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
우베 팀 지음, 오용록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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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베 팀은 1940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수공업자 가족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와 열여섯 살 터울의 형 모두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었는데, 악명높은 SS단의 일원이었던 형은 1943년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전사한다. 팀은 형과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중에 작품으로 써서 회고하기도 한단다. 굳이 읽어볼 마음은 없다. 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모피 공장을 열어 초등학교를 마친 우베도 모피 가공업 실습교육을 이수해 아버지가 유명을 달리하자 사업을 이어받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 때가 몇 살이었던 거야? 팀은 스물한 살 때인 1961년부터 2년동안 공부해 63년에 대입 자격시험에 합격한다. 이때 공부하는 과정에 니더작센 주에서 67년 팔레비 이란 국왕의 국빈 방문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석했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어 서독 학생운동에 본격적인 불을 붙이게 되는 베노 오네조르크와 알게 된다. 오네조르크는 <뜨거운 여름>에도 작지 않은 사건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우베 팀이 특히 베노 오네초르크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은 2005년에 출간한 <친구와 타인>이라고 한다. 이후 팀의 행적은 뮌헨과 함부르크에서 계속 공부를 했고,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60년대는 좌파학생운동의 본산인 사회주의독일학생연맹 SDS 회원이었으며, 1973년부터 81년까지 독일 공산당 당원이었다고 하면 얼추 감이 잡힐 것이다. 1981년에 독일 공산당을 탈당한 이유는 독일 공산당이 동독의 정책에 관해서 무비판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라고. 공산당 탈당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좌파적 사고를 견지하면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은 1967년, 알프스를 넘어오는 푄 바람의 영향으로 극도로 기온이 올라간 뮌헨의 여름 이야기로 시작한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독자는 설마 이런 문장과 수사와 어법을 가지고 60년대의 학생-노동운동을 이야기할 예정인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첫 장면도 뜨거운 여름, 가장 더운 오후에 섹스가 끝난 후의 침대 위임에야. 뮌헨 소재 대학에 다니는 공부 잘하는 학생 로타가 옆방에서 아침부터 모든 창문을 닫은 위에 젖은 수건을 덮고 방문까지 꽁꽁 닫은 다음, 이렇게 해야 방의 온도를 가장 낮게 유지할 수 있다고 믿고, 내내 논문을 쓰다가 잠시 바이올린 연습을 하는 동안, 주인공 울리히 크라우제는 5월에 레오폴트 거리의 카페에서 만나 사랑을 키운 잉에보르크와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여간 하고야 만 섹스 뒤에, 난데없이 “네가 싫어 죽겠어, 지독히도 말이야.”라고 선언함으로써 그녀와의 이별을 확정시켰고, 벌거벗은 채 뒤통수를 맞은 잉에보르크는 굵은 눈물을 쏟기 시작했는데, 도무지 잉에보르크의 눈물을 상상할 수 없었던 울리히는 주 르비앙 화장품에서 출시한 향수를 많이 뿌린 그녀의 머리를 감싸주고 달래야 했음에도 도무지 울 것 같지 않은 잉에보르크가 왜 눈물을 흘렸는지가 의문스러웠다. 물론 이유가 있다. 기가 센 독일 젊은 여성이, 비록 1960년대라 할지라도 그깟 섹스 후에, 이깟 이별 통보 하나로 눈물을 흘리지는 않을 터, 잉에보르크가 자신이 울리히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걸 아직은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울리히는 잉에보르크의 낙태 비용 6백 마르크를 벌기 위해 이리도 뜨거운 여름날 며칠 동안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가 터지고 또다시 잡히기를 반복하면서 노가다를 해야했지만.

지금 나는 스토리를 다 알고 있어서 될 수 있으면 한 방에 앞쪽 이야기를 쏟아내려고 이렇게 긴 문장을 쓰고 있지만 우베 팀의 문장은 짧고 건조하다. 게다가 시간 배열도 마구 헝클어져 있고,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아 좀 더 내밀한 호소를 전할 수 있지만 반면에 독자를 효과적으로 미궁으로 빠뜨리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 작품이 기본적으로 1960년대 말의 서독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다 합해 사회운동과 유치한 수준의 테러리즘을 통틀어 보이기 위한 것이고, 독자도 결국엔 작가가 의도한대로 똑바로 하나, 둘, 셋, 넷, 줄 맞춰 스토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운동소설 말고 작품의 앞부분 같은 모더니즘 소설이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이게 책을 읽으며 내내 든 생각이었다. 알겠다, 알겠어. 우베 팀의 작품의 성격이 대략 좌파적 성향이며 그것도 사회주의의 왼쪽, 공산주의와 매우 가깝다는 건 알겠는데, 그럼 처음부터 저 오스트롭스키나 고리끼처럼 내놓고 쓰던지 하지 말이야.

올해가 어느 새 2023년. 지금 1960년대 말, 적어도 55년 전의 학생운동, 그것도 결국 실패 또는 마지막 낭만적 혁명의 흐지부지 정도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서구사회의 좌파 식 운동”을 다룬 작품을 읽는 것이 그리 즐겁지 않다. 만일 우베 팀이 남미나 아프리카, 아시아 같은 제3 세계 출신으로 제3 세계에서 벌어진/있었던 운동을 탐색했더라면 여전히 흥미롭게 읽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서독의 학생/노동자 운동을 다룬 <뜨거운 여름>이나 미국의 노먼 메일러가 쓴 비슷한 소설 <밤의 군대>나 내게는 그냥 그런 소설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게 운동이고 (말로만)혁명이었는가 말이지. 물론 본인들은 심각했겠지.

생각해보자. 출발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운동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호치민의 혁명투쟁가와 마오저뚱의 혁명가를 노래하면서 막연하게 서구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인간해방과 사회주의를 획득하고자 한다. 동시에 프리 섹스와 마리화나 등을 누리면서. 이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절박함이 없었다. “없었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내가 제3 세계 출신이라서 말할 수 있는 것이지 그들의 절박함을 평가절하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같은 시기의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어떻게 그렇게 똑같이 지독한 독재정권에 의한 폭력과 수탈과 가난과 공포 속에서 헤매고 있었는지. 입을 비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하자. 일단 퇴로를 확보하고 있는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학생, 지식인, 노동자들의 운동이, 어떻게 말 그대로 목을 내놓고, 내 목 하나도 아니고 여차하면 가족 모두의 목이 될 수 있는 걸 다 내놓고 죽기 살기로 투신하는(했던) 제3 세계의 젊은이들하고 같을 수 있는지. 같기는커녕 비슷할 수 있는지 말이다.

결국 <뜨거운 여름>의 주인공 울리히도 잉에보르크, 등꽃 색 손톱의 여인, 녹색 눈꺼풀의 검은 머리 여자, 크리스타, 레나테 등을 거치고, 동시에 뮌헨과 함부르크의 대학시절과 짧은 노동 현장을 겪은 후 초등학교 교사라는 쁘띠 부르주아로의 귀환을 선택하게 되는 거라고 단정한다.

차라리 작품 속에서 가끔 인용하는 알베르트 이야기를 선택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알베르트 이야기? 한스 팔라다가 쓴 <홀로 맞는 죽음> 또는 <누구나 홀로 죽는다>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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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2023-01-26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그가 멋져요~!

Falstaff 2023-01-26 16:54   좋아요 1 | URL
앗, 그러셨습니까? ㅎㅎㅎ 고맙습니다.

바람돌이 2023-01-26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3세계에서 진짜 목숨걸고 싸우는 이들이랑 저 서구에서 반전운동 하던 사람들이 같을수는 없죠. 그래서 약간 그들의 방황이나 이런걸 보면 공감이 힘들때가 많은 건 역시 우리가 식민지의 경험과 독재의 경험을 겪어왔던 이유겠죠. ㅎㅎ

Falstaff 2023-01-27 10:15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그렇지요. 라틴 아메리카에서 사회운동하는 책들에 상대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지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