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세계
테리 프래쳇 지음, 송경아 옮김, 조니 두들 그림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12.27 AM 1:38
이 책을 다 읽고 난…
두 눈에 고인 눈물을 참으며 이 책을 꼭 안아버렸다.
그 책이 다프네와 마우인 듯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기특했던 두 소년소녀를 안 듯이 이 책을 꼭……..안아버렸다.

태리 플래쳇의 이전 책들 (디스크 월드, 멋진 징조들)을 상상하고 이 책을 골랐다면..
비틀고 조잘대며 조금은 산만하지만 그 안에 깃든 블랙 유머를 원했다면…
이 책은 조금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이 책의 번역가 송경아씨가 그랬듯 이 책은 <거장이 보여주는 ‘소설의 힘’이라 바로 이런 것>이라는 걸, 극명하게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디펜턴트’지에서 <태리 프래쳇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손 꼽을 만큼 뛰어난 소설이다.

한 소년이 성인식을 위해서.. 남자들의 섬에 들어갔고..
그 사이 부족에게 파도가 덮쳤다. 소년을 보호했던 모든 테투리리는 거대한 파도 앞에 모두 사라졌다. 가족들의 장례와 소년의 생존은 소년의 손에 달려 있다.

한 소녀는… 아버지를 찾아 가는 길에 파도가 덮쳤다. 난파한 배와 함께 그녀를 증명할 모든 문명은 사라졌다. 이제 그녀의 생존과 가치의 증명은 소년의 손에 달려 있다.

누군가 이 책이 ‘파이 이야기’와 닮았다고 하는데…
나는 왠지 ‘르권’의 소설이 생각났다.

원주민 소녀와… 우주인 소년의 이야기로 치환하면.. 왠지 그녀의 유배행성과 가장 닮아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책은 르권처럼 사색적이지 않다. 좀더 직설적이고 단호하며 더 사랑스럽다.

이 책의 초반부터 난 소년 <마우>와 사랑에 빠졌다.
p.143
이 곳에 그들이 있다. 소리치고 냄새를 피우고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마지막 사람들. 나는 그들이 필요해. 그들이 없으면 나는 그냥 회색 바닷가의 그림일 뿐이고,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길을 잃은 소년일 뿐이야. 그러나 그들은 모두 나를 알아. 나는 그들에게 중요하고 그것이 나야.


아.. 막 성인식을 끝낸 소년의 어깨에 무거운 짐이 지워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그 짐을 기꺼이 진다. 절망 끝에 내몰린 소년에게 유일한 구원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영국 귀족 여성인 다프네와 남태평양의 원주민 소년은 서로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피난 온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 그리고 서로의 슬픔을 나누고 껴안아줄 공간을 마련해주고… 섬을 조금씩 재건해 나간다. 위험과 공포를 극복하고, 의문의 답을 찾아가며, 파괴된 세계의 신념이 아닌 새로운 세상의 다른 믿음을 찾아나가며.. 올곧은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
정말정말 아름다운 소설이다.
꼭… 봐야할.. 올 겨울이 가기 전에 꼭 봐야 할. 소설이다.


p. 267
너는 할아버지들이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하니? 모든 남자에게는 엄마가 있고 모든 엄마들에게도 엄마가 있어. 우리는 할아버지들을 낳았고 젖을 배불리 먹였고, 엉덩이를 닦아주고 입맞춤으로 눈물을 날려 보냈어. 또 먹는 법을 가르쳤고, 어떤 음식이 안전한지 알려주어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했어. <중략> 할아버지들은 다른 여자들의 아들들을 죽이는 방법들을 그 아이들에게 가르쳤어. 그 일을 제일 잘 한 사람들은 모래 속으로 말려져 동굴로 실려갔어
.

-순간 태리 프래쳇이 여성인줄 알았다. 여성성에 대해서 이런 경배가 남성 작가들 틈에서 나오기는 좀 힘들다.

p.446
아무도 웃지 않았다. 심지어 아버지를 매우 사랑하는 다프네도 엷은 웃음밖에 지울 수 없었다. 그다음 다프네의 아버지는 아무도 해서는 안되는 짓, 심지어 왕이라도 하면 안되는 짓을 했다. 왕은 농담을 설명하려고 했다.

-순간 육성으로 품었다. 역시.. 테리는 테리. 사색의 깊이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소설 한 페이지 한페이지 거대한 포스로 뿜어내고 있지만, 그래도 짓궃긴 하다.

p. 471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들이 여기서 대대로 가르쳤어.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지. 유령은 있나요? 남자는 어떤 건가요?
<중략>
노인은 미소를 짓고, 믿었다.

-날 울린… 마지막 한 페이지다.


책을 다 읽고 역자의 역자 후기를 보니..
태리 프래쳇 아저씨가 알츠 하이머로 투병중에 있다고 한다.
끔직한 고통이.. 그를 더 훌륭한 작가로 만든 것 같아서.. 좀 가슴이 싸~~~ 하다.
그 전에도 충분히 훌륭한 작가였는데 말이다.
노 작가의 병이 빨리 호전 되길 바란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작가들.. 특히나 80이 넘은 르권 아줌마도 부디부디 건강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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