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나라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다 읽은 지 며칠이 지났는데
대체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해서 며칠을 보내고...
남들은 어떻게 썼나... 눈치를 살피다가
에라 모르면 모르는데로 쓰자고 마음을 먹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이렇게 나왔다.

"유명한 영화배우인 아버지의 그늘 속에 자란 토머스는
영어교사로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위대한 동화작가 마셜 프랜스의
전기를 쓰기로 마음먹고,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색스니와 함께 마셜 프랜스가 살던 마을로 찾아간다.
위대한 작가의 딸을 만난 두 사람은
흥분과 기대감에 부풀어 마을에 머물지만,
하나둘씩 기묘하고 이상한 일들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

이전에 읽어보지 못한 작가의 책을 읽게 되면 이 짧은 책소개 글은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친다.
책 쓰기와 인생에 관한 이야기로 나에게 가장 익숙한 작가는 폴오스터였고 기괴한 다른 이의 전기를 쓰면서 자신의 인생을 찾은 <환상의 책>이 떠올랐다.
그래 고백하자. 나는 이 책 웃음의 나라를 <환상의 책>의 경쾌하고 유쾌한 버전 (오죽했으면 책 제목도 <웃음의 나라>겠는가?)으로 생각하고 독서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나의 선입관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면서 작가는 날카롭게 상징적인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작가 조너선 캐롤은 폴 오스터만큼 영리한 작가고 언제나 일상에서 공포를 끔직어 내는 스티븐 킹처럼 탁월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영민한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은 아주 익숙하면서도 괴기한 현실로 독자를 이끌어 간다.

어렸을 때  창조자가 되는 상상을 한적이 있다.
내가 원하는대로 사람들이 움직이고..
내가 바라는대로 세상이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던 유년시절..
(나만 그런 건 아닌 듯 싶다. 심시티나, 타이쿤과 같은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이 오랜동안 사랑을 받는 거 보면 말이다. ^^;;;)   그 막연하고 유치한 소원들은 철이 들면 사라지고(게임이나 하면서 만족하는 게지. ㅠㅠ)
희망과 꿈 대신 포기와 불평이 많은 어른이 돼버린다.
마치 아버지 그늘 속에 제대로 된 유년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채 어른이 돼
현실에서 제대로 된 희망을 찾지 못하는 우리의 주인공 토머스처럼 말이다.

그러나 모든 서사 문학이 그렇듯...
이 불만 스런 현실에서 벗어나 토마스는 자신이 막연하게 바랬던
프랜스의 전기를 쓰기로 결심하고 프랜스가 살던 게일런에 머물면서
그는 그가 꿈꾸던 인생을 살게 되지만... 게일런의 비밀은 토마스 뿐만 아니라
읽는 독자까지 섬뜩하게 만들면서 처음 가졌던 <환상의 책>과 같은 독자의 기대는 스티븐 킹의 <샤이닝>과 같은 오묘한 공포를 선물한다.

그런데 이 책을 두번이나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궁금함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 한계가 없는 무한한 힘, 창조자와 같은 힘을 갖게 된 두 작가는
왜 아무도 행복해 하지 않는 거지??
자신의 인생보다 게일런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 골머리 썩었던 <프랜스>나
편집증적인 증세를 앓고 있는 우리의 <토마스>나 말이다.

누구도 꿈꾸지 못한 힘을 갖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나서기보다 칩거하고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둔 채
조용히 살고 있는 그 창조자들을 보면서 괜히 씁쓸해 졌다. 나한테 이런 힘이 있다면...
해야할, 하고 싶은 일이 산더미처럼 있거만..
<힘>을 가진 모든 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부담만 느끼는지 모르겠다.

모자를 때만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는 걸까?
행복하기 위해선 완벽할 필요도, 위대한 힘을 가질 이유도 없는 걸까?
창조자들의 삶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아 보이는 것에 왜 이리 악의적이며 자조적인 만족감이 새어나는 지.. ㅠ.ㅠ

"힘들고 지칠때야 말로 좋아하는 책이 최고의 위안처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소설"
이라는 닐 게이먼의 추천사처럼 힘들고 지칠 때 읽고 싶은 조너선 캐롤의 <웃음의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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