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열쇠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2차대전에 일어난 유태인 학살은 6백만명이라고 얼추 계산한다.
(계산하는데마다 다르다. 독일은 110만명이라고 이야기하고 유태인들은 700만이 넘었다고 이야기한다)
중립국의 계산으로 6백만명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당시 유태인 대학살을 정확하게 기록한 것이 없기 때문에
그 인원을 추측해야만 한다.

저 유태인 대학살의 피해자는 유태인 뿐이 아니다.
유럽을 떠돌았던 집시들도 유태인들과 함께 학살됐다.


사라의 열쇠는 1942년 7월 16,17일 양일에 파리 근교에서 체포돼
아우슈비츠로 이송돼 살해된 13,152명의 유대인 일제 검거 벨디브의 사건을 다룬 이야기다.

10살의 어린 소녀 사라는 경찰들이 자신들을 찾아왔을 때 4살된 자신의 동생 미쉘을
벽장에 숨겨 놓는다. 아무도 찾을 수 없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 벽장의 열쇠를 자신의 손에 꼭 쥐고 온다.
그 때 사라는 자신들이 폴라드로 이송돼,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살해당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사속에 사라졌던 사라의 이야기를 찾아 낸 것은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줄리안 자먼드다.
그녀는 프랑스에 살고 있는 미국인을 위한 잡지 <센 신스>를 위해 벨디브 일제 검거 사건을 취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사라'라는 소녀를 알게 된다.

'설마.. 내용이 이렇게가진 않겠지? 작가가 준비한 반전이 있을 꺼야!' 라는 독자의 예상을 과감하게 물리치며
누구나 예상가능한 수순으로 진행한다.

초반 10살 밖에 안된 어린 사라의 순수함이 무참히 깨지며 자신이 유태인들이 처한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게 된다.
사라의 부모님은 절망에 빠져들지만, 그녀는 절망을 거부한다. 그녀에겐 구해야할 동생이 있기 때문이다.
수용소를 탈출해, 벽장 속에 있을 동생, 사라 자신 대신 누군가가 구했을 것이 틀림 없는 그 동생을 찾아 파리로 돌아온다.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나는 심드렁해졌다.
미국인 기자는 자신의 발굴한 소녀의 이야기에 눈물 짓는다.
그리고 외친다.
모르고 있어서 미안해. 기억해야 하는데, 절대로 잊지 말아야만 하는데...
미국인 기자는 기억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데..
그걸 기억하기 전에.. 미국 젊은이들이 아프카니스탄에서 소리없이 전사하는 것은 왜 알고 싶지 않을까?
또 미군이 자동화기로 목숨을 빼앗는 아프카니스탄의 젊은이들은??
평화를 유지한다며.. -_-= 말보다는 총부터 먼저 드는게 너희들의 평화 수단이냐??

난 싫다.
전쟁의 당사자국이 아닌 제 3국의 국민이 전쟁에 쓰는게 난 정말이지 싫다.
줄리아는 전형적인 미국인이다.
(프랑스에서 아메리케인이라고 불리는 절대로 프랑스에 동화되지 못한 이방인이다)
그녀는 유태인도 아니고 독일인도 아니며 하물며 벨디브 일제 검거 당시에 침묵으로 묵인했던 프랑스인도 아니다.
그런 그녀가 벨디브 사건을 조사하며 사라를 만나고 그녀를 잊어버린 것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이유를 난 잘 모르겠다.
특히나 이런 식으로 아름다운 글은 솔직히 짜증난다.

역사를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것,
기억해야,절대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런 폭력이, 비극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2차대전에서 숨진 6천만의 생명을 기억해야 하며
홀로코스트처럼 한 민족에게 가해진 폭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홀로코스트를 세게 2차대전을 기억하긴 하지만..
그 비극이 계속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잊는다.
아니, 벨디브 일제 검거 당시 프랑스 시민들처럼.. 침묵하고 묵인한다.
이것이 잊어버려 미안하다는 줄리아의 슬픔이 나에게 전해지지 않는 이유다.

유태인은 2차대전 이후 2천년동안 그 땅을 지킨 아랍인들을 쫓아내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세웠다.
그 땅을 지킨 사람들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몰아 넣고 말이다.
그리고 강력한 돈과 무리를 가지고 팔레스타인에 심심치 않게 폭격을 감행한다.
그 폭격으로 어린아이들이 죽는다.
자신의 친구와 형제들이 이스라엘의 폭탄에 목숨을 잃는 것을 본 아랍 어린아이들은 자라
기꺼이 자살 폭탄을 들고 테러를 감행한다.

우리나라는 65년전 일본 강점기에 무려 700만명의 조선인이 일제에의해 강제 징용당했다.
그 인원중에 50만명이 작업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누군가 우리나라 유력 정치인은 그것을 돈벌기 위한 자발적 징용이라고 한다.

잊어버려서 미안하다고 입에 발린 사과 따위 하지 말자. 입 밖으로 내 뿜고 나면 잊혀지는 그런 사과는 말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원때문에 종교때문에 서로를 죽고 죽인다.
남반구에서는 다국적 기업과 서양인들의 무차별적인 수탈 때문에 남반구의 9억 인구가 기아와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

내가 미안한 이유는 사라의 동생 미쉘처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어간 6백만의 유태인을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폭력과 수탈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그 당시 벨디브의 프랑스인들처럼 모른척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는 언제나 다큐멘터리가 소설보다 더 큰 감동을 준다. 실제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자 사라의 열쇠를 보느니.. 안나 프랭크의 일기를 보는게 훨씬 좋다.   

이거 사라처럼 홀로코스트에서 살아 남은 유태인 가족의 이야기다.  

이 책이 사라의 열쇠보다 100만배쯤 가슴 아프다.  

사라의 열쇠보다 이 책을 추천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였던 유태인이 이스라엘을 건국한 이후에...  

자신들의 가해자처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사람들을 억압하는 이야기다.  

사라의 열쇠보다 이 책 추천..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일제의 강제동원을 다룬 책..   

우리도 잊지 말지어다. 절대로.. 기억할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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