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역사 뫼비우스 서재
케이트 앳킨슨 지음, 임정희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김전일처럼 전지전능한 탐정이 나와서
'모든 해답을 풀었어. 범인은 바로 당신이야!!!'라고 단정지어 이야기 해야 직성이 풀리는 독자라면 이 살인의 역사는 지루하고 모호하기만 소설이 될 거다.

'살인의 역사'는 어느정도 사건 안에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독자를 머리를 떄리는 반전은 없다.
한 마을에서 살해되거나 사라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집 마당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던 아멜리아는 3살날 어린 동생을 잊어버렸다.
그녀의 모든 흔적은 사라져, 아무데서도 동생을 찾을 수 없었고,
3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멜리아의 가족들은 자신을 자책하고 서로를 의심하며 무참히 쪼개져 버린다.

10년전, 대학 입학을 앞두고 아버지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로라는
아버지의 부재중에 침입한 괴한에게 목숨을 뺴앗긴다.
아버지 테오의 회의실을 그녀의 피가 흩뿌려져, 테오는 그 범인을 찾기 위해 10년을 매달린다.
절대로 19살이 될 수 없는 딸 로라를 기리며 그는 10년이란 세월을 살아가지 못하고 죽어간다.

마지막으로 산후 우을증에 시달리던 미쉘은 어느날 남편을 도끼로 살해한다.
딸을 울렸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시간이 약이다' 라는 우리 옛말이 있다.
시간 속에 모든 상처와 슬픔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일 게다.
그러나...  과연 시간이 약일까?

'살인의 역사'에서는 단지 시간은 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늘 '그날'을 살고 있다.
어린 동생이 사라진 그 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랑스런 딸이 살해된 그 날을 잊지 못하고...
남편이 도끼로 죽어간 그 때를 지워낼 수가 없다.

언제나 제자리에서 머물러, 세월이 흘러가면 갈 수록 깊어지는 상처에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고 늘 혼자, 머릿 속에서 그 순간을 재현해 나갈 수 밖에 없는 피해자 가족의 오늘을 담담한 분위기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보는 내내 우울하고 침울해 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심지어 자신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눈 앞에서 딸이 살해되는 것과 딸이 실종 되는 것..
그 중에 더 불행한 건 뭘까... 라고.. ㅠㅠ 정말 주인공 잭슨처럼 고르고 싶지 않은 질문이다)


물론 이 책도 탐정이 등장하고 사건이 벌어졌으므로 사건의 전말도 알게 되고 범인도 밝혀진다. 범인이 밝혀진 들, 죽은 그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그 오랜 세월을 고통과 의심 속에서 살아온 그들에게 치유책이 되지 못한다.

그들에게 과거의 고통으로 벗어나게 한 것은 오늘의 만남이다.
아멜리아에게 온 '진과 고양이들', 캐롤라인에게 잉태된 제2의 탄야,
그리고 로아를 잊지 못하는 테오를 찾아온 '릴리 로즈'
상처 입은 자들이 서로에게 곁을 내어주며 서로에게 의지가 된다.

세월도 약이 될 수 없는 그 모진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보살 필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임을 살인의 역사는 조용히 이야기 하는 듯 한다.
지루하고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런 수고의 보답이 되는 먹먹하지만 따뜻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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