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서울연극제 희곡집
오세혁 외 지음 / 서울연극협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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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그대로 2017년에 있었던 “서울연극제” 출품작품의 희곡을 담은 책이다. 2017 서울연극제에는 모두 열 편의 작품을 공연했지만, 세 편은 저작권 문제 때문에 이 희곡집에 담을 수 없었다고 한다. 책에 담지 않은 것 가운데 <벚꽃동산>이 포함되어 있다. 이게 체홉의 작품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안톤 체홉의 작품 맞다. 검색하면 다 나온다.) 연극제라고 해서 모두 초연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실린 작품 가운데서도 1980년 가을에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초연한 안민수의 <초혼>도 있다. 그러니 이 작품은 37년만의 리바이벌 공연인 셈이다. 초연 연출가이자 원작을 쓴 극작가인 안민수가 이 공연을 보았을까? 2019년에 세상을 떴으니 봤을 수도 있고, 건강상 아닐 수도 있겠다.
  저번에 말한 것처럼 나는 “희곡 우체통” 시리즈와 서울연극제 희곡집을 읽어 보기로 했다. 2020 희곡우체통은 읽고 “기대 이상으로” 만족을 해서, 서울연극제 희곡집도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네 권을 한 방에 구입했는데, 이 모음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희곡우체통은 좋은 희곡을 발굴하기 위해 작품을 상시 모집하고 이 가운데 작품을 선정해, 정식 공연은 아닐지라도 낭독공연을 해주는 신인 등용문 역할을 했던 것과 달리, 서울연극제는 각 극단이 참가 신청을 하고, 물론 특정한 기준에 의거해서 작품을 선정해, 공연할 무대를 깔아주는 것이라 희곡 자체 보다는 연출을 통한 “극”에 더 방점을 찍겠지만, 하여튼 관객이 아닌 독자가 “읽기에” 희곡우체통 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섭섭해 할 것을 알긴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처진다.
  “희곡”은 글로 쓰여진다. 그래서 한 번 활자를 타고 제본이 되면 이제 다시는 지울 수 없다. 인류 최초의 문학 기록물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돌에 쐐기문자를 새긴 것인데, 이래서 생긴 말이 “글로 쓴 건 지울 수 없다.”로도 해석하는 “Littera Scripta Manet.” 반면에 “극”을 포함한 무대에서 벌어지는 건 일회성이 특징이다. 아무리 여러 번 공연을 해도 원칙적으로 말해서 “같은 공연”은 한 번도 없다. 그래 연출가와 배우는 단 한 번의 공연으로 관객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하여 오버를 한다. 2017년 서울연극제 희곡집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오버는, ① 쌍욕, ② 벗기기, ③ 보수권력 조롱하기다.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을 인용하면서 박근혜를 대통령의 직에서 파면한다. 4월 26일, 수요일에 시작한 2017 서울연극제는 적어도 연초부터 준비단계에 접어들었을 것이고, 임기말에 닥친 박근혜 정권을 마음대로 조롱하기로 마음먹은 거 같다. 좋다, 창작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어야 하니까. 창작의 자유가 언제나 보장되는 게 아닌 거 같아 문제긴 하지만.
  또한 벗기기 연극. 연극에서 과도한 벗기기를 문제 삼은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긴 한데, 그것이 참. 여자 남자 배우를 벗기지 않아도 극을 얼마든지 진행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도 극작가와 연출가는 일단 벗기고 보는 거 아닌가 싶다. 그리고 (지금이 대선 국면이라 이에 관해 얘기하기가 좀 거시기 하지만) 배우한테 뭐 이리 험한 욕설을 주문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욕 좀 하는 인간이기는 해도 도무지 수습이 안 될 분위기에서 그냥 일상적으로 쌍욕을 뱉고 마는 거, 이런 것들이 전부 극의 장면을 과장하려는 거 아냐? 오늘날 셰익스피어나 실러처럼 극작을 하라는 건 아니지만, 하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이유에서 어처구니없게, 가장 인상깊게 읽은 작품은 1980년 가을에 초연한 <초혼>이다. <초혼>은 당시 다양하게 시도했던 특정 대사가 없이 몸짓과 소리를 사용해 이미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채택한 극이다. <초혼>은 당시 <산씻김>과 더불어 당대에 히트한 작품으로 이번에 처음 희곡을 읽어보았다. 희곡 자체도 대단히 재미있다. 특히 지문 읽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 예를 들어,

 

  “되풀이 또 되풀이
  어찌 서럽고 애통해서 오른손으로 왼 가슴을 치며 두 발은 껑충껑충 뛰는데 마치 춤추듯 무용하고 그러는 새 다시 입 맞아 외치는 소리는 노래 같다.”

 

  “되풀이 자꾸만 자꾸만 되풀이
  이제는 내고 뛰는 것이 넘쳐서 입도 발도 모두가 제각각인 것이 마치 미친 이들 같다.
  그러다 지쳐서인지 지인들이 하나하나 언제인지 모르게 뒤걸음쳐 나가고 아들만 있는 곳에 가솔들의 곡성은 멀리멀리 아득해진다.”

 

  찾으면 더 있겠지만 그냥 펼친 한 페이지 안에서 골라도 이 정도다.
  <초혼 2017>의 영어 제목을 어떻게 뺐느냐 하면, <Ah-e-Goh>다. <아이고>. 우리나라에서 초상이 생기면 상주와 문상객들이 곡을 하는 소리가 아이고,니까 이렇게 지은 거 같은데 말 그대로 초혼招魂으로, evocation이라 하면 더 좋았지 않을까 싶다. 관객 또는 독자에겐 제목을 지을 권리가 없으니 그저 희망사항일 뿐.
  <초혼>의 1980년 초연 당시에 “혼을 부르는 사람들 (여)” 명단 가운데 한 명의 이름이 눈에 확 들어온다. 한영애. 신촌블루스의 멤버로 <누구 없소>와 <조율>을 히트시킨 가수 겸 배우. 내가 사는 아파트 길 건너 밥집 유량북어찜 아줌마가, 자기 친구까지는 아니고 적어도 지인은 된다고 주장하는데, 바로 그 한영애가 출연했던 건 맞는다.

 

  하여간 이제 서울연극제 희곡집을 처음 읽었다.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첫 번째 시도란 것에 만족하고 2018 서울연극제 희곡집을 기대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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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1-20 13: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곡집은 골드문트님께!

Falstaff 2022-01-20 14:53   좋아요 2 | URL
ㅎㅎㅎ 저도 희곡과 연극, 이 동네는 잘 몰라요. 그래서 더 읽고 있는 겁니다. 좀 알고 싶어서요. ^^;;;

stella.K 2022-01-22 1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극도 그렇다는 말을 듣기는 했습니다만
오죽하면 그럴까 싶기도 하네요.
영화는 말할 것도 없죠. 굳이 안 벗겨도 다 이해하는데 꼭 벗겨요.
그거 보면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더군요.
연극도 검증된 것만 재탕, 삼탕 나중엔 십전대보탕까지
우려 먹으려 드니 연극을 한다는 게 좀 김빠지는 일이긴 하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니 작품 보단 어떤 배우를 쓰느냐가 더 관건이겠죠.
저도 몇년 전에 비슷한 구성의 희곡집 읽은 적이 있는데
대체로 의욕적인 느낌은 들지만 과연 이 작품이 진짜 무대에 올라갔을까?
의문스럽긴 하더군요.
근데 골드문트님 대단하십니다.
이 책을 시리즈로 한꺼번에 구입하시다니.
연극계가 좀 알아줘야 할텐데....ㅋ^^;;

Falstaff 2022-01-22 20:19   좋아요 1 | URL
혹시... 스텔라 님 일이 드라마터지 아니세요?
그냥 팍, 느낌이 그래서 말입죠 ㅋㅋㅋ
말씀이 콕콕 찌르는 느낌이랄까 뭐, 하여튼 그렇습니다. ^^;;;

stella.K 2022-01-22 20:28   좋아요 1 | URL
앗, 너무 나댔나 봅니다.ㅠ
안 봐도 비디오 같은 천리안 아니겠습니까.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