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4
귄터 그라스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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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귄터 그라스가 1961년에 완성/발표해서 1963년에 출간한 책으로 <양철북>에 이은 단치히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노벨라 작품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개들의 세월>이 있다는데 아직 번역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작품의 무대는 1939년부터 1945년 초까지. 형식은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화자 필렌츠가 주인공 말케에게 내레이션을 하는 2인칭 시각이다. 물론 전형적인 2인칭 소설은 아니지만. 큰 그림으로 본다면, 필렌츠를 비롯한 친구들 사이에서 수영도 못하는 별 볼 일 없는 말케가 ‘위대한 말케’로 올라갔다가 전쟁 말기에 실종되기까지.
  말케는 목에 다른 사람보다 훨씬 큰 울대를 지니고 있다. 이 울대뼈를 라이트모티프로 해서, 울대뼈가 아래위로,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을 쥐로 착각한 고양이로부터 공격을 받는 첫 장면부터, 말케를 쥐를 달고 다니는 사람, 더 나가서 피공격자인 쥐를 연상하게 된다. 즉 울대가 나타나는 장면이 오면 말케에겐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책 속의 실제상황에서는 한 번도 진짜로 살아있는 쥐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첫 장면인 슐락발(이라는 독일 스포츠) 경기장에서 관리인의 검은 고양이가 나와 잔디밭에 잠들어 있는 요하임 말케의 움직이는 울대를 와락 덮치는 장면을 연출하고, 이후에도 몇 번 등장한다. 이 작품의 핵심 은유는 제목 그대로 고양이와 쥐. 쥐는 말케, 보기 좋지 않지만 눈에 잘 띄는 울대를 가지고 있고, 본인 스스로도 이를 가리기 위해 여러 장치를 하는 주인공.
  그러면 고양이는 누굴까. 말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일 수도 있고, 전쟁 상황일 수도 있으며, 이것들을 다 합쳐 사회라고 해도 좋겠다. 역시 첫 장면을 보면, 고양이가 말케의 울대를 쥐로 착각하고 덮치는 장면을 기억하는 필렌츠는, 그 장면이 고양이 스스로 공격을 감행한 것일 수도 있고, 친구들, 우리 중 누군가가 고양이를 들어 올려 말케의 목에 올려놓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이 고양이를 들어 말케의 쥐를 보여주었을 수도 있다고, 확실하지 않다고, 그래서 어떤 경우든 가능하다고 말한다.
  비평가들은 이 책을 평하면서, 당시의 소시민들이 전쟁영웅을 동경하고 기사 십자훈장을 최고의 자랑거리로 여기는 무비판적 사고방식을 가졌던 것을 비판하고 있다며, 결론적으로 독일인이라면 나치 수뇌부뿐만 아니라 소시민들 역시 전쟁의 공범이었음을 그로테스크하게 폭로한 작품이라고 했다(출판사 제공 책 소개 요약). 물론 그렇게 읽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더구나 세계대전을 개전했으며 6백여 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라의 국민이라면 그리 읽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르게 읽었다. 아마 주요 등장인물들이 하이틴 세대여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스토리 자체를 즐겼다. 제목과 이들의 행위가 어떤 것을 비판하거나 은유하는지 궁리하는데 신경 안 쓰고 말케라는 인물의 행동 자체가 너무도 흥미로웠으니.

 

  말케라는 매력적인 주인공을 소개하자.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영을 못하는데, 이게 안 배운 건지, 못 배운 건지 처음부터 아리송하다. 차이카 급 소해정으로 짐작되는 배가 1939년에 발트해 연안에 침몰했을 때 말케는 분명히 수영을 하지 못했었다. 수영 강습에 꾸준히 다녔음에도. 하다못해 강습에서도 거의 유아반 수준의 어린아이들하고 배웠다고 할 정도인데, 소해정이 침몰해 친구들이 잠수해서 배의 부품이나 표지판들을 뜯어내온다는 걸 듣고는 단박에 수영을 배워버린다. 그것도 모자라 불과 며칠도 되지 않아 침몰한 배(선박의 일부는 물 위에 드러나 있음)까지 친구들이 수영을 해서 갈 시간이면 동시에 출발했음에도 벌써 도착해 이미 잠수 한 두 번을 하고 나왔을 정도다. 이게 또 일취월장이라, 늘 (울대를 가리려는 의도를 별로 드러내지도 않지만 화자가 훤하게 알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하고)목에 걸고 다니는 드라이버를 사용해 배의 뚜껑, 널빤지 조각, 발전기 부속품에 이어 독일제 소화기까지 건져낸다.
  그러다 굴뚝이 두 개 달린 병원선이 입항을 한다. 말케는 수영을 해 멀리 떨어진 배에 잠입해 이음매가 없는 영국제 셰필드 금속 드라이버, 아직 기름칠이 벗겨지지 않은 신품을 하나 훔쳐 가져온다. 해가 바뀌어 1940년 여름. 말케는 다시 소해정에 들어가 더 오래 잠수를 하고 새 드라이버를 이용해 수병의 선원용 가방을 꺼내오는데, 이 속에 손바닥만 한, 폴란드 독수리 밑에 메달 수여 날짜와 소유자의 이름이 새겨있고 뒷면엔 파우수트스키 원수가 부조되어 있는 동메달도 있고,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 같은 것도 들어 있었다. 나중엔 배 안의 눅눅하지만 공기가 통하는 작은 공간을 발견하고, 레코드는 없으나 고급 축음기까지 들어 내온다. 그러나 문제는 절도.
  거의 모든 체육에 탁월하고, 공부벌레 타입이 아니라 적당히 노력해도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면서도 누구나 자기 것을 베껴 쓰게 허용하고, 결코 고자질을 하지 않으며, 불결한 장난에 동참하지 않아 어느새 ‘위대한 말케’의 자리에 우뚝 선 주인공을 한 방에 추락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이게 이 책에선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된다. 말케와 친구들이 다니는 학교의 선배이자, 유보트 함장인 선배가 기사 십자 훈장을 단 채로 학교에 방문에 연설과 체육활동을 하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훈장을 훔쳐 버린 것. 교장을 위시로 해서 난리가 나고 평소에 싱글싱글 잘 웃는 부슈만이 또 한 번 히쭉 웃었다가 대표로 끌려나와 귀싸대기를 수없이 얻어터지는 일이 벌어진다. 며칠 후 말케가 훈장을 선배에게 돌려주고 얻은 건 퇴학처분.
  이 와중에 날짜는 가고, 주가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서, 말케와 친구들 역시 전쟁에 나가야 하는 시절이 온다. 말케는 탱크 부대에 들어가 숱하게 많은 소련 탱크를 파괴하고 직접 철십자 기사 훈장을 받기에 이르는데, 이 과정, 말케가 훈장을 동경해 그걸 훔쳤고, 돌려주고, 기어이 입대해 다시 훈장을 받고, 그것도 모자라 훈장을 훔친 이유로 자기를 퇴학시킨 학교에서 연설을 하겠다고 제의했다가 좌절하는 장면을 두고 독일 평론가들은 저 위에서 이야기한 ‘모든 독일 국민이 전쟁의 공범’이라 주장했다 하는 거 같다. 말케가 훈장을 받아 그걸 가슴에 달고 휴가를 나올 당시의 나이가 한 열아홉 정도. 말 그대로 하이틴. 물론 성인이지만 아직 청소년의 때가 완전히 빠지지 않은 젊은이의 잘못된 동경을 반드시 정치적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표지 그림을 귄터 그라스가 직접 그렸다. 고양이 목에 걸린 것이 기사 십자훈장 Knight Cross. 그러니 정치적으로 책을 읽는 것이 작가의 의도대로 읽는 독법일 것이다. 맞는 독법을 가지고 이러니저러니 우기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지만, 스토리만 가지고도 무척 재미있는 소설을 나처럼 읽는 독자가 한 명쯤 있어도 설마 세상이 뒤집어지겠는가. 그만큼 파란만장한 인물이 요하임 말케다. 어린 나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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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5-17 0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말케 같은 애가 한반이거나 같은 동네 살면 친구하고 싶을 거 같은데, 이 책에서는 왕따(? 은따?) 당해서 참 신기했어요. ㅋㅋ

Falstaff 2021-05-17 10:00   좋아요 2 | URL
착하다 할 수도 없고, 말이 별로 없어 재미나지도 않지만 하여튼 꽤 오래 잊지 않고 연락할 수 있는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요. ㅋㅋㅋ 술도 잘 마실 거 같고요.
염병할 같은 반 친구, 데미안 비슷....하다는 생각을 은근히 했었습니다만.

바람돌이 2021-05-17 1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치히 3부작이라고요? 지금 양철북 읽으려고 쌓아놧는데 빨리 읽고 읽어야겟네요. 저는 아주 옛적에 양철북 영화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 아마 그 때 어려서 충격적이었던걸거예요. 지금은 뭐.... -귄터 그라스 책 읽어볼 생각도 못했는데, 이 책 소개보니 진짜 빨리 양철북부터.... ^^

Falstaff 2021-05-17 10:53   좋아요 2 | URL
이 책에서도 오스카(양철북 치는 만년 세 살 소년)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얼른 읽으셔요. ㅋㅋㅋ

ye8640 2021-05-25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되는 글이어서 댓글까지 쓰라 왔네요.ㅎ 양철북의 작가여서 궁금해서 읽었는데 그 시대의 그런 상황에서 한 소년이 살았었던 이야기.. 담담하게 말케라는 한 소년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읽었고 역사소설의 느낌도 났고 했는데..... 읽은 후 비평가들이 글이나 출판사 글이나 모두 거창한 말들이 많아서 당황했다.

Falstaff 2021-05-25 10:18   좋아요 0 | URL
아, 저처럼 읽으신 분이 계시는군요. 반갑습니다.
그냥 즐기는 게 제일이지요 뭐. 전문가들이 뭐라든 간에 독자가 제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