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 손턴 와일더의
손턴 와일더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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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손턴 와일더로 말할 것 같으면, 일찍이 신문 편집인으로 일하다가 나중에 홍콩과 상하이 총영사를 역임한 잘 나가는 부모의 2녀 2남 가운데 한 명으로, 출생지는 위스콘신주 메디슨이지만 다른 형제 자매와 함께 홍콩과 상하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상류층 아이들을 위한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미 육국 소속 연안경비대에서 근무한다. 그러니까, 총 한 방 안 쏘고 전쟁 끝났다. 이후 오하이오의 오벌린 대학을 거쳐 예일에서 학사, 프린스턴에서 불문학 석사를 취득한다. 이때가 1926년, 그의 나이 스물아홉 살 때. 예일을 졸업하고 6년 만이다. 다음 해엔 오늘 읽은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를 발표해 1928년에 첫번째 퓰리처 상을 받는다. 손턴을 포함한 네 명의 동기가 다들 똑똑하다. 형은 하버드 대학 신학 교수, 두 누이는 시인과 동물학자로 이름을 날리니, 거 참, 되는 집은 된다. 손턴 와일더는 이후 극작가로 더 알려져 대표작 <우리 읍내>로 1938년에, <위기일발>로 1943년에, 여간한 작가라도 한 번 받기 힘든 퓰리처 상을 세 번 받고, 1968년에는 다시 소설 <제8의 날>로 전미 도서상을 수상한다. 염치도 없이 말이지. 이이의 성적 정체성 가지고 말이 좀 있는 모양인데 그가 동성애자였건 아니었건 간에 우리하고 전혀 관계없으니 그건 신경쓰지 말자.

  샘터 사에서 나온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를 읽어보면, 전적으로 ‘샘터’스러운 작품이란 걸 확 느끼게 된다. 요즘에도 잡지 샘터가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잡지의 분량이 한 5백쪽 된다면 전 작품을 한 번에 실었을 거 같은 기분. 하긴, 샘터는 수필 문학을 위한 잡지라고도 할 정도였으니 아닐 것도 같기는 하다.

  책을 열면 제일 앞에 서울대 영문과 교수를 지냈고, 한국현대영미소설학회 회장을 역임한 김성곤의 추천글 “불후의 명작을 읽는 기쁨”이, 이어서 이런 종류의 소설은 전혀 좋아할 것 같지 않은 <달콤한 내세>와 <거리의 법칙>의 작가 러셀 뱅크스가 쓴 들어가는 글,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어떤 소설인가?”가 나란히 달려 있어서 작품의 내용을 충실하게 알려준다. 둘 다 용비어천가 수준의 찬양글이다. 책의 머리에 올라오는 글(들)이니 당연히 찬사야 어느 정도 있겠지만, 이 작품을 “불후의 명작”이라거나 “미국 문학에서 비견할 만한 작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도덕적 우화”라고 선언하는 건 좀 과하지 않나 싶다. 뱅크스는 심지어 작품이 “오래전에 쓰인 고전과 같은, 거의 성서와도 같은 느낌”이라니, 이 들어가는 글을 읽는 독자의 기대치를 극점까지 치닫게 하는데, 이 수사는 혹시 뱅크스 특유의 엽기적 과장을 서문에서도 발휘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이 정도의 찬사를 쏟아낸 작품을 다 읽은 다음의 허탈감은 어떻게 할꼬. 나는 일단 다 읽었으니까 김성곤이나 뱅크스의 용비어천가를 할인해 다음과 같이 내놓고 말할 수 있다. 이 책 재미있다. 다만 1920년대 작품의 시각으로 보면 그렇다는 거고, 근 백 년이 지난 지금 읽어보면 낡은 티가 난다. 지금은 품절이라 사서 읽을 수는 없겠지만, 만일 당신이 다니는 도서관에 책이 있다면 충분히 대여해 읽어볼 만한 수준이다. 말하고 나니 깔끔하고 좋네. 이제 책 얘기하자.


  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오정1의 페루. 수도 리마와 쿠스코를 연결하는 산 루이스 레이 다리가 끊어져 다리를 건너던 다섯 명이 함께 까마득한 계곡 아래로 떨어져 죽음을 맞는다. 역자는 이 현상을 계속해 다리가 “무너졌다”라고 표현하는데, 약간 오버다. 다리는 1세기 전에 잉카인들이 얇은 나무 판자를 사다리 발딛개처럼 촘촘하게 늘어놓고 판자와 허리 높이에서 난간역할을 하는 추락 방지 줄을 고리버들로 엮어 만든 것으로 틀림없이 출렁거렸을 터이고, 고리버들 이음과 줄기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직사광선과 건조한 바람으로 인해 경화되어 언젠가는 끊어질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끊어졌다. 이날 오정 불과 몇 분 전에 다리를 건너 리마로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 빨간 머리의 북 이탈리아 출신으로 프란체스코회 소속으로 원주민 개종을 위해 파견 와 활약하는 주니퍼 수사가 계단에 앉아 계곡과 다리를 바라보며 땀을 들이고 있다가 다섯 명의 추락을 현장 목격하게 된다. 모두 (해체되어) 불완전하게 확인된 다섯 구의 시신을 불안전하게 수습해 장사를 지내고 나서 주니퍼 수사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왜 이러한 일이 하필 저 다섯 사람에게 일어나야 한다는 말인가?” 이이가 불교의 중이었다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참선에 빠지겠지만, 가톨릭 수사라서, 다리가 이 사람들이 건널 때를 골라 끊어진 것은 분명히 신의 행위 act of God, 우리 말로 하자면 천재지변이기 때문에 뭔가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진실이 숨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몰두한다. 만일 이 법칙을 밝히기만 하면, “삶 속에 깃든 고통들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좀처럼 믿지 못하는 가난하고 완고한 개종자2들에게” 답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바벨탑을 쌓은 주제넘은 인간들의 노력과 유사한 망상에 빠진다. 주니퍼 수사는 이때부터 다섯 명의 사망 사고자들의 행적을 추적하기에 이르고, 무려 6년 후에 무척 두꺼운 책을 완성한다. 그러나 이 책은 어느 화사한 봄날,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저자와 함께, 불태워지는 비극을 당한다.3

  먼저 몬테마요르 후작부인. 마리아 부인이라고도 불린다. 부유하지만 주민들에게 저주의 대상이기도 한 포목상의 못생기고 말 더듬는 딸로 태어나 엄마한테도 구박 덩어리로 자라 성격마저 약간 비뚤어져 독신을 주장했지만, 18세기 초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여성이 결혼 안 하고 사는 것도 어림없는 짓이라서 스물여섯 살 때 몰락한 귀족 집안의 거만한 남자하고 결혼해 딸 클라라를 낳고, 클라라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퍼붓는 노인이다.

  두번째 피해자는 페피타. 산타마리아로사데로사스 여성 수도원 산하의 고아원에서 원장 수녀 마드레 델 필라르가 자신의 후계로 키우려 작심하고 있는 소녀인데, 후작부인이 몸종까지는 아니고 심부름꾼 겸 비서 겸, 말벗 정도로 고용했다가 사람 사는 게 어디 그런가, 점점 복잡한 관계로 엮어져 부인과 함께 산타마리아데클룩삼부쿠아 성당으로 스페인으로 도망하듯 결혼해 떠난 클라라의 순산을 바라는 순례를 갔다가 돌아오다 일을 당한다. 후작부인은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경멸과 비웃음, 악다구니만 당한 것이 깊은 상처였던지 클라라에게 무진장한 애정을 쏟아 부었지만, 클라라는 정말 보잘것없는 어머니의 참견에 염증을 느껴 다른 건 다 모르고 편지 보내고 답장 받는데 6개월 걸리는 스페인으로 자신을 데려갈 수 있는 남자를 골라 결혼을 한 거다. 인생이 다 그렇다. 엄마? 있을 때 잘 해라, 있을 때.

  세번째 피해자는 쌍둥이 형제 마누엘과 에스테반 중에서 에스테반. 마누엘은 쇠붙이에 상처를 입어 아마 파상풍인 듯한 증상으로 먼저 갔다. 쌍둥이는 갓 낳은 상태에서 산타마리아로사데로사스 수녀원 앞에 버려져 있었고, 세상의 모든 남자를 증오하는 성향이 있는 원장 마드레 델 필라르 수녀가 유일하게 따뜻한 마음으로 키운 남자애들로, 이 아이들은 처지에 비하면 그래도 잘 자라서 필경사를 했다가, 세상으로 나가 온갖 일을 경험하고 다시 리마로 돌아와 필경사를 한다. 그러나 마누엘은 이미 나이를 많이 먹고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둔 페루 최고의 연극배우 카밀라 페리콜의 필경사로 채용이 되는데, 페리콜에게 이미 홀딱 반한 상태였다. 에스테반은 원장 수녀의 주선으로 알바라도 선장과 항해를 떠나려다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리마로 돌아오다 떨어진다.

  여배우 카밀라 페리콜을 온 정성을 다해 정상의 자리에 오르게 한 피오 아저씨. 카밀라는 리마의 총독 돈 안드레스의 정부가 되어 딸 둘과 총독의 외아들 돈 하이메를 낳아주었다. 그러나 돈 하이메는 척추에 심각한 질환이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카밀라는 페루를 휩쓴 천연두에 걸려 얼굴이 엉망이 되고, 자존심이 상해 숱한 연인들로부터 받은 선물과 현금을 몽땅 돌려주어 가난으로 떨어지고 만다. 버림받은 피오 아저씨가 이때 나타나 돈 하이메를 자신이 돌보겠다고 간곡하게 요청하고 하이메 또한 싫지 않아 둘은 카밀라가 조용히 은거하고 있는 집을 떠나 리마로 돌아오는 길에 산 루이스 레이 다리를 오정에 건너고 만다.

  이 다섯 명을 이렇게 나열하면 별 재미가 없다. 하지만 요약글이니 어쩔 수 없다. 이들이 작품 속에서는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 있어 재미가 배가 된다. 하지만 그걸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제 나는 작은 불평을 하려 한다. 미국의 조금은 대중적인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손턴 와일더 역시 뻔한, 그래서 식상한 결론을 내리고 만다. 이렇게.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을 받다가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사랑을 하고 싶은 모든 충동은 그런 충동을 만들어낸 사랑에게 돌아간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땅이 있고 죽은 사람들을 위한 땅이 있으며, 그 둘을 연결하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유일한 생존자이자 유일한 의미인 사랑!”


  손턴 와일더는 사랑, 하고 느낌표까지 팍, 찍었다!





  1. 오정. 밤 열두시는 자정. 그럼 낮 열두시는 오정이다. 실제로 정오가 표준말로 인정받은 건 오정에 비하면 바로 어저께쯤 된다.
  2. 개종자. 처음 읽을 때,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행실 나쁜 ‘개종자’가 왜 나와? 하는 생각을 순식간에, 먼저 해버렸기 때문에. 샤머니즘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원주민을 일컫는 말이란 건 굳이 뭐…
  3. 독후감에서 이걸 밝히는 건 명백하게 스포일러다. 근데 이미 김성곤의 추천글과 러셀 뱅크스의 들어가는 글에 다 나와 있어서 양심의 가책은 하나도 받지 않고 썼다. 작품에선 수사도 같이 화형을 당한다는 얘기가 앞쪽에 나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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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11-01 09: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 저 이 책 있어요. 저도 저놈의 찬사에 낚여서 사두었는데 손턴 와일더 작품이 종종 좀 요즘 읽기에는 낡은 느낌이 있어서 여태 안 읽고 있.......습니다.
골드문트님의 말씀을 헤아려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조만간 읽어야겠습니다.
재미는 있다니까! ㅎㅎㅎ

아 그리고 이 작품 샘터사랑 어울린다는 데 104% 동의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2-11-01 10:16   좋아요 3 | URL
‘재미‘도 그리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한 세기 전 작품이니까요. ㅋㅋㅋ
도서관 개가실에서 봤는데요, 역시 서문과 들어가는 글에 완전히 낚였습니다! 그것도 제대로 코에 걸려 즉각 대출하지 않을 수 없었고요. 짧아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ㅋㅋ

coolcat329 2022-11-01 2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죽은 다섯 인물이 드렁칡처럼 얽혀 있는 그 이야기가 참 재미날 거 같습니다.
이름만 들어봤는데 참 대단한 작가네요. 퓰리처 세 번에 전미도서상까지 받았다니요.

Falstaff 2022-11-02 07:25   좋아요 1 | URL
옙. 질긴 인연은 아니면서도 막 연결이 되는 겁니다. ㅎㅎㅎ 도서관에서 함 보시면 골라보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