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가족 대산세계문학총서 158
고지마 노부오 지음, 김상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15년에 중부 일본에서 태어나 1941년에 도교국제대학 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교사를 하다 징집, 중국 동북부, 즉 만주 지방으로 파병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나도 고지마 노부오의 작품은 처음 읽어볼 뿐만 아니라 이이의 이름도 ‘도쿄국제대학’이란 학교 이름만큼 신기해 위키피디어 등을 뒤져보니 그리 큰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전후 일본 문학에서 꽤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소설가이며, 도쿄 메이지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했다는 거. 위키 백과에선 이이가 일찍이 니콜라이 고골, 프란츠 카프카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1960~70년대 작가치고 이 세 소설가에게 영향 받지 않은 사람 있으면 세 명만 대보라고 하고 싶다. 그리하여 결론 내기를, 일본 국내에서는 명성도 있고 문학적 성가도 있을 수 있지만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동감하기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작가, 정도로 알고 말기로 했다. 근데 도쿄국제대학이란 학교가 정말 있어? 궁금해마지않아 구글 검색해보니까, 있기는 있지만 신주쿠와 가와고에 시에 걸쳐 있는 학교로 1965년에 설립되었다는데? 고지마가 졸업한 학교는 아닌 모양이다. 혹시 몰라, 전쟁 때 폭탄 맞아 문 닫았다가 20년 만에 다시 열었는지. (확인해보니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을 '도쿄국제대학'이라고 잘못 쓴 거다. 문학과지성사에 알려줘야겠다.)
  <포옹가족>은 도쿄에 있는 한 콩가루 집안 이야기다. 미와 씨 가족. 구성원은 주인공이자 영문학자이며 은근히 돈도 많은 미와 슌스케, 그의 아내 도키코,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 료이치, 중학교에 다니는 딸 노리코, 그리고 집에 들어온 후 점점 집이 지저분하게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드는 중년의 가정부 미치요. 흠. 이 작품이 나오고 55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는 점잖게 가정부 미치요를 ‘미치요 씨’, 라고 부르기로 하자. 미치요 씨, 이 집안을 미치게 만드는 최초의 단추를 누른 인물이니 충분히 ‘씨’라 불릴 자격도 있다.
  아내 도키코가 미와 씨보다 두 살이든가 연상이다. 예쁘지는 않지만 큰 골격에 시원시원하게 생긴 여사는 남편한테 단단하게 삐친 것이 있으니, 전에 일 년 동안 미국에서 연수를 받을 때, 미국 측에서 동부인해도 된다고 했던 것을 미와 씨가 아내의 의견을 그냥 무질러버리고 혼자 떠났던 것에 앙심을 품은 게 아직 덜 풀렸을 듯한 분위기. 짐작 하시리라.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만 60년대 초반의 일이니 일본에서도 이런 일은 아내가 결정은커녕 의견개진도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여간 이젠 역전이 되어 슌스케가 아내에게 단 둘만의 여행을 떠나자고 제의를 해도, 당신처럼 재미없는 사람하고 뭐 하러 여행을 가겠느냐, 하고 타박을 하고, 얼마 전에 면허증을 땄으니 자동차나 있으면 전 가족이 자동차 여행이나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더라도 함께 자동차 여행을 떠날 사람은 조지, 미치요, 료이치, 노리코를 태우면 자리가 없을 터이니 남편은 집이나 지켜야 할 팔자라고 싹 입을 닦는다. 물론 아직 자동차를 구입하지도 않았지만 차가 있더라도 말이지.
  어라? 조지? 조지가 누군가 하면, 가정부 미치요 씨가 알고 지내는 미군 군무원 헨리 씨가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영어로 가르쳐줄 겸, 외국인 친구 역할 좀 해달라고 해 승낙을 받았으나 일찍이 존 웨인과 같은 기병대 출신이라고 뻥을 친 헨리 씨가 그만 병이 나는 바람에 조카인지 뭔지 하는 젊은이 조지를 헨리 씨 대신 아이들 친구 겸해 미와 집에 기숙을 시키고 있었던 거다. 일본인들이 워낙 예의가 깍듯한지라 미군기지 병원에 입원한 헨리 씨에게 병문안을 가기로 해서, 당연히 가정부 미치요 씨가 앞장을 서고, 슌스케와 도키코, 그리고 조지가 뒤를 좇았다. 어떻게 하다가 슌스케가 얼핏 조지의 가슴팍을 쳐다보니 넥타이가 암만 봐도 도키코가 사준 것 같아 왠지 좀 망연자실 해진 경험이 있었다. 그것 뿐 아니라 늦은 시간에 조지로부터 전화가 와 슌스케가 받자 멀리 있던 도키코가 득달같이 달려와 수화기를 사납게 낚아채며, 이건 료이치에게 온 전화이니 당신은 신경을 끄라면서 과민반응을 일으키기기도 했지만, 저게 미쳤나 왜 이리 심하게 화를 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하면서 사케 한 잔 마시는 걸로 정리를 한 적도 있었다.
  슌스케가 책 출간 일 때문에 2주 만에 적지 않은 번역비와 함께 귀가했을 때는 도키코가 외출 중이었고, 아이들도 다 학교에 가서 딱 혼자 있게 되었다. 이때 미치요 씨가 은근히 슌스케에게 접근해 뭐라 하느냐 하면, “선생님, 저기 글쎄, 사모님께서…… 조지와…….” 슌스케는 체통 상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어 됐다고, 더는 말하지 말라고 했으나 즉각 도키코에게 전화를 해서(어디로 외출했는지는 알았나보다.) 당장 집으로 오라고 하고 점점 초조해 하더니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도키코 여사가 등장하니 일단 집 안으로 들인 다음, 도키코를 확 밀쳐 소파에 쓰러뜨리고는 “당신이 그 자식이랑 한 짓, 세 시간이나 그 자식이랑 붙어 있었어.”라고 외친 다음 왼 손으로 도키코의 머리타래를 잡은 상태에서 오른 손으로 주먹을 쥐고는 세 번, 탕, 탕, 탕, 얼굴을 구타했다. 도키코가 정보의 출처를 묻자 슌스케는 ‘취재원 보호’ 또는 ‘취재원 비익권’이런 최소의 의리도 무시하고 미치요 씨의 이름을 댔으며, 미치요 씨는 또 조지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도키코를 깊은 상념에 빠지게 하는 의문. 이상해, 왜 조지가 그런 거짓말을 한 것일까. 슌스케가 “그놈한테 아무한테도 이걸 발설하지 말라고 말했겠지?”하고 묻자 도키코의 의문은 더해만 간다. 맞아. 그게 제일 마음에 걸려. 정말 떠벌였을까? 여기까지 독자도 약간 헛갈리는데, 이어지는 도키코의 결정적 고백이자 남편에 대한 요구로 확정하게 된다.
  “그 녀석, 주제에 베테랑이더라. 내가 도망치지도 못하게 했으니까. 그 사람과 많은 것을 했어. 그러니까 당신도 그렇게 해줘.”
  이 말, 또는 요구를 들은 슌스케. 하긴 한다. 제대로 하질 못해서 문제지만. 그래놓고 잠을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아내를 흔들어 깨운 다음에 미국 연수 가기 전에 자신이 유부녀와 벌였던 불륜을 털어 놓으면서, 자신은 심지어 그 여자를 품은 순간에도 여자에 대한 사랑은 눈곱만큼도 생기지 않고 머릿속에는 아내 생각만 가득하더란 하소연을 해버리니까, 이번에도 도키코가 반격을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 그래. 그 여자한테 한 것처럼 나한테 똑같이 해봐! 자 해봐! 못해? 아이고, 천벌을 받았구나!”
  이런 부부도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있다.
  이들은 환경을 바꿔보기로 하고 시외에 땅을 사서 새 집을 짓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정을 한다. 그리하여 서양식으로 통유리 집을 짓기는 하지만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나 있나. 여기저기 하자가 생겨 끊임없이 자잘한 수리를 더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하루는 슌스케에게 도키코가 자기 몸의 이상을 얘기해 종합병원에 가 진찰을 해보니, 의사는 정상이라고 진단을 하고나서, 따로 슌스케를 불러 선언을 하기를 유방암이란다. 발견하기 가장 쉬우며 거의 대부분 남편에 의하여 발견되는 암인데 어찌 이렇게 진행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을 수 있느냐고 남편의 무심을 질타하면서. 이제 암이라는 절벽을 앞에 놓인 부부. 그들에게 한 때 벌어졌던 불륜, 아니면 적어도 한 시절의 불장난이 뭐가 대수랴.
  스토리는 여기까지만 하자. 나도 양심이 있지 더 이상은 한 마디도 보태지 못하겠다.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일본 작가들 특유의 사소설이기는 하지만 전후 모던한 기운이 보태져 그나마 읽어볼 만한 사소설. 일본식 블랙 유머가 포함되어 있으나 그리 흥미를 끌지는 못한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0-09-26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이거 읽으셨군요. 저도 도서관에 신청해둔 거 내일 찾으러 갑니다! ㅎㅎ 그나마 읽을 만한 사소설이라니 더 기대합니다.

Falstaff 2020-09-27 08:22   좋아요 0 | URL
지금쯤 찾으러 가시겠군요. ㅎㅎㅎ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스토리 진행이 빨라서 휙휙 넘어가더군요.

다락방 2020-09-27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서점 가서 이 책 사가지고 지금 막 돌아왔습니다!! 어쩐지 제 취향의 책일 것 같아서 말이지요. 아하하하하.

Falstaff 2020-09-27 15:20   좋아요 1 | URL
흠... 전 다락방 님 취향은 아닐 거 같은데요.
제목을 제가 ˝사랑보다 더 질긴 정˝이라고 적어놓았는데 정말 쓰고 싶었던 제목은요, ˝사랑보다 더 드런 게 정˝이었답니다. ㅋㅋㅋㅋ

다락방 2020-09-27 15:32   좋아요 0 | URL
안...야한가요? 🙄

Falstaff 2020-09-27 16:05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전혀, 전혀 야하지 않아요. 15금도 안 될 수준입니다.

다락방 2020-09-27 16:10   좋아요 0 | URL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