봉을 받는 능력자라고 해도, ‘나’는 후지노를 향해, 거 참 드런 새끼, 이혼하자고 해서 고맙다, 하면서 새 남자를 찾거나 여러 남자를 찾는 대신, 아직은 이혼하지 않은 법적 남편 후지노와 함께 채광이 좋은 셋방을 얻으러 도쿄 시내를 뒤지고 다녔다. 속으로는 이혼해서 따로 사느니 어떻게 어영부영 새롭게 리셋한 삶을 살고 싶다는 후지노 마음이 변해 그냥 이대로 살 수 있을지 궁리하면서. 문제는 후지노한테 자금이 많이 들어가 ‘나’의 수중에 돈이 별로 없다는 것. 이 와중에 4층짜리 건물의 4층. 원래 주거용 건물은 아니지만 집주인 가족이 오랜 세월 살았던 4층이 주머니 사정에 딱 맞게 월세로 나와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거야말로 빛의 영역, 사방팔방 그렇게 채광이 좋을 수 없었던 것.


  이렇게 해서 딸 하나 달린 홀어멈이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어처구니없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은 생각한 것처럼 되지 않는다. “조정”을 위한 가정법원의 호출에 남편 후지노는 참석할 의도가 없어 달이 가고 해도 간다. 그러다가 결국 후지노는 조정 없이 이혼 서류에 인감도장을 찍어 ‘나’에게 건네줘 처음엔 다시 함께 살기를 바라다가 나중엔 빨리 좀 정리가 되었으면 싶었던 이혼이 성립되자, 주인공 모녀는 채광이 찬란했던 건물의 4층 방을 나와, 거리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다른 셋방으로 가면서 작품은 끝을 낸다.

  짧은 소설. 시간 죽일 목적으로 좋은 작품. 1970년대 중반. 지금 시각으로 보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었던 시절의 어중간한 소재와 수위.




* "홀어멈"은 공선옥이 작품에서 평이하게 자주 쓰던 표준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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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8-11 05:3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예정 :
화요일, 서정인 <귤>
목요일, 페터 바이스 <마라/사드>
금요일, 루이 아라공 <오렐리앵>

바람돌이 2023-08-11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에게 딸이 있었군요. 내 인생에 하나도 준게 없는 아버지가 나를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리고 죽어버렸다는거..... 에고 참....저는 처음 듣는 작가인데 생각보다출간된 책이 많네요. 골드문트님 말하신 불의 산은 절판인데 도서관에 있으려나.

Falstaff 2023-08-11 11:35   좋아요 1 | URL
ㅎㅎㅎ 넵. 하여간 다자이, 그렇게 죽지나 말던지, 장가를 들지 말던지, 그렇더라도 아이를 낳지 말던지, 하지 말입니다.
<불의 산>은 아마 도서관에 있을 거예요.

stella.K 2023-08-11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가 아버지라는 건 저도 첨 알았네요.
제목이 근사해서 기대했는데 전 웬지 안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긱이...ㅋ

Falstaff 2023-08-11 11:35   좋아요 0 | URL
뭐 굳이 읽으실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ㅎㅎ

2023-08-11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11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