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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피리 ㅣ 범우문고 273
한하운 지음 / 범우사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어린 학생이었을 때 애송했던 시인. 그러나 요즘 한하운을 입에 올리는 독자를 별로 보지 못했다. 천형을 짊어진 시인.
자료마다 조금씩 다른데, 1919년 혹은 1920년에 태어나 75년 김포 장릉 공원묘지에 묻힌다. 열여덟 살 때 한센 병에 걸린 것을 발견했고, 상태가 좋아져 북경대학 농학원을 졸업한 후 귀국해 함경남도 도청에서 잠깐 근무했다. 한센 병이 다시 도지는 바람에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이후 병을 다스리기 위해 일본과 북경에 유학을 다녀올 정도의 가산을 모두 탕진한데다, 소련군이 진주한 함흥에서 시위 사건에 연루되어 월남한다. 이어 당시 한센 병 환자들이 거의 다 그랬듯 유랑생활로 접어든다. 1949년에 등단해 《보리피리》 등의 시집을 출간한 후 십 년 만인 1959년에 한센 병 완치 판정을 받고, 1960년 이후엔 거의 나병 구제, 구나救癩사업에 전념하다 75년에 간경변으로 세상을 떴다.
시인의 삶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벌罰>에서처럼 “죄명은 문둥이…… / 이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벌”을 받은 한 생애를 버티면서도, “아무 법문의 어느 조항에도 없는 / 죄를 변호할 길이 없”는 시인의 시편 속에 한센 병의 고통 자체가 없을 수는 없다. 물론 개별 시인들 입장에서는 처절할 만큼 고통스럽겠지만, 21세기 우리나라 시인들 가운데 <병시病詩>라는 개념을 도입한 시인들은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완벽한 단절과 경멸과 가난과 폭력을 견뎌야 했던 그 시절 “문둥병 환자”, 자신이 “문둥이”라는 종bell을 옷자락에 달고 다닌 시인. 그러면서 한하운의 시는 궁상의 골짜기로 투신해버리지 않는다. 독자가 굳이 시인이 한센 병 환자 시절에 쓴 시라고 특정하지 않으면 서정적 민요가락 정도로 읽히는 한하운의 대표 시를 읽어보자.
보리피리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인간세상)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몇 년의 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전문)
이 시는 소록도에 세운 시비에 각자刻字해 놓았다. 이 시비詩碑는 소록도 자혜의원의 4대 원장인 일본인 수호(周放正秀)가 나환자들을 모아 완도에서 기암괴석을 목포로, 목포에서 목도로, 목도에서 소록도까지 날라 온 돌로, 아마 이청준 작 <당신들의 천국>의 모델이 됐던 것 싶은데, 1942년 6월 26일, 자신의 동상 제막식 날 이춘성이라는 이름의 환자가 수호 원장을 칼로 살해해버린 사건 당시, 동상 앞에 있던 상석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보리피리> 시비가 소록도에 있다고 하니, 그건 또 당시 소록도에 거의 감금되어 있던 환자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결코 갈 수 없는 정지를 향한 아라리 같기도 하다. 시는 언제나 읽는 장소와 시간, 그리고 분위기가 중요하니까.
그러나 내가 읽기로 한하운은 역시 그의 지독한 병이, 상당히 절제된 모습으로 시에 투영되어 있는 것이 더 절절하게 와 닿는다. 물론 건강한 독자가 시를 읽어서 느끼는, 느끼기만 하는, 환자들 입장에서는 심지어 불쾌할 수도 있을 불필요한 애틋함을 포함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할까. 그분들을 위해 좋게 읽은 시를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을.
전라도 길
― 소록도로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전문)
나는 한센 병의 정확한 증상을 모른다. 학창시절 경북의 한 음성 나환자촌(당시엔 그렇게 불렀다.)에 농촌활동을 가 본 적은 있다. 투입되기 전에 미리 나환자 전문 기관에서 교육을 받았다. 나병 균은 산소에서 3초 이상 살 수 없으니 의심스러우면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고 다음 행동을 하면 안전하다고 배웠다. 환자 촌에 투입이 된 날 곧바로 주민들이 저녁식사 하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동네에서 키운 돼지도 한 마리 잡았던가, 벌써 사십여 년 전 이야기니 확실한 기억은 아니다. 근데 술이 좀 오르자 이장님이 자신이 술을 마시던 밥주발을 우리 회장한테 주더니 소주를 그득하게 따라주었다. 회장은 다른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게, 이장이 입을 댄 장소에다 자신의 입을 대고 소주 한 주발을 벌컥벌컥 마시고 까무러쳤다. 그 후, 우리는 그동안 투입된 어떤 봉사대들보다 환영받았다고, 퇴소하는 날 이장님께 직접 들었다. 그분들은 음성. 환자였다가 완치된 분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는데도, 그들이 키운 돼지나 닭은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팔 수 밖에 없었던 건 확실하게 기억난다. 그들도 속으로는 아끼고 또 아끼고 있던 것이 하나 씩은 있었으리.
봄
제일 먼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좁은 지역에도 한 포기의 꽃을 피웠더냐.
하늘이 부끄러워
민들레꽃 이른 봄이 부끄러워
새로는 돋을 수 없는 빨간 모가지
땅 속에서 움 돋듯 치미는 모가지가 부끄러워
버들가지 철철 늘어진 계절 앞에서
겨웁도록 울다 가는 청춘이요 눈물이요.
그래도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은
한 번밖에 없는 자살을 아끼는 것이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