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시선 156
함민복 지음 / 창비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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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민복.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 출생. 반가운 동네다. 청춘 시절에 충주 목행리에 있는 직장에서 한 3년 먹고 산 적이 있어 중원군 나오면 은근히 기분 좋다. 그 동네가 산 좋고 물 좋지만 오랜 세월 발전하지 않고 고립되어 온 지역이라 사람들 또한 약간 텃세가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친해지면 참 정이 많은 좋은 사람들이 산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인근 충주호를 비롯해 저 남한강 상류를 훑으면서 온갖 민물생선회를 섭식하다가 얼어붙은 충주호의 얼음이 쩡, 소리를 내며 갈라진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꽃망울이 지는 봄이 오면 한 움큼씩 디스토마 약을 입에 털어넣고 일주일 동안 약 먹은 병아리새끼처럼 꾸벅꾸벅 졸다가 깨어난다. 그러곤 다시 또 온갖 민물생선회를 초고추장에 찍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시절이었다.
  지역의 명문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해 대중적으로 유명세를 탄 사람을 꼽자면 첫째가 국제연합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이고 둘째가 지금 통일부 장관을 하고 있는 이인영이다. 반 선생은 설마 그렇지 않았겠지만 이 장관은 대학 다닐 때 부모님 속을 엄청 썩였겠지? 말 하면 뭐하나. 덕분에 지금 장관까지 하니까 그걸로 된 거지 뭐. 문학인으로는 두 말 할 것 없이 신경림. 산세 유려하고 물 맑은 고장이라 몇 명 안 되는 인구로 이 정도면 괜찮은 동네다. 나 장가들어 첫 사글세 신방을 차린 곳이 교현동 예성공원 길 건너 소방서 옆 인쇄소 옥탑방이었는데 인쇄소와 소방서 사이에 목욕탕이 있어서 뱅뱅 돌아가는 팬 사이로 여인네들 목욕하는 거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봤다. 오해하지 말자. 연예인 몸매는 천 명 가운데 하나 있는 거다. 다 엄마, 이모, 아내의 체형과 비슷하다. 볼 거 하나 없다. 보이니까 보는 거지 일부러 찾아보면 그건 미친놈 아니면 변태다.
  함민복 얘기하다가 어째 충주 이야기가 길었다. 함민복은 태어나긴 거기서 났어도 서울에 있는 수도공고, 당시의 정확한 명칭으로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월성 원자력 발전소에서 4년간 근무하고 (그걸로 군역을 대체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87년에 남산에 있는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한다. 2년제 학굔가 그랬는데, 나이 스물여섯이었으니 입학 때부터 꽤 꼰대인 척했을 듯하다. 어쨌든 시재詩才가 있어 2학년 시절인 88년에 등단을 해, 이번에 읽은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를 통해 넘겨짚은 그는 이후 대책 없이 시를 쓰기로 결정한 시인답게 가난한 혼자살이를 조금 겪었나보다. 여자나 남자나, 아니다, 나는 여자였던 적이 한 번도 없으니 그냥 이렇게 말하자. 남자들은 힘겹고 가난하고 외로울 때 엄마 생각을 많이 하나보다. 난 갓난이 때 외갓집에 보내져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적 없었다. 한 번도. 하여간 그는 1996년, 나이 서른다섯 살에 낸 시집 속에서 참 징그럽게도 어머니를 찾고 가끔 아버지까지 찾는다.
  여기서 함민복과 나의 궁합이 극적으로 멀어진다. 나는 어머니, 아버지, 특히 어머니 팔아가며 옛 생각에 궁상떠는 걸 무지하게 싫어한다. 물론 정말로 잘 써서 궁상을 탈피할 빼어난 수준이 된다면 모르지만. 시집의 1부, “선천성 그리움”이라는 제목을 달아놓고 대책 없이 어머니 타령을 하고 있다. 세상에 어머니 없는, 없었던 인간은 하나도 없는지라 웬만하면 어머니를 끌어들여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을뿐더러, 이게 시인의 진심이기도 하니 독자는 여차하면 별 수 없이 눈물바람을 하기 마련이다. 두 번째 시 <칠석七夕>을 보면, 짧으니까 전문을 그대로 인용하는데, “달빛/내/리/고/장독대/정/안/수/한 사발/어/머/니/아, 저것이 미신美信이다”이다. 미신迷信이 아니고 아름다운 믿음 미신美信이 칠석날 달을 바라보며 정안수 한 사발 떠다놓고 객지를 떠도는 외로운 아들을 위해 칠성님께 기도하는 어머니란다. 그 다음 시 <동지冬至>도 전문을 인용해보자. “한석봉 어머니 깜박 책을 써는 사이//한석봉이 꾸뻑 떡을 읽는 사이”. 이게 뭘까? 뭐 한석봉, 즉 아들과 어머니 사이의 물체에 대한 동화현상을 이야기하는 거겠지. 네 번째 시는 <세월 1>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다. 이것도 읽어보자.


  나는 어머니 속에 두레박을 빠뜨렸다
  눈알에 달우물을 파며
  갈고리를 어머니 깊숙이 넣어 휘저었다


  어머니 달무리만 보면 끌어내려 목을 매고 싶어요
  그러면 고향이 보일까요


  갈고리를 매단 탯줄이 내 손에서 자꾸 미끄러지고
  어머니가 늙어가고 있다  (전문)


  어머나, 세상에. 서른다섯 살이나 먹은 다 큰 아들이 이게 뭔 어리광이람. 이러니 나하고는 도무지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말씀. 심지어 그의 절창 가운데 한 편이라고 일컫는 <눈물은 왜 짠가>라는 시 속에서는, 가난한 시인이 어머니를 부양할 능력이 없어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드리는 날 터미널 부근의 국밥집에서 점심을 먹는 광경을 그린 것도 있는데, 이 시에서 함민복은 정말 국가대표급 궁상의 극치를 과시하고 있다. 인용하기에 과하게 길어 생략하겠지만 궁금하시면 검색해보시라.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라니 금방 찾으실 수 있을 듯.
  함 시인이 등단을 한 1988년. 시절은 이미 6.29선언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문학판에선 이젠 마음대로 써도 남영동이나 남산이나 경찰서 정보과로 끌려갈 염려가 없으니 본격적으로 유신시절과, 5공화국 때와, 광주시민운동과 노동현장에 대한 작품들이 말 그대로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고, 물론 이 가운데 우리가 오래도록 기려서 기념할만한 작품은 별로 없지만 거의 모든 작가들은 이 기운에 동참하지 않기도 쉽지 않았으리라. 그래 “꽃”이란 부제를 단 책의 4부에 이르면 소위 참여시, 아니면 리얼리즘 시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이른다. 나는 이 4부에 실린 시가 나머지 시들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어느 개 잡는 개백정의 독백인 <여름, 그 무덥던 어느 날>이란 짧지 않은 시의 마지막 두 연을 인용해본다.


  하루 여섯 마리 개를 잡으면서
  인생의 비린 맛 신맛을 알아야
  참 사람살이를 알 수 있다는 말놀이를 떠올리면서
  이 정도 비린내 나는 삶이라면
  한번 살아볼 만하지 않는가 호언하면서
  한 달에 개 두 마리씩 먹지 않고는
  화물기차에서 시멘트 하역작업을 할 수 없다는
  노무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개 쓸개 여섯개를 지푸라기끈으로
  포도나무 섶에 종자주머니처럼 매달면서


  하루 여섯 마리 개를 죽이면서
  하루 여섯번 나를 죽이면서  (부분.   맞지 않는 띄어쓰기는 원문에 따랐음)


  시멘트 한 포대에 40킬로그램. 그걸 하루에 몇 톤씩 짊어져야 하는 화물기차 하역부들과 그들에게 개를 잡아 고기를 파는 개백정의 여름 한 나절을 잘 묘사했지만, 결과적으로 절창까지는 아닌 것이 비장미만 두드려지게 하려다가 자간에 절묘한 위트 한 방울을 놓치고 말았지 않는가 싶기 때문이다. 물론 아마추어의 감각으로 그렇다는 거다. 이 감상을 함민복의 팬이 읽으셨으면 양해 바란다.
  이 시를 읽고 조금 뒤에 <긍정적인 밥>이란 시가 나온다. 이걸 읽고, 아, 이 시가 여기에 실려 있는 거구나, 할 정도로 유명한 시다. 인용해볼까, 말까. 엣다 모르겠다. 옮겨보자.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전문)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읽는 즉각 함의를 이해할 수 있는 쉽고 좋은 시다. 그리고 따뜻하다. 안도현이 멋만 잔뜩 부려 쓴 시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보다 낫다. 하지만 내가 읽은 이 책의 가장 재미있는 시는 따로 있어서 전문을 소개하며 오늘의 독후감을 마치고자 한다. 그래도 되겠지? 안 되도 내가 하면 그만이지 뭐.



  금호동의 봄



  똥차가 오니 골목에
  생기가 확, 돕니다
  비닐 봉지에 담겨
  골목길 올라왔던 갖가지 먹을 것들의 냄새가
  시공을 초월 한통속이 되어 하산길 오르니


  마냥 무료하던 길에
  냄새의 끝, 구린내 가득하여


  대파 단을 든 아줌마가 코를 움켜쥐고 뜁니다
  숨 참은 아이가 숨차게 달려 내려갑니다
  부르르 몸 떨며 식사중인 똥차의 긴 호스 입 터질까
  조심, 목욕하고 올라오던 처녀가 전봇대와 몸 부딪쳐
  비눗갑 줍느라 허둥대는
  살내음


  라일락꽃에 걸쳐 있던 코들도 우르르 쏟아지고 말아  (전문)



  근데 어쩌자고 한 번에 함민복의 시집을 두 권이나 샀는지 몰라. 독후감 여기서 딱 마치려 했더니 도무지 주둥이가 근질거려서. 난 금호동에선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지만, 금호동인가 옥수동인가에 사는 수수한 아가씨와는 데이트 한 번 해봤다, 1970년대까지는 서울 종로구에서도 똥 푸는 아저씨들이 똥지게를 지고 다녔다. 60년대 말 초등학생 시절, 장난기로 범벅이 된 내 동무 하나가 똥을 잔뜩 짊어지고 지나가는 아저씨 앞에서, “똥 퍼!” 했다가, 똥 푸는 군용 바가지를 냅다 휘두르는 바람에 진짜 똥 범벅이 된 옛 동무의 모습이 떠올라 굳이 사족을 단다. 걘 집에 가서 엄마한테 얼마나 얻어 터졌을까? 그 나이에 도리짓고땡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던 동문데. 위의 시 금호동은 21세기 정화조에 쌓인 분변 슬러지를 위생업체 차량이 와서 처리하는 장면이니 조금 차이가 나긴 한다. 추억은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 좀 남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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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0-12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대학 시절에 남자 선배들이 그렇게 함민복 운운해서 함 읽어봤다가 아니 다들 엄마랑 떨어져 사나 생각했던 적이 있더랍죠. ㅎㅎ 당시에는 그냥 그렇게 넘기고, 정작 함민복이 좋게 다가온 건 아주 나중에 그의 산문집을 통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밥’은 오랜만에 다시 봐도 좋군요. ㅎㅎ

Falstaff 2020-10-12 14:00   좋아요 0 | URL
저도 함민복, 하니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친밀감이 있더라고요. 마치 오래 읽은 시인인 것처럼. 그래 덜컥 두 권을 사긴 했습니다. ㅎㅎㅎ 더 읽어봐야겠어요.

hnine 2020-10-12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보다 더 재미있다니까요. ^^

Falstaff 2020-10-13 08:40   좋아요 0 | URL
ㅋㅋㅋ 재미있게 읽어주시니, 아이구 좋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