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을 발로 찬 소녀 1 밀레니엄 (뿔) 3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자 시작을 했으니 끝을 봐야지.
밀레니엄의 마지막 소설, 리스베트의 끝, '벌집을 발로 찬 소녀'다. 밀레니엄의 첫 번째 시리즈 '여자를 증오한 남자'에서는 1,2권이 전부인데 반해서 두 번째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와 세 번째 '벌집을 발로 찬 소녀'는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다.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에서 궁금했던 점은 이 책에서 거의 대부분 모두 해결된다. 리스베트도 용맹한 자신의 캐릭터를 찾아가고, 슈퍼 블롬크비스트도 기자로서의 위엄과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준다. (그래도 무능하긴 무능해. 모든 문제를 우리의 리스베트가 다 풀어내지) 모든 캐릭터들의 생사가 결정되고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에서 벌려 놓기만 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 마무리 하고 있다.

모든 문제의 중심인 ‘살라’ 그리고 그를 이용해서 세력을 확장하고 권력을 가지고 싶어했던 사람들의 심판대에 오른다. 냉전시대도 끝났고 살라와 관련된 정보는 더 이상 일급 정보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로 인해서 행해진 공권력 남용을 숨기려는 옛 정보국 ‘섹션’의 사람들과 이를 밝히려는 리스베트와 밀레니엄 연합군(?)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된다.

과연 치열했을까?
치열할래야, 치열한 수 없는 싸움이다. 연합군(?)에겐 리스베트가 있다. 아날로그 세상에서는 ‘섹션’의 첩보 활동이 우세했을 지도 모르지만 냉전시대가 끝난 지금은 ‘디지털’시대다.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휴대폰으로 컴퓨터로 공유되고 있다. 스파이들도 어쩔 수 없이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수 밖에 없고 그들이 컴퓨터에 로그인 하는 순간 승패는 결정된다. 리스베트는 3중, 4중의 방화벽을 뚫고 당신이 가장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을 쉽게 침투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해커에게 컴퓨터만 쥐어진다면 ‘비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을 보면서 통쾌했나? 아니
이 책을 보면서 재미있었나? 아니

이 책을 보면서 또 다시 답답했다.
두 가지 가정을 해 볼까?
아무리 억울했다손 치더라도, 지금은 1990년대와 같은 냉전시대였다면 리스베트는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 때와 같이 정신병원에 갇혀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진실이 그녀의 편이었지만 권력을 ‘살라’의 편이었으니까. 21세기 권력의 모습을 변했고 리스베트는 너무나 쉽게 자신의 진실을, 권리를, 자유를 쟁취한다.

또 하나의 가정. 리스베트는 약자였을까?
우리는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잡는 이야기에 열광한다. 다윗은 우리와 다름없이 작고 연약했으며 그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꾀와 조약돌뿐이었다. 그런 다윗이 골리앗처럼 크고 강하고 권력 있는 자를 무너뜨리는 이야기가 구약시대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는 ‘희망’ 때문이다. 작고 연약해도 영리한 머리와 진실한 용기만 있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아름다운 교훈 때문이다.

그러나 리스베트와 블롬크비스트는 다윗이었을까?

리스베트는 디지털이라는 거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법이란 모든 법에서 사람들에게 허용한 자유, 아무에게도 침해 받지 않고 적법한 절차를 취하지 않고는 엿볼 수도 없는 디지털 속 사생활 곳곳에 침투해서 사람들이 절대 들어내고 싶지 않은 비밀을 파고 든다. 물론 리스베트는 엄격한 윤리관을 가지고 있고, 힘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약하고 힘없는 피해자의 편에 선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긴 하지만, 그녀가 그것을 사용하건 하지 않건 간에 나는 리스베트라는 영웅이 내 컴퓨터를 유영하며 무언가를 찾고 있을 생각을 하면 끔직하다. 이 사건도 애초에 리스베트가 블롬크비스트이 컴퓨터를 해킹해서 헤집고 다니지 않았다면, 동유럽 소녀들의 성매매를 다룬 다그 스베손의 리포트에서 ‘살라’라는 이름을 찾지 않았다면 어쩌면 발생하지도 않았을 사건인지도 모른다.

블롬크비스트는 그의 별명에서 알 수 있든지 언론계의 슈퍼맨이다. 무엇이든 사회의 취약한 점을 발견하면 맹견보다 더 강하게 물고 뜯어 진실을 파헤치고 만다. 생명의 위협과 맞서 싸워 얻은 자산, ‘신뢰’를 가지고 있다. 신뢰감 높은 언론인이 밝히는 ‘진실’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에서 용의자였을 뿐인 ‘리스베트’가 받아야 할 언론재판을 보며 언론이 한 인간을 얼마나 깊은 수렁을 몰아 넣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진실이었던, 아니었던 간에 말이다) 비밀을 파헤친 신뢰감 높은 기자의 힘이란 것은 대법원의 판결만큼 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냉전시대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섹션’의 사람들을 보며 그들은 힘없이 늙고 추레해진 골리앗이고 언론과 디지털이라는 신세대의 무기를 장착한 리스베트와 블롬크비스트는 자동화기로 무장한 다윗으로 보였다. 왜냐면 나는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것을 해결한 언론의 힘도 디지털의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복수는 평범한 자에게 있지 않다. 모드 슈퍼맨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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