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만화를 보냐?” 가끔 자랑스럽게 책꽂이에 꽂아 놓은 내 만화책을 보시며 혀 차는 아버지의 잔소리다. 만화를 우습게 보고 무시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바로 쥐다.

물론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 만화로는 최초로 퓰리쳐상을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유태인 대학살을 다룬 영화나, 책은 너무 많다. 더욱이 홀로코스트를 직접 겪지 않은 세대가 아버지 세대의 경험을 따라 간다는 줄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독일인의 반인류적인 범죄의 고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책, 쥐는 1980년대에 쓰인 만큼 유태인 대학살의 고발 그 이상을 담고 있다.

작가 아트 슈피겔만은 하나의 민족을 하나의 동물로 상징시켰다. 유태인은 쥐, 독일인은 고양이, 폴란드사람들은 돼지, 소련인은 곰, 미국인은 개... 각자 민족의 특성과 천적관계로 사람을 상징화 시켜서 1940년대 전쟁을 형상화 했다. 세계 제 2차대전시 쥐만도 못한 대접을 받았던 유태인의 상황은 책 전면에 등장한다.
 
"사람들은 옷을 벗는 큰 방에 들어갔는데 정말 꼭 듣던 그대로였지. 그 안의 정경을 몇 달 전에 봤더라면 아마도 그 곳을 딱 한 번 밖에 볼 수 없었겠지! 그래서 다들 샤워실로 몰려 들어가면 문이 엄숙하게 닫히고 조명이 어두워졌지. 3분에서 30분 사이였지. 가스를 얼마나 넣느냐에 달렸겠지만 곧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지. 사람들이 나가려고 발버둥 쳤던 문 바로 옆에 시체가 가장 많이 쌓여 있었어. 거기서 일했던 친구가 내게 말해주었다. 우리가 갈고리로 시체를 헤쳤어. 엄청난 시체더미였는데 제일 힘 센 사람이 있고 노약자나 아이들은 아래에 깔려 있었지. 두개골이 으스러진 사람도 있었어. 벽을 기어오르다 손가락은 부러지고 거기다 팔이 탈구되어서 몸길이만큼 늘어난 것도 있었지."

 

"말이나 소를 싣는 뭐 그런 화차였어. 입추의 여지가 없을 만큼 밀어 넣었지. 우린 성낭갑이나 청어처럼 포개지기도 했어. 난 깔리지 않으려고 구석으로 갔단다. 윗 쪽에 고기를 걸어놓는 듯 한 고리가 보이더구나. 내겐 아직 지급받은 담요가 남아 있었지. 난 누군가의 어깨 위로 올라가서 고리에 단단히 묶었어. 이렇게 해서 한 숨 돌릴 수가 있었지. 이래서 살아난 거야. 아마 그 칸의 200명 중 25명 정도밖에 못 살았을 거야."

  

"친구? 네친구들? 그애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

 

그러나 이 책의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은... 그들의 홀로코스트는 과거 지향점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작가의 아버지 블라덱은 알약의 숫자까지 꼼꼼히 세며, 굴비를 천정에 매달아 놓았다는 노랭이에 버금갈 정도로 근면 절약이 몸에 밴 사람이다. 거기다 다른 가족의 삶에 일일이 간섭을 해야 하고 편집증까지 갖춘 전형적인 꼰대(?)다. 그러니 1960년대 청년기를 보낸 전형적인 히피문화의 아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을 리가 없다. 1968년 작가의 모친인 아냐의 죽음은 이들 부자의 관계를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빠뜨린다. 그러나 작가는 이 책을 위해서 아버지와의 인터뷰를 하게 되고, 아버지 삶에 점점 빠져든다. 홀로코스트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아버지의 젊은 날의 러브스토리부터 시작해서, 장래가 총망 되던 한 청년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어떻게 생존해 낼 수 있었는가... 를 되짚어 본다.


200명중 25명 정도 밖에 살아남지 못한 극한의 상황.

내가 죽지 않으려면.... 나의 이웃이나, 동료가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블라텍은 갖은 술수과 거짓말, 근면절약과 눈치 보기로 생명을 유지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대학살 이후, 자신이 살아 남았다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가혹해지고, 일그러지고.. 또 불행해지기 시작했다. 아냐는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가족이 사망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블라텍은 살아남은 노하우를 어리석은 아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오늘도 아픈 몸을 이끌고 잔소리 중이다. 그런 아버지와 소통이 불가능한 아들은 그저... 만화를 그릴 뿐이다. 50년 전 끝난 전쟁은 블리텍과 아트 부자 간에 아직도 진행 중이고 아마 이 만화를 통해서 아트의 딸 리디아에게 전해질 지도 모르겠다. 유태인 대학살은 죽은 자에게나, 살아남은 자, 그리고 기억하는 자에게는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불행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렵지 않게 현재 진행형의 유태인 대학살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쓰여진 좋은 책이다. 10대부터 60대까지 모두에게 강추...


그런데 용서할 수 있을까?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가스실에 끌려갔던 블리텍은 흑인에게 엄청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거.. ? 팔레스타인에서 땅의 원주인을 몰아내 그 땅을 차지하고 아랍인들을 핍박하고 있는  그들을.. ?  개도국 경제를 무너뜨리며 다른 나라의 국부를 착취하는 유태계 해지펀드들?


그들이 하는 일이 50년 전 대학살의 복수일까?

아니면 힘을 가진 인간은 약한 인간을 핍박하지 않고는 살아 갈 수 없는 동물일까??


팔레스타인을 차지하고 강력한 부를 손에 쥔 유태인들...

지금 그들은 과연 어떤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