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7-8년전 가장 많이 산 소설 중의 하나가 '파이이야기’이다.
내 또래의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좋았고, 또 내 조카들이나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들에게도 무난히 한번 읽어보세요 라고 권할 수 있는 책이었다. 세대와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읽고 느끼고 그리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책,그런 책은 그리 흔한 게 아니다. 그리고 이제 고작 30대의 젊은 작가가 그런 글을 써내다니! 그것도 백인남성 작가가! 그가 근 10년 만에 내놓은 책이기에 그것도 '파이 이야기'처럼 우화집이라니! 정말 궁금한 마음에 한달음에 읽어갔다.

얀 마텔의 소설은 1인칭 시점을 사용해서 자기 고백적인 성격을 띤다. 그의 모든 소설이 그렇다. 이 소설도 어느 순간까지 헨리가 겪은 이야기를 우리는 얀 마텔이 정말로 겪은 일이겠구나, 젊은 작가의 빠른 성공 이후 얀 마텔이 겪어야 했을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찬찬히 서술하고(정말 잘난 척이 많긴 하다) 독자는 조금 더 헨리를 혹은 얀 마텔을 이해하여, 독자와 작가의 사이는 급속히 아주 쉽고 빠르게 좁혀진다.

헨리가 혹은 얀 마텔이 쓰고 싶은 다음 책은 홀로코스트다.
수만가지로 생산된 홀로코스트에 대한 문화적 양식은 '다큐멘터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헨리 혹은 얀 마텔이 쓰고 싶은 것은 예술로 승화된 홀로코스트다. 그래서 희곡과 평론이 조화된 플립북을 만들고 싶어하던 헨리가 나온다. 그러나 편집자들한테 호되게 비판을 받은 헨리는 미국으로 건너와 작가의 삶에서 떨어져 일상을 즐긴다. 그러다 자신의 손에 떨어진 희곡 하나를 만나고 그 때문에 인생이 조금 꼬이게 된다.

자... 우리는 우연히 작가의 손에 떨어진 그 희곡이 애초에 작가가 쓰고 싶어하던 홀로코스트에 관련된 희곡임을 알고 있지만, 대체 이 희곡과 홀로코스트와의 연관을 잘 모르겠다. 마지막 페이지를 몇 장 남겨두고 알게 되지만, 그 이전까지 우리는 조금 지루하고 심심한 헨리의 일상에 동참해야 한다. 그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금관 악기를 배우고 개와 고양이를 잃고 아버지가 되는 순간까지 말이다. 그 반전이 소름 끼치고 얼굴이 화끈거리게 만들긴 하지만, 이 지루한 소설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읽게 된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라는 희곡을 통해서 자신이 시도한, 예술성이 가미된 홀로코스트가 얼마나 기만적인지 깨닫는다. 홀로코스트라는 거대한 범죄 혹은 비극을 어떤 예술로도 승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말하면 이 소설 자체가 기만이다.
한편의 희곡과 그것을 일게 된 작가의 평론을 통해서 얻어낼 결론은 자신의 일기장에나 기록될 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재기 넘치는 시도를 통해서 재 해설될 수 없을 만큼 (작가가 고백했듯이 말이다) 홀로코스트는 인간이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가장 끔직한 범죄였고, 역사에 기록돼 다시는 행해져서는 안될 惡 그 자체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소설이 아니라도 해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는 거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작가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전쟁에 대해서 냉소적이다. 특히나 전쟁이라는 것을 평생 아니 자신의 모국 역사상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2차대전마저도 가뿐히(?) 피해간 캐나다 인이 쓰는 홀로코스트는 위에서 말한 식으로 기만 이상이 될 수 없다. 만약 홀로코스트의 참상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안네프랑크의 일기를 다시 읽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이 소설에서 나온 ‘쥐’를 읽는 것도 괜찮겠다. 젊은 작가의 기만적 재기 이상을 보고 싶은 독자라면 절대 잃지 말아야 할 홀로코스트를 다룬 책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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