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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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부산에서 출생해 인천에서 성장한 소설가. 서른 살에 등단해 몇 권의 단편선을 냈다. 이후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을 출간해 2018년 파주 출판단지의 종이 값을 한정 없이 올려놓고, 2020년엔 지적재산권과 관련해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을 거부해 그나마 이 문학상으로 거의 끊어져가는 명목을 가늘게 이어가던 문학사상사의 마지막 뻘짓을 세상에 드러낸 작가. 1979년 출생치고는 마치 고모님, 심지어 이모할머니 같은 이름을 가진 김금희는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의 주인공으로 자신의 이름에 관한 억하심정을 풀어놓듯 당숙모 이름 비슷한 ‘경애’라는 35세 독신 인물을 선택했다. 2018년에 하도 <경애의 마음>이 인터넷 책방마다 폭풍으로 몰아쳐 이런 작품은 일단 한 숨 들이고 읽어야 제대로 라는 엉뚱한 고정관념이 있어서 이제야 읽어봤다. 당시 열광했던 독자의 평과 작품의 내용이 더는 들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요즘 작가들은 대체로 우울하다. 이 작품은 1999년에 실제로 있었던 인천호프집화재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이 화재 사건은 두산백과에도 나와 있으며 <경애의 마음>으로 다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이젠 네이버에 ‘인천 화재’ 검색만 해도 저절로 ‘인천호프집화재사건’이 뜰 정도가 됐다. 짧게 두산백과를 인용하면 “1999년 10월 30일 오후 7시경 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에 위치한 4층 상가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건물 2층 라이브호프집과 3층 그린당구장에 있던 10대 중·고교생들과 20대 초반의 청소년 등 손님 56명이 불에 타거나 연기에 질식해 숨”진 사건이다. 주인공 박경애가 이 장소에 있었다. 물론 맥주도 조금 마셨다. 경애가 1981년생이니 고3의 10월 말. 소설에 의하면 인천 소재 모 고등학교에 축제가 있었고, 이때 소규모의 영화제 비슷한 행사에 경애의 남자친구 E가 단편영화 <마음>을 찍어 상영을 하고 뒤풀이로 호프집에서 한 잔 꺾은 걸로 설정을 했다. 뭐 그럴 수 있지. 2000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아직도 19일이나 남았으니까. E와 경애는 당시 하이텔 영화동호회 멤버로 번개를 포함한 각종 감상회에 참가함으로서 친분을 쌓았고,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으며, 상대를 소위 첫사랑이라 생각하는 단계로 올라, 만일 첫 경험을 한다면 상대방이 자신의 파트너가 되리라고 서로 믿어온 사이였다고 전제한다. 문제의 장소, 문제의 시간에 경애는 집에 전화를 하기 위해 건물 밖에서 공중전화를 걸고 있었고, 통화가 끝나 계단에 오를 때는 벌써 삽시간에 불길과 연기가 계단을 메우고 있었다고 한다. 10대 후반에 꾸밈없이 사랑했던 남자애를 눈앞에서 잃어야 했던 경애의 트라우마. 이건 평생을 짊어지어야 할 내상으로, 자기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경애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내적 우울의 발화점으로 지배하게 된다. 실제로 경애는 대학에 진학하고, 선배 산주와 연애를 하면서도 2002년, 평소 E가 좋아하던 감독 데이비드 린치 특별전 가운데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기 위해 동인천의 한 극장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홀로 관람을 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E가 죽고 나서 3년이나 지난 후에 경애가 동인천의 극장까지 <멀홀랜드 드라이버>를 보러 갔을 때, 같은 줄의 저 끝에 드레이닝 복을 입은 고도비만 급의 뚱뚱한 청년이 얼굴에 깁스를 한 채 훌쩍훌쩍 울고 있었던 것을 13년이 흐른 어느 날에도 어렴풋하게 기억을 하는데, 이 청년은 2002년 당시 전직 재선 국회의원 아버지가 원하는 대학에 도저히 진학할 자신이 없다고, 그래서 4수는 하지 않겠다고 자신의 결심을 사뢰었다가 주먹으로 얻어터져 코뼈가 부러져 병원에서 깁스를 했던 터였다. 청년은 그때부터 13년이 흘러 전 국회의원인 아버지의 재수학원 동기가 운영하는 재봉틀, 그러니까 반도미싱 주식회사의 팀장대리로 근무하는 공상수라는 이름의 간부사원으로 성장한다. 팀장 대리란 것은 팀장이기는 하지만 팀원이 한 명도 없는 이름뿐인 자리다. 공상수, 회사의 회장과 상수의 부친이 아직도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결정적으로는 회장 사모님과 상수의 새어머니가 여전히 함께 골프 라운딩을 하고 있기 때문에 희망퇴직을 시켜버리기도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붙여준 직급이고 직책이었으나, 상수는 자신이 낙하산이 결코 아님을 우기고 다닌다. 상수는 부장을 찾아가 팀원이 한 명도 없는 팀장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다가, 이와 같은 주민등록부를 상기한 부장이 회사에서 가장 골치 아픈 직원인 박경애를 상수의 영업팀으로 보내버려 둘은 서로를 모르는 상태로 13년 만에 상봉을 하게 된다. 상수네는 어려서 부모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으며 어머니가 병을 다스리기 위해 일본 삿포로에 있는 이모네 집에 체류하다가 병사하고, 현지에서 장례를 치루고, 화장하고 뼈를 추슬러 모르긴 몰라도 현지 사찰에 위패를 모셨던 일, 그 가운데서도 특히 어머니의 뼈를 추스르는 일이 기억에 박혀 역시 소극적이고 우울한 성격으로 고착되고 만다. 여기에 작고 근육질인 형의 폭력과 아버지의 완고함까지 겹쳐서. 그런데 알고 보니 상수 역시 하이텔 영화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한 전력이 있었다. 동호회를 통해 만난 다른 학교 친구 은총이 자신의 유일한 친구이고 모든 고민을 서로 나누는 관계였으나, 1999년 10월 30일, 인천 인현동의 호프집 화재로 죽어버린 다음엔 우울과 고독과 아버지, 새어머니, 형이 쉬지 않고 쏟아내는 가정 내 스트레스와, 재수, 삼수 시절 사관학교식 재수학원의 엄한 규율로 인해 과체중을 넘어, 비만, 그것을 초과해 고도비만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던 것. 이때 경애를 처음 만났고, 팀장과 팀원으로 두 번째 만났을 때는 <멀홀랜드 드라이브> 12년 후, 상수의 반도미싱 짬밥 경력이 벌써 10년 이상일 때는 키만 크고 홀쭉한 몸매를 지녔음에도 변변한 연애경험도 한 번 없고 매력도 없는 그저 그런 남자였다. 독자는 상수의 친구 이름이 ‘은총’이라고 나올 때 단박에 은총이가 E임을 눈치 챈다.
  * 상수가 아버지한테 코뼈가 부러지는 수난을 겪은 것이 2002년 한일 월드컵 시즌. 다음 해 입학해 2003년 학번이라 치자. 대학 4년, 군대 2년이면 2009년 졸업. 10년 이상의 경력이라니까 딱 10년 잡으면 이 책이 나오고 1년이 더 흐른 2019년. 하지만 작품의 시간적 공간은 상수와 동갑인 경애가 서른다섯 살인 2015년. 만 나이라면 2016년. 작가는 이리 꼬치꼬치 따지는 독자가 별로 달갑지 않겠지?
  경애의 E에 관한 상실보다 더 중요한 건 선배 산주와의 연애 사건이었다. 캠퍼스 커플로 소문이 자자했던 산주-경애라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나이가 차 결혼을 염두에 두어야 할 시기가 도래하니 산주는 구로동에서 미용실 운영하는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경애 대신에 남부럽지 않은 화목한 가정 속에서 곱게 자란 동창 가운데 한 아가씨를 선택하고, 경애에게 딱 부러지게 이별을 통보한다. 밸 없는 경애는 결혼 후에도 산주의 결혼이 자기의 영혼을 전혀 잠식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산주가 참석할 수도 있는 각종 모임에 빠지지 않고 발을 들여놓은 것은 물론이고 겉으로도 스스럼없이 산주와 지내려 하는데, 동창들 눈에 이게 어떻게 보이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경애와 산주가 모텔에 들었고, 경애가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왔을 때, 산주는 양말 하나 벗지 않은 채, 가야겠다고, 자기가 태워줄 테니 옷을 입으라고 하는 일이 벌어진다. 제의를 거절한 경애는 그길로 택시를 타고 강북 강변도로를 질주해 집에 들어가고 둘은 완전한 종막을 내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2015년 늦봄 또는 초여름. 한 시절 머리카락을 밀어버리고 파업에 앞장서던 홍보팀 박경애가 파업 중 성희롱 사건으로 파업이 실패로 끝나버리자 총무팀에서 사무용품 배급 업무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영업3팀으로 발령받고 며칠 후, 점심시간에 회사 앞에서 경애를 불러낸다. 다시 이어지는 감정의 끈. 몇 년 전 경애는 사랑의 고통과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에 관해 인터넷 애정 고민 상담 SNS인 ‘언니는 죄가 없다’ 약칭 ‘언죄다’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고, 언죄다의 운영자 ‘언니’로부터 일상적인 조언을 들은 바도 있었다. 새로이 산주가 등장함에 따라, 너랑 자고 싶어 다시 따뜻하게, 경애는 몇 년 만에 또다시 언죄다를 방문해 자신의 고민을 탈탈 털어놓는다.
  상수의 또 다른 고민은 자신이 마치 여자인 것처럼, 처음에는 사소하게 시작한 여성 상대 연애관계 상담 SNS가 최근에 심각한 해킹을 당해 근 십년 동안 자신에게 고민을 호소한 여성들의 연애 스토리가 다른 계정에 올라가면서 희롱과 조롱과 멸시와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예전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은총의 여자친구, 이미 죽은 은총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긴, 미안해 내가 좀 늦을 것 같아 눈을 먼저 보낼게, 인터넷 닉네임 ‘피조’의 고민을 날 것으로 알게 된 것 등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심지어 일상적 업무에도 큰 방해를 받기 시작했다는 것.
  문학작품, 시나 소설에서 우울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 정답은 없겠지. 내가 생각하는 문학작품 속의 슬픔과 우울은 보라색이다. 이 색의 특징은 저 한 귀퉁이에서 작게 앉아 자기존재를 찬란한 광휘에 담아 반짝인다. 만일 보라색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면 그림은 천박해진다.
  소설은 또 경애-상수 사이의 유난한 우연을 매개로 하고 있다. 물론 소설이란 장르 자체가 우연, 또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나 사건을 대상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과한 운명적인 우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내가 우울한 분위기로 일관하는 작품을 대단히 좋지 않게 생각하는 부류임에도, 오랜만에 참 괜찮은 우리 장편소설을 읽었다는 것. 2018년에 이 작품을 읽고 상찬하던 이유가 있었다는 것. 다만 한 가지 억지로 까탈을 잡아서 기어코 별점 하나를 깎아야 했던 건 작가가 꼭 결말을 내고 끝을 맺었어야 했는가 하는 점. 소설이 영화 같은 필요는 없으니까. 해피 엔딩이나 언해피 엔딩은 진짜 삶에는 별로 없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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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2-06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런 책이었군요. 전혀 생각도 못한 전개네요. 제목만 보고는 전 그냥 연애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좋은 정보 잘 알아갑니다.

Falstaff 2020-02-06 12:44   좋아요 0 | URL
ㅎㅎㅎ 옙. 실전 연애는 경애와 유부남 선배 사이에 연애랄 것도 없는 것만 있더군요. 두 주인공 다 공히 우거지 죽상인데 문장의 힘이 좋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케이 2020-02-06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천시 중구 인현동이면 제가 결혼 전까지 10년 넘게 살았던 동네 주변입니다. 자연히 관심이 가서 책과 작가를 검색해보니 김금희 작가가 심지어 저랑 같은 학교 다녔네요. 불이 났던 건물.. 아직도 동인천에서 영업 잘하고 있답니다. 제가 매일 지나다녔거든요.
1999년도면 저도 인천에서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이라 분위기가 생생한데, 작가가 그 시절을 어떻게 묘사했을지 참 궁금해집니다. 좋은 리뷰 항상 감사드려요.

Falstaff 2020-02-06 14:00   좋아요 1 | URL
작가는 서울 구로동에 사는 경애를 중심으로 했으니 그저 인천이라면 극장이 있는 동인천, 주안, 인하대 근처를 잠깐 묘사하는 정도입니다. 아, 차이나타운 길 건너 동구 화수동 스케치도 나오는군요. E의 집이 화수동에 있었습니다. 가난한 집 아들이었으니까요.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근데 1999년이면 하이텔 동호회는 거의 없어졌을 때 아니었나요? 궁금.... ^^;;

케이 2020-02-06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바로 하이텔 가입자여서 기억하는데, 2000년까지는 하이텔 동호회가 꽤나 흥했답니다. 1999년도면 아마도 최전성기였을 거예요. 생각해보니 저 역시도 꽤 큰 하이텔 영화동호회 회원이었어요. (거기서 제 닉네임은 무려 ‘타락천사‘ 였답니다. 푸하하 창피하네요.) 동인천의 극장은 애관극장을 모티브 삼았을 지도 모르겠네요. 소설에 잠깐 나오긴 해도, 제가 아는 옛날 인천의 묘사가 궁금해서라도 언제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Falstaff 2020-02-06 15:02   좋아요 0 | URL
책 속에서도 애관극장, 정확하게 나옵니다. ㅋㅋㅋ
아마 기억하시는 거하고 매우 비슷할 겁니다. 저도 집안이 쫄딱 망해서 20대 초반부터 장가들기 전까지 인천에 살아 대강 알거든요. 재미있습니다 타락천사님. ^^

케이 2020-02-06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부망천‘의 역사가 깊네요. (어떤 정치인이 말한 ˝이혼하면 부천가고 망하면 인천간다.˝는 말의 줄임말) 저희 집 역시 사정이 안좋아서 수도권 최고 싼 지역 찾다가 동인천으로 오게 된거라..
근데 인천의 좋은 점도 있어요. 다같이 못살아서 위화감은 덜 느끼는 점. (이게 좋은 점인진 잘 모르겠지만ㅋㅋ) 분당에 살다 망해서 인천 온 전학생이 인천 너무 더럽고 애들도 불량해서 너무 싫었는데 애들끼리 서로 아빠 직업 뭔지 모르는 거 보고 속은 편했다고 하더군요 ㅋㅋㅋ 저 역시 우리집만 가난하다 이런 생각은 안하고 살았어요. 별것도 아닌 걸로 말이 길었습니다.ㅋㅋ 책은 한번 꼭 읽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