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 사카테 요지 희곡집
사카테 요지 지음, 기무라 노리꼬 옮김 / 연극과인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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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 3월에 일본 오카야마에서 태어난 사카테 요지는 게이오 대학에서 일본 문학을 전공한다. 게이오에서 사회의 동시대적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으로의 극장을 설파하던 비주류 극작가 야마자키 테츠를 사사하고, 후에 야마자키의 극단 “전위 21 Transposition 21”에 합류한다. 아울러 놀랍게도 1983년, 21세 약관의 나이로 자신의 극단 “인광극장 燐光群”을 차린다. 현재 사카테는 일본 극작가협회 회장, 일본 연출가 협회와 국제 극장 기구 일본 센터의 회장으로 재임 중이란다.
  사카테의 대표작은 오늘 소개하는 <다락방>(2002)과 레즈비언 공동체를 그린 <컴아웃>(1987), <도쿄 재판>(1988), <고래를 위한 묘비명>(1993)을 든다고 한다.

 

  《다락방》은 사카테가 21세기에 쓴 세 편의 희곡을 싣고 있다. 차례로 표제작과 <오뚝이 아저씨 자빠졌다>(2004), <공연되지 않은 “세 자매”>(2005). 세 작품 다 국내외의 사회, 정치적 현상을 묘사하고 있어, 이것이 사카테 요지 작품의 특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본 문학은 소위 ‘사소설’이 대표적일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 일정기간이 지나기까지 지속한, 지독할 정도로 개인의 감정이나 사유의 골짜기를 파내려가는 까마득한 미학. 이런 천착을 통해 채굴하는 경이적으로 아름다운 문장들. 그러나 정작 다 읽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는 특유의 장르, 라고 느껴 별로 정이 가지 않았다. 물론 고바야시 다키지 같은 사회운동에 복무하는 작가도 분명히 있었지만 우리에게 그리 크게 어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판이 이런데 극작으로 사카테의 작품을 읽어본 건 나름대로 색다른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の 작가가 사회비판적이라니.
  <다락방>은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 또는 도지코모리에 관한 보고서다. 그런데 외톨이를 표현하기 위하여 등장하는 인물이 무려 쉰네 명. 요즘에 대형 극장 말고는 쉰네 명의 배우들이 다 등장해서 서 있을 수 있는 무대도 별로 없을 것이다. 하물며 우리나라도 그런데 땅값 비싼 도쿄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을 듯. 이의 해결을 위해 사카테는 일인다역을 주문한다. 하여튼 일인다역을 하더라도 많은 등장인물이 필요하다면 둘 가운데 하나다. 극이 대단히 복잡한 이야기를 가져 적어도 서너 시간 이상 공연을 해야 끝낼 수 있거나, 회화의 점묘법처럼 간단한 이야기들이 연속해 등장하며 주제를 심화시키는 이른바 옴니버스 형식이거나. <다락방>은 두 번째 경우다. 두 번째로 실린 희곡 <오뚝이 아저씨 자빠졌다>는 놀랍게도 일본의 이라크 파병을 직접 타격하되, 같거나 더 중요한 문제로 전 세계에 위협이 되고 있는 지뢰 문제를 겨냥하고 있다. 이것 역시 <다락방>과 마찬가지로 옴니버스가 이어지면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공연되지 않은 “세 자매”>는 2002년에 모스크바의 뮤지컬 극장을 점거한 체첸 공화국의 정치그룹이란 실화를 모티브로 해서, 정말로 그랬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원래 공연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체홉의 <세 자매>를 중단시키고 벌였던 인질극을, 다분히 체첸과 인질의 입장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건 옴니버스가 아니라 시간적 배열에 따랐다.

 

  <다락방>이 인상 깊었다. 다락방이란 방과 지붕 사이의 공간을 비워두기 아까워 도배를 하고 창을 내 만든 방이다. 이 책에서는 아래 그림과 같이 누군가가 만들어 판매한 좁은 공간이다. 작품의 지문을 보자.

 

  “한 평이 채 안 되는 작은 공간.
  사람이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천장이 낮다.
  천장은 맞배지붕 꼴인데 좌우 비대칭으로 기울어 있다.
  객석 쪽 벽은 생략되어 보이지 않는다.“

 

  대학 기숙사에 이런 공간이 있었는데 등장인물 ‘형’의 친동생이 이곳에서 히키코모리로 지내다가 자살을 해버렸다. 피가 많이 흘렀다고 하니 정맥을 끊은 것 같다. 흔히들 동맥을 끊는다고 하는데 말이 쉽지 동맥이 어디 쉽게 끊어지나. 그래서 시간이 흐른 후에 형은 동생이 지내던 다락방이라 불리는 공간에 들러보러 온 것.
  이어지는 장면은 형의 방문 당시 그를 안내해 다락방을 보여주던 기숙사 관리자 하세가와가 구매자가 있음에도 젊은 여자에게 다락방을 무료로 넘긴다. 이 다음에는 같은 다락방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다락방에서 소년이 역시 히키코모리 상태로 지내고 있는데 소녀가 방문을 한다. 소년은 소녀에게 몸의 결합을 요구하지만 소녀가 거절하자 보는 앞에서 혼자 처리해버린다. 다음 장면은 두 명의 형사가 길거리에 다락방을 설치해놓고 안에서 잠복근무에 들어간다.
  이런 식으로 다락방을 매개로 해서 갖가지 상황이 잠깐잠깐 쉬지 않고 나열된다. 다락방이라고 하는 혼자 틀어박힐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은둔형 외톨이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이유로 히키코모리들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로 많아진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극을 통해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당연히 필요가 있지. 결국 은둔형 외톨이들도 자기만의 방, 다락방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해소될 때까지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할 책임이 있는 법이라서.
  엉뚱하지는 않지만 일본인이 왕궁에도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묻어두었던 지뢰가 여전히 매립되어 있다는 등, 물론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보다 세상의 누구도 지뢰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말하는 것이겠으나 이라크 파병이나 체첸 공화국의 대 러시아 테러 같은 세계적 이슈보다는 <다락방>이 더 와 닿은 것은 물론이다. 이건 아직 내가 세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뚝이 아저씨 자빠졌다>나 <공연되지 않은 “세 자매”>를 적극적으로 실감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연극, 희곡 수준이 대단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는 계기였다.
  우리나라 희곡도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 번역한 기무라 노리코는 1997년 이후 한국에 거주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연극 교류를 위해 힘쓰고 있는 이다. 이 책 출간 당시인 2009년에 사카테 요지를 한국에 초치하여 <다락방>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제목을 바꾼 <오뚝이 아저씨 자빠졌다> 공연을 주선하기도 했다. ‘오뚝이 아저씨 자빠졌다’는 실제로 우리나라 아이들의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거의 같은 놀이라서 바꾼 제목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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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17 09: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이 일본작품에 별 네개면 엄청 높은거 아닌가요? ㅎㅎ 가지고 있는 희곡이 별로 안남았는데 이책 찾아봐야 할거 같아요^^

Falstaff 2021-08-17 09:28   좋아요 6 | URL
ㅋㅋㅋㅋ ˝일본의 희곡 수준이 대단하다.˝라고까지 했습지요.
기무라 노리코가 이야기하기를, 일본의 노能와 가부키는 백제에서 온 것이지만 근현대 연극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왔다고 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하여튼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군요.
그건 동의하는데, 제가 싫어하는 건, 본문에서 조금 이야기한 바와 같이, 지독한 사소설적 경향입니다. 다르기만 하면 얼마든지 좋아할 수 있습니다. ㅋㅋㅋ 제가 오에 겐자부로 팬 아닙니까!!!

다락방 2021-08-17 11:2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자꾸 다락방 다락방 나오니까 제가 자꾸 흠칫흠칫 했습니다..

Falstaff 2021-08-17 11:22   좋아요 5 | URL
ㅋㅋㅋ 저도 책 고를 때 흠칫, 했답니다.

잠자냥 2021-08-17 11:52   좋아요 3 | URL
저도 이 포스팅 보고 흠칫 ㅋㅋㅋㅋㅋ다부장님 이 책 표지 서재 프로필 사진으로 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8-17 12:13   좋아요 3 | URL
아이쿠... 저자하고 역자 순서를 바꿀 걸 그랬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