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이름이 없다
위화 지음, 이보경 옮김 / 푸른숲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모두 17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화장실에서 지하철에서 보기 쉽게 단편집을 골랐다.
그랬는데... 못봤다.
눈물이 슬금슬금 새어나와서
잠시잠깐 동안의 독서가
하루종일 나의 마음과 머리를 잡고
등장인물의 삶을 되새기게 만들어 못보겠다.
보기가 겁난다.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한 20장 남짓의 짧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출근길에 얼핏 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내내 내 머리속을 가슴속으로 지배했다.

나의 이름은 래발이다.
그러나 나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가난하고 모자르며 내세울게 없어
나는 '바보', 혹은 '멍청이'다.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누구도 나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아서
나의 동반자는 똥개 누렁이 뿐이다.
하지만 그 누렁이가 나에게 보내주는 관심과 체온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의 정성과 사랑으로 누렁이의 때깔은 점점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바보' 혹은 '멍청이'라고 불르는 사람들은 그 누렁이를 탐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나의 누렁이는 침대 안쪽 깊숙이 숨어 들어가 그들에게 누런 이빨을 들어내며
용감히 저항했다.
그래서 나에게 부탁할 것이 있던 그들은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나를 '바보' 라 부르지 않고 '래발'이라는 나의 이름을 기억해주었다.

한번도 인격을 인정받지 못했던 나는 그 이름에 가슴이 설Ž고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느꼈다.
그래서 나의 누렁이를 불러 그들에게 내주었다.
내 품에서 울분과 슬픔의 외마디 비명을 지른 내 유일한 가족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름을 지웠다. 이제 누구에게도 나의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고
설사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어도
절대 대답하지 않겠다고... 나는 결심한다.

허삼관 매혈기나 살아간다는 것보다, 여기 소개된 소설들은 거칠고 성긴 소설이다.
인물 또한 위화의 어떤 소설보다 보잘 것 없고 힘든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렇치만 거친 구성에 보잘 것 없는 인물들은 어떤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유머과 해학, 과장을 섞어내지 않고 담담하게 외롭고 지친 사람들을 그려낸
위화 소설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따뜻해 지는 걸 느낀다.
비극인데도 말이다.


혹시 삶에 지치고 힘들다면 위화 소설 한편씩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 같은 사람들이 지켜내는 인생의 아름다운 덕목을 보면서
어렵고 힘들 수록 질겨지는 인생의 어떤 것을 찾아내는 것도
'희망' 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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