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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 파이크 아바스야느크 - 세상을 사고 싶은 남자 외 38편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1
사이트 파이크 아바스야느크 지음, 이난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0월
평점 :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 사이트 파이크 아바스야느크. 하긴, 터키 작가 가운데 내가 아는 사람이 오르한 파무크 말고 없으니 이이를 몰랐다 한들 어찌 까탈을 잡힐까. 작가는 1909년생. 열네 살 때 터키 그리스 전쟁으로 이스탄불로 이주했다. 이스탄불에서도 중상류 부르주아 생활을 누리면서 돈 잘 버는 아버지 덕에 대학도 다니다 때려치우고 프랑스 말 좀 배워볼까 싶어 프랑스 유학도 하고, 귀국 후 교사로 취직을 하긴 했는데 하고 한 날 지각을 하는 등 심각하게 불성실해 결국 그것도 때려치운 다음 아버지의 동업자와의 사업을 물려받았지만, 제 버릇 개주나, 반년 만에, 아버지 도저히 못 해 먹겠습니다, 두 손 바짝 들고 틈틈이 써 놓은 단편소설을 묶어, 역시 아버지 돈으로 출간했다. 딱 그때를 기다렸다가 터키 병무청에서 입대영장을 발부했으나 신경성 질환이란 묘한 진단서 첨부해 병역 면제 받은 걸로 보아, 우리나라의 숱한 ‘신의 아들’ 사례에서 봤듯이, 여태 자기를 도와준 아버지가 사람이 아니라 사실은 하느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어 스물여덟 살 때 다시 파리로 날아가 잠깐 놀다 오기도 하는 등 전형적인 오렌지 족 스타일로 지내기도 하다, 스물아홉 살 때 아버지가 명줄을 놓자마자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하는 한편, 사방을 둘러봐도 자기 일에 참견하는 사람 한 명 없는 완벽한 자유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뭐든 간에 완전히 좋은 일이란 없는 법이어서 자유라는 것도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법, 자유를 딱 10년 간 누리다가 간경화 판정을 받고 마흔다섯 살 때 뱃속의 복수를 빼 약간만 불룩한 배를 지닌 채 간혼수肝昏睡 상태에서 입으로 피를 쏟으며 저 세상으로 갔다. 그때도 아직 남은 아버지 돈을 다 쓰지 못하고, 자기가 글 써서 번 돈도 있어 유언을 하기를, 이 돈으로 해마다 제일 잘 썼다고 평론가들이 주장하는 단편소설의 작가에게 상금과 상장을 주라고 해 아직도 ‘사이트 파이크 문학상’을 주고 있단다.
여태까지 써 놓은 것은 그의 연표를 읽어가며 약간 심술궂게 연표를 각색해본 것이다. 왜 짓궂은 짓을 했느냐 하면, 책을 읽으면서 단 한 번도 사이트 파이크가 부르주아 출신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 작품 <해변의 거울>부터 마지막 <필요 없는 남자>까지 모든 단편들의 주인공은 노동자, 룸펜, 유랑극단의 배우, 시골교회 신부, 집 나온 젊은 가장 등 온갖 ‘찌끄러기’들이어서, 부르주아 출신으로 섣불리 서민 코스프레 했던 오르한 파묵의 보자 장수 이야기 <내 마음의 낯섦>처럼 이야기가 전혀 서먹서먹하지 않아 사이트 파이크는 분명히 적수공권으로 시작해 자수성가해 소설가가 된 인물일 것이란 생각이 저절로 들었던 거다. 그만큼 그의 단편은 등장인물인 하층계급 시민들의 묘사가 친밀하다.
이이의 단편들은 그가 주로 활동했던 1930~40년대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때론 농촌 마을까지의 모든 서민, 농민, 그 외의 가여운 것들과 부패한 사회 관습에까지 나름대로 따뜻한 눈길을 보내고 있으며, 이것을 역자 이난아는 그때까지 터키 문학이 습관처럼 따르고 있던 주류 유럽문학을 지양하여 ‘새로운 언어로 인간을 노래’하기 시작했다고 표현한다. 책을 읽은 후 여태까지 몰랐던 좋은 작가 한 명을 추가한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같은 시기 우리나라 단편소설 작가들처럼 절절하게 공감하는 건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