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샬리마르
살만 루슈디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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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바로 소설 속 이야기로 들어가자.
 80년대 후반 또는 90년대 초반, 늘씬한 체격에 잘 생긴 외모와 거의 무한정한 재산을 보유한 전직 출판업자, 레지스탕스, 첩보원, 대사, 경제학자, 대 테러리즘 국가조직의 부서장, 영화제작자이며 이혼남인 막시밀리안 오퓔스 씨는 그의 늦둥이 딸이자 혼외자녀인 스물네 살의 미인 인디아의 집 앞에서 자신의 건장한 유색인 운전수가 그은 식칼에 의해 거의 참수 수준으로 목에 깊은 자상을 입어 선홍의 피를 한없이 뿌리며 만찬 상 위의 할랄 닭고기처럼 처참하게 죽는다. 할랄. 이슬람 식 만찬을 위해 이슬람식으로 사육해 이슬람식으로 도살한 식재료처럼. 첫 장 ‘인디아’에서 사건이 이렇게 벌어진다. 루슈디의 다른 작품 <수치> 속에서도 거의 앞부분에 앞으로 벌어질 행위와 살인을 미리 알려주고 그것에 이르는 과정을 밝히는 구도를 사용한 것과 비슷하게, <광대 샬리마르>도 애초부터 국가적 주요인물인 막스 오퓔스 살해 사건을 올려놓은 것.
 이후 이야기는 매우 거창하게 펼쳐진다.
 파키스탄과 인도 국경 사이의 카슈미르 지역. 그곳의 작은 마을 파치감(이 동네 이름을 몇 번이나 ‘파김치’로 읽었는지 모르지만). 파치감에서는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가 서로 잘 조화하여 이교도들이라기보다 그저 같은 카슈미르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 잘 살고 있었다. 이곳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의 파키스탄과 힌두교를 믿는 인도가 서로 세력을 다툼으로 비극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전에 이슬람 청년 노만 셰르 노만과 힌두 처녀 부니 카울이 서로 사랑하고, 사랑해서 관계를 맺고, 이게 알려져 이교도들 간의 결혼이 이루어지게 된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카슈미르 정서라는 것 하나로 주민들이 가능하게 만들어준 것. 파치감은 전통적으로 카슈미르의 공연예술을 이어가는 매우 중요한 곳이며 노만 가문이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어서 네 명의 형제 모두 공연에 참여하는데, 동네의 가장 어여쁜 이교도 처녀를 얻어 결혼에 성공한 노만 셰르 노만이 바로 ‘샬리마르’라는 예명으로 탁월한 재능으로 줄타기 곡예를 벌이는 광대이며 작품의 주인공이다.
 알자스 지방에서 대대로 출판업과 고급 문예잡지를 발간해 온 부르주아 유대인의 아들 막시밀리안 오퓔스. 2차 세계대전 발발 즈음해 부모와 함께 망명을 시도했으나 치매 증상처럼 보이는 부모의 완고함 때문에 바다를 건너지 못해 결국 부모가 나치수용소의 의료 마루타로 생을 마감한 후 레지스탕스로 항독 전선에 뛰어든 인물. 이야기를 끌고 가는 캐릭터답게 아름다운 용모와 무한정한 부와 좋은 두뇌의 소유자로 망명 드골정부에서 드골의 눈 밖에 나 미국으로 이민한 바람둥이. 눈부신 업적으로 주 인도 대사로 임명되어 뛰어난 활약을 벌이지만, 카슈미르 탐방 때 한 무희의 매혹적인 자태에 반해 그녀를 미 대사관으로 불러 공연하게 하고, 수도에서 살면서 최고 무용 선생을 사사하게 해주는 대신에 자신의 정부로 취해버린다. 무희의 이름이 부니 카울. 막스와 부니 사이에 생긴 아이가 바로 인디아 오퓔스, 부니가 지어준 이름으로는 ‘카슈미아 노만’이 된다.
 부니는 결국 아이를 막스의 법적 아내에게 빼앗기고 다시 카슈미르로 돌아가지만 그곳 주민들에 의하여 이미 법적으로 사망신고를 마친 상태. 그리하여 산송장으로 남은 생을 이어가야 하며 마을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는 신세로 전락한다. 남편 셰르 노만을 사랑했었다는 걸 너무 나중에야 깨달은 그녀에게 남편이 줄 수 있는 것은 부정한 아내의 목숨을 거두게 하는 일. 그러나 그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이미 부니는 죽은 상태, 유령의 몸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둘이 연애할 때, 노만 셰르가 농담 삼아 한 맹세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만일 네가 다른 남자의 자식을 낳으면 너와 너의 자식을 죽여 버리겠다.”
 노만 셰르의 남은 생은 자신이 한 맹세를 지키기 위해 바쳐진다. 그리하여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조직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천성적으로 갖고 있어 외줄타기를 그토록 훌륭하게 할 수 있게 만든 운동신경을 보태 그는 인간병기로 변신한다. 카슈미르,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싸고 소비에트가 침공을 하고 이를 막기 위해 보내준 미국의 무기로 저항을 하다가, 이제는 다시 그들을 향해 총부리를 돌리게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애초부터 종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맹세를 완결시키기 위했던 것. 그리하여 20여 년이 흐른 후, 셰르 노만, 광대 샬리마르는 막스 오퓔스의 운전수 겸, 집사 겸, 비서까지 헌신을 하는 아랫사람으로 일하기에 이르러 어느 날 아내와 아내의 정부 사이에서 나온 ‘인디아’이기도 하고 ‘카슈미아’이기도 한 의붓딸이 살고 있는 아파트 앞에서, 백주 대낮에 부엌에서 쓰는 식칼로 아내의 정부의 목을 깊숙하게, 거의 뒷목의 피부만 남아 달랑거릴 정도로 베어버렸던 것.
 이 책은 그리하여 크게 ① 남아시아, 특별히 인도 북부 지역 민족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유럽/아메리카의 문화의 충돌, 그리고 ② 인도, 파키스탄 사이에서 종교 갈등으로 새우등 터지는 최고의 자연 유산 카슈미르 지역의 불행을 그리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이라면 광대 샬리마르는 오리엔탈 문명의 문화이고 자존심일 수도 있고, 종교적 폭력일 수도 있으나 어떤 경우라도 유럽식 사고, 문화는 샬리마르와 그의 동양식 문화를 야만으로 규정하여 수용 하지 못하게 된다. 여기에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루슈디 특유의 신비주의적인 색채도 적절하게 가미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특히 루슈디가 강조하고 싶었던 점은 문화충돌과 종교 갈등이 앞으로도 화해의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전망으로 읽었다. 그의 비관적인 미래관이 당분간은, 아니, 앞으로도 상당한 세월 동안 타당할 것으로 보이는 것도 비극이긴 하다.
 그리하여 이 책은 거대한 담론이 되는데, 글 쓴 이가 루슈디라서 이 세계적 이야기꾼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도 결론이 어떻게 날까를 전혀 짐작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위에서 이야기한 소설의 내용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큰 프레임이 이렇다는 것이고 세목별로 들어가면 저절로 풍부하고도 풍부해 넘쳐버릴 것 같은 이야깃거리가 마치 35가지 혹은 60가지 코스 요리로 만드는 카슈미르 전통 만찬인 와즈완을 맛보는 것과 비슷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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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19-12-12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살만 루슈디 읽어보려던 중인데 폴스태프님의 리뷰 읽으니 확 땡기네요~ 조지프 앤턴 먼저 읽고 소설 읽으려 했는데 이 책 궁금합니다~ 집에 손도 안 댄 무어의 마지막 한숨이랑 악마의 시도 있는데 꼭 없는 책이 더 땡기는^^;

Falstaff 2019-12-12 12:06   좋아요 1 | URL
ㅎㅎㅎ 다 인생입죠.
전 루슈디 가운데 <한밤의 아이들> <광대 샬리마르> <수치> <악마의 시> 순서로 좋더라고요. 단편집 <이스트, 웨스트>는 루슈디 책으로 보면 경쾌하고, <하룬과 이야기 바다>는 그저 그랬습니다.

slobe00 2019-12-12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밤의 아이들에 이어 두번째라니~ 와ㅡㅡㅡ폴스태프님 순위를 염두에 두고 집근처 알라딘 가봐야겠어요~^^

Falstaff 2019-12-12 13:23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
근데 제가 읽은 루슈디가 많지 않아서요. ㅜㅜ

레삭매냐 2019-12-12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흥미롭게 읽은 그런 책이었습니다.

루슈디 덕에 카슈미르 여행을 한 그런 기분
이라고나 할까요.

Falstaff 2019-12-12 13:58   좋아요 1 | URL
옙.
카슈미르가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네요. 저도 카슈미르, 사마르칸트 뭐 이런 동네에 로망을 품고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