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이여, 안녕! ㅣ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3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명백하게 오에 겐자부로의 페르소나인 주인공 조코 고기토는 전작 <우울한 얼굴의 아이> 마지막에 1960년대 학생운동을 재연하는 ‘늙은 일본 모임’ 회원들의 주책맞은 행사에서, 시위진압대 역할을 한 시코쿠 현지 젊은이들에게 납작 들려 큰 나무에 머리통을 강타당한다. 독자와 작가는 이 장면에서 사건은 미시마 신사의 신관 마키히코가 고기토에 테러 수준에 달하는 폭행을 하도록 사주했거나, 적어도 행사에 참여하는 지역 젊은이들에게 노벨 문학상 수상자 조코 고기토를 사망에 가까운 수준으로 만들어버릴 만큼의 테스토스테론과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기토는 이 사건의 결과로 스스로 비교의 대상이 된 돈 키호테가 그러했듯이, 다시 모험을 할 수 없어 고향에서 은둔하다가 숨을 거두는 일만 남게 된다. 작가니까 진짜 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글을 생산하는 일, 문학적 모험은 그만 둘 수밖에 없게 됐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고기토는 행사 과정에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뇌출혈이 발생, 긴급 후송된 후 머리를 열고 고인 피를 뺀 다음, 아들 아카리가 태어나자마자 그러했듯, 플라스틱으로 만든 동그란 인공 뼈를 두개골에 삽입한다. 60대 후반에 접어든 고기토는 정말로 저 건너에 건너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벗과 친지들을 만나고 온 듯한 기분이 들었고, 고기토의 딸 마키, 애칭 마아도 아버지의 상태가, 몸은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마음도 이쪽으로 왔는지 어떤지가 걱정일 정도라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이제 고기토의 많지 않는, 많지 않았던 친구들 가운데 본 마음을 보여줄 인물들은 다 저 건너로 가버렸다고 여길 정도였는데, 샌디에이고에 거주하면서 캘리포니아의 몇 개 대학에 교수를 하고 있던 츠바키 시게루가 떠올라, 마키가 이메일로 접촉하게 된다. 마침 시게루 역시 미국 생활을 접고 일본에 정착하려 마음을 먹은 순간이라서 시게루는 기꺼이 시코쿠에 있는 고기토의 땅과 집을 사서, 자투리 땅에 있는 구옥에서 몸을 돌볼 고기토와 이웃해 살기로 한다.
츠바키 시게루, 이자는 고기토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작품에 한 번도 모델로 등장시키지 않았지만 고기토보다 두 살이 많고,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같은 동네에 살았다. 고기토가 ‘상하이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시게루의 어머니는 결혼을 하고 남편이 사업을 하는 상하이로 건너가게 됐는데, 이방에서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을 하니 감당이 되지 않아 이미 결혼해서 살고 있는 고기토의 어머니와 동행을 한다. 그러니 상당히 친한 친구였을 터. 상하이 아주머니가 그곳에서 시게루를 낳고 돌을 넘기자 고기토의 아버지가 베이징을 거쳐 상하이로 가서 아내를 데리고 온다. 이게 고기토가 알고 있는 것이고, 시게루는 좀 다르다. 확실한 건 상하이 아주머니, 시게루의 어머니가 일본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중국 청년과 사랑의 도주를 감행했다는 것뿐. 상하이 아주머니는 애초 불임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어, 함께 상하이로 건너간 고기토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버지와 관계하여 시게루를 낳았으며, 이 사실을 알고 고기토의 아버지가 상하이까지 직접 가서 아내를 데리고 오게 된 거란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끝까지 밝히지 않았으나 힌트는 남긴다. 그러나 독후감에서는 어떤 힌트인지도 알려드리지 않겠다.
어쨌든 상하이 아주머니와 고기토의 어머니는 시게루와 고기토를, 서로를 위하여 기꺼이 자기가 죽을 수 있는 사이로 키우기로 약속을 한다. 그러나 시게루가 1943년에 중학교 진학을 위해 시코쿠 숲으로 와서 보니, 고기토는 새카맣게 탄 얼굴을 한 일본의 전형적인 산골아이여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하여 동네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네 엄마는 우리 어머니의 친구가 아니야. 상하이까지 데려간 하녀라고. (중략) 나를 형으로 부르면 가만히 두지 않겠어.” 라고 모욕을 해버린다. 당연히 극심하게 분노한 고기토가 덤벼들어 엎치락뒤치락 싸움이 벌어진다. 어린 나이에 두 살 터울이면 당최 당해내지 못할 것이겠지만, 고기토는 당시 시골 어린 아이들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방법인, 돌로 시게루의 머리통을 내리쳐 두피를 찢어놓고 말았다. 이후 동네의 모든 아이들은 시게루의 지배 하에 들어갔고, 고기토는 완전히 외톨이로 전락해 이후 식물도감 한 권을 갖고 산에 올라 나무 이름을 다 아는 소년으로 성장한다. 이런 사이라서 둘은 평생 살며 숱하게 만남과 절교를 거듭했는데, 이제 다 늙어 서로를 위해 자신이 죽을 관계를 기억했는지 기꺼이 남은 생을 고기토 곁에서 지내겠다고 미국 교수 자리를 때려치우고 귀국한 것.
그러나 시게루는 혼자 오지 않았다. 30대 중반 러시안 아메리칸인 블라디미르, 30대 차이니즈 아메리칸 여성 싱싱(淸淸). 이들은 오에, 작중 조코 선생과 상극관계인 미시마한테 깊숙이 경도된 테러리스트들이다. 홍콩에 본부가 있는 듯한 세상의 여러 집단 가운데 하나의 구성원들이, 세계적 건축가이며 Unbuild, 반 건설, 즉 파괴에 특히 권위가 있는 시게루의 제자가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은 일본을 대표하는 고층 건물의 핵심 위치를 빌려 그곳에 폭탄을 설치하고, 미리 건물의 파괴를 알려 모든 사람을 대피시킨 후 테러를 감행해, 핵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국가, 거대 폭력에 대항하는 소집단 폭력을 행사하려 한다.
나는 여기서 무척 헷갈렸다. 고기토가 평생을 걸쳐 희구한 것은 평화, 비폭력이었으며 당연히 좌우를 따지자면 좌익에 좀 더 가깝다. <만엔 원년의 풋볼> 등에서 보듯이 우익 집단이 무리를 이루어, 조금의 저항도 하지 않고 패배를 받아들이는 굴욕을 갚기 위한, 우익테러가 실패로 돌아가는 모습에 익숙했는데 이 작품에선 난데없이 대표적인 일본의 국수 우익인 미시마를 숭배하는 집단의 테러에 소극적이나마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 나는 여태 미시마가 할복에 성공한 줄 알았다. 배를 찌르긴 했는데 긋지를 못해 옆에 서 있던 할복 도우미, 가이사쿠가 친절하게 목을 베어 데구르르 잘린 머리가 굴러갔다고 한다. 잘린 머리를 똑바로 세워 찍은 사진을 일본의 몇몇 신문이 헤드라인으로 실었고, 이를 본 고기토의 작곡가 아들 아카리는, 미시마는 요만합니다, 라며 손을 30센티미터 정도 올리는 장면이 이 책에 나온다.
시절은 911 테러가 있고 몇 년 후. 아무리 조코 고기토(라고 읽는 오에)가 핵무기 철폐를 주장했지만, 핵보유국에 의한 미래의 거대 폭력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테러를 지지한다고 의심받을 수도 있는 (물론 지극히 소극적이지만) 행위를 하는 내용의 작품을 썼다는 것이 매우 의아하다. 이 작품을 이끌고 있는 가장 중요한 서사가 바로 이 작은 테러이다. 밤 늦도록 책을 읽는 바람에 내가 작가의 진짜 의도를 오독하고 말았기를, 지금, 바라고 있다.
진짜 아이는 고블린이 데려가고 대신 요람에 올려놓은 가짜 아이인 체인질링. 고기토 안의 또다른 인격으로 몇 년 후에 숲으로 들어가 동자가 된 고기이. 나를 대신해서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시게루. 시게루와 함께 시코쿠 숲의 집으로 들어온 블라디미르와 싱싱. 사건이 본격적으로 커지면서 고기토를 감시하기 위해 배치한 다케시와 다케. <우울한 얼굴의 아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비교되는 고기토와 돈키호테. 그리고 베케트 희곡 <고도를 찾아서>의 블리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이 커플들을 고기토는 ‘상보적인 2인’이라고 호칭한다. 그러니까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 3부작을 대표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개념이 상보적 2인이다. 이 작품에서는 더군다나, 만일 평소에 어떤 일이든 조금 과장해 그것이 진실인 듯이 말하는 습관이 있는 시게루의 말이 정말 진실이라면, 시게루와 고기토는 씨 다른 형제다. 그래서 어머니끼리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시게루의 어머니는 시게루가 어려서 야반도주를 했으니 정확한 기억이 아닐 수도 있고, 살면서 저절로 그렇게 되는 사이였을 수도 있을 듯. 그러나, 꽃노래도 삼세번이라고 이 상보적 2인을 1~3부, 1천5백 쪽 동안 비슷하게 읽고 있으려면 약간의 현기증과 어지럼증, 그리고 경미한 구토의 느낌을 숨기기 힘들다.
한 번에 같은 배경으로 하는 장편소설을 세 권 읽기는 무리다. 더구나 이미 <만엔 원년의 풋볼>과 <익사> 등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무한 반복하고, 죽은 다음 다시 환생하는 일이 계속하여 어린 나가 늙은 나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 사람 속의 또다른 인격의 존재 등을 연속하는 건 사실 (나름 단련되었다고 생각하는)독자를 피곤하게 한다. 만일 이 삼부작을 읽고자 한다면 한 작품을 읽고 일정 기간 터울을 둬 앞에 읽은 내용의 기억이 조금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
여기에 불문학을 전공하고, 영어도 능숙하게 쓰며, 평생 무수히 많은 책을 읽은 오에 겐자부로 답게 온갖 서양 작품에 천착하고 상세 내역까지 인용도 하고 해석해 작품과 연계시키는 건 처음엔 참신했다가, 점점 식상해지다가 나중엔 지긋지긋해질 정도였다. <책이여, 안녕!>에선 예이츠의 시 여러 편과 도스토옙스키의 <악령> 등을 집중해서 해석하는 장면으로 독자로 하여금 넌더머리가 나게 한다. 잘난 척도 정도가 있지, 이 정도면 탈아입구를 주장했던 일본인 특유의 열등감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오에 겐자부로는 이 삼부작으로 자신의 소설 창작을 마무리할 예정이었겠지만 이후에도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를 쓴다. 왜? 물론 쓰지 않는 작가는 있을 수 없겠지만, 작가의 숙명일 수도 있으나, <책이여, 안녕!>에서 솔직하게 고백을 했듯이, 지출은 줄지 않고 수입을 기존 작품의 인세로 충당할 수 없을 터이니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계속 작품활동을 할 수밖에. 오에 또는 고기토에겐 노부부의 남은 생애만 버틸 수 있는 재력 말고도 작곡가이기는 하지만 지적 장애가 있는 (오에의 아들) 하카리, 또는 (고기토의 아들) 아카리의 남은 삶도 버틸 수 있는 복지까지 마련해주고 싶었을 것이니.
오에 겐자부로 특유의 사소설. 여태까지의 오에 겐자부로는 작품마다 비슷하지만 독특한 분위기와 특유의 역사인식으로 독자에게 색다른 일본식 사소설의 맛을 선물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삼부작은 <만엔 원년의 풋볼>의 잔영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어 굳이 삼부작을 써야 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오에 필생의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대담하게 뱀의 발, 몸통보다 훨씬 더 큰 뱀의 발을 그린 걸, 안 봤으면 속이나 편한데, 보고 불편해져버린 느낌. 이게 삼부작을 읽은 솔직한 독후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