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2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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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수준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연설문 모음 <자기만의 방>을 제외한 버지니아 울프를 읽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봐야 <등대로>와 <델러웨이 부인>을 읽어봤을 뿐이지만. 울프가 작품 속에 작가의 십팔번인 ‘의식의 흐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들 하는데, 의식의 흐름은 글을 쓰는 한 방편, 방식, 형식, 기교일 뿐이라, ‘의식의 흐름’이 책 읽기에 더욱 재미를 줄지언정 글이 어려워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댈러웨이 부인>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의식의 흐름이 아니라 딜레탕트 주제에 이렇게 얘기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다중 관찰자 시점’을 사용했던 건 아닌가 싶었다.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을 출간하고 6년이 흐른 1931년에 이 작품 <파도>를 간행하는데, 6년의 세월동안 위에서 말한 ‘다중 관찰자 시점’이 ‘다중 화자 시점’으로 확 진화해버린다.
  책을 열고 모두 아홉 개의 섹션 가운데 첫 번째 섹션에 들어간 순간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전주prelude는 이렇게 시작한다.
  “태양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에 태양이 바다 위에 여명을 비추기 시작하고 그래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드러나고 파도가 육지로 끊임없이 밀려와 소멸하는 것이 보인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첫 번째 섹션으로 접어드는데, 모두 여섯 명의 소년 소녀들이 뚜렷한 공통의 화제 없이 발언하기 시작한다.
  수잔, 로우다, 지니, 이렇게 소녀 세 명과, 버나드, 네빌, 루이스, 세 소년들.
  여섯 명의 아이들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따옴표 안의 대사로만 이루어진 섹션을 읽고, 일단 두 손 들었다. 도무지 읽을 수 없다. 여간해서 쓰지 않는 최후의 수법, 책 뒤편에 실린 역자 해설을 먼저 조금 읽기로 했다.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인 역자 박희진은 <파도 Waves>가 버지니아 울프의 가장 현대적인 실험소설이며, 세계의 많은 울프 전문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울프의 작품으로 꼽는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한 다음에, 책을 읽는 법을 알려준다. 분류 편의상 소설로 구분할 뿐, 작가 자신도 나중에는 “희곡-시”라 표현했다고 한다. 구성은 모두 아홉 개의 섹션으로 되어 있으며 섹션 사이의 간주interlude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산문시로 되어 있고 태양의 위치에 따라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를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해설을 읽은 다음 책을 여니 이제는 오히려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모두 여섯 명의 화자가 등장해 오직 대사로만 자신과 자신의 다섯 친구들, 그리고 마지막 섹션까지 중요한 인물로 이야기하는 퍼서벌Percival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한다. 물론 각 화자의 출신, 교육, 직업, 사랑 등도 간략하나마 소개되기도 하고. 역자 박희진에 의하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퍼서벌이라고 한다. 퍼서벌, 이름만 가지고도 충분히 대단하다. <아서 왕의 전설>에서 가장 으뜸가는 기사이며 이름을 파르지팔Parsifal로 바꾸어 바그너의 오페라 주인공으로 등장해 성창과 성배를 찾아오는 인물이다. 작품 속에서도 남자들이 학교에 입학하는 두 번째 섹션에서 처음 등장해 대학을 졸업하고 입대해 인도로 가서 낙마사고가 생겨 스물다섯에 죽어버리는 캐릭터이지만 여섯 명의 친구들 모두에게 많은 면의 탁월성 때문에 숭배를 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왜 퍼시벌이 그토록 숭배를 받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문화 차이일 수도 있고, 여성 작가와의 젠더 차이일 수도 있을 터이고, 백 년 전 사람들과 세대 차이일 수도 있을 터이다. 아무래도 특별한 존재가 작품 속에서 필요해서 이에 타당한 이름을 가져다 붙인 거 같다. 에이, 아무려면 어떠랴.
  스토리? 특별한 거 없다. 굳이 몇 가지를 이야기한다면, 버나드가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로 마지막 아홉 번째 가장 긴 섹션에서 온통 자신의 입장에서 등장인물 모두와 퍼서벌의 유년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고 급기야 죽음이 오기까지 한 시절을 정리하고, 마치 파도처럼 스러지지만 계속해서 같은 파동이 뒤를 이어 오는 존재의 연속성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 표지부터 본문까지가 312쪽에 불과한데 중요한 등장인물이 여섯 명이다. 그러니 아무리 간략하게 쓴다고 해도 여섯 명 모두의 인생을 개연성 있는 스토리로 만들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각자가 화자가 되어 대사로 자신을 설명함으로써 삶의 모든 스토리 가운데 친구들과 관련된 것만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라 저 위에 ‘다중 화자 시점’이라 말도 안 되는 정의를 내렸다.
  어느 책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가 소위 ‘위대한 책’이라 말하는 것을 보고 골라 있었다. 이 독후감을 읽는 분께서 혹시 이 책에 관심이 있으시면, 당신 역시 큰 <파도>에 휩싸일 수 있을 것임을 단단히 각오하시어, 혹시 모르니, 공기 호흡기 하나쯤 장만하시면 좋을 듯하다.

 



* 질문.


  "난세스"가 어떤 뜻인지 아시는 분 계시면 한 수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솔 출판사 포스트에 제가 질문을 하기를,


 "버지니아 울프 전집 2, <파도> 298쪽 첫 줄에 '시와 난세스를 한데 섞으면....', 이어서 6~7 줄에도 '운율과 허밍이, 난세스와 시가 멈춰버렸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저 앞쪽에도 한 번 '난세스'란 단어가 나오는데 그냥 '난센스'의 오타겠거니 하고 넘어갔었습니다만, 아닌 거 같더군요. 근데 사전에도, 검색을 해봐도 '난세스'가 무엇을 뜻하는지 나오지 않습니다.
첫줄의 '난세스'는 이 책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인 '오너라, 오너라 죽음이여'와 긴밀한 연관이 되어 있어서 더욱 궁금합니다. '난세스'가 어떤 의미인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도움을 청합니다."


 아직 도움이 오지 않았습니다. 하긴, 궁금한 것마다 잽싸게 답변이 온다면 세상이 얼마나 지루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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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1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1 1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1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1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황금모자 2020-06-11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어 원문에 nonsense로 되어 있습니다. 오타 맞습니다.

Falstaff 2020-06-11 11:31   좋아요 0 | URL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알라딘은 신기한 곳이예요. 출판사에선 아직 한 마디 답변이 없는데, 알라딘은 거의 즉시 말씀을 해주시니 말입니다!

꼬마요정 2020-06-1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느낌일 것 같아요. 친구 서 너명이 앉아서 이야기 할 때요, 각자 다른 이야기 하는데 묘하게 다 연결되는...^^

마지막 줄 말씀... 탁 와 닿아요. 세상이 지루하지 않은 건 원하는 걸 얼른 얻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ㅎㅎ

Falstaff 2020-06-11 15:47   좋아요 1 | URL
아, 이거 읽다고 뇌가 막 섞이는 느낌이 자주 들었습니다. 묘하게 연결될 거 같은데 각 섹션이 시간 차이가 크고 독백이 자기들 마음대로라 쉽지 않았던 겁니다. ㅜㅜ
ㅋㅋㅋ 다 인생이 그렇지요? 다행입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