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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81
샤를 드 몽테스키외 지음, 이자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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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의 소설? 작가 이름을 잘못 읽은 줄 알았다. 철학자이며 법학자. <법의 정신>이 세상의 명저로, 당대의 클래식으로 알려진 사람인데 설마 다른 집안 사람이겠지. 그런데 내가 아는 몽테스키외가 맞았다. 그가 소설도 썼다. 그것도 서간체 소설로 18세기 초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륙과 영국에까지 필명을 날리고 발행부수도 당시 수준으로는 거의 밀리언 셀러 비슷했던 모양이다. 심지어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가 나오고 서간체 소설이 유행하기 시작해서 영국의 사무엘 리차드슨이 <파멜라>를 썼고, 피에르 쇼데를로 라클로도 <위험한 관계>를 썼단다.
나는 우연히 <파멜라>도 <위험한 관계>도 읽어봤다.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와 더불어 18세기 작품이며 서간체 소설인데, 21세기를 사는 독자가 읽고 공감하며 즐기기에는 과하게 올드하다. 물론 그렇다고 읽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 17세기 문학작품을 선택할 경우엔 처음부터 올드 스타일, 지금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음, 당연시 여기던 젠더와 계급, 인종 차별 등을 충분히 감안하셔야 할 것이라는 도움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일 뿐이다. 물론 지금 읽어도 포스트 모던처럼 읽히는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도 있지만 로렌스 스턴은 예외적인 경우이다. 특히 서양의 문학 작품을 읽으면 작품 속에서 자주 거론하는 고전들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니 <모험적 독일인 짐플리치시무스>니, 심지어 인용 순위 1번을 차지할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 마저도 일단 “읽어내고야 말겠다.”라는 비장한 각오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씀. 당연히 내 경우에 한해서 하는 말이며, 대산세계문학총서에서만 골라봐도 그랬다는 거.
전에 읽은 어느 책에서 (율리 체의 <잠수 한계 시간>이다!) 대학원 졸업하면서 지도교수 인터뷰를 하는데, 학위 논문을 쓰느냐 아직 수준에 미치지 못했느냐, 하는 자격을 위한 구술시험에서, 교수가 인터뷰이에게 질문을 하기를, 답은 뻔하게 몽테스키외이긴 하지만, 질문의 핵심은 몽테스키외의 정확한 철자, 알파벳이었다. 주인공은 철자는커녕 몽테스키외가 어쩌고저쩌고 몽테스키외인 줄도 모르는 거라, 내놓고 교수한테 비아냥거렸고, 그래서 당연히 낙방하는 줄 알았지만 지도교수를 해주겠다는 연락을 받는 에피소드를 재미나게 읽은 적 있다. 이 독후감 읽는 분 가운데 무슨 몽테스키의 알파벳을 컨닝 없이 쓰실 수 있는 분께 만 원 드림.
샤를 루이 드 세콩다 몽테스키외 Charles Louis de Secondat Montesquieu. 어떠셔? 후덜덜하지?
보르도 근교에서 태어난 귀족의 자재다. 혁명 이전에 귀족이었으면 정말 귀족이다. 혁명 끝나고 갑자기 정권을 잡은 코르시카 촌놈 보나파르테가 전쟁을 일으킨 후에는 개나 소나 싸움 한 번 잘했으면 그냥 던져주던 것이 작위였고, 이때 작위 받은 신 귀족들은 혁명 전 골수 귀족들한테 은근히 야코가 죽어 슬슬 눈치를 봤었다니까. 18세기에도 프랑스의 상류계층은 군인, 성직자, 즉 “적과 흑”이 제일이고 이 다음이 법관. 몽테스키외는 제3의 상류층이면서, 품위에 맞지 않게 소설도 썼다. 하긴 이 당시, 프랑스의 계몽주의가 정점을 달릴 이 시점엔 몽테스키외와 함께 백과전서학파의 대표선수로 이름을 날린 드니 디드로도 재미는 없지만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하기도 한 <운명론자 자크>를 썼으니 다 그랬는지도 모른다.
지금 말은 슬쩍 하고 지나갔지만, 이 책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의 중요한 힌트 하나를 던졌다. 때는 바야흐로 절정을 달리던 계몽주의 시대. 게다가 몽테스키외는 계몽주의, 백과전서파의 대표. 이러면 책이 재미가 있을까, 없을까? 딱 부러지게 얘기하면, 당시엔 정말 재미있었을 것 같다. 근데 지금은 아니다. 왜 그런고 하니, 몽테스키외가 엄숙한 법학자이며 철학자일지라도 일단 소설을 썼고, 상류계급에서는 적과 흑에 이은 넘버 3의 떨거지인지라 불만이 없을 수 없어 소설을 통해 자신의 불만을 다 털어놓을, 아니, 배설해버렸을 터이고, 당연히 이 와중에 적과 흑들의 심기를 조금이나마 건드리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니, 책을 사 읽어볼 당시 세미 부르주아들이 볼 때 얼마나 상쾌했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그렇겠지? 그렇다니까. 하지만 이후 3백년이 흐른 지금 발랑 까진 현대의 독자가 읽으면, 그저 피식, 옛날엔 꼰대들이 이런 식으로 놀았군. 하고 그만일 확률이 높다. 나처럼.
실제로 몽테스키외가 이 책을 출간하고, 진짜로 읽어본 적과 흑, 가운데 빨간 제복을 입은 군인들은 원래부터 책 읽기를 그리 즐기지 않아서 시비를 걸지 않은 것 같고, 흑black, 사제들이 열을 받아 주교한테 쪼르르 달려가, 주교님, 몽테스키외라고 하는 스키가요, 소설을 하나 써서 냈는데요, 주교님은 절대 읽어보지 마셔야 합니다. 뇌심혈관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니 특별히 조심하셔야 하거든요. 요 지랄을 했고, 원래 하지 말라면 더 하는 게 나 같은 유물론자나 프랑스 주교나 비슷비슷해서, 주교는 득달같이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를 사 읽어봤더니, 이게 정말 스팀이거든. 그리하여 “신을 모독하는 불경스러운 언어” 운운하며 비난을 한 바 있으며, 몽테스키외는 무려 흑의 두목께서 이리 얘기를 하시니, 상당부분을 수정 및 삭제해 개정판을 내기에 이른다. 물론 오늘날 번역 출판한 것은 다 원복시킨 것이기는 하지만.
몽테스키외가 왜 난데없이 페르시아인의 편지를 썼느냐 하면, 프랑스에서 벌어졌거나 지금 하고 있는 일련의 불만스러운 사태를 프랑스인의 입을 통해 원고지를 메꾸었다면, 부르봉 왕가와 그들의 똘마니인 적과 흑이 프랑스 산 주둥이를 내버려두었겠느냐, 하는 걱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이 점을 고민했겠지. 그리하여 프랑스에 처음 와보는, 그러나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프랑스 국경을 넘어가지 못하는 반 유배를 당한 페르시아, 당시 시각으로 얘기해서 대 아시아 지역 사람이 바라본 프랑스/유럽 문화의 모순점을 유럽인들이 미개한 종교로 치부하고 있는 무슬림과 비교하여 이야기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나름 재미있게 스토리를 전개한다.
때는 1711년 4월. 페르시아의 대 귀족 우스벡이 고향 이스파한을 떠나 수도 쿰에서 하루만 머물고 트뤼키예로 향하며 친구 루스탄에게 보내는 편지를 1번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앞으로 160 개의 편지가 더 나와 어느덧 1720년이 되고, 이 사이 7십여 년 동안 왕좌를 깔고 앉았던 루이 14세가 숟가락을 놓고, 증손 루이 15세가 다섯 살의 나이로 왕위를 이으며 루이 15세가 15세 될 때까지 오를레앙 공이 섭정을 펼치게 된다. 페르시아의 대귀족이라고 하지만 우스벡은 뭐 별 거 아닌 거 가지고 왕의 눈 밖에 나서, 작품 내내 모든 아시아가 다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하고 또 그게 크게 틀린 건 아니지만, 아시아 나라에서 왕의 눈 밖에 났다 하면 대부분 골로 능지처참이나 참수를 당해야 하는 것이 일반상식이라 우스벡 역시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서, 페르시아 환도에 목이 잘리느니 일단 왕이 생각을 바꿀 때까지, 그게 언제가 될 지는 모르긴 하지만, 일단 페르시아를 튀자, 튀긴 튀는데 혹시 모르니까 이왕 가는 거 멀리 튀자, 하고 굳게 마음을 다진 후, 수없이 많은 처첩들의 장소, 하렘에 든다.
페르시아 거 참 웃긴 나라였다. 대귀족이고 남편이잖은가. 두번째 아내와는 혼인 식을 올리긴 했지만 우스벡이 매일 시도를 했어도 아내는 무려 몇 달 동안 처녀의 몸이었단다. 결혼을 해도 남자와 피부를 대는 것 자체를 명예, 정절, 절개의 훼손으로 생각했다고 하니 이거 확실히 비정상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스벡이 거의 유배를 떠나기 전날 밤에는 많고 많은 처첩들을 한 방에 몰아놓고, 이 사람들도 좌식 생활을 하니까, 금침에 비스듬히 누운 우스벡은 모든 처첩의 옷을 홀랑 벗기고, 이후엔 어떻게 했는지 나도 모른다. 책에도 안 나온다.
다음날 길을 떠나며 환관 대장에게 하렘과 처첩들의 정조, 절개, 명예에 관한 권한을 위힘하고 길을 나서는데 가관은 가관이다. 당연히 책의 마지막에 가서 이 처첩들의 웅변으로 일부다처와 하렘의 일은 독하게 욕을 먹기는 하지만 우스벡은 유럽으로 향하면서 내내 하렘 걱정뿐이다.
물론 파리에 도착하고 나서는 무슬림의 시각으로 본 그리스도교 특히 로마 가톨릭의 부패, 허위 같은 것에 관한 신랄한 비난, 유럽 문명과 문화의 허실, 제도와 상업, 계급의 불평등에 관하여 침을 튄다. 이게 바로 샤를 루이 드 세콩다 몽테스키외가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였겠지.
이 책은 처음에 사서 읽고 책꽂이에 꽂아 놓을 생각이었다. 비록 재미로 치면 좀 떨어질 것 같지만 고전이고, 몽테스키외의 소설이란 희소성도 있고, 기타 등등 뭐 그랬는데, 가장 중요하게 망설이다가 결국 도서관 개가실에서 눈에 띈 다음에야 읽게 된 것은, 서간체 소설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여태 서간체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본 적이 없다. 암만해도 그게 께름칙했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난 서간체 소설을 좋아하지 않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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