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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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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를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인물은, 물론 전에도 있었겠지만 본격적인 영문학으로 연구하고, 이를 번역해 널리 알린 이는 인하대학 영문과 명예교수인 신재실 선생으로 알고 있다. 41년생인 신재실은 47년생인 줄리언 반스보다 나이를 5년 반 더 자셨어도 여태까지 반스를 읽어본 걸로 이야기하자면, 이후 어떠한 반스 번역자보다 독자가 읽기 편하게 우리말로 옮겼다. 다른 역자들이 삐질 것 같아 구태여 말을 보태는데, 지금 나는 신재실의 영어 실력이 다른 역자보다 더 우월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모른다, 오해하지 마시라. 다만 영어를 우리말로 바꾼 우리말 문장이 제일 좋았다는 의미다. 이 말을 조금 확대하면, 다른 역자들의 번역서는 조금씩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 그리하여 나는 줄리언 반스의 작품들은 크게 신재실-반스와 기타-반스로 구분하는, 좋다고 할 수 없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전적으로 내 마음이고 취향이다. 시비하지 말라.
파르시, 라고 일컫는 집단이 있다. 혹시 <천일야화>를 앙투안 갈랑 판이나 리처드 버턴 판이나를 불문하고 전편을 읽어보셨나? 그걸 읽어보면 유대인은 돈이라고 하면 한 순간에 눈이 홱 돌아버릴 정도의 수전노들이고, 배화교라면 온갖 추악하고 야만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 불한당으로 묘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알라딘과 요술램프>는 저 만주족 변발을 하고 다니는 중국 북쪽의 이슬람 지역이지만 <천일야화>의 주 무대는 페르시아다. 이슬람이 패권을 쥐고 있던 페르시아에서 조로아스터교, 즉 배화교도들이 그렇게 멸시를 받고 있었으니 이들이 어떻게 그 땅에서 살 수 있었을까. 그리하여 이들은 처음엔 한 명, 두 명, 나중엔 한 번에 수십, 수백명이 인도 땅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인도에 도착한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페르시아 사람들은 주로 뭄바이에서 모여 살기 시작했고, 이들의 인구가 많아지자 인도 원주민들은 이들을 페르시아에서 온 (배화교)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파르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 귀에 익숙한 자동차 생산업체 타타 사의 대표인 타타, 록 가수 프레디 머큐리, 지휘자 주빈 메타 등이 이 파르시들이다.
이들이 모여 살던 뭄바이는 인도 최대의 경제 도시로 파르시들은 일찌감치 상업과 공업에 종사하여 인도인과 비교해 부유한 살림을 유지하는 것이 보편적이었고, 이 바탕엔 유대인이나 한국인처럼 아이들의 교육에 몰빵하는 내력이 숨어 있었다. 19세기에 뭄바이 파르시 중에서 공부 잘하고 똘똘한 청년 샤푸르지 에들지Edalji라고 있었는데, 이 청년은 조로아스터교에서 영국 국교회로 개종을 하고 인도 현지의 영국인을 따라 영국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영국에서 국교회 신부가 된 샤푸르지는 스코틀랜드 여성인 샬럿 콤슨 양과 결혼을 하고, 스탠퍼드셔의 그레이트웨얼리에서 26년간 교구 목사를 지내던 샬럿의 종조부인 콤슨 신부가 세상을 뜬 후, 영국 국교회의 세계화와 관용 등을 감안한 국교회의 배려로 콤슨 신부의 후임으로 그의 교구를 전부 물려받는다. 이 스탠퍼드셔주, 영국 중부의 탄광과 농업, 목축업을 업으로 하는 ‘완고한’ 19세기 시골 지역에 유색인 파르시 출신, 잉글랜드 시골 사람의 눈으로 보면 검둥이가, 비록 흑인노예의 해방은 벌써 이루어졌지만, 잉글랜드 국교회 목사로 부임해 일주일에 한 번 미사를 집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지는 국교회 중앙에서 한 번 숙고해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파르시 출신 신부와 스코틀랜드 토박이 샬럿 사이에 순서대로 아들 조지와 아들 호레이스, 딸 모드를 두었으나 이 세 아이들은 그레이트웨얼리 사람들의 눈에는 작은 체구를 한 유색인, “튀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 가운데 맏아들 조지가 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며, 놀랍게도 실재했던 인물이다. 이 조지는 어려서부터 ‘비교적’ 총명했지만,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상상력을 충실하게 따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소설 장르의 주인공으로 치면 어울리지 않는 총명함이긴 하지만 남의 상상력이라도 충실히 따라할 수 있는 정도면, 쉬운 말로 해서 ‘될성부른 떡잎’ 수준은 된다. 그래 부모가 조금 기대를 했건만,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놓고 보니 거의 전과목이 낙제 수준이며, 광부 집안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에 합류하지 못하는 외톨이가 되었는데, 귀가하는 도중 바지에 똥을 싸는 일이 벌어진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 부모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까. 글쎄, 무자식이 상팔자라니까. 그러다 조지가 근시인 것이 밝혀져 자리를 앞으로 옮기니 성적도 쑥쑥 올라가고, 여전히 아이들한테는 따돌림을 당하긴 해도 바지에 변을 실금하는 일 같은 건 단박에 뚝 끊어져 버렸다.
이후 열두 살에 상급학교인 러질리 학교로 기차 통학을 하기 시작했고, 집안에서 하녀로 지내는 엘리자베스 포스터가 이달지 신부에게 조지가 자신을 성적으로 희롱했다고 거짓으로 고했다가 주의를 받고, 아버지에게 익명으로 편지를 보내 모든 사람들에 관한 사악한 내용을 알리는 한편 부모에 관한 벽서를 쓴 것이 밝혀져 해고를 당하고 만다. 열여섯 살이 된 조지는 버밍엄의 메이슨 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첫번째 시험에 합격해 수습변호사가 된다. 이제 5년 수습기간을 마치고 마지막 시험만 통과하면 사무변호사 면허를 받을 수 있는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제관 현관 앞에 커다란 열쇠가 떨어져 있어 경찰에 넘겨주니 그걸 조지의 절도로 인식한 경찰의 업턴 경사한테 취조를 받게 된 일이었다. 조지와 관련이 없는 월솔의 학교에서 열쇠를 훔친 것이라는 혐의로. 이후 계속해서 새벽 잔디밭 한가운데 빈 우유통 속에 죽은 찌르레기가 든 채 발견되고, 다음날 조지 앞으로 “옛날처럼 벽에 낙서하는 놀이를 계속해볼까”라는 내용의 엽서가 도착하며, 연달아 부모에게 계속되는 악담 편지가 쇄도하지만 행여 조지의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부모는 편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연이어 백랍으로 만든 국자, 정원용 갈퀴에 꽂혀 있는 죽은 토끼, 현관 앞에 깨져 있는 달걀 세 개, 목 졸려 죽은 새, 심지어 사람의 분변 등을 발견한다.
이어 몇 년 동안 이런 행위가 멈추는 듯하더니, 세월이 흘러 어느새 조지가 사무변호사 최종시험에 2등으로 합격하고, 버밍엄 법률가협회로부터 동메달을 받은 후, 버밍엄의 뉴홀 스트리트 54번지에서 변호사 사무소를 개소하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때, 여전히 그레이트웨얼리의 집으로 통근을 하고 있었는데, 집 근처 목초지에서 탄광에서 쓰는 나귀의 복부가 내장이 쏟아지지 않을 절묘한 깊이로 절개된 채, 밤 사이 과다출혈로 쓰러진 채 발견되어 안락사를 시킬 수밖에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런데 하필 전날 저녁때 일상적인 습관으로 동네를 산보한 적이 있는 조지가 수사선상에 오르게 되고, 수색영장 없는 가택 수색이 아버지의 허락 하에 진행이 되어, 축축한 조지의 겉옷에 묻은 포유류의 털과 혈흔 몇 점이 증거로 구속이 되고 만다. 이어 장면은 짧지 않은 법정 드라마를 거쳐 징역 7년형을 선고, 루이스 감옥과 포틀랜드 감옥에서 수형 생활 3년만에 조건부 가석방된다. 이 기간 동안 조지는 형무소에서 처음으로 아서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 가의 개>를 읽고 도일 씨의 천재적인 추리능력을 눈여겨 보게 된다. 그리고, 가석방 후 변호사 사무실에서 허접한 일을 하던 조지는 이 책의 또다른 주인공인 아서 코난 도일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무죄를 밝혀주기를 부탁한다. 때마침 삶의 획기적 전환이 필요했던 아서는 런던의 호텔 로비에서 조지를 만난 순간, 본능적으로 조지의 무죄를 알게 된다. 무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 이 중요한 차이점이라니. 이렇게 해서 원래 제목 <아서와 조지>가 서로 연결이 된다.
이미 영국에서 셜록 홈즈를 통해 전무후무한 인기를 구가하며, 놀라운 추리능력을 과시한 바 있는 아서 코난 도일 경. 세상에 나올 때부터 적극적인 성격과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체질의 아서는 당장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해 조지를 수사했던 경찰서의 서장과 담판을 짓는 등 눈부신 활약을 시작하는데, 독자는 몇 가지를 의심하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작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줄리언 반스. 그러면 조지와 아서가 주장하는 길을 따라 곧바로 직진할 턱이 없다. ① 정말 스스로 주장하듯 조지가 진짜 무죄일까? ② 아서 코난 도일 경의 확신에 찬 무죄 확신은 절차와 공정, 그리고 이성에 입각한 생각일까? ③ 조지와 아서의 주장이 옳다면, 아서의 작품을 통해 숱하게 본 셜록 홈즈의 능력을 감안해볼 때 과연 진짜 범인을 체포할 수 있을까?
힌트를 드리겠다. 아서 코난 도일이 탐정 셜록 홈즈에게 사건을 맡길 때는 언제나 결말을 미리 정하고 시작했지만, 조지의 일은 결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사건을 접하게 된다는 것. 그게 뭐? 그건 직접 읽어보셔야지. 안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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