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프라 ff 시리즈 7
조르주 상드 지음, 정희경 옮김 / 꿈꾼문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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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살 연하의 남성들, 시인 뮈셰와 피아니스트 작곡가 쇼팽과의 연애로 더 유명한 문필가 조르주 상드, 1804년에 파리에서 태어날 때의 이름 ‘아망틴 뤼실 오로르 뒤팽’은, 사실 1830~40년대의 영국에서는 빅토르 위고, 오노레 드 발자크보다 더 유명한 소설가였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나부터도 위고나 발자크하고는 비교 자체를 안 하지만 당시 유럽 사람들의 기호에 훨씬 더 잘 맞추어주었던 모양이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활동하기에 편한 남자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이 탄생했는데, 이들 가운데 한 명인 상드는 주로 승마복을 입고 다녔다 한다. 이에 파리 경찰청에선 남자 옷을 입고자 하는 여성들은 미리 신고하라고 했던 모양.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자신 마음대로, ‘자유롭게’ 남성복을 착용한 이들 가운데 가장 앞에 섰던 인물이 조르주 상드라고 한다. 즉 상드가 여성운동 발아기의 한 축을 담당했다고 해도 그리 큰 무리는 아니다. 작가라는 직업을 이용하여 자신의 신념을 널리 알릴 수 있었으니까.
  이 책 <모프라>에서도 여주인공 솔랑주-에드몽드 드 모프라, 애칭 에드메는 남자의 독재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여성주의 소설이라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그보다는 고딕소설, 기사-로맨스, 교양소설, 범죄, 역사 소설의 혼합체(위키피디어 참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작품의 주제를 중심으로 말하자면 낭만-계몽시대의 중요한 과제였던 “사랑과 교육”을 주제로 했다고 할 수 있다. 상드는 어린 시절을 베리 주province에 있는 할머니 마리-오로르 드 삭스의 집에서 보냈고 열일곱 살 때 할머니가 운명하자 이 집을 유산으로 받았다. 이런 이유로 상드의 많은 작품에서 베리 주와 그곳의 저택이 자주 등장한다고 하는데, 이 작품도 그렇다.

 

  프랑스의 바렌 지역. 라마르슈와 베리의 접경지역에서 가장 나무가 빽빽이 들어차고 인적이 드문 곳에 다 무너져 내린 작은 성 ‘로슈-모프라’가 있었다. 이곳의 성주 트리스탕 드 모프라는 여덟 아들을 두었는데, 이 가운데 장남 하나만 결혼하여 외아들을 두었으니 아 아이 베르나르가 남자 주인공이다. 베르나르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고 얼마 안 있어 장폐색으로 생을 마감하고, 아버지마저 몇 년 후 삶을 접고 만다.
  트리스탕의 (사촌)동생 위베르 드 모프라는, 말하자면 모프라 가문의 방계혈족이라 할 수 있다. 귀족의 차남은 스탕달의 주장에 의하면 원래부터 군인이나 성직자, 적과 흑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거의 관습이라 젊은 시절에 몰타 기사단 소속으로 평생 독신서원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의 신념에 간섭하기를 머뭇거리지 않아 60세가 넘어 상속자를 얻기 위해 결혼을 해 딸을 낳는다. 이이의 아내 역시 딸을 낳자마자 장폐색으로 생을 마감하니 이런 우연이라니. 딸이 바로 에드메 모프라, 여자 주인공이다.
  트리스탕과, 하나 죽고 이제 일곱 명 남은 아들들, 그리고 새로이 들어온 손자 베르나르와 함께 아홉 명(또는 열 명. 작품 속의 친척관계, 구성원의 수 같은 건 앞뒤가 조금 맞지 않는다.)의 집단을 이룬 로슈-모프라 성. 저 깊은 숲속에 음산하게 자리한 성은 온갖 범죄와 죄악과 부도덕의 온상이다. 읽는 내내 사드 후작의 <미덕의 불운>이나 <소돔 120일>에서 악당들이 거주하는 외딴 산의 저택이나, 완전히 고립 단절된 성을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이들 열(또는 아홉) 명의 구성원은 먼저 영지의 평민들을 착취하고, 이어 부근에서 강도질하고, 더 넓은 영역으로 진출해 강도, 부녀 납치 등을 하는 와중에 폭행, 살인, 겁탈을 밥 먹듯이 저지르는 부끄러움 모르는 악당들이다. 베르나르도 이들과 어린 시절을 보내며 특히 큰 삼촌 장 모프라로부터 온갖 나쁜 성향을 배워 이제 악당의 무리 가운데 하나로 접어들 상태가 된다.
  반면에 로슈-모프라에서 60리 떨어진 자신의 영지 생트-세베르 성은, 선한 기사 출신의 위베르 드 모프라와 그의 아름다운 딸, 도지사의 법률 공부를 하고 지금은 도지사의 보좌관으로 있는 약혼자 드라마르슈 씨가 편안하고 건강한 삶을 사는 미덕의 집이다. 착한 위베르는 장조카가 죽은 후 그의 아들 베르나르를 자신이 맡아서 교육하고 상당한 재산을 상속하려 했으나 트리스탕이 일언지하 거절하고 자신의 성으로 데려가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었다. 하지만 아직 베르나르에 대한 애정은 정혀 식지 않았다. 이리하여 베르나르와 에드메가 열일곱 살이 됐을 때, 사냥을 좋아하는 위베르는 집안 행사로 여우 사냥을 준비했고, 말타기를 좋아하는 에드메 역시 사냥에 참가해 말을 타고 가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만다. 이때 우연히 에드메를 만난 모프라 형제는 그를 속여 로슈-모프라 성으로 끌고 가고, 때를 맞추어 강도단 체포를 위해 들이닥친 기마경비대와 전투를 벌이게 된다.
  기마경비대와의 전투는 모프라 형제들의 우위 속에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그때마다 형제들은 에드메를 욕보이고 죽이고자 하는 시도를 엿볼 수 있는 와중에, 아직 삼촌들만큼은 악당물이 들지는 않았고, 나이도 어려 제대로 전투를 하지 못하는 베르나르가 에드메를 자신의 당고모인지도 모르고 감시하게 됐는데, 둘은 이 와중에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에드메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이 절명의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에드메는 베르나르의 요구대로 이미 드라마르슈 시와 약혼한 신분임에도, 베르나르에게 몸을 허락하기 전에 아무에게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후, 둘은 로슈-모프라 성을 빠져나온다. 이게 신의 한 수. 숨을 고르고 있던 기마경비대는 이후 일시에 공격을 감행해 루이와 피에르는 전사, 로랑과 레오나르는 가조 탑에 이르러 자살하고, 앙투안과 장, 고셰는 다른 방향으로 도주하다 고셰는 연못에 빠져 익사하고 둘은 행방불명된다. 그러니 이제 베르나르가 유일한 모프라의 직계 혈통이 된 것.
  선한 위베르는 장손 베르나르를 최대한 따뜻하게 맞아주고, 이미 채권자의 손에 넘어가버린 로슈-모프라와 영지를 다시 낙찰받아 베르나르에게 되돌려주려 한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중요한 조연 세 명. 숲속의 현명한 은둔자 파시앙스, 장셰니즘 신부 오베르, 흰담비, 족제비, 두더지 사냥꾼 마르카스와 그의 충실한 개 블레로.
  이후 상당한 분량이 위키피디어에서 말한 기사-로맨스, 쉬운 얘기로 베르나르와 에드메의 밀고 당기기가 이어지는데, 이는 야만화 되어버린 베르나르를 예절과 품위를 아는 인물로 교육시키기 위한 에드메의 현명한 조치로 판명된다. 오베르 신부를 가정교사로 하여 라틴어를 제외한 프랑스어, 역사, 철학, 신학, 신사로의 말버릇과 몸가짐 등을 배우는 장면으로 말하자면, 위에서 애기한 바처럼, 사드 후작의 사악한 창조물들의 집단에서 건진 한 명의 탕아를 교육을 통해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교양소설로 읽히게 만든다. 그러면 뭐하나. 여자와 남자 주인공 사이의 밀고 당기기를 읽기가 징그럽게 힘들어지는 걸. 물론 와중에 주로 장 자크 루소의 철학이 에드메의 입을 통해 설파되기도 하고, 밀당의 피곤함에 나가떨어진 베르나르의 아메리카 독립전쟁에 참전하고, 현지에서 중요한 친구 아서를 만나는 일까지 나오기는 하지만, 별다른 에피소드 없이 밀고 당기고, 오해와 질투와 그리고 남발하는 구태한 어휘들이, 아이고, 아이고, 징그럽다.
  이런 로맨스로 일관하면 재미가 덜해지니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위한 도움닫기로 등장하는 것이 이미 독자들은 언제 나오나 궁금해마지 않던 행방불명된 삼촌들 장과 앙투안. 이리하여 소설은 또다시 범죄를 다루는 Bildungsroman, 탐정소설의 영역으로 접어든다. 여기에 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주인공들이 대개 1760년 초에 탄생해 소설의 막바지에 프랑스 혁명을 겪고, 이후 전쟁에도 참전하니 책을 출간한 1837년 입장에선 역사소설일 수도 있다.
  하여튼 이런 다양한 장르의 소설 형식을 합한 형태의 작품으로, 내가 읽은 바로는, 당대에는 절찬리 환호 속에 읽혔을지라도, 이제는 구태한 대사와 조금은 억지스런 로맨스가 그리 재미있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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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02 0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생각보다는 혹평이 아닌데요? ㅎㅎㅎ 저땜에 순화하신 거 아닙니까?
아, 폴스타프 님은 ˝여자와 남자 주인공 사이의 밀고 당기기를 읽기가 징그럽게˝ 힘드셨구나. 전 그 부분이 재밌었거든요. ㅋㅋㅋㅋ 특히 여주인공이 남주 막 가르치고 호통치는 거 뭔가 통쾌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좀 너무 긴 느낌은 있었어요. ㅎㅎ

Falstaff 2021-07-02 09:35   좋아요 2 | URL
ㅋㅋㅋ 순화한 거 아녜요.
전 사드의 악당들도 교육을 통해 순화될 수 있다는 교양주의를 좀 까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다른 길로 빠졌더라고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1-07-02 09:40   좋아요 1 | URL
그럼 폴스타프 님은 악당들도 교육을 통해 순화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교양주의를 까려고 하셨다는 거 보면 아닌 거 같긴 합니다만...

Falstaff 2021-07-02 09:49   좋아요 1 | URL
순화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더 많은 시간과 치료가 필요할 거 같네요.

저는 그것보다 ㅋㅋㅋㅋ 교양주의 소설 자체를 싫어해요. 씨, 재미있으려고 소설 읽지 못된 놈들도 교육받으면 착해진다, 그러니 차카게 살아라... 아이고, 재미 없어요.
악당은 악당 같이 살다가 벌을 받든지, 아니면 나쁜 짓해서 번 이익으로 죽을 때까지 잘 먹고 잘 살든지 하고, 착한 것들은 착해서 죽을 때까지 동네북처럼 줘 터지든지, 나중엔 쨍하고 해가 뜨든지 해야 산뜻하지 않나요?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7-02 09:5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놈의 빌둥스로만ㅋㅋㅋㅋㅋㅋ
제가 깜빡했습니다. 우리가 괴테를 싫어한다는걸 ㅋㅋㅋㅋㅋㅋㅋ(괴테 이름만 써도 진저리가 나네요;;; 아이구.... 그놈의 빌헬름마이스터....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7-02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드 생일(7/1)에 맞춰서 읽으셨어요?

Falstaff 2021-07-02 20:19   좋아요 1 | URL
아, 그런가요?
근데 설마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마누라 생일도 놓치는 만날 구박덩어린 걸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