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1
네빌 슈트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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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네빌 슈트. 1899년 런던 태생. 엔지니어로 항공기 개발 일을 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해 1960년에 사망할 때까지 글을 쓰며 살았다고 책 앞날개에 간략한 소개 글이 있다. 그리하여 네빌 슈트는 영국과 말레이 반도, 오스트레일리아의 광막한 목장지역 모두를 무대로 삼는 장편소설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19세기 후반,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의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 북부의, 20세기 중반엔 거의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버릴 금광도시 홀스크리크에서 거금을 모아 영국 요크셔 주 드라필드로 옮겨간 제임스 맥파든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이이가 마흔여덟 살이 되던 1905년 3월, 귀족들의 취미인 승마를 즐기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져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한다.
  제임스의 아들 더글러스 맥파든은 스코틀랜드 퍼스에 있는 학교를 다녔는데 같은 학교를 다닌 동창 가운데 조크 댈하우지라는 공부 잘 하는 친구가 있어서 훗날 법률사무소 ‘댈하우지 & 피터스’의 파트너 변호사의 자격으로 더글러스 맥파든의 모든 법정 대리인이 된다. 세월이 흘러 이 가운데 피터스가 사망하고 새로이 노엘 스트래천이 주니어 파트너로 들어오지만 법인 이름 ‘댈하우지 & 피터스’를 굳이 변경하지 않았다. 또 세월이 흘러 1928년, 댈하우지 씨 역시 명이 다해 젊은 변호사 래스터 로빈슨이 주니어 파트너로 가세를 해 오늘에 이른다. 그러니 더글러스 맥파든과, 댈하우지를 대신한 자신의 법정대리인이자 작품 속의 관찰자이자 화자인 노엘 스트래천이 서로 먼 인연이 있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두 당사자는 더글러스가 생을 마치고, 모든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이를 알지 못한다.
  더글러스 맥파든은 평생 독신으로 검소한 삶을 살았고, 그의 누이 진 패짓에게 아들과 딸, 이렇게 두 명의 조카가 있어서 모든 재산을 조카에게 상속하기로 결심을 한 상태였다. 누이의 남편인 아서 패짓은 말레이시아 이포 부근에서 회사일로 자동차를 몰고 출장을 가다 나무에 정면충돌해 더글러스의 여동생을 애 둘 달린 과부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1935년에 더글러스는 스코틀랜드 남부의 에어에서 변호사 노엘 스트래천을 불러 새로이 유언장을 만드는데, 복잡한 거 다 빼고 말하자면 모든 재산을 남자 조카인 도널드 패짓에게 유증한다는 거. 만일 누이 진과 도널드가 더글러스보다 먼저 죽으면 더글러스가 장기 투숙하고 있는 호텔의 주인 내외에게 남겨줄 약간의 현금을 제외한 모든 재산은 도널드의 여동생, 엄마와 같은 이름을 받은 진 패짓에게 유증하되, 서른다섯 살까지 노엘 스트래천과 ‘댈하우지 & 피터스’ 법무법인에게 신탁 위임한다는 내용이다. 이것으로 더글러스는 잊자.
  세월이 흘러 1940년 12월 7일이 왔고, 일본의 폭격기들이 진주만에 무차별한 폭격을 가함으로써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때 성인이 된 도널드 패짓은 어려서 말레이 반도에서 자라 현지 언어에 익숙하기도 했고, 순직한 아버지가 워낙 성실했던 터라 쿠알라셀랑고르 인근의 고무농장에 취직해 있었다. 또한 열아홉 살의 동생 진 역시 쿠알라룸푸르의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즉 한 가족이 모두 말레이 반도에 있다가 태평양 전쟁이 터졌고, 1941년 역사상 처음으로 북부 말레이반도의 빽빽한 삼림을 뚫고 싱가포르까지 진격한 일본군에게 가족 모두 포로로 떨어지고 만다. 어머니 진은 1942년에 폐렴으로 죽은 것이 확인 됐다. 강철 체력이던 도널드도 태국-버마간 철도 공사장으로 끌려가 모진 노동 끝에 말라리아, 이질, 괴사가 겹쳐 죽고 만다.
  이제 딸 진 패짓만 남아 더글러스 외삼촌의 큰 재산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그러려면 먼저 살아서 영국에 도착해야 할 터. 말레이 반도에서 포로들을 접수한 일본군은 남자들의 거의 대부분은 태국-버마의 철도 공사 현장으로 보내버리면 되는데, 결코 여자들과 아이들을 위해 따로 수용소를 만들 의향이 없어 나름대로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일본군들은 자신들의 관할권 밖으로 한두 명의 호송병을 붙여 보내 다른 부대의 관할로 미뤄버리기에 급급한다.
  남자 포로들의 태국-버마 철도 건설에 관해서는 리처드 플래너건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 잘 묘사가 되어 있으나 여자와 아이들 포로에 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진 패짓이 포함되어 있는 서른 댓 명의 포로들은 말라리아와 이질, 불규칙하고 열악한 음식과 의약품이 없는 환경 속에서 말레이 반도의 정글지역을 수백 킬로미터를 행진하며 반 이상이 죽는다. 이 죽음의 행렬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건강한 체질을 타고났고, 거기에 보태 성격적으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낙천적인 기질을 가진 부류들이었다. 여기에 말레이 말에 익숙한 진 패짓이 자연스레 무리의 대변인 비슷하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
  어느 날 이들 앞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남자 포로 두 명이 등장한다. 말레이 반도의 철도를 뜯어 태국-버마 철도용 레일과 침목으로 운송을 하는 일을 하게 된 호주인 가운데 웨스트오스트레일리아의 광활한 황무지에서 목동으로 일하다가 참전을 한 조 하먼이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저 먼 변경사람답게 무뚝뚝한 친절이 몸에 밴 조 하먼은 여자들을 위해 돼지고기 덩어리와 약품과 비누도 훔쳐다 준다. 그러다가 자기 사령관이 애지중지하던 닭을 다섯 마리씩이나 훔쳐다 준 것이 발각이 나 두 손에 못이 박힌 상태로 심한 구타를 당해 짧은 생을 접고 만다.
  진 패짓은 여자와 아이들과 더불어 말레이 지역을 방랑 하다 한 촌 마을에 정착을 해서, 무려 영국에서 온 백인 여자와 아이들이 말레이 사람들과 똑같이 사롱을 입은 채 논농사를 지으며 삼 년간 버티다가 전쟁이 끝나 무사히 싱가포르를 거쳐 귀국한다.
  자, 스토리는 딱 여기까지만.
  1948년 1월에 더글러스 맥파든 영감이 사망을 했으니 이젠 진 패짓에게 35세까지 연 9백 파운드의 안정적인 수입이 생길 것이고, 35세가 되자마자 돈방석 위에 올라앉게 될 터.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이제야 시작되며, 놀랍게도 러브스토리로 진행하게 된다.
  그러면 제목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이 무슨 뜻일까.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다. 영어 제목은 A Town Like Alice. 앨리스 같은 거리. 여기서 앨리스는 웨스트오스트레일리아에서 비교적 번창한 도시 ‘앨리스스프링스’를 말한다. 뭐 큰 도시는 아니고 그냥 일층짜리 건물이 비교적 조밀하게 모인 사막도시인데 오스트레일리아 사막 또는 황야 지역에서 상당히 큰 마을인 듯하다.
  따뜻한 책이다. 늙은 변호사 노엘 스트래천이 천성이 착하고 건강한 진 패짓과 나누는 우정을 깔고 새로이 싹이 트는 진과 한 청년의 사랑의 이야기. 가슴이 훈훈해지고 두 권 오백 여 페이지의 분량이 술술 읽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작가는 책을 시작하기 전에 실화를 바탕으로 썼다고 언질을 준다. 자기가 만난 가장 씩씩한 여성에 관한 글이라고.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다 읽고나면, 좋은 작품인 건 분명한데 어딘지 도식화된 그림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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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1-15 1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 이거 재미날 거 같아서 보관함에 담아두기만 했는데....(중고로 뜨면 사려고요)
폴스타프 님 리뷰 읽어보니 왠지 안 읽어도 될 거 같은 느낌적 느낌이... ㅋㅋㅋㅋ

2021-01-15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5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olcat329 2021-01-15 13:22   좋아요 1 | URL
하하...그쵸? ㅋㅋㅋ

Falstaff 2021-01-15 13:27   좋아요 1 | URL
이거 참... 쿨캣 님께 뭐라 말씀을 드려야할지.... 대략 난감...입니다. ㅋㅋㅋㅋ

hnine 2021-01-15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친절한 저자 소개로 시작하는 Falstaff님의 리뷰~ ^^
저 지금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다 읽고 리뷰 쓰려고 하던 참에 Falstaff님의 예전 서재 글을 보게 되었는데, 인정못받은 불쌍한 책들 리스트에 당당히 올라있더군요 ㅠㅠ
더구나 카탈로니아 찬가 다음으로 앙드레 브르통의 <나자>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 책도 그 리스트에 있지 뭡니까. 그래서, 더 흥미 팍팍 돋았습니다.

Falstaff 2021-01-15 16:39   좋아요 1 | URL
ㅋㅋㅋ <카탈로니아 찬가>는 다들 좋아하시는 작품입니다. 전 오웰하고 궁합이 참 안 맞아요. 동물농장도 그렇게 싫어한답니다. 1984는 기억도 나지 않고요. ^^
근데, <나자>는, 에구 참. 에구, 에구... 하여간 진도 안 나가는 작품이었어요.
하하하, 오래 전에 쓴 페이퍼인데 아직도 읽어주시는 분이 계시는 게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