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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2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넋을 놓고 응시하던 절망의 시간 ; 기억하다
2001년 초판, 2009년 6쇄까지 펴냈다니 지속적으로 팔리고 있군요. 출판사는 저자를 제대로 잡았군요. 아마도 인세가 아닌 일괄 계약으로 책을 냈을테니까....ㅋㅋㅋ(이런데 더 꼿히는 걸 보면 참 하잖은 경제적 동물로 전락한 나의 시니컬함이 불쌍합니다.)
홍기빈님은 악필이었습니다^^, 아니 친근한 필체였습니다. 강의를 듣고 줄서서 싸인 받은 1인이었거든요, 제가. 책 맨앞에 있는 저자의 싸인을 보며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바로 저자의 강의를 들어서인지 내가 책에서 본 것과 강의에서 들은 것이 거의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강의는 참으로 좋았습니다. 인간적인 고민과 성찰의 지점이 팍팍 느껴져서 좋았고 ‘경제’에 사로잡히지 않는 그의 ‘경제’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강의평가가 아니므로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라는 책으로 돌아가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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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내게 크게 남았던 이미지는 ‘로빈슨 크루소’에 대응하는 ‘아리스토텔리스’라는 존재이다. 전자가 “피조물을 굶겨죽임으로써 스스로의 섭리를 관철시키는 냉혹한 신”(137)인 자연의 희소성과 투쟁하는 ‘경제’의 이미지라면 후자는 “인간의 활동에서 목적의 추구는 무한하지만 수단의 양은 그 목적에 의해 제한된다는 아리스토텔리스의 지혜”(97)를 구현하는 사회적 ’경제‘의 이미지이다.
홍기빈은 경제의 개념정의에서 경제를 과학으로 만든 자본주의 사회에 발을 걸며 시작한다. 경제를 “희소성의 상황 아래에서의 합리적 선택”이라고 정의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실제로 희소한 것은 권력이지 재화 그 자체가 아니며 단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돈을 벌어야만 미래의 가능성이라는 의미의 사회적 권력을 얻을 수 있도록 짜여져 있을 뿐이라고 답한다. 때문에 희소한 것은 물질적 재화가 아니라 권력이나 서열이다. 현대 경제학의 희소성 공리는 보편적 진리가 아니라 근대 서양 문명의 독특한 담론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리스가 말하는 인간의 경제도 시대적 제약(여성과 노예 등은 원래 그렇게 태어난거라는 사고) 속에 있지만 기본적 개념은 정말 따스한 인간경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목적이 수단과 전도되어 인간의 삶 자체가 돈버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활동을 행위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행위인 ‘프락시스’와 무언가를 생산하는 행위인 ‘포이에시스’로 구별하고 인생은 포이에시스가 아니라 프락시스라고 말한다. “행복한 삶이란 결국 인간의 잠재적 능력을 전면적으로 풍부하게 계발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행복을 추구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을 말한다. 바로 행복한 삶이고 뭐고 당장 먹고 사는 것 자체가 불안한 경우이며 대부분의 자본주의 사회의 서민들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돈벌이에 몰두하는) 성향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들이 좋은 삶이 아닌 생존 수단에 대해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생존에 대한 욕망은 무한하므로 생존을 가져다줄 수 있는 물건들에 대한 욕망도 무한하다. 행복한 삶이니 뭐니해도 그게 다 최소한의 생계에 대한 걱정이 없을 때의 이야기이다. 물리적 생존 자체가 불안한 상황이라면 전력을 기울여서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된다. 이 경우 인생의 의미는 굶주림을 면하는 것일 뿐이다.” 가슴을 치는 얘기다. 시장경제의 포로가 된 바로 우리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생존 자체를 두려움으로 포장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해방되고 싶다. 그러려고 공부한다. 홍기빈님 참 고맙다.
그의 머리말.
“내가 알량한 지식과 재주를 무릅쓰고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우리를 천천히 질식시키는 이러한 암흑과 다투다가 지쳐 넋을 놓고 응시하던 절망의 시간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기억속의 그 시간들이 아마 내게도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