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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ㅣ 펭귄클래식 43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급기야 읽고 말았다. 몇 번에 걸쳐 안 읽겠다고 광고를 했었지만. 글쎄 이게 디킨스의 힘이라니까. 본문이 2백 쪽 조금 넘어 그냥 <크리스마스 캐럴> 한 작품이겠거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골랐더니, 디킨스가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해서 쓴 에세이와 단편소설을 포함한 모음집이다. 이 가운데 <크리스마스 캐럴>만 따지면 136쪽 분량. 이것만 가지고 책을 엮기엔 분량이 애매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펭귄 클래식 원본도 모두 일곱 편의 작품을 실은 것처럼 보인다. 불만 갖지 말자.
작품은 당연히 중편 분량의 표제작이다. 이외에도 <크리스마스 케럴>을 쓰기 위한 워밍업처럼 읽히는 <교회지기를 홀린 고블린 이야기>도 들어있다. 고블린, 유령과 도깨비의 중간단계. 주로 무리지어 생활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유령보다는 도깨비라고 해야 마땅하겠다. 옛날 옛적에 가브리엘 그럽이라는 이름의 교회지기가 있었는데, 교회지기라 함은 교회를 돌보면서 교회묘지에서 무덤 파는 일을 겸했던 사람이다. 그럽 씨는 성질이 괴팍하고 고집스럽고 무뚝뚝한 사람으로 성격 역시 까다롭고 침울한 외톨이 성향으로 몇 백 년이 흐르면 이런 스타일을 ‘외로운 늑대’라고 칭할 전형적인 사람이다.
이이가 비록 교회지기라 하지만 유럽 사람들 최고의 명절인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그게 도대체 나하고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이냐, 하는 심정으로, 하필 또 때맞춰 죽어준 사람이 있어 성탄전야에, 아이고 잘 됐다 싶게, 필요도 없는 성탄전야 만찬이나 뭐나 하여튼 별 잡스런 모임에 가는 대신 밤이 내린 묘지에 가서 내일 하관을 할 묘지를 파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래 삽을 가지고 가 땅을 다 파놓고 넓은 묘석에 앉아 담배 한 대에 질 나쁘고 쓰기만 한 네덜란드 진 한 모금을 마시려는데, 앞 묘지의 묘비에 길고 괴상한 모습의 다리를 달고, 힘줄로 불거진 맨 팔을 내놓았으며, 깃털 장식이 하나 달린 원뿔 모자를 쓴 고블린이 자기를 빤히 바라보고 앉았는 거 아니냐 말이지. 그래 기겁을 했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고블린이 자기 머리통을 잡아 아래로 꾹 누르니까 몸 전체가 땅 밑으로 쑥 들어가 고블린들의 앞마당으로 떨어져버렸다. 거기서 생고생을 하고, 다음날 눈을 떠보니 자기가 앉았던 넓은 묘석에 누워 서리를 덮은 채 잠을 자다 깬 거였다.
가브리엘 그럽 씨는 그 길로 삽과 진이 든 병과 기타등등 사소한 물품을 팽개친 채 외지도 도망을 가,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마을로 돌아와 성탄을 축복하며 지내더라는 이야기. 뭐 한 마디로 <크리스마스 캐럴> 같은 동화 비슷하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수없이 많이 각색되어 갖가지 콘텐츠로 발표가 된 작품이라 누구나 내용을 알고 있을 듯하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각색 과정에 분량을 줄이기 위해 몇 가지 생략한 에피소드는 있을지언정, 아마 숱하게 접한 콘텐츠를 모아 짜깁기하면 원본과 다 맞추어질 수 있을 것. 그리하여 새삼스레 뭐 독후감이라 쓸 거리도 별로 없다. 당신에게 권하지도 않거니와, 나 역시 이럴 줄 알았으면 선택하지도 않았을 듯. 아, 몰라. 이제 디킨스는 정말 안 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