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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트
프랑크 베데킨트 지음, 김기선 옮김 / 성신여자대학교출판부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프랑크 베데킨트. 독일 최고의 악녀일 수도 있는 ‘룰루’의 창조자. 룰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희곡 <지령地靈 : 땅의 정령>과 후속 작 <판도라의 상자>를 쓴 이다. 작곡가 알반 베르크는 이 팜므파탈의 대표선수 격인 룰루에게 매혹되어 1937년 오페라 <룰루>를 작곡했지만 완성을 하지는 못했다. 나는 <지령>과 <판도라의 상자>는 읽어보지 못했으나 <룰루>는 여러 버전의 DVD와 CD로 보고 들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쇼킹한 작품이다.
프랑크 베데킨트, 벤쟈민 프랭클린 베데킨트는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 의사와 헝가리 이민 출신 미국 국적 여배우 부부가 다시 독일로 돌아온 후, 하노버에서 태어난다. 1864년생. 60갑자가 처음 시작하는 해, 갑자년이다. 아빠가 의사이니, 그때나 지금이나 대단한 부르주아는 아니지만 비싼 장난감 가지고 놀고, 좋은 사립학교 졸업하고 선진국으로 유학시킬 정도의 지원은 가능한 부유층 가정이었다. 그래서 가족이 마지막 거주지로 정한 스위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뮌헨 등지에서 법학을 전공한다는 전제로 베데킨트 역시 아빠의 무한 지원을 받았으나, 법학보다는 문학, 미술, 음악, 연극에 훨씬 매력을 느껴 학업을 멀리하다가 급기야 일체의 금전적 지원이 끊기고 만 적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 법, 스물세 살에 부자간에 화해를 해 다시 법률 공부를 하는가 했더니, 1888년, 일 년 만에 아빠가 갑작스럽게 세상 하직하는 바람에 이제 법률 공부를 작파하고, 자기가 상속받은 돈으로 파리, 뮌헨 등을 오가며 말은 작가활동이지만 본격적인 딴따라 생활로 접어든다.
1894년에 이미 물려받은 재산을 다 까먹은 베데킨트는 95년에 첫 직장을 갖게 되니 소위 “낭독 예술가”라는 것. 이 별 볼 일 없는 직업을 자기 이름으로 갖는 것이 쪽팔린 줄은 알아서 ‘코르넬리우스 미네하’라는 가명을 썼단다. 하여튼 이 당시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1887년에는 거지꼴을 하고 드레스덴의 여동생 집에서 기숙을 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 와중에도 유부녀 프리다 스트린드베르히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도 낳고, 할 짓은 다 했다. 아 글쎄, 예술가라잖아, 예술가.
이렇게 살면서 많은 희곡을 쓰고, 스스로도 무대에 올라 연기도 하며 한 평생 잘, 부유하게가 아니라 재미있게,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다가, 1차 세계대전이 있던 1914년에, 전쟁에 참전하는 대신 맹장수술을 받는다. 요즘 맹장수술은 메스를 쓰지도 않고 배에 조그만 구멍 몇 개만 뚫어 복강경으로 잘라버리거나, 그마저도 비키니 입을 때 티가 나서 싫으면 돈 더 많이 들여 식도로 내시경을 집어넣어 위장을 뚫고 대장 충수까지 진입해 입으로 끄집어내는 방법이 있으니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지만, 당시엔 칼로 배를 짜개는 개복수술 말고는 없었다. 근데 이이는 맹장수술이 잘못되어 염증이 도무지 낫지 않아 복막 전체로 번졌는지, 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1918년에 숟가락을 놓고 만다. 이 양반은 죽는 것도 우화적이었다. 물론 지금 시각에 그렇다는 말씀이지만.
이이의 작품에는 주로 제 5의 계층들, 예술가, 사기꾼, 보헤미안, 서커스 주변, 범죄자, 매춘부 등의 집단을 그리는 경향이 있으며 이들을 통해 인습적인 시민사회를 공격하는 아웃사이더 삶의 형태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대표작인 <지령>과 <판도라의 상자>는 당연하거니와 넓게 보아 이 작품 <카이트 후작>도 이런 범위에 든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카이트 후작>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던 것이, 지문에서는 백작, 카이트 스스로는 후작, 시종 사샤는 남작이라고 호칭한다는 점. 이 책은 성신여대출판부에서 찍은 것으로 대학 출판부답게 작가소개와 해설이 대단히 세밀하고 좋아서 검색을 따로 할 필요도 없었는데, 왜 이렇게 카이트의 작위에 혼란이 있었는지는 설명이 없다. 제목은 분명히 <Der Marquis von Keith>, 카이트의 후작임에도.
카이트의 출생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작품을 위한 초고는 <향락인간>이라고 한다. <향락인간>을 계속 손질하면서 제목도 함께 바뀌어 <추락한 악마>를 거쳐 <뮌헨의 장면들, 인생묘사>가 되었다가 이어서 <카이트 후작 (뮌헨의 장면들)>, 그리고 드디어 <카이트 후작>이 되었단다. <카이트 후작>에서도 ‘향락인간’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돈을 숭배하지만 결정적으로 필요할 때 돈을 구하지 못하는 인간. 가진 것이 없어 아침을 먹지도 못했고, 언제 집달리가 쳐들어올지도 모르는데도 캐비아를 곁들인 샴페인을 추구하고,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의 정찬을 바라는 주인공 카이트. 일찍이 쿠바 혁명 당시 대통령에 출마했지만 마지막 1달러를 구하지 못해 당선되지 못했다는 불운의 아이콘. 내 돈이 없으면 다른 부르주아의 돈으로 하면 된다는 굳은 신념으로 온갖 신분의 부르주아들로부터 거액을 기부받아 선녀궁을 건축하려는 야심에 찬 인물. 그러나 자금의 입출에 관한 아무런 영수증이나 회계 장부가 없는 윤O향 같은 인간. 어떠셔, 끝이 훤하시지?
카이트는 대단히 머리가 좋지만 가난한 수학 가정교사와 집시 사이에서 태어난 이른바 천민이다. 수학 좀 하면 대수인가, 엄마가 불가촉천민인 집신데. 이 아이가 아빠를 닮았는지 머리 굴리는 건 가히 천재적이라 전 세계, 그래봤자 유럽과 아메리카에 불과했지만 하여튼 세계를 자신의 무대로 활약하며 국제적인 사기꾼으로 명성을 높이다가 결정적으로 쿠바에서 뽀록이 나 고국인 독일 뮌헨으로 도망쳐 와서 후작을 사칭하고 다녔던 것. 이런 인간이니 후작이란 작위가 결코 중요하지 않다. 백작이건 남작이건 간에. 본인도 어떻게 불리는지 신경 쓰는 모습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남의 돈으로 선녀궁을 지으려는 이 작자는 사실 알고보면 예술가도 아니고, 건축가도 아니고 그냥 사기꾼일 뿐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이 있으니, 이이가 작품생활을 했던 때가 세기말, 벨에포크 시대. 바야흐로 문학판엔 자연주의가 꽃피우고 있을 당시. 게다가 베데킨트가 중요하게 다루던 계층이 제5 계층인 사기꾼, 예술가, 보헤미안, 서커스, 범죄자 등이었으니 연출만 다양하게 하면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 것임은 틀림없다. 극작가는 독자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카이트 주변에 꼬이는 인물에게 과감한 이분법적 성격을 부여한다.
트라우테나우 백작은 카이트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신분은 마땅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평민의 이름인 숄츠라 불리기를 바라며, 몇 번 실패한 인생을 쾌락으로 만회하기 위해 카이트에 접근한다. 애인 몰리는 카이트를 사랑하지만 결코 카이트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보답 받지 못하는 비운의 여인이며, 바그너 전용 헬덴 소프라노를 목표로 하고 있는 안나는 정작 노래보다 아름다운 얼굴과 빼어난 몸매로 인정받아 단 한 번의 연주회로 하루에도 몇 명으로부터 청혼을 받기에 이른다. 카지미어 영사의 철없는 열다섯 살 먹은 (바지역) 아들 헤르만은 아빠 몰래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느라 누구에게나 조금의 돈을 얻어 쓰기에 바쁘다.
이런 인간들이 많은 돈을 투자해서, 누구한테? 카이트 후작한테, 선녀궁을 지으려는데, 카이트는 광고효과를 높이기 위해 연주회와 불꽃놀이 등의 대규모 행사를 열기에 이른다. 이 연주회와 놀이가 크게 성공해 도취한 사람들이 난장판으로 어울리는 장면은 여지없이 동시대의 거장 에밀 졸라의 총서 가운데 (만일 있다면)희곡으로 쓴 한 편을 읽는 기분이 들 정도다. 특히 <쟁탈전>과 <돈>에서 돈 놓고 돈 먹는 장면이나, 공매도와 공매수가 난리법석을 이루는 장면과 비견할 수 있을까. 물론 그 정도는 아니지만 무한한 상상력으로 얼마든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소설과, 무대 위라는 한정된 공간만 허용하는 희곡의 근본적 차이를 감안하면 비교해도 그리 큰 무리는 아닐 듯하다. 재미있는 극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