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 a True Story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1
페르디난 트 폰쉬라크 지음, 김희상 옮김 / 갤리온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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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기고나서 쓴 글의 제목 "멈춰라, 너 참 아름답구나!" 괴테가 한 말이라는데, 옮긴이 김희상의 이 말이 참 묵직하게 가슴에 놓이는 책이다.  

지은이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는 실제 형법전문 변호사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고 한다. 모두 11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만나게 된 건 우연히 며칠전 보통은 차를 타고 다니던 거리를 차도 가져오지 않고, 택시도 타고 싶지 않아서 12월에 걸맞는 찬바람을 맞으며 걸었던 때였다. 걷는 중간에 서점이 있어서 그냥 잠시 추위도 피할겸 들어갔다가 신간코너에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제목이 일단 끌렸고 잠시 들어서 살펴본 책속의 문장이 꽤나 신선했다. 짧고 군더더기 없는데다 소재도 흥미롭고..... 12월 매일매일이 더더 여유없이 지나는 시간에 코를 박고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나를 잠시라도 해방시켜줄 것같은 강렬한 예감에 대부분은 할인이 확실한 인터넷을 이용하는데 잠시의 망설임 끝에 이책을 포함 총 3권을 그냥 질렀다. 커피한잔 안마시면 까짓거 할인율정도의 비용은 아낄수 있다는 얄팍한 위안을 하며 가방안에 묵진한 기대감으로 책3권을 찔러넣고 또 시간이 안나서 며칠을 그냥 가방속에 방치하다 12월의 일요일 어느 하루 오후를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로 채웠다.  

스토리 하나하나 짧지만 녹녹치 않은 인생들의 무게가 그려지고 그것이 '범죄'라는 극단적 재현아래 드러난다. "우리는 노를 잡고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싸웠죠. 하지만, 언제나 쓸려 내려갈 뿐이었어요. 저 과거로." 동생을 욕조에 익사시킨 테레사가 줄친 위대한 캐츠비의 이 문장처럼 이 책에는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상황들에 처한 사람/삶의 진실이 그려지기도 하고, 감히 통쾌(?)하다고 생각되어지는 폭력이 등장하기도 하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으로서 지은이 쉬라크가 생각하는 형법에 대한 재판에 대한 가치가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기도 한다.  

마지막 이야기 '에디오피아의 남자'는 이 책의 모든 이야기들을 아우르는 듯한 내용이 담겨있다. 여기서 난 예상치 못하게 눈물을 쭈르륵 훌리고 있었다. 책에서 보여지는 삶이 기괴하고 인생이 하도 초라하고, 인간이 너무 남루해서 견디기 힘든 정점에 가 있었는데 이디오피아남자에 이르러 살짝 그 긴장이 맥없이 풀려버렸다. 그래도 사랑하고 그래도 행복을 바라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무작정 마약같은 일시적 방편으로서의 허무맹랑한 위로가 아니라 사람/삶의 진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할지를 아주 슬쩍 이야기속에 풀어놓는 지은이 쉬라크에게 그저 미소짓게 만만드는 '에디오피아의 남자'. 끔찍한 삶의 진실과 동화같은 삶의 희망이 너무 쉽게 포개어져서 이건 꾸며낸 이야기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그래서 더 진짜 리얼스토리라고 믿고 싶어지는....법이라는 비인격적 실체에게도 쉬라크는 인생을 보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죄가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실적 증거가 있으면 되지만 판결이란 각자의 인생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는 것, 즉 범죄를 저지른 인간이 어떠한 맥락에서 살아왔으며 그 맥락이 그를 어떻게 범죄로 연결시킨 것인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12월 많이 울적해지는 시간, 이 책은 잠시나마 위안받고자 한 내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  땡큐 '쉬라크', 땡큐 이 책을 만나게 한 우연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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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데이비드 뱃스톤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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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For Sale,

오로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소유물로 간주되는 세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할 뿐이다.

;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데이비드 뱃스톤

세상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는 것 같다. 나도 '인간'이라고 소리소리쳐야 하는 이들과 '인간'임을 굳이 밝힐 이유가 없는 이들. 자본과 권력을 가진 이들은 자신들을 '주인님'으로 신격화되는 자리에 있어서 굳이 인간일 이유가 없다. 지나친 '권리'의 행사로 늘 피로한 이들과 그들에 의해 여차하면 '노예'로 취급당하며 늘 피해의식을 지닐 수밖에 없는 이들. 이런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고, 이런 이분법으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기 위해 역사는 이제껏 피를 흘리고 있다.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는 그 피흘리는 역사의 현재적 상황을 보여준다. 인류모두가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권리라는 '인권'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하는 2012년에 벌어지고 있는 일, 보편적 권리인 '인권'은 결코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 얻어지지 않는다는 걸 이책은 정말 박진감(?)있게 그린다.

 

1단원 '세상은 혼자인 아이에게 결코 관대하지 않다'와 4단원'꺽인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니다'는 우리에겐 익숙한 현실이다. 스스로 선택했다고 여겨지는 여성들의 구조화된 성적 인신매매의 현장에 대한 이야기, 그곳에 있는 이들은 "꾸준한 물갈이 때문에 여자들은 좀처럼 서로 신뢰하고 연대의식을 느끼는 관계를 맺지 못했다. 그들은 같은 악몽을 꾸었지만 각자 외로이 고통을 견뎠다."(53) "학대는 신체적 구타를 넘어 전 범위에 걸쳐 있다. 포주의 목적은 여성들의 감정과 정신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다."(86)

이러한 조건 속에서 포주들은 사람배달을 아웃소싱하면 전세계에 걸쳐 네트워킹을 형성해놓았다. 나쁜자본의 관례대로 움직이는 이들의 방식은 상대적 빈곤과 이를 방관하는 사회조건에서 끔찍한 속도와 위력으로 번성한다. "지하경제는 성 노예를 중심으로 구축된다. 착취를 통해 지하 경제를 살찌우는 것은 뮌헨이든 프놈펜이든 리마든 마찬가지다."(271) 여기에 덧붙여야겠지, 서울도, 대구도, 한국의 모든 곳도 마찬가지다.

3단원 '고통의 과거를 태우는 꽃들'은 아이들에게 가해진 폭력적 상황이 어떻게 이들의 영혼을 잠식하는지, 가해자가 되도록 강요된 아이들의 비극이 가슴을 처연하게 한다. 그 안에서 "여성들은 가난과 사회적 고립이라는 두 악마와 외롭게 싸우느니 이미 익숙한 악마와 함께 사는 편을 택"한다는 것, 우간다에서 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사회 가정폭력상황에서도 이미 익숙하게 보아오던 장면이다.

 

6단원 '지금 이름 모를 꽃들이 죽어가고 있다'에서 인신매매에 대응하는 폴라리스의 다섯가지 전략이 나온다. 첫째,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자기 지역의 인신매매 시장 규모를 축소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둘째, 인신매매 피해자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셋째, 누가 범죄자인지를 제대로 밝혀야 한다. 넷째, 법률의 제정과 사법기관중 법원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지막 다섯째는 모든 소비재의 공급 사슬을 추적하여 생산 경로를 밝히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알고 있고, 하려고 한다. 하지만 "포주들은 이제 기세가 오를대로 올랐습니다. 경찰도 사법제도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감히 자기들에게 손가락 하나 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무법자들이 활개 치고 다니는 것은 다 우리가 자초한 일입니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지 못한 우리 미국인들의 잘못입니다."(316)라는 자백처럼 우리 사회가 자초한 일을 풀어나가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반인신매매 단체들의 활동이 정말 멋지게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결코 그일이 멋지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기에 그들이, 우리가 있어야만 하기에, 그건 바로 우리자신을 지키는 일이기에 할 뿐이고, 할 수 밖에 없는 일인데 그래서 멋지게 보인다는 것, 참 아이러니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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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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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지옥은 탈출하는게 아니라 허물어버리는거야, 아니 지워버리는거야!

- 우석훈의 <88만원세대>를 읽는다

88만원세대에게 건네는 그의 말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만의 바리케이드와 그들이 한 발이라도 자신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필요한 짱돌이지, 토플이나 GRE점수는 결코 아니"라는 것. 지금 우리에게 경제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론도 형식으로 끊임없이 세뇌하듯이 울려 퍼지는 스산한 바람소리 같은 마왕의 목소리를 대응하기 위해 개인은 자신의 소비를 절제하는 더 생태적 인간이 되어있어야 할 것이고, 시스템은 낭비를 줄이고 경제적 약자를 더 고려하는 방식으로 변해야 할 것이고, 이미 많은 것들을 쥐고 있는 기성세대가 아직 그렇지 않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 더 많은 것들을 양보하는 형태로 바뀌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우석훈의 당부를 듣는다.

박권일의 에필로그에 있는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어찌나 와 닿는지. 희망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고문의 한단계라는 것. 88만원세대에서 말하는 현제 경제상황과 사회환경에 대한 해석은 너무 지당해서 오히려 할 말이 없다. 자본에 포박된 삶을 태어나면서, 아닌 모태소비라 해도 좋을 지경인 체로 태어나 무차별적 마케팅과 조작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세대, 독립적 동거와 섹스는 생각도 못하고 1318을 세대착취, 인질경제 속에서 보내고 20대가 되어 맞이하는 세계는 승자독식게임에 의해 움직이는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평균적으로 전세는 물론 결혼도 하기 어려운 세대가 된다. 성형수술과 영어연수가 세대적 평균임금을 오려주지도 않는데 '자신'이 무언가가 부족해서라는 강박으로 끝없이 스펙을 쌓고 있는(요는 이것도 자본에 포박당해 쥐어짜지는 현상이라는 것이지)세대에 '희망'은 어떤 느낌의 고문이 되는걸까.

유럽과 그나마 우리보다 낫다는 일본을 비교하면서 오히려 무력감은 더해진다. 68세대이후 사회민주주의가 심화되었는데 우리386세대 이후 왜 학력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학벌간 차별은 이리도 심화되었는데 그러면서 학비는 세계최고수준이 되어갔다. 학문수준은 그와 절대 비례하지 않는데도.

"젊은 여성에게 대형할인매장에서 오가는 차를 향해 인사를 시키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일본과 한국 뿐이다...불행을 비교하는 것처럼 비참한 일도 없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극단적인 승자독식 체제로 흘러가면서 승자와 패자만 나뉘는 것이 아니라 패자들 사이에서도 또다시 변종 승자독식 게임이 벌어지게 된다."(197) 그의 해석중 나에게 가장 강렬했던 말이다.

베틀로얄이라는 일본영화를 아는지. 이왕 잡아먹힐거 조금이라도 늦게 잡아먹히긴 위한 개미지옥게임. "공부안하면 죽인다"와 "돈 가져오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는 협박속에 살고있는 우리는 모두 이 개미지옥게임에 떨어진 것과 같다는 것. 이 개미지옥을 인정하고 싶지않다. 그런데 우리는 심리적 개미지옥안에 들어와있다. 그걸 우리 스스로 자꾸 인정하고 따라가면서.

방법은 있다. 있다고 말한다. '마피아 경제'로 불릴 정도로 깡패 집단의 권력이 높다는 우리나라, 지금 이 세대에게도 방법은 있다고 우석훈은 말한다. 첫문단에서 말했던 그 '당부'에서 시작해보자. 내 마음속 지옥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뿐이니 말이다. 에효...힘겹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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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를 주문하는 방법
츠지야 켄지 지음, 송재영 옮김 / 토담미디어(빵봉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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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라는 처방이 매우 갈급할 때가 있다.
노력해도 '픽'소리내서 웃을 수 없는 순간이
아주 간혹 찾아오면 외부에서라도 처방을 받고 싶어진다.
아무리 심각하고 힘들 때라도 가볍게 한번 입꼬리 올리고 웃을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나도, 주변의 누군가도 회피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그 순간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그 순간은 '성장'의 과정이 된다고 나는 믿는다.  

나에 대해, 나의 상황에 대해 '픽'소리내서 웃을 수 있는 힘을 찾기위해 

나를 피식 입꼬리 올리게 하는 내용을 담은 책을 읽는다.  

그런데 막상 웃음을 주는 구절이라고 말하려니 부담스럽다.

왜냐 눈물의 코드보다 사람마다 더 제각각인게 웃음의 코드이니까.
아마도 '어찌 저런 말들에 웃을수 있지'하는 이들이 사뭇 많을듯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하련다, '웃음의 코드'가 다르다면 '타인의 취향'으로 생각해주길 바라며.

 

<홍차를 주문하는 방법> 츠지야 켄지/토담미디어/2002

츠지야켄지는 철학과교수이다. 그의 글들은 속물적이고 무책임한 말들로 난무하다. 그런데 그래서 계속 낄낄거리게 된다. 자신의 치졸함과 나약함을 드러내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속보이는 변명과 뻔뻔한 주장들이 나를 위로해주는 느낌이다. 나 자신을 까발리고 속시원히 대놓고 비웃게 만드는 힘이 그의 웃음의 코드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를 실신하도록 웃게 만들었던 이야기는
“나는 아침형인간이다, 아침에 가장 생산적인 일을 하니까.
그 생산적인 일은 무언가, ‘잠’을 자는 것이다.“

이만큼 실소를 금할 수 없게 만드는 합리적 변명(^^)이 있을까. 그래 모든게 생각하기 나름이라니까....ㅋㅋ

또다른 이야기는
“늙은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을 보며 너희도 곧 늙겠지라고 생각하며 참고
젊은 사람들은 늙은 사람들을 보며 너희도 곧 죽겠지라고 생각하며 참는다“는 것,

와우와우와우~~ 삶을 직면시키는 촌철살인의 댓거리가 아닌가!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들.....

186쪽.

Q : 고독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A : 고독은 스토커나, 빚 받아 주러 다니는 사람이나 살인마와 함께 사는 것보다는 휠씬 바람직한 상태입니다. 그래도 고독이 싫다면 반성해보십시오. 당신은 자기만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런 상대라면 싫다는 등 자기자신부터 사랑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자기 이외의 것을 사랑하시오. 개라도 바퀴벌레라도 사랑하면 친구가 되어 줍니다. 자주 '혼자 잠드는 외로움'이라고 말합니다만 이불 속에는 진드기가 몇만 마리나 있고, 몸 안에도 몇만 마리 이상의 세균이 살고 있습니다. 당신은 결코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177쪽

어린이는 매일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이거 해라' '이런 인간이 되어라'는 말을 듣고 있다.(나는 지금까지도 듣고 있다.) 그 내용도 '게임을 하지마라' '손수건을 잊어버리지마라' '거짓말을 하지마라' 등 어른이라도 이룰 수 없는 목표뿐인 것이다........(내가 불량스러워지지 않은 것은 주변에 훌륭한 인간이 없는 덕분이다.)

180쪽

이것은 기묘한 일이 아닐까. 3천엔 내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3천엔 받을 수 있다면 꼭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98쪽

나는 책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찾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10년 정도 전부터 미정리의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209쪽 (계획이 무산되고 만 이유)

나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적어도 그것을 기분좋게 인정할 겸허함이 있다. 그래서 매년 여름방학이 되면 무뎌진 신체를 연마함과 동시에 느슨해진 정신을 바로잡으려고 결심하고 있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이 되면 언제나 그렇듯 신체를 연마하거나 느슨해진 정신을 바로잡으려면 강철같은 정신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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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2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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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을 놓고 응시하던 절망의 시간 ; 기억하다

2001년 초판, 2009년 6쇄까지 펴냈다니 지속적으로 팔리고 있군요. 출판사는 저자를 제대로 잡았군요. 아마도 인세가 아닌 일괄 계약으로 책을 냈을테니까....ㅋㅋㅋ(이런데 더 꼿히는 걸 보면 참 하잖은 경제적 동물로 전락한 나의 시니컬함이 불쌍합니다.)

홍기빈님은 악필이었습니다^^, 아니 친근한 필체였습니다. 강의를 듣고 줄서서 싸인 받은 1인이었거든요, 제가. 책 맨앞에 있는 저자의 싸인을 보며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바로 저자의 강의를 들어서인지 내가 책에서 본 것과 강의에서 들은 것이 거의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강의는 참으로 좋았습니다. 인간적인 고민과 성찰의 지점이 팍팍 느껴져서 좋았고 ‘경제’에 사로잡히지 않는 그의 ‘경제’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강의평가가 아니므로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라는 책으로 돌아가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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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내게 크게 남았던 이미지는 ‘로빈슨 크루소’에 대응하는 ‘아리스토텔리스’라는 존재이다. 전자가 “피조물을 굶겨죽임으로써 스스로의 섭리를 관철시키는 냉혹한 신”(137)인 자연의 희소성과 투쟁하는 ‘경제’의 이미지라면 후자는 “인간의 활동에서 목적의 추구는 무한하지만 수단의 양은 그 목적에 의해 제한된다는 아리스토텔리스의 지혜”(97)를 구현하는 사회적 ’경제‘의 이미지이다.

홍기빈은 경제의 개념정의에서 경제를 과학으로 만든 자본주의 사회에 발을 걸며 시작한다. 경제를 “희소성의 상황 아래에서의 합리적 선택”이라고 정의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실제로 희소한 것은 권력이지 재화 그 자체가 아니며 단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돈을 벌어야만 미래의 가능성이라는 의미의 사회적 권력을 얻을 수 있도록 짜여져 있을 뿐이라고 답한다. 때문에 희소한 것은 물질적 재화가 아니라 권력이나 서열이다. 현대 경제학의 희소성 공리는 보편적 진리가 아니라 근대 서양 문명의 독특한 담론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리스가 말하는 인간의 경제도 시대적 제약(여성과 노예 등은 원래 그렇게 태어난거라는 사고) 속에 있지만 기본적 개념은 정말 따스한 인간경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목적이 수단과 전도되어 인간의 삶 자체가 돈버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활동을 행위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행위인 ‘프락시스’와 무언가를 생산하는 행위인 ‘포이에시스’로 구별하고 인생은 포이에시스가 아니라 프락시스라고 말한다. “행복한 삶이란 결국 인간의 잠재적 능력을 전면적으로 풍부하게 계발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행복을 추구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을 말한다. 바로 행복한 삶이고 뭐고 당장 먹고 사는 것 자체가 불안한 경우이며 대부분의 자본주의 사회의 서민들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돈벌이에 몰두하는) 성향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들이 좋은 삶이 아닌 생존 수단에 대해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생존에 대한 욕망은 무한하므로 생존을 가져다줄 수 있는 물건들에 대한 욕망도 무한하다. 행복한 삶이니 뭐니해도 그게 다 최소한의 생계에 대한 걱정이 없을 때의 이야기이다. 물리적 생존 자체가 불안한 상황이라면 전력을 기울여서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된다. 이 경우 인생의 의미는 굶주림을 면하는 것일 뿐이다.” 가슴을 치는 얘기다. 시장경제의 포로가 된 바로 우리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생존 자체를 두려움으로 포장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해방되고 싶다. 그러려고 공부한다. 홍기빈님 참 고맙다.

그의 머리말.
“내가 알량한 지식과 재주를 무릅쓰고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우리를 천천히 질식시키는 이러한 암흑과 다투다가 지쳐 넋을 놓고 응시하던 절망의 시간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기억속의 그 시간들이 아마 내게도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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