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들판 - 완결편 견인 도시 연대기 4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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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선택을 한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사람들은 그 선택의 앞에서 누구나 '나'를 먼저 생각한다.
내게 좀 더 이익이 되고 내가 좀 더 많은 편한 쪽으로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끔, 어떤 사람들은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닌, 대의를 위해 자신을 초개처럼 벌이는 선택을 한다. 나보다 다른 이들을 위해 선택을 결정하는 그들을 우리는 '영웅'이라 부른다. 대부분 소설의 주인공들은 영웅이다.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서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선택이 세상을 바꾸는 단초가 되는 과정을 우리는 소설을 통해 보고 싶다.(현실에 없으니 소설에서라도 보고 싶다규!!!!!) 유비의 의형제들은 위기에 빠진 '한'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 한가운데로 돌진해갔으며 달타냥과 삼총사들은 프랑스를 전쟁에서 구하기 위해서 리슐리외와 싸움에 돌입한다. 무릇, 소설 주인공들의 운명은 이렇다. 내가 없는 삶, 다른 이를 위해 나를 버리고 또 다른 세상을 구해 나가는 길.


 

그런데 이 책 '견인도시 연대기'에 이런 인간들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젠장!!!!!
이 책을 처음 본 건 벌써 2년 전 겨울, 시리즈의 포문을 연 <모털엔진>에 그야말로 반해버렸다. 인간이 지구 궤도에 핵폭탄을 날리고 검은 버섯구름이 모든 하늘을 덮어버린 후 3천년 뒤, 그때도 인간은 지구를 지배하며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 오랜 세월 후에도 그들의 문명은 우리네와 그리 다르지 않다. 살아 남기 위해서 세상을 가꾸는 대신 빼앗고 사냥하는 것을 선택했다. 도시들이 바퀴를 달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더 작은 도시의 문명과 과학을 독식한다. '도시진화론'으로 명명되는 이 사회에서는 말 그대로 '적자생존'이라는 지금의 진화론을 잘못 해석한 대로 크고 강한자만 살아남는다. 그래서 모든 도시들은 몸짓 부리는데 혈안이 돼 있다.


 

세계관 만으로도 이 소설과 사랑에 빠지기 충분했다. 마치 다른 도시들을 사냥하는 견인도시는 생산과 분배보다는 투자와 교역을 통해서 다른 나라의 재화를 손쉽게 뺏아으려는 이른바 '다국적 기업'과 너무나 많이 닮아 있었다. 적자생존을 운운하며 다른 도시들을 파괴하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그들에게 눈쌀을 찌푸리며 우리의 주인공 톰과 헤스터가 이 도시진화론의 허구를 파헤쳐주길, 신자유주의 무역에 염증을 느끼는 나는 톰과 헤스터를 열열이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거 뭐지??


<모털엔진>에서 위기에 빠진 어린 소년 소녀를 구해지고 그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살아 남을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준 안나 팽이 허무하게 죽고 만다. (왜 내가 좋아라하는 캐릭터는 이렇게 쉽게 죽냐고!!!!) 그리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올드테크(60초 전쟁 전의 기술문명)을 가지고 사냥꾼도시들의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하다 스스로를 파괴하고 마는 런던에서 살아남은 헤스터와 톰은 영웅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 내 사랑을 지키기 위해 얼음 도시를 적들에게 팔아넘긴다. (<사냥꾼의 현상금>에서) 난 헤스터의 그 영약하고 계산적인 선택에 이 책을 집어치웠다. 이런 인간들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보고 있다고!!!! 소설에서까지 그런 선택을 하는 인간에게 감정이입하기 싫어!!!!


 

그리고 마지막 책이 나오고 이 책을 본 (이 책의 제공자이기도 한) 웬수뎅이가 마지막 권에서 모든 것을 용서할 만큼... 이 책은 가치가 있다는 말에.... 심신이 어지러웠던 나는 그 가치를 찾아서  다시 이 시리즈 <견인도시연대기>를 시작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가 익히 소설에서 원하는 주인공스러운 영웅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처럼 자신의 능력에 의해서 보통 사람의 삶을 빼앗겨 징징거리는 초등력자들도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의 주인공 중 하나인 톰의 무능력과 우유부단함에 보는 독자들은 울화통이 터지고, 헤스터의 영악함하고 계산적이며 가끔은 잔인하기도 한 성격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리고 헤스터를 꼭 닮은 그의 딸 렌은 몇 번이나 이 책을 집어 던지고 싶게 만들었고 (사냥꾼의 현상금에서의 헤스터의 행동은 렌에 비하면 약과다. 이 열 다섯살의 소녀는 정말이지 못 되먹었다. 거기다가 개과천선도 하지 않는다. -_-+ 소설이나 현실이나... 자식들이란, 오늘 어버이 날인데.. 나부터 반성해야겠군)

그나마 내가 시리즈 내내 가장 사랑했던 캐릭터 '안나 팽'은 무려 세번이나 죽음을 맞이한다. (안나 팽이 세 번이나 죽을 정도로 나쁜 짓을 했냐규!!!!! 이 작가야)


 

보는 내내 심드렁했고 읽을 가치가 없다면 이 책의 제공자 웬수뎅이한테 궁시렁거리고 말꺼라며 다짐을 했건만... 마지막 다섯장을 남기고 나는 이 <견인도시연대기>의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었다.

나는 기억하는 기계다...


 

늘 자신만의 가치판단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고, 구해주겠다, 지켜주겠다는 약속은 늘 허공 속을 떠다니는 메아리가 되고 마는 선택을 하게 되는 완전하지 않은 우리. 잘 못된 선택은 언젠가, 내일 당장이 아니라도 긴 세월 후에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그 결과로 새로운 삶의 장이 열리며 그 순간은 묵묵히 굳굳히 견뎌내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누구나 자신의 던진 부메랑을 절대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교훈쯤은 다른 소설에서도 얼마든지 나오며.. 거기다가 그 못되 쳐먹은 헤스터 모녀와 덜 떨어지고 우유부단한 톰을 참아내기 부족하다. 거기다가 소시오 패스 패니로얄 님로드까지 나오고 내가 사랑하는 안나 팽을 세번이나 죽이기 때문에.... 이 책은 정말 중간중간 참기 힘들다.

내가 이 책을 2000페이지 가까이 되는 4권의 책을 참고 읽고, 거기다가 가치를 두는 건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기억을 간직한 기계, 스토커와 스토커 팽 때문이다.

 

스토커 팽은 안나의 기억을 매개로 한 인조인간이다. 다른 모든 기억을 잃었지만 안나는 죽음의 강을 되 건너 오는 여정 끝에도 지구를 푸르게 만들고 싶다는 자신의 생전의 소망은 절대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소망을 현실화 시키기 위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과정의 결백성 따위는 개한테 줘버리고 지구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한다. 안나가 지키고 싶었던 사랑은 지구였다.

그리고 상처입은 어린 소녀를 키우고 사랑했던 또 하나의 스토커. 이 모든 과정을 개입하지 않고 관찰자로 남으며 한 소녀의 모든 것을 기록했던 스토커. 다른 이를 해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누군가를 키우고 가르치며 사랑하게 되고, 결국 홀로 남아 그 모든 것을 그리움으로 간직하게 될 스토커의 한마디 '나는 기억하는 기계다'에서 나는 이 책을 용서(?)하기로 했다.


누군가, 우리의 세상도 하나하나, 완벽하지 않지만 맘 속으로 갈등하며 스스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우리 사람들이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기록하는 그런 기계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 세상이 너무 어지럽다. 내가 사랑했던 한 정치인의 모습이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아주 이기적인 선택을 한 그녀에게도, 그것이 그녀 나름의 최선이라는 걸, 그녀는 슈퍼 영웅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인간일 뿐이라는 걸, 그리고 그 이기적인 선택을 한 그녀의 삶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불러 올지 스토커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기록하는 기계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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