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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 - 위스망스 단편 ㅣ (구) 문지 스펙트럼 25
조리스-칼 위스망스 지음, 손경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4월
평점 :
<등짐>, <부그랑 씨의 퇴직>, <궁지>. 이렇게 세 중∙단편을 실은 책.
위스망스는 몇 번 변신을 한 대표적인 작가다. 처음엔 에밀 졸라를 위시한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로 시작한다. 가난했던 졸라가 그의 대표작 <목로주점>을 발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그때 번 돈으로 파리 근교 메당에 살롱을 열었을 때부터 소위 ‘메당의 야회’에 참가한 것은 물론이고, 졸라가 직접 헌사를 써준 초기 위스망스의 대표작이지만 우리나라엔 아직 번역, 출간하지 않은 <바타르 자매>는 출간 이틀만에 모두 팔려 파리 시내의 종잇값이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졸라가 <목로주점>과 <대지>를 발표하고는 몇몇 작가와 비평가한테 거친 욕설을 얻어들었을 때, 위스망스는 이미 <거꾸로>를 발표한 상태였음에도 졸라에게 지지를 표명했다.
<거꾸로>는 당시에 거의 혁신적인 방식의 퇴폐미와 댄디즘을 과시한 작품이다. 애완 거북의 등껍질을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다는 발상을 여태 자연주의를 지향해왔던 작가가 어떻게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화려함과 사치의 극을 달린다. 오죽했으면 졸라가 <거꾸로>를 읽어보더니 “자연주의에 치명타를 날렸다.”라는 코멘트를 달았을까. 이때가 1884년. <거꾸로>를 출간할 당시만 해도 위스망스는 자연주의 작품을 포기한 건 아니지만 다시 그쪽으로 돌아갈 마음은 보이지 않았던 듯하다. 실제로 <거꾸로>는 이 책에 실린 <궁지>와 같은 해인 1884년에, <부그랑 씨의 퇴직>을 88년에 발표했다. <거꾸로> 역시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만 위스망스의 퇴폐미는 자연주의로의 회귀 대신 신성모독과 악마숭배 쪽으로 향해, 1891년에는 사드 후작의 귀싸대기를 후려갈길 악마숭배, 신성모독, 유소년 살해, 연금술 등을 소재로 하는 <저 아래>를 쓰기에 이른다. <저 아래>는 <거꾸로>와 조금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퉁 쳐서 그냥 세기말주의 또는 세기말적이라 칭하며, 결과로 이젠 자연주의와는 돌이킬 수 없이 멀리 떨어지게 된다.
사는 일이 다 그렇다. 자연주의에 반反해서 세기말주의로 전화한 위스망스. <저 아래>로 세기말의 저 아래 막장까지 가 본 그는 <저 아래>를 발표하고 단 1년 만에 너무 끝까지 간 또 한 번의 반동, 즉 합合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듯) 스타피스트 수도원으로 피정을 가더니 그곳에서 가톨릭에 귀의한다. 위스망스도 결국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누님”이 된 것. 그를 퇴폐주의의 극단까지 내몰게 된 원인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안나 뮈니에의 정신병이 아닌가도 싶다. 위스망스는 적성에 맞지도 않는 법학을 공부하고 평생 시청의 말단 공무원으로 살며 틈틈이 글을 썼다고 하는데 (아내와 비슷하지만 아내는 아닌) 안나 뮈니에가 오랜 세월동안 정신병으로 발작을 일으켜왔으니, 이의 치료를 위해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지 않을까. 정신적, 경제적 결핍이 그를 악마주의로 몰았듯이 결국 가톨릭에 귀의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에잇, 짐작이다. 아니면 말고.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작품은 다분히 자연주의적 시각으로 쓴 것들이다.
<등짐>은 프러시아-프랑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위스망스 본인이 전쟁을 코앞에 둔1870년 3월에 입대했지만 곧바로 이질에 걸려 물똥만 찍찍 싸다가 병원으로 후송되어 파리로 돌아온 경험이 있다. 이후에 1871년 파리 코뮌 기간까지 병무부 전속으로 마르세유에서 근무했으니 졸라의 <패주>에서 보듯 무수한 프랑스 청년들이 스당에서 대책없이 죽어가는 동안 이이는 전쟁과 별 상관없이 편하게 지냈다고 보는 게 맞을 터. 그래도 양심이 있는지라, <등짐>의 주인공 외젠 르장텔은 참전을 위해 소집되어 이질에 걸린 상태로 전쟁터로 갔으나 전선에 배치도 받지 못하고 다시 후방의 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그렸다. 외젠은 부모, 그중에 어머니로부터 적지 않은 돈을 송금받아 틈만 나면 느슨한 병원에서 빠져나와 단짝 프랑시스와 시내를 다니면서 초호화판으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신다. 1875년에 쓴 이 작품 속에서도 나중에 <거꾸로>에서 자주 보게될 댄디즘의 작은 자락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부그랑 씨의 퇴직>은 위스망스가 40세 때 작품으로, 배경 역시 당시 시청 말단 공무원이었던 자신의 페르소나일 수 있는 부그랑 씨가 업무능력 저하라는 핑계로 해고를 당한 이후의 삶을 그렸다. 당시 40세면 자타가 공인하는 중년이었다. 그러나 안나 뮈니에를 책임져야 했던 말단 공무원보다는 퇴직 후에 급격하게 남아도는 시간을 어쩌지 못하는 늙은 퇴직자, 평생 책상물림 말고는 아무것도 해본 일이 없어서 세상물정도 어둡고 민첩하게 대응하지도 못하는 독신남성이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아 몰락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맞다. 나도 변화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오랜 동안, 아마 고 이건희가 프랑크푸르트에서 회사 경영진을 모아놓고 “마누라하고 새끼 빼고 다 바꿔!”를 주창한 이후부터 우리나라에 열풍처럼 번져갔던 단어일 것이다. 갑자기 변화를 당한 부그랑 씨. 저 먼 구석기 시대였다면 졸지에 다리나 팔 하나가 잘려 사냥능력을 상실한 수컷 영장류가 된 느낌과 비슷하겠지.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상류 포식자일수록 죽을 때 험하게 죽는다는 건 아시려나. 뭐 그냥 힌트다.
마지막 작품이자 책의 표제작인 <궁지>를 위스망스가 경애해 마지않았던 에밀 졸라가 썼다면 6백 쪽에 이르는 루공 마카르 총서 가운데 한 편일 수도 있을 재료다.
늙은 공증인 르 퐁사르 씨는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가서 공증인 자격을 얻었는데, 아버지가 죽자 마음을 다잡고 고향인 마른 주의 보샹에 와서 터를 잡았다. 젊은 르 퐁사르 씨의 팍팍 회전하는 두뇌는 돈 많고 못생긴 여자를 아내로 맞는 일을 성공시킨다. 그래 자기도 돈이 많아졌고, 못생긴데다가 병약하기까지 한 딸을 낳았다. 딸이 점점 자라 초경을 하는 걸 확인하고는, 자신의 친구 비슷하게 지내는 스물다섯 살 랑부아와 결혼을 시켰다. 그리고 자신은 홀아비가 됐다. 사위 랑부아 역시 못생긴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 쥘 랑부아 하나를 만들고 곧바로 홀아비가 된다. 그런데 아내가 자신의 지참금 십만 프랑을 아들에게 상속을 한 것이 문제. 아들은 파리로 가서 공부도 하고, 연애 비슷한 것도 하다가, 발랑 까진 도시 처녀들에게 기겁을 하고 순진한 시골 아가씨 스타일을 바라면서 딱지도 못 떼고 있었다. 그러다가 착한 심성을 지닌 시골 출신 소피를 만나 연애를 하고, 임신을 시키고, 염병에 걸려 죽어버리고 만다.
내가 랑부아면 어떻게 할까? 당연히 소피를 데려와 아이를 낳게 하고, 아이 크는 걸 낙으로 삼아 남은 평생을 보내려 할 거 같다. 소피는 새로 결혼을 하거나 얌전하게 아이를 키우면서 살겠지. 이게 정상 아냐? 근데 랑부아와 르 퐁사르 씨의 경우는 전형적으로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의 예를 따르느라고, 법적 해석과 판례를 들어, 쥘이 죽기 전에 공증을 받아 서면 유언을 하지 않았으면 10만 프랑의 재산 가운데 5만은 르 퐁사르에게, 나머지 5만은 랑부아에게 유증된다는 걸 알고는, 공증인 르 퐁사르가 파리로 달려가 불쌍한 소피에게 23일치 하녀 임금인 33프랑 75상팀만 주고 입을 닦으려 한다.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당연히 부르주아가 이긴다.
여기에 소피가 시골에서 돈 많은 지주의 아들에게 능욕을 당하고 집에서는 아빠한테 그놈하고 결혼도 못했으면서 줄 거 다 줬다는 굴욕과 함께 심하게 얻어터져 파리로 오게 된 사연까지 합하면, 정말 장편소설 한 권 정도의 스토리가 꾸려지지 않겠는가. 아직 소개하지 않은 소피와 소피의 친구들이 만드는 연합도 있고 말이지. 정말이다. 졸라라면 총서가 21번에서 끝났을 수도 있었을 듯하다. 하긴, 사는 게 다 그렇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