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나는 내가 바보가 된 줄 알았다.
스스로 독해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책을 읽고 작가의 이야기하고자 했던 주제를 집어내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책의 끝에서 나에게 주어진 질문은 ‘대체 뭐냐, 이거? 대체 뭔 이야기야?’ 라는 어리둥절함 뿐이었다.

‘곤’은 아주 어렸을 때 죽을 고비를 넘긴다. 생활고를 못이긴 아버지가 곤과 함께 ‘이래호’에 뛰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고비를 상처로 이겨낸다. 귀 뒤, 목덜미에 깊게 패인 것과 같은 상처, 그러나 물이 닿으면 분홍색 속살을 들어내고 물 속에 녹아 있는 얼마 되지 않은 산소를 빨아드리며 살아 갈 수 있는 힘을 얻는 ‘아가미’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아가미를 준 물은 ‘곤’에게 무시무시한 공간이다. 태초의 가족을 잃게 한 공간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에게 새로운 가족인 ‘노인’과 ‘강하’의 목숨을 앗아간 공간이다. 그렇지만 그 무섭고 끔직한 공간에 ‘곤’은 뛰어든다. 상처에 굴하지 않고 상처 준 훈장과 같은 아가미를 통해서, 거친 물살을 힘차게 가르며 삶을 계속해 나간다.

자 이건 어젯밤에 이 책을 다 읽고 정말 모르겠는 소설을 밤새 부여잡고 스스로 생각해 낸 짜 맞추기에 불과하다. ‘상처’가 ‘아가미’가 되는 소설은 많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람’의 상처는 1억루피라는 ‘아가미’가 됐다. ‘바람을 만드는 소년’의 ‘브랜트’의 상처는 다른 이에게 힘과 용기라는 아가미를 선물한다. 그럼 ‘곤’의 아가미는??

곤의 아가미는 물론 휴대폰을 잡기 위해서 한강에 빠진 ‘해류’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다. 그렇지만 그의 아가미는 그를 처음으로 아름답다고 칭해준 ‘이녕’의 목숨을 빼앗고 노인과 강하의 삶 속에서 쫓겨난다. 또 우연의 중첩이긴 하지만, 결국 곤이 새로운 삶을 선물한 ‘해류’의 방문으로 인해 강화와 노인은 목숨을 잃는다. 결군 곤의 아가미는 스스로 인식하는지 모르지만, 다른 이에겐 불행이자 저주다.

세상의 물은 ‘이래호’ 뿐이었던 곤은 ‘강하(江河)’ 때문에 강으로 나서고, 또 해류(海流)와의 만남을 통해서 바다로 나선다. 곤이 자신의 아가미를 어떻게 받아드리는 지 잘 모르겠다. 그것을 축복으로 생각하는지 저주로 생각하는지... 이런 생각도 독자의 사치인가? 이런 생각도 없이 주어진 아가미를 그대로 받아드리며 만나고 싶은 가족을 찾아서 바다를 힘차게 유영하고 있을 뿐인가?

이 책을 읽은(사실은 작가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다.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독해력이 부족해서인지 이 질문을 하고 나면 머릿속이 멍해지고 하얗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곤이라면.. 당신에게도 아가미가 생긴다면... 당신은 어떤 바다를 유영하고 싶은가?’ 

 

 아름다운 문장으로 읽는 2시간 동안 책에 매여서 쉽게 읽을수 있지만, 읽고 나면 대체 이 책이 뭐야,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뭐야 ?라는 내가 모자라서 못찾는 거야, 작가가 모자라서 못찾는 거야 라는 비아냥 거리는 질문이 하루 종일 떠나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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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1-05-05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미...가 퇴화된 건지, 그런 흔적 기관으로서의 아가미에게 다리는 무엇인지..
동화적인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좀 도식적인 소설이었죠.
글을 아주 잘 짚어낸 리뷰같네요. ^^

KNOCKOUT 2011-05-06 10:08   좋아요 0 | URL
저는 전작 '위저드 베이커리'가 너무 좋아서 한달음에 읽었는데 전작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샘님도 그렇죠?? ㅋㅋ

글샘 2011-05-08 12:44   좋아요 0 | URL
네, 딱 그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