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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평점 :
마르케스는 <백년의 고독>을 23년 동안 구상했다고 한다. 내가 읽은 마르케스가 이번까지 합해 총 다섯 편. 이중에 이번에 읽은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와 <썩은 잎>에서는 진짜로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콜롬비아의 산골 습지에 위치한 시골 벽촌 동네 ‘마콘도’와 바나나 농장에서의 파업, 보수당과 자유당 사이의 내전, 네에를란디아의 항복, 자유당 반란군의 수뇌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항복 조인의 대가로 자유당 반란군 장교들이 받기로 했던 연금 가운데 적어도 한두 가지의 상황이 펼쳐진다. 이런 것들은 <백년의 고독>을 오랜 세월에 걸쳐 구상하면서 오대(五代)의 성쇠라는 서사를 만들었기 때문에, 구상 중에 <백년의 고독>과 이어지기는 하지만 개별 독립적으로 볼 수 있는 것들 역시 탄생했을 것이고, 작가 입장에서 이에 대해서도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썩은 잎>과 <아무도 대령에게....>의 발간시기가 <백년의 고독>보다 앞선다는 것이 재미있지 않은가. 자세한 내용은 혹시 <아무도 대령에게....> 뒤편에 실린 해설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책은 본문이 88쪽에 불과한 반면 해설이 38쪽이라 아무래도 본문에 비해 장황한지라 읽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의 주인공 ‘대령’이 누구인가 하면, <백년의 고독>에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네에를란디아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할 당시 노새의 등에 현금을 꽉 채운 돈 자루 두 개를 싣고 부엔디아 대령에게 고스란히 전해준 인물이다. 이이의 이름이 뭔가 알기 위해 다시 <백년의 고독>을 훑어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넘어가자. 항복문서에 조인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고향 마콘도로 돌아와서 연금술사 멜키아데스의 방에서 작은 황금물고기를 만들며 세월을 죽이는 동안 오랜 시절 그의 부하였던 많은 장교들은 정부가 연금을 지불하기로 약속한 것을 믿고 별다른 직업 없이 연금 지급이 개시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정작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일찌감치 연금수급을 거절한 바 있긴 하지만, 그게 자신에게 패배를 가져다 준 보수당 정권이 베푸는 돈은 받지 않겠다는 깊은 의미가 있었던 게 아니라 애초부터 그 작자들이 자신들에게 연금 따위를 건네주지 않을 줄 훤히 알았기 때문이란 걸, 부엔디아 대령의 수하들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선 노새에 두 자루의 돈을 네에를란디아까지 싣고 왔던 청렴한 반란군의 또 다른 대령이 마콘도에 바나나 공장이 들어서 자본주의의 악덕이 판치는 걸 보고 바닷가 고향으로 귀향한 상태. 대령부부와 싸움닭을 키우며 양복점에서 일하는 아들과 살면서 무려 56년 동안 그놈의 연금 지급을 개시하겠다는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가, 아들은 반정부 운동에 가담, 이라기보다 그냥 조금 적극적 관심을 두고 있다가 불법 유인물 소지죄 비슷한 죄목으로 투계장에서 총살을 당하고 아홉 달이 지났다. 그간 돈벌이는 거의 하지 않고 있었지만, 아들이 양복점에서 푼돈이라도 벌어와 입에 풀칠은 하고 살 수 있었던 대령부부에게 이제 남은 일이라고는 집안의 고물들을 내다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것 말고는 없다. 아들의 영혼이 담긴 듯도 한 투계를 팔면 900 페소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굶주림의 끝까지 몰린 대령 부부가 이 수탉을 팔아 3년의 삶을 더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석 달 후에 열릴 닭싸움까지 기다렸다가 승리할 경우에 얻게 될 20%의 파이트머니를 챙길 것인가를 두고 한 바탕 설전이 벌어지는 이야기.
본문이 88쪽에 불과한 단편이라 더 이상의 스토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당연히 단편 특유의 마지막 촌철살인의 결론 역시 알려드릴 수 없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이 정도는 말할 수 있겠지. 대령이 매주 금요일마다 부두 앞 동네 의사의 진료실 입구 의자에 앉아 우체국장이 우편물을 하역하는 걸 바라보며 한 주도 빠짐없이 자기에게로 오는 정부의 편지를 기다린다는 거. 우체국장 역시 단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의사에게 신문 뭉치를 전해주며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한다는 거. 그래서 책의 제목이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가 된다는 거. 이거만 가지고도 대강의 그림이 그려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