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변 세계문학의 숲 13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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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공사에서 냈던 “세계문학의 숲” 시리즈 가운데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왜 여태 안 읽었는지 생각을 해봐야 마땅했을 터. 그저 시리즈 목록 가운데 읽지 않은 아쿠타가와의 책이 있어 덥석 집어든 것이 패착. 책의 제목이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고 단정한 중·단편인것으로 알았는데 저런, <지옥변>은 민음사 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온 저자의 단편집 《라쇼몬》에 포함되어 있었다. 《지옥변》에는 단편이자 아쿠타가와의 대표작인 <라쇼몬>이 첫 번째 작품으로 실려 있으니,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데, 그럴 때마다 쉬운 말로, 꼭지 돈다. 게다가 아쿠타가와의 작품들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틀림없이 눈에 백태가 낀 거다. 생각 좀 하고 살아야겠다.

  그래도 《라쇼몬》은 아주 조금 기억할 만한 것이,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알라딘 서재에 그저 보관을 했을 뿐이건만 그게 덜컥, 이달의 독자 리뷰(여러 편 중의 하나)로 선정이 되어 2만원의 적립금을 받았다는 것. 독후감 써서 알라딘에서 적립금 받긴 처음이었다. 아, 이런 것이 있었구나! 깜짝 놀라, 아 참, 이거 비밀이긴 하지만, 이후 나의 독후감에서 적나라한 표현은 은근히 사라지고 만다. 암만해도 입에 걸레 물고 화끈하게 말해버리면 ‘이달의 독자 리뷰’ 선정하는 분의 마우스 클릭하는 손가락에 힘이 덜 갈 것 같아서.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일본말 <라쇼몬>을 한문으로 쓰면 나생문(羅生門)이고, 전형적인 일본식 그로테스크를 보여주고 있어서, 나는 ‘라쇼몬’보다 우리나라 14세기 말 조선시대 한양에 지은 시구문(屍口門)이 이름부터 훨씬 달콤 살벌하지 않느냐, 라고 썼던 적이 있다. 민음사 《라쇼몬》에 실린 모든 중·단편 가운데 딱 이것만 생각난다. 그러니 단행본으로 나온 《지옥변》을 읽어봤는지도 몰랐다고 적어도 변명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지옥변》을 읽기는 읽는데, 읽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민음사 《라쇼몬》에 실린 작품은 건너뛰고, 실리지 않는 것들만 읽기로 결정을 했다. 어차피 일년 지나면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팍팍 났고, 지금 다 읽은 다음에 다시 생각해봐도 마찬가지라서, 결심 한 번 참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하고 있는 중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원래부터 아쿠타가와 성씨를 쓴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 이이의 팬들이 많아 많은 독자들은 벌써 알고 계시겠지만, 아기 류노스케가 8개월 때, 아이의 엄마가 정신질환으로 발작을 일으켜 도무지 키우기 힘들게 되자 외갓집, 예술에 큰 관심을 두고 있으며 스스로도 아마추어 예술가 또는 딜레탕트이기도 한 외삼촌 아쿠타가와 도쇼 부부가 키우게 된다. 외갓집이 일본의 다른 곳도 아니고 도쿄 부근에서 방귀 깨나 뀌는 집안이어서 전통적인 에도식 문화분위기에서 자랐고, 후에 외삼촌 아쿠타가와 씨의 양자로 입적을 하게 된다.

  나라도 그랬겠지만 아쿠타가와는 혹시 어머니한테 정신병력을 물려받지나 않았는지 평생, 평생이래봐야 서른다섯 해의 짧은 생이지만, 비관 또는 허무주의에 빠져 살다가, 이런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확실한 건 아니지만 날로 우울증을 심화 발전시켜 1927년, 그동안 틈틈이 모아놓은 수면제를 한꺼번에 삼켜 잠을 자며 고요히 숨을 거두었다. 요즘 수면제는 독성이 거의 없어 따라 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괜히 병원가서 위세척 당하는 쪽팔림만 겪을 뿐이니 당신은 꿈도 꾸지 마시라.


  그리하여 골라, 골라 읽어보니 하나 같이 멘탈 에브노멀, 그리고 역자 양윤옥이 해설에서 말한대로 페시미즘과 니힐리즘이 적절한 비율로 섞어찌개를 만들었다. 진짜다, 읽어보시라. 따로국밥은 없다. 오직 섞어찌개, itself! 내가 보기에 책의 제목을 《지옥변》으로 한 것은 표제작이 실린 작품들 가운데 제일 분량이 길어서 그런 것 같은데, 그건 이미 민음사 책을 통해 읽어봤으니 다음으로 긴 작품인 <갓파>를 소개해보자. 아휴, 이것도 민음사 책에 실린 거다. 그러면 대산 <톱니바퀴> 얘기를 좀 해보자.

  아쿠타가와가 수면제 수십 알을 삼키고 천국의 즐거움을 맛보러 간 1927년, 이이의 매부가 선수를 쳤다. 추운 날이었다니까 아마 연초쯤 될 듯하다. 도쿄에서 멀지 않은 시골에서 계절과는 인연이 없는 레인코트를 걸친 채 차에 깔려 죽은 것. 작가의 연표를 보면 매부는 사업에 실패해 거액의 빚을 남기자 자기 집을 시장가격의 두 배에 달하는 보험금을 탈 수 있게 부보(部保)하고 그냥 신이 나서 자기 집에다 불을 싸질러버린다. 그리하여 우울증에 의한 것이 아니라 파산을 하고, 이제 그것도 모자라 형사입건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다가 이판사판 하는 심정으로 자살을 해버린 것이겠지. 보험사기를 위해 방화 범죄를 저질렀고, 이미 위증죄로 집행유예 기간 중이어서 빼도 박도 못했던 상태였단다. 당연히 아내의 남동생인 아쿠타가와 역시 이 일 때문에 검·경의 조사를 피할 수 없었읕 것이니, 이래저래 1927년은 작가의 집안엔 짙은 먹구름이 도무지 갤 생각이 없었던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쿠타가와는 원고 마감 시간에 쫓기는 작가라서, 이런 와중에 집에서 조용히 창작에 전념하기가 힘들어 작지만 조용한 호텔방을 빌어 그곳에서 단편소설 <톱니바퀴>를 집필한다. <톱니바퀴> 자체가 자신이 이 작품을 쓰기까지의 상태를 적은 글이다. 작가는 아는 사람의 결혼 피로연에 자리를 빛내주기 위해 길을 가던 중, 도카이도 본선의 정거장에서 알고 지내던 이발사 주인을 만나 XX씨네 집에 한낮에도 출몰하는 유령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여간 이발사의 말에 의하면 주로 비 오는 날에 자주 출몰하고, 레인코트를 입은 유령이라는 것. 만일 이 대화를 읽을 때, 아쿠타가와의 연표를 본 상태였다면, 그게 바로 매형의 유령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텐데, 독자에게, 심지어 일본의 독자들 가운데서도 이걸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 난데없이 왜 레인코트를 입은 유령이 작중 화자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도쿄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도, 글을 쓰기 위해 임시로 빈 호텔의 로비에서도, 심지어 ‘나’가 들은 방의 욕실에서도 레인코트의 사내가 기척을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작품은 이렇게 내내 불안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서 진행하다가 그냥 그대로 끝나버린다. 잠든 아내를 바라보며 죽은 게 아닌가 싶은 공포에 휩쓸리면서.

  읽는 내내 피곤하다. 정신질환의 가능성에 대한 공포와 허무주의, 그리고 비관적 세계관의 난장판. 그러면 미시마 유키오 같은 감각적인 문장이라도 있어야할 텐데 그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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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18 0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는 내내 피곤하다는 느낌이 어떨지 궁금하긴 하네요. 저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책은 한권만 읽었는데 저도 으스스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

Falstaff 2022-02-18 09:12   좋아요 3 | URL
그걸 경험해보시라고 추천하기는 좀 그렇군요. ㅋㅋㅋ

그레이스 2022-02-18 1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ㅜㅜ
죽음에 사로잡힌 작가의 글을 읽으려면 마음을 다잡아야할까요?
안타깝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페시미즘과 니힐리즘의 섞어찌개라고 말씀하시고, 읽어보시라 하시는 역설은 재미있네요 ^^

Falstaff 2022-02-18 10:28   좋아요 2 | URL
ㅋㅋㅋ
심술이죠 뭐. 혼자 페시미즘과 니힐리즘을 겪기 뭔가 억울하니까, 슬쩍, 아, 읽어보시면 알아, 하는 식으로요.
마음 다잡을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기껏 소설책 한 권 읽는 걸요. ^^;;;

페넬로페 2022-02-18 11: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민음사판 라쇼문 읽고 있는데 류노스케가 소세키의 문하생이라고 알고 있는데 내용은 완전 달라 조금 당황하고 있어요~~
지옥변을 읽기 전에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읽어야겠어요^^

Falstaff 2022-02-18 11:40   좋아요 4 | URL
나쓰메 소세키의 문하생....이라 할 수 있겠네요.
1915년에 그의 자택에서 열렸던 ‘목요회‘에 회원 자격으로 참석을 했었답니다. 둘 다 당대의 고수들이라 스타일이 달라도 서로 인정을 한 것, 정도로 생각하는데, 뭐 제가 알아얍지요. ^^;;;
하여간 1915년의 인연으로 다음 해 발표한 <코>를 나쓰메 소세키가 극찬했다고 연표에 나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