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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퇴를레스의 혼란 ㅣ 창비세계문학 84
로베르트 무질 지음, 정현규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로베르트 무질은 무려 열 권에 달하는 대표작 <특성 없는 남자>를 2권까지 읽었는데, 스스로 무질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출판사 북인더갭의 안병률 사장의 번역이었으며, 반드시 완역이 나와야 할 책이라는 주장에 굳이 반대할 의견은 없으나, 직접 읽어본 독자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안병률 사장에게 가장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게 딱 두 권만 번역하고 스톱 했다는 것이었다는 점 역시 밝혀두고 싶다. 왜냐하면, <특성 없는 남자>를 읽는 내내 소년 퇴를레스가 칸트를 읽을 때 느낀 것하고 비슷하게, “뼈밖에 없는 노인의 손이 머리에서 나사를 돌리듯 뇌를 빼내는 것 같은 느낌”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년 퇴를레스의 혼란> 역시 작가가 로베르트 무질이었으므로 만일 이 책이 4백 쪽을 넘어가는 분량이었다면, 언젠가는 읽었겠지만 틀림없이 지금처럼 신간 안내가 뜨자마자 사서 읽는 일은 없었을 듯하다. 이 정도면 얼마나 덴 줄 아실 듯.
<소년 퇴를레스의 혼란>이 무질의 첫 작품인지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바로 적어도 무질의 청춘 시대에 쓴 소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1880년에 남부 오스트리아에서 엔지니어 집안에서 태어난 로베르트 무질은 열네 살에 매리쉬-바이스키르헨 군사고등실업학교에 입학한다. 여기가 모르긴 해도 기숙학교일 것 같다. 무질은 군사고등실업학교에서 삼 년 만에 중퇴하게 되는데 이 학교에서 경험했던 것을 몇 명의 작가에게 작품으로 써보라고 제공했지만 아무도 시도를 하지 않아 자신이 직접 소설로 썼다고, 책 뒤편의 작품해설에 쓰여 있다. 왜 초기작품일 것이라 짐작했는가 하면, 열네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 두뇌활동이 왕성한 사춘기 소년의 사변적 방황을 섬세하게 묘사하기 위해서는 시절을 끝마치고 될 수 있는 대로 가까운 시간 안에 쓰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해서다. 이 작품이 현대 모더니즘 소설에서 각광 받고 있는 기념비적 작품이라고들 하면, 독자의 감상은 별개로 하더라도, 뛰어나다는 뜻이라 당연히 작가의 젊은 시절에 썼을 것으로 추정했다. 존경하는 황순원도 <소나기>를 환갑이 넘은 나이에 쓸 수는 없었을 테니.
첫 구절 “러시아를 향해 뻗은 선로 옆 작은 기차역”에서 작품은 시작한다. 당연히 이미 상당히 오래 연착한 기차는 아직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플랫폼에는 비교적 나이가 있는 부부와 한 무리의 명랑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다. 젊은이들은 쾌활한 웃음으로 떠들썩하지만 진정한 즐거움이라기보다 보이지 않는 끈질긴 저항을 하는 듯하다.
부부는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제국의 동부에 인적이 드문 척박한 농경지의 작은 도시에서 궁중 고문관으로 있는 퇴를레스 씨와 부인으로 아들의 휴일에 맞춰 W. 기숙학교에서 아들의 면회를 끝내고 귀가하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는 중이다. W. 기숙학교는 퇴를레스 씨에게는 먼 도시의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유명 기숙학교로 가계에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나라 최상류층 가문의 자제들이 졸업 후 대학진학, 군인,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교육을 받으며 상류사회 교제를 위해서라도 이 학교 출신이란 추천 요건이 매우 중요한데다가, 어린 아이가 이런 걸 어떻게 알았는지 아들이 입학시켜달라고 야심차게 졸라대는 바람에, 비록 나중에 많은 눈물을 피할 수 없었지만 허락하게 된 것이다.
궁중 고문관. 말이 좋아 궁중 고문관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유명한 궁중 고문관이었던 사람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궁중 고문관으로 열심히 일하고 극작을 쓰고, 소설도 쓰고 해서 인정을 받아 바이마르의 재상으로까지 출세한 인물. 궁중 고문관이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는 감당하기가 좀 벅찬 학교였으니 혹시 퇴를레스 군이 외아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플랫폼의 명랑한 젊은이들은 소년 퇴를레스와 네 명의 친구. 바이네베르크, 라이팅, 모테, 호프마이어. 이 가운데 모테와 호프마이어는 잠깐 나왔다가 곧바로 사라지는 엑스트라 역할이고 젊은 남작들인 폰 바이네베르크와 폰 라이팅은 두고두고 퇴를레스 군과 갈등을 빚는다. 이들은 퇴를레스보다 두 살이 많은 동급생. 십대 중반에 두 살의 나이면 지력과 완력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하여 처음엔 두 친구를 존경하는 입장이었다가 서서히 동등해진다.
먼저 이야기하고 넘어가자. 남자 기숙학교. 한국의 군대처럼 계급과 짬밥에 따라 명확한 서열이 있으면 차라리 덜하겠지만 다수의 동등한 어린 수컷들을 한 우리에 모아놓았으니 이건 애초에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밀림 상태였을 것이다. 소년 퇴를레스 역시 입학과 동시에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밤마다 베개를 적셨고 매일 집으로 편지를 보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난 소년은 부모를 향한 갑작스럽고도 애틋한 애정이 넘치는 단계를 거치고 이어서 향수라고 부르는 낯설고 새로운 상태에 이르다가, 향수가 사라진 영혼에 이번엔 일종의 공허함이랄까 허무 같은 것이 밀려온다. 자신에게서 사라진 것, 뭔가 긍정적인 것으로 어떤 영혼의 힘이며 내면에서 고통을 빙자해 시든 무엇. 마치 꽃을 피웠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첫 겨울을 보내는 어린나무처럼 빈곤하고 황량한 느낌이 드는 상태에 이른다.
어떤 상태에 이르렀다고? “뭔가” 긍정적인 것. “어떤” 영혼의 힘. 고통을 빙자해 시든 “무엇.” 빈곤하고 황량한 “느낌이 드는 상태”라니. 애매모호한 추상명사들의 나열. 이런 것들이 독자를 혼란의 소낙비를 맞게 만드는 요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무엇’, ‘뭔가’가 계속 나온다. 이것들이 뭘까. <소년 퇴를레스의 혼란>을 혼란 속에서 끝마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드리는 힌트를 기억하시라. 이 추상명사로 요약할 수 있는 책 속의 무수한 사춘기 소년의 번뇌는 오성悟性, 사물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 밖에서 이루어지는 대자적對自的 인식을 말한다. 로베르트 무질은, <특성 없는 남자>에서도 숱하게 그러했는데,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지만 인식 밖에서 가능할 수 있는 현상에 집착한다.
이 책에선 퇴를레스가 숙고하다 기어이 수학교사를 찾아 질문하게 되는 허수 √-1을 오성 밖의 인식으로 등장시킨다. 제곱하면 –1이 되는 가상의 수.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수의 제곱은 양수plus number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전혀 가능하지 않은 수number가 있어 제곱을 하면 –1이 되는데, 이것을 ‘i’라고 한다. 이른바 허수다. 우리가 아는 평행선도 저 멀고 먼 무한대까지 확장하면, 다른 것도 아니고 평행선이, 만난다. 서울시장 오세훈의 빙모 사공정숙 선생이 평행선이 언젠가는 만난다는 것을 증명한 적이 있다.
퇴를레스와 악당 친구 바이네베르크, 라이팅 앞에 등장하는 동급생이 바지니. 바지니는 힘도 약하고 씀씀이가 좀 헤픈 아이인데 과자점 주인에게 외상을 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갚기 위해 친구들 사이에서 소위 돌려막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씀씀이를 줄이지 못해 점점 더 큰 돈을, 더 많은 친구로부터 빌려야 했고, 급기야 아이들 수준으로는 제법 큰 돈을 바이네베르크의 잡낭haversack에서 훔쳐내기에 이른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장면을 발견한 것이 가학적 취미가 있는 라이팅. 라이팅은 곧바로 이 사실을 바이네베르크와 퇴를레스에게 전하고 곱상한 외모와 체격의 바지니를 그들의 공동 노예로 만들어버린다. 자신들의 비밀 아지트에 바지니를 불러 옷을 모두 벗기고 구타를 하는 등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학대를 하고 모욕을 퍼붓는다.
퇴를레스가 사춘기를 본격적으로 맞이하면서 줄곧 숙고의 대상으로 삼았던 오성 밖의 인식이 이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의 행동이나 영혼으로 전환되리라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을 터. 그러나 이 심사숙고가 어떤 때는 열대여섯 살의 미성숙한 소년의 것이었다가, 어떤 때에는 이 작품을 쓸 당시의 무질, 즉 스물다섯 살의 성년의 사고방식이기도 한 것이 독자를 미궁으로 빠뜨려버린다. 애초부터 무질을 읽으면서 편하고 쉬운 작품이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래도 친애하는 이웃의 독자들이여, 이 분량, 250쪽 정도라면 다 읽을 때까지 집중할 수 있을 수준이니 한 번쯤 눈에 힘을 줘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물론 선택한 후의 결과는 전적으로 당신 소관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