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인 데로 가는 길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김윤미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1862년 5월, 얼마 지나지 않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왕국이 될 오스트리아 제국 수도 빈의 레오폴드슈타트, 프라터 가 16번지에서 저명한 후두학(또는 이비인후과) 전문의 요한과 루이제 슈니츨러 부부의 장남으로 출생한다. 이 당시 빈에서도 요즘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의사는 의사 가문끼리 혼인하는 것이 유행이라 루이제 역시 의사 가문 출신이었으니, 이들의 맏아들인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물론이고 세 살 아래 동생 율리우스마저 의학공부를 해 의사가 된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근데 문제는 글, 이 가운데서도 문학을 하고 싶어하는 건, 일종의 딴따라 성향과 비슷해서 누군가가 악착같이 말리지 않으면 저절로 그짝 패를 따라 가거나 그짝 물살에 휩쓸려버리기가 일쑤다. 우리의 조선시대에도 넘치는 끼 때문에 가문이고 지랄이고 간에 다 때려치우고 광대패나 사당패를 따라 나선 자제들 이야기를 가끔 들었던 것과 한 가지로. 슈니츨러의 문학에 대한 경도는 아버지 노老슈니츨러가 효과적으로 방파제 역할을 했다. 1885년, 약관 스물세 살에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아르투어는 아버지가 재직하고 있는 빈 시립병원에 들어가고, 87년엔 아버지가 간행하는 의학잡지를 위해 일하다가 급기야 88년엔 아버지의 조수 의사로 일하게 됐으니 참 갑갑하긴 했을 거 같다. 의사라는 직업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끔 작품을 발표하던 슈니츨러는 90년부터 후고 폰 호프만스탈, 펠릭시 잘텐, 리하르트 베어-호프만 등과 교유하는데, 유념하시라, 이들 모두 유대인이고, 당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반유대주의가 노골적으로 시작할 무렵이었다. 하여튼 이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1893년, 하릴없이 서른한 살이 된 슈니츨러에게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오게 마련인 기회가 온다. 아버지 노슈니츨러가 세상을 등진 것. 슈니츨러는 이제 마음 편하게 시립병원에서 나와 개업의가 되는 동시에 거의 완전히 자유롭게 창작생활로 접어들게 된다. 아직 혼인 경험이 없던 슈니츨러는 서른다섯 살 되던 1897년에 마리 라인하르트가 “세간의 눈을 피해” 사생아를 낳고, 2년 뒤에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충격을 당한다. 이때의 경험으로 십년 후인 1909년, 슈니츨러는 <트인 길로 가는 길>을 써 발표하고, 발표한지 110년이 지나 2019년, 우리나라에서도 번역해 나로 하여금 읽게 만들었다. 일본은 우리보다 백년 먼저 번역, 출간했다. 뭐, 그렇다는 거다.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작품으로는 남녀 여러 명이 두 줄로 서서 서로 체인징 파트너 하면서 춤을 추는 군무의 일종을 제목으로 딴 <라이겐>을 읽어보았다. 그리 특징적인 작품이 아니라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았지만 당시로서는 그래도 파격적인 내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은 했더랬다. 그러다 요새 갑자기 이이의 희곡작품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책을 검색해보니 <테레제>와 함께 딱 두 권뿐인 장편소설 <트인 데로 가는 길>이 눈에 띄어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책값 비싸게 찍으려면 맘대로 해라, 난 도서관에서 빌려 읽겠다!


  주인공 게오르크 폰 베르겐틴 남작의 27세부터 28세까지 약 일년 간의, 시대소설이라기보다 연애소설이다. 주인공 소개를 해보자. 지난 4월에 미국으로 영구 귀국을 앞둔 연인 그레이스와 시칠리아에서 애수 어리고 다소 지루한 이별여행을 마치고 귀국했고, 늦봄엔 블레트 호숫가의 빌라에서 마지막으로 음악에 관해 대화를 하고는 평화롭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아버지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청년이다. 슈니츨러의 전작 <라이겐>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지만 일단 작품 전체에서 다양한 음악 이야기가 나온다. 게오르크의 직업이 작곡가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슈니츨러가 서양에서도 음악이라고 하면 전세계, 다른 지방 사람들은 일단 좀 꿇리고 들어가는 빈 사람이라서 그렇기도 하겠다. 즉 음악이 마치 공기처럼 이들의 일상에 충만하다는 것. 게오르크의 아버지 노老베르겐틴 남작도 작은 체구의 성악가에게 한눈에 반해 결혼에까지 골인해 맏아들 펠리치안을 낳고, 다음해 게오르크까지 낳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병약한 체질 때문에, 아마 폐결핵 아니었을까 싶지만, 지중해 지역으로 아이들과 함께 요양생활에 들어가고 아버지는 호텔을 전전하며 생활한다. 이때 형제는 시칠리아, 로마, 튀니스, 케르키라, 아테네, 몰타, 메라노, 리비에라, 피렌체 등등에서 살게 되며, 넘쳐 넘쳐 흐르던 노베르겐틴 남작의 재산까지 완전히 폭삭 망하게 하진 않았지만 거의 거덜을 내버리고는 어머니는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때가 9년 전이고 게오르크가 열여덟 살.

  지금은 아버지마저 작고했으니 상중이다. 시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왕국의 반유대주의 선동시절이며, 굳이 연대로 따지자면 1904년 정도가 아니겠는가 싶다. 역자는 1900년 전후라고 각주를 달았다. 아무리 상중이라도 젊은 남자가 하루 종일 집밖 출입을 삼가며 애도만 할 수는 없잖은가. 시묘살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하여 게오르크도 친구들에 이끌려 사교모임에 참석하게 되면서 본문만 670 페이지가 넘는 연애소설을 시작하는 거다.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문학 공부를 할 때, 호프만스탈, 잘텐, 베어-호프만 등 유대인 작가들과 교류를 맺었다는 건 위에서 얘기했다. 이 영향을 받아서인지 <트인 데로 가는 길>에서 주인공 게오르크 폰 베르겐틴 남작도 주로 유대인과 좋은 유대를 맺는다. 로스너 가족, 에렌베르크 가족, 작가 하인리히 베어만, 나이가 좀 더 된 작가 에드문트 뉘른베르거, 뷔너 부인과 뷔너 양, 예비역 장교 데메터 슈탄치데스, 골로프스키 가족, 독설 전문가인 나이 든 오버베르거 부인, 궁정고문관 빌트 씨, 슈타우버 씨와 아들 박사 등등.

  참. 이거 먼저 얘기하자. 이 책 재미있다. 근데 진짜로 읽어보실 분께 미리 한 말씀 드리자면, 등장인물이 무수하게 많다. 읽다보면 막 헷갈릴 정도다. 예를 들어 에렌베르크 가족, 이렇게 썼지만, 에렌베르크씨와 에렌베르크 부인, 아들 오스카어, 딸 엘제가 다 완전히 다르게 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 네 명이라고 봐야 한다. 이것저것 다 합하면 수십 명의 이름과 성격을 몽땅 기억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니까 그건 미리 각오를 하시라. 위 문단에 거론한 건 오직 유대인들뿐이다. 여기에 드문 빈도이기는 하지만 친유대 성향의 선량한 랠프 스켈튼, 쇤슈타인 백작도, 반유대 성향의 골통들도 몇 명 포함된다.

  게오르크는 전에 『서동시집』에서 시 두 편을 골라 곡을 붙여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메조)소프라노 아나 로스너 양에게 악보를 전해준 적이 있다. 작곡을 했으면 자신의 노래를 성악가가 직접 부르는 걸 들어봐야 할 터이니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루는 그게 생각나 주로 유대인이 많이 사는 파울리너가세의 허름한 건물을 방문한다. 늘 어렵게 생활비를 벌어오느라 뼛골이 빠진 로스너 씨는 그를 보자마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누추한 곳을 남작님께서 직접 방문해주시는 영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바치고, 아들 요제프는 소파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남작과 함께 조금 시간을 죽이다가, 그가 누이와 함께 문이 열린 방에 들어 노래를 하고 반주를 하는 동안 불쌍한 엄마를 졸라 돈을 타내 반유대성향을 감추지 않는 친구들과 어울리러 나간다. 이때까지는 게오르크와 아나 양 사이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워낙 유대인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게오르크는 돈냄새와 음악에 관한 조예에 있어서는 세계적으로 탁월한 유대인들 역시 극진하게 생각해주는 대상이라서 시오니즘을 주장하는 에렌베르크 씨 가족이 베르겐틴 형제를 위해 만찬을 베풀고, 이 장소에 빈에서 방귀 깨나 뀌는 유대인들이 모두 모이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소박하지만 우아한 드레스 차림의 아나 로스너 양이 등장한다. 더구나 놀랍게도 에렌베르크 여사는 로스너 양이 등장하는 순간, 게오르크의 귀에 대고 속삭이기를, “아나 로스너 양은 당신을 위해 초대했어요.”란다. 세상 사는 일이 다 그렇다. 자신이 작곡한 악보를 보내주고 함께 반주하고, 노래하면서도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가, 당신을 위해 초대했다는 말로 갑자기 파르르, 저 신경줄기가 떨리기 시작하는 거. 이리하여 이들은 연애에 들어가기 시작하고, 창 밖으로 교회당의 오르간 소리가 들리는, 공동주택으로 개조한 옛 대저택의 궁륭천장으로 된 나지막한 방을 얻어 자신들의 연애장소로 만들어버린다. 아무리 망해도 남작 집안의 자제이니 이 정도야 뭐. 나 연애하던 시절 생각하니 솔직히 부러워 죽겠다. 방을 얻었으면 어쩌겠나. 결국 덜커덕 걸려버렸다.

  4개월 동안의 이탈리아 커플 여행을 포함한 9개월이 지나고 아나 로스너 양은 정말 잘생긴 아들을 낳는다. 아이를 낳으면 대개 작은 노인처럼 쪼글쪼글한 주름투성이인데, 형의 이름을 따서 펠리치안이라고 이름 지은 아이는 환한 얼굴에 파란 눈동자를 지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다만 게오르크는 예술가 사이에서 드물지 않은 빈도로 발견할 수 있는 자유주의자라서 결혼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연애소설이라고 했다. 연애소설의 8할은 사실 이별 소설이다. 커플이 연애를 하고, 방을 얻어 몸을 섞고 잉태를 한 후, 4개월 동안 이탈리아 여행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혼인을 안 해? 더구나 아이를 다른 부부에게 맡기고 애 아비는 독일로 가서 지휘자 생활을 시작하고 이후 벌어질 일은 차차 생각해본다고? 이러니 작품의 중간부터 이 연애소설도 결국 이별로 끝을 맺겠다고 짐작하는 건 타당하지만, 과연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과거 경험처럼 아이 낳은 후 2년 만에 여자가 죽을까? 그렇게 비극적인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진짜? 안 알려줌.



  그러나, 현대의 여성주의 시각으로 보면 게오르크의 행각이 불쾌할 수도 있으니 감안하실 것. 스토리의 중요한 전환이 작품의 중간 부분에 발생을 하는 관계로 내용 서술에 애를 먹었고, 당연히 소개한 스토리는 절반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2-11-04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문만 670 페이지가 넘는 연애소설‘, ‘연애소설의 8할은 사실 이별 소설‘ 이라니 너무 흥미로울것 같아요! 저는 이 작가의 <라이겐>을 사두고 아직 읽진 않았습니다.

잠자냥 2022-11-04 08:34   좋아요 0 | URL
구스톨 소위 언제 만나요?

다락방 2022-11-04 08:42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구스톨 소위 만나고 그럴 기분이 아니라서요. 좀 기다리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2-11-04 15:11   좋아요 0 | URL
근데 다락방 님 보시면 <라이겐>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좀 빡치지는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