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 안드리치 단편집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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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 안드리치 팬을 자임하는 내 눈에 《이보 안드리치 단편집》이 띄었으니 어찌 안 읽고 넘어갈 수 있나. 그리하여 득달같이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하고 꼬박 한 달을 기다린 끝에 기쁨을 억누르며 드디어 첫 장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이런. 이거, 읽은 책이다. 물론 《이보 안드리치 단편집》이라는 제목은 아니다. 출판사 ‘연극과인간’에서 2001년에 초판을 찍은 《아스카와 늑대》라는 책이었다. 역자 김지향金志香의 진짜 도장이 찍힌 책이다. 여전히 내 책꽂이 어딘가에 꽂혀 있(거나 방바닥부터 대책없이 쌓은 책 탑 어딘가에 있)을 텐데 한 번 찾아보고 있으면 사진도 올리고, 못 찾으면 그냥 두겠다. 세상에 이런 일이. 책값은 비싸지만 믿고 읽었던 출판사가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였건만. 책 뒤에 보면 초판 1쇄 펴낸 날이 2009년 4월, 지금 표지를 하고 가격을 조금 내린 개정판 펴낸 날이 2021년 10월. 흠. 말도 안 돼. 초판 1쇄는 연극과인간에서 찍은 2001년 5월이다. 이렇게 써야 올바르다.

  거참. 만일 이거 돈 주고 샀다면 스팀 좀 뿜을 뻔했다. 도서관에서 구입한 것, 즉 시민들 세금으로 산 거라고 열을 받지 않은 건 아닌데 그래도 직접 내 돈 주고 산 거보다는 아무래도 덜 돈다. 세상 인심이 다 그렇지 뭐.

  2019년에 나는 이 책의 진짜 초판본 《아스카와 늑대》를 읽고 쓴 독후감을 이렇게 끝맺었었다.

  “표지가 귀엽게 생겼다고 동화 읽는 기분으로 골랐다가는 골로 가는 책. 주의 바람.”




+++++++ <아스카와 늑대> 독후감  2019년 11월



  저 먼 먼 기억의 삽화



 출판사 “연극과 인간”은 주로 희곡을 출간하는 회사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우리나라 독자들이 잘 찾지 않지만 정말 좋은 작가, 라고 내가 생각하는 보스니아 사람 이보 안드리치의 단편소설집을 냈다. 2016년에 그해에 내가 가장 감명 깊게 공감하며 읽은 책으로 안드리치가 쓴 <드리나 강의 다리>를 꼽은 적이 있다. 2017년에는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늦여름>, 작년엔 김태정의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그러고 보니 벌써 11월 중순, 올해도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겠다, 라고 썼는데, 왜 이야기가 난데없이 삼천포 시로 빠졌을까. 그래, <드리나 강의 다리>. 이 책을 번역한 이가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세르비아-크로아티아 어를 가르치고 있는 수석연구원이라고 하는 김지향. <아스카와 늑대>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빨간 인주 묻힌 인지가 붙어 있고, 거기에 예쁘장한 한자어로 ‘金志香印’이라 박혀있다. 내가 비록 이이가 번역한 <드리나 강의 다리>를 2016년에 읽은 최고의 한 권으로 뽑은 적이 있지만, 안드리치의 다른 책 <저주받은 안뜰> 독후감에서는 번역한 한국어 문장의 질에 관해 아주 모질게 독설을 펼친 바 있어, 사실 이이의 또 다른 작품인 <아스카와 늑대>를 읽은 감상을 쓰기가 좀 캥기기는 한다.
 《아스카와 늑대》는 작가가 쓴 서문 격인 <어떻게 내가 문학의 세계에 들어가게 됐을까>를 제외하면 단편소설 일곱 편을 묶은 단편집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 우리가 단편소설의 나라에 살고 있지만 이보 안드리치의 단편들 역시 매우 매력적이다. 특히 첫 두 작품 <파노라마>와 <서커스>를 매우 좋게 읽었다. 두 작품의 구조는 비슷하다. <파노라마>에서는 어렸던 시절의 기억으로 남은 시장통 마당에 자그마한 가두 상점을 빌려 오스트리아 사람이 파노라마,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대형 만화경쯤으로 생각할 수 있는 구경거리를 열었고 소년 시절에 이국의 정경들을 보며 무한대, 소년 특유의 무한정의 상상력을 펼쳤던 것을 기억하며, 어느 새 순식간에 이제 나이 들어 당시의 감정을 회상하는 작품이고, <서커스> 역시 어린 시절 시장 공터에 서커스단이 와 천막을 치고 공연을 했는데 워낙 어려서 부모가 자신을 데려가줄지 아닐지, 아닐 것이 분명해 울음을 터뜨리기 바로 직전에 함께 가기로 결정을 했으며, 난생처음 서커스, 기묘하고 긴박하고 긴장되는 공연에 자지러지다가 또한 갑자기 수십 년이 흘러 당시 서커스단의 단장을 만나는 시간의 전이가 벌어진다. 글쎄, 요즘 젊은 분들이 파노라마와 서커스 구경, 그것도 옛 시절의 (파노라마는 분명 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서커스를 봤을지 확실하지 않아 이 이야기에 공감할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노년의 작가가 소년시절을 떠올려 상상해가며 차분하게 쓴 단편소설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물론 다른 다섯 편의 단편들도 다른 외국 소설가들의 단편들에 비해 더 친근하게 느꼈지만 그것들에 비해 <파노라마>와 <서커스>에 훨씬 공감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가격도 착해서 10% 할인 가격이 6,650원이다. 단편 한 작품에 천 원 미만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이기는 하나 요새 유행하는 가격대비 성능비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거 같다.



* 표지가 귀엽게 생겼다고 동화 읽는 기분으로 골랐다가는 골로 가는 책. 주의 바람.


​ 책 찾았다. 안드리치 팬이라고 그래도 쉬운 자리에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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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15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귀여운데요? ㅎ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언제 다시 읽어도 좋죠. 평을 좋게하시니 저도 기회되면 기억했다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주말요.^^

Falstaff 2023-04-15 17:10   좋아요 1 | URL
오, 조심하세요. 알라딘 독자 서평을 보면 제가 최고의 평가를 하는 드리나 강의 다리 조차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괜히 큰 기대 하시고 읽으셨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

yamoo 2023-04-15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저도 그렇습니다.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광팬으로서 그의 작품들이 눈에 띄면 득달같이 달려가서 사오곤 했는데, 읽어보면 타이틀만 바꿔서 단 번역본. 빡치는 기분을 몇 번 당하니, 뭐 그려러니 합니다..ㅎㅎ

이보 안드리치...저도 나오는 족족 사려고 하는데, 번역된 작품이 별로 없네요..^^;;

Falstaff 2023-04-15 17:13   좋아요 0 | URL
슈니츨러도 그런 책이 있었군요! ㅎㅎㅎ
안드리치 번역은 다 읽은 거 같은데요, 유고슬라비아를 대표하는 소프라노 세나 유리나츠가 보스니아의 역사를 알고 싶으면 안드리치의 작품 <대신과 영사>를 읽어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다만 <대신과 영사>만이라도 얼른 번역해 나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