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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캐넌의 세계 ㅣ 환상문학전집 5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평점 :
어딘가에서 르권의 이야기는 한시대의 끝과 다른 시대의 시작과 맞닿아 있다고 들은 기억이 난다.
그것이 한개인에게 일어난 시대의 종말이든
한 종족이 경험하는 시대의 서막이든
그녀의 책을 읽는 건 왠지 새벽녁의 고즈넉함과 아련함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책도 마찬가지다.
샘레이의 열정, 단호함, 당당함에 이끌려 그녀에게 목걸이를 돌려주었던 로캐넌은 50년후 샘레이의 고향
은하계 8구역, 62번의 4개의 위성을 가진 행성 포말우트 2의 조사단으로 찾아온다.
조사의 마지막에 은하연맹 반혁세력으로 추정되는 고도 지적 생명체의 공격을 받고
이 아름다운 행성에 숨어든 침입자를 처벌하기 위해 은하연맹에 사실을 알릴 수 있는 통신수단을 찾아
포말우트를 여행하는 것이 이 이야기의 기본 스토리다.
물론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그 새벽녁의 고즈넉함이나, 알련함은 이런 스토리와 전혀 관계없다.
(이 책 서두에서 발행된 순서, 이야기를 순서를 소개하고 있지만, 물론 척박한 Si-Fi 환경에서 번역해준
순서대로 읽었지만, 어려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어슐러의 이야기는 일련의 주제를 지닌 독립된 이야기다)
로캐넌이 경함하는 피아 쿄와의 교감.
샘레이 손자 모지언과의 우정
그리고 야한의 충성심사이에서
그는 테라인으로서의 자신을 버리고 '듣는 자'로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하지만 다른 산맥이 있잖아!. 바로 이 계곡만 해도 동쪽에는 더 낮은 산맥이 있어!
이름이 없다면 어떻게 이 산맥과 저 산맥을, 이존재와 저 존재를 구분하지?"
개체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던 피아인을 로캐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각자의 특성을 잡아내 별명을 붙이기에 능했던 피아인들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쿄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름은 인식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이름이 있어 나를 다른 이와 구분하고 존재를 인식하게 되지만..
이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에게 구분도 인식도 불가능하게 된다.
샘의 수호자가 로캐넌에게 준 복수할 수 있는 능력은 듣는 것이었다.
"듣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긴장, 욕망, 감정, 신경체계를 엉클어 놓고 이리저리 겹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실제 위치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감각의 방황, 무시무시한 공포와 질투의 회오리,
표류하는 만족감, 잠의 심연, 반쯤 이해하고 반쯤 지각한 거칠고 괴로운 혼란상태 같은 것들이었다"
이름이 인식의 시작이었다면
아마 듣는 것은 인지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태초부터 가지고 있던 능력..
하지만 언어(문명)의 시작으로 잃었던 능력 말이다.
다른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언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듣는 맘'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진리를 다시한번 깨닫게 만든 시간이었다.
이제 유배행성을 보러가야겠다.
아직도 읽을 수 있는 르권이 책이 두권이나 남아 있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