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uropean Dream: How Europe's Vision of the Future Is Quietly Eclipsing the American Dream (Paperback) - How Europe's Vision of The Future Is Quietly Eclipsing the American Dream
제레미 리프킨 지음 / J P Tarcher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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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으며 "세계적으로 연결되는 동시에 지역적으로 소속되기를 갈망하는 세대는 포괄성, 다양성, 삶의 질, 지속 가능성, 심오한 놀이, 보편적 인권, 자연의 권리, 평화에 중점을 두는 유러피언 드림에 점점 더 매력을 느끼고"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그렇게 해야한다고 안달이 나있는 지경에 와있다.

주35시간 근무와 1년 6주간의 강제된 휴가, 테마휴가와 같은 근로시간을 줄임으로써 일자리를 늘인다는 사고방식이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이 책은 그러한 정책이 오히려 근로시간을 늘려 생산성을 높인다는 미국을 경제적으로 앞서고 있다고 알려주는데.

이러한 주장은 단지 경제성장이라는 수치적 성공을 넘어 삶의 질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리하여 "내재적 가치가 재도입되면 자연도 엄연히 존재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모든 인간과 똑같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개념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보편적 인권 개념을 확장해 거기에 자연의 권리까지 포함시키는 것이 초국경 평화공원"이라고 그 사례까지 보여준다. 자연에 대한 소유권이 아니라 접근권이 중요하다는 주장에 탄복하며 제레미 리프킨의 꿈(드림)을 나의 꿈으로 공유한다.

"유러피안 드림은 이 어둡고 험난한 세상에서 길을 인도하는 등대다. 그 등불은 포괄성, 다양성, 삶의 질, 심오한 놀이, 지속 가능성, 보편적 인권, 자연의 권리, 지구상의 평화로 정의되는 새로운 시대로 우리를 손짓하며 부른다. 미국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이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는 꿈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새로운 유러피안 드림은 삶을 추구할 가치가 있게 해주는 꿈이다." 러프킨은 이렇게 마무리 하고 있지만 여전히 유러피안 드림 속에 드리운 그림자 또한 있다. 이민자들에 대한 정책이나 EU는 여전히 묶일듯 묶이지 않는 배제와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꿈꾸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것도 많은 이들이 삶을 추구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이라고 믿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복지국가혁명>에서 인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인간복지를 성장의 근간으로 삼으면서 인간을 경제의 목적으로 삼는 그런 세력이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대통령과 국회의원 몇 명이 하기에는 역부족이고 정책과 슬로건, 미래비전을 가지고 움직이는 수십만, 수백만 명의 사회운동과 정책 정당운동이 필요하며 이들이 수천만 국민들을 감동시켜나가는 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내가 이러한 비전을 가지고 지금의 성산업내 착취적 구조에 저항하는 것도 결국은 그 흐름에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비전이 있어야 지치지 않고 풀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꿈꾼다. 영토보다는 인간적인 공감대의 확장을 추구하는 보편적 인권과 자연의 내재적권리가 구현되는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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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 - 웃기는 의사 히르슈하우젠의 도파민처럼 짜릿한 행복 처방전
에카르트 폰 히르슈하우젠 지음, 박규호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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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하지 않게 약간은 시니컬하게 '행복'을 말하는 의사이자 코미디언, 무대를 사랑하는 '히르슈하우젠'의 책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 전혀 사전정보 없이 서점에서 제목만 보고 충동구매한 책이다. 오프라인도 아닌 온라인서점에서 제값을 다주고...ㅠㅠ.... 당장은 살짜기 후회스런 맘도 들었는데 다 읽고나니 별로 그 값으로 말하고 싶어지진 않는다. 그렇다고 책값만큼 했다는건 아니고ㅋㅋㅋ... 책값을 하려면 내가 얼마나 이 책의 후유증을 오래 앓느냐에 달려있겠지.. 하지만 책값 생각안나게 할만큼 즐겁게즐겁게 읽었다. 심오한 '의미'때문이 아니라 그의 태도 때문이다. 독일인은 특별히 전두엽과 측두엽외에 불평엽이 있을거라며 자신이 속한 그 나라 그 땅에 사는 이들을 얘기하는 그의 살짝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상당히 맘에 들었는데 이런 류의 자세 때문인듯. 도사님같이 종교인같이 말하는 너~~무 긍정적인 처세책보다는 이런 인간적인 냄새가 폴폴나는 글이 좋다.

내용은 어쩌면 너무 흔해서 중언부언일듯한 것이지만 그걸 유머로 풀어내고 슬쩍슬쩍 비아냥거리듯 말하는 그의 비유가 참 날카롭다.
"심리학의 가장 끈질긴 오류 중 하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대중심리학의 이런 주장은, 인간을 압력솥쯤으로 여겨서 적당히 증기를 빼주지 않으면 폭발한다고 믿는데서 나옵니다. 하지만 늘 끓어오르는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은 본인뿐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도 망가뜨리고 맙니다" 내가 꼭 하고 싶은말. 어중간히 심리치료를 받고 꼭 내 감정을 다 드러내야 된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으~~~~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는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토록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걸 보고도 , 왜 아무도 웃지 않는 걸까요" 이건 그가 독일인이기에 가능한 발언이겠지. 어쨌든 그도 안다. 그의 행복을 위한 제안에 결정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모든 평화주의자가 성인들이 하는 말과 같다. 더 소유한다고 행복해지지 않고 결국 남과 나누지 않으며 사는 삶에 '행복'은 없다는 거. 근데 그걸 참 끈덕지고 유쾌하게 설명하고 있다는거지.

그의 책을 읽다보니 버나드 쇼를 읽고 싶어진다. "우리가 죽어야 한다고 삶이 우습지 않은 것은 아니며, 우리가 웃는다고 삶이 진지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버나드 쇼의 말이다.

펭귄에 대한 그의 생각 "변함없는 그 연미복 차림하며, 허리는 대체 어디 간거야? 날개는 너무 작아서 아무짝에도 쓸모 없고, 게다가 그 다리는 또 뭐야? 조물주가 무릎 만드는걸 깜빡 했나 보지?" 그런데 그는 펭귄의 물속에서의 모습을 보고 알았다. 펭귄은 포르쉐보다 열 배는 더 잘빠진 유선형의 몸매에 휘발유 1리터 분량의 에너지로 2500km 이상을 갈 수 있다는 걸. 그는 두가지 사실을 얘기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만 그를 보고 판단했기에 잘못된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과 자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고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주변여건이 얼마나 중요한가이다. 그는 남들처럼 되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 세상에 이미 차고 넘친다"고 조언해주고 환경에 억지로 자신을 맞추려 하기보다는 주변상황을 바꾸는 것이 훨씬 나을 수 있다고 말한다.

팽귄인 당신, 목이 긴 기린이나 근육질의 사자가 되려하지 말고
"당신의 바다를 발견하세요.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드세요! 마음껏 헤엄을 치세요! 그러면 자신의 본성 안에 머문다는 게 어떤건지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신나게 놀고 향유할 '바다'안에 있는 것일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뭐지? 무엇이 날 기쁘게 하지? 언제 내 가슴이 뛰지? 남들이 내게 기쁨을 느끼는 때가 언제지?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지? 내가 정말 좋아하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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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라 한번도 실패하지 않은 것처럼 - 두려움을 긍정의 에너지로 바꾸는 마인드 컨트롤 10단계
수잔 제퍼스 지음. 하지현 옮김 / 리더스북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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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라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처럼 Feel the fear and Do it anyway

- 두려움을 긍정의 에너지로 바꾸는 마인드 컨트롤 10단계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무력감에서 오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것보다는 훨씬 덜 두렵다."
자기계발서라도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내가 좀 더 어릴때는 너무나 옳고 지당한 말씀만 있어서 오히려 저항감이 생기기도 했다. 삶의 당의정처럼 순간적인 마약의 효과만을 주는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그 당의정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여겨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저 당신의 현재를 벗어버리고 당장 어디론가 떠나라는 황당한 주문서를 난발하는 그런 류의 '책'말고 현실의 고통을 인정하고 회피가 아닌 당당히 맞서라는 주문을 하는 조금은 인문학적 분위기를 풍기는 '책'들 말이다.

특히 나의 바닥을 보게하고 씁쓸하게 나를 성찰시키는 내용을 좋아한다. 그런 책들이 꽤 있었다. 내 감정의 쓰나미에 휩쓸려 사리분별이 힘들때 그런 책들의 구절을 쓰다듬는다. 요즘의 나도 그러했다. 일도 하기 싫고 무언가 자꾸 다른 곳을 꿈꾸고 달아나고 싶다는 생각만 들고,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서운해 하면서도 관계를 풀기보다는 원망만 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알면서도 심한 무기력이 잠식한 상태에서 메저키스트처럼 나를 벌하고 있었다. 그래서 설연휴를 기다렸다. 2011년의 5일간의 첫연휴엔 나를 감금시키고 더더 내안에 굴을 파보겠노라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식량을 비축했다. 그 첫 식량이 바로 이 책 <도전하라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처럼>이다.  

늘 무언가에 빠져 허욱적대는 느낌이 있을때, 한 발도 앞으로 가지 못하고 그저 주변탓만 늘어놓고 있을 때 내 안의 근원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실은 내가 못났을까봐 두렵고 그래서 사람들이 날 싫어할까봐 두렵고, 결국은 어떻게든 실패할까 두렵고, 그 감정들은 나를 허망함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무얼해도 소용없으리라는 지독한 열패감에 시달리게 한다. 그런데 그 두려움을 마주하기는 또 어찌나 힘든지....하지만 너무나 노골적인 책제목이 오히려 '싸구려위안과 충고'로 느껴져서 이 책의 존재를 알면서도 선택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드디어 읽게된 책. 예상대로 참으로 당연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지금은 내가 나를 내려놓기로 작정한 순간, 그래서 수월하게 읽히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혼하고 다시 공부하고 그래서 두려움에 대한 강의를 최초로 시작하고 여전히 초월이성의 지배를 받기위해 훈련한다는 지은이 수잔 제퍼스의 담담하지만 강력한 권고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심리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의 문제라는 그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려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밖으로 나가서 그것을 하는 것 뿐이고, 두려움을 느끼는데 누구든 예외는 없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무력감에서 오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것보다는 훨씬 덜 두렵다고 한다. 이러한 기본 인식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뒤를 따라 나온다.

"천사들이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은 스스로 가볍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항구에 정박해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그렇게 묶어놓으려고 배를 만든 것은 아니다." 내면의 힘을 키우고,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을 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고 자신감을 갖기 위해 그녀는 학습을 통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실천적 방법들을 제안한다. 그 중 내게 가장 솔깃했던 대목은 바로 제 8장의 "진정 원하는 것들로 삶을 가득 채워라"이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찾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빠른 시일 내에 그 꿈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구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항상 공허하다고 고민만 합니다. 우리 삶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스스로 계속해서 풍요로운 삶을 위해 노력한다면 그 무엇도 우리가 기본적으로 완전하다는 느낌을 앗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두려움 역시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이 책은 상위자아에서 흘러나오는 긍정의 에너지가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우주에너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움직이게 하라고 말한다 마음과 몸의 영역이 아니라 영적인 영역도 함께 의식하며 이를 위해서 늘 훈련을 하라는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 장은 느긋하게 생각하기이다. 모든 일이 잘될거라고 믿으며 순리를 따르고, 참여하고, 움직이고, 행동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자기주장을 펼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과정에 충실하라고 말한다. 그렇게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강하고 다정한 사람'이고 싶다. 모든 지당하고 당연한 말씀들이 그렇듯 결국은 '행위'가 모든걸 가능하게 한다는 것, 왜 알면서도 이렇게 책을 읽고 매번 그 말들을 확인만 하고 있는 건지, 조금은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 믿어야지. 어쨌든 두려움에 갇히긴 싫으니까.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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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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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에서 대한민국원주민 내용중 '못된가시내3'을 보고 최규석, 그의 '리얼'에 치를 떨었었다. 그렇게 파편적으로 보아오던 그의 만화를 <습지생태보고서>와 <대한민국원주민> 단행본으로 만나면서 그는 나의 '스타'인 작가가 되었다. 

<대한민국 원주민>에서 나를 사로잡은 건 사람을 따스하게 쓰다듬는 그의 위로였다. 그는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데 왜 나는 내가 위로받는 것같은지. 그래서 이 책은 내개 만화가 아니라 심리학 서적이었다. 시대와 사회와 가족이라는 개인이 어쩌지 못하는 그 관계와 맥락안에서 무기력했기에 더 아픈 상처들을 보듬어주는, 그래서 현재의 나까지도 그리 치유해주는 작품이다.

<습지생태보고서> 촌철살인으로 자신의 바닥을 냉소적으로 드러내는 '리얼궁상만화'다. 그런데 그 냉소가 나를 성찰하게 만든다. 크게 소리내어 웃으며 내 속물적이고 소시민적 근성을 맘껏 비웃게 한다. '논점이탈'은 있는거 자랑하는 넘들에 대한 비난에서 시작해서 서로서로 얼마나 잘나가는 사람을 알고있는가에 대한 자랑질로 침튀기는 상황으로의 반전이 허위의식에 빠진 우리를 보게하는데 그게 얼마나 '리얼'한지 짧은 컷 몇 개가 가진 스토리의 힘이 느껴진다.
최규석의 만화들은 정말 주옥같은 대사들이 넘실댄다. 그걸 다 옮기지 못함이 아쉽고, 다 기억하고 일상에 들이대지 못해 속상하다. "애들한테 잔소리 못해서 우월감 에너지가 바닥났다보다." "그런거 아냐!! 신자유주의 파고에 휩쓸린 지구촌의 미래가 걱정되서야"

<울기엔 좀 애매한>은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의 시간이다. 이제야 만난 이유가 '작업노트'에 나와있다. 수채화로 작업한거라는, 그래서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었다는....왜 표지부터 느낌이 다른가 했더니만. 앞서 만난 작품의 감동의 파고가 너무 높았기에 그와 비교하면 좀 평범하다는 느낌마져 들었는데 그나마 '작품노트'를 읽으면서 이번엔 스토리보다 오히려 작업과정을 들여다보는 느낌과 '만화'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평점을 커버한다. '리얼궁상'은 여기서도 빛을 발하고 너무 찌질해서 울기에도 애매하다는 작중 인물에게 마지막 '눈물'을 하사하는 훈훈함으로 마무리한다. 최규석의 작품은 에필로그가 늘 재미있고, 에필로그를 읽어야 작품이 완성된다. 섬세한 감성과 어긋나는 그의 외모가 삽입되었던 앞의 두 작품과 다른 매력으로 <울기엔 좀 애매한>의 에필로그인 '작품노트'는 만화가로서의 그의 성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겸손하기까지.

ps. 아마도 당신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제 눈으로 보는 이 작품은 훨씬 멋진거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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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고 봉사하는 자, 그대의 이름은 괴물

- 송경아 소설 <나의 우렁총각 이야기> 읽기 -










들어가는 글 - 우렁각시에서 우렁총각으로의 진화




“호랑이는 가죽 땜시 죽고, 사람은 이름 땜에 죽는기라” - 영화 황산벌에서 계백장군의 부인 역으로 나온 김선아가 신라와의 대전을 앞둔 계백장군 역을 맡은 박중훈의 칼을 받기 전 하는 대사이다. 이 장면은 우리가 역사교과서를 배울 때 충신 계백장군을 더욱 우러르기 위해 반복해 교육받은 내용이기에 이 장면에서 김선아의 외침은 더욱 신선한 것이었다.

계백장군은 풍전등화의 나라의 운명을 깨닫고 적군에 의해 짓밟히기 전, 또 자신의 죽음을 각오한 항전자세를 가다듬기 위해 자신의 칼로 일가족을 죽이고 전장에 나갔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그의 일가족 살해는 오히려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까지 읽히기까지 했다. 적군에게 기막힌 죽임을 당하거나, 능멸을 당하느니 명예롭게 죽을 수 있게 하였다고 해석해왔던 것이다. 몰락한 가장이 가족을 살해하고 자신의 목숨을 끊는 행위에 대해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용어로 이름 붙여 오던 우리의 정서와도 맞닿아 있는 이런 식의 해석에 대한 저항이 바로 영화 속 계백장군의 부인의 입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영화 ‘황산벌’에서 계백의 부인, 김선아는 이제 죽어야 겠다는 계백, 박중훈의 칼 앞에서 ‘뭐 한일이 있기에 무슨 자격으로 자신의 새끼들을 죽이려 하는지’ 소리친다. 그렇다 그들 남성영웅들은 조국과 가족을 위해 헌신한다면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해왔다.




남성에게 명예란 자율성, 자신의 태도를 정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권력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자율성을 인정받을 권리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가부장적 지배 아래서 여성은 자신의 태도를 정하거나, 자신을 위해 무엇을 결정하지 못한다. 여성의 몸과 성적 서비스는 친족집단, 남편, 아버지의 처분에 달려 있다. 여성은 자녀에 대한 양육권과 권력을 갖지 못하거나‘명예’또한 가지지 못한다.1)





이렇게 역사자체를 창조한 가부장제 안에서 주인공이었던 가부장적 영웅에 대한 숭배가 조금씩 균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고, 거기에 설화-신화,전설,민담-마저도 다시 쓰여 지고 있다.

가장 먼저 활발하게 이루어진 부분이 이러한 가부장제에 의해 사라진 신화 속의 여성찾기이다. 현 여성가족부는 홈페이지의 이름을 ‘마고’라고 쓰고 있다. ‘마고’란 박제가의 ‘부도지’에 가장 자세히 언급된 창조주이다2). 그녀는 그 후 마고할미, 삼신할미 등으로 변형되어 그 역할이 축소되었지만 한국의 여성주의자들은 여신의 한국적 원형으로서 그녀를 다시 부활시켰다. 여기에 무당들의 내림신으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바리데기’또한 신화의 위치로 끌어올리기위한 새로운 해석이 되어지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비운의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여성들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다양한 문화적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3)

이 글에서 분석하려는 대상은 한국현대소설학회가 선정한 <2005 올해의 문제소설>4)에 최우수 추천작으로 실린 송경아의 「나의 우렁 총각 이야기」이다. 정통 역사 안에서 신화 다시 읽기를 하고 있는 작업과는 다른 방법으로 신경아는 기존의 설화에서 성역할을 바꾸어 발칙하고 도발적인 환상을 보여준다. 신경아는 이 작품에서 “결혼은 백년가약이 아니라, 떠난 사람의 절반 이상이 실망하고 길을 되돌아오는 불편하고 지루한 관광 코스 같았다.”5)면서 “우렁 총각이라면 하나 갖고 싶지. 내가 돌봐야 하는 남편은 싫어.”라고 선언하며 작품을 시작한다.

이것은 <나도 아내가 갖고 싶다>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그 제목만 인용해서 여자친구들끼리 우리도 ‘아내가 갖고 싶다’고 얘기했던 맥락과 같은 것이리라. 왜 남자들만 ‘아내가’필요하겠는가, 여자들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 특히 슈퍼우먼을 양산하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여성들은 그 이미지에 부합할 수 없는 자신들의 무능함을 자책하며 오히려 남자보다 여자들에게 ‘아내’가 더 필요함을 절절히 호소하게 되었을 것이다.

신경아의 ‘우렁총각’은 조금 더 넘어선 상상의 힘을 보여준다. 특별히 육아와 가사에 허덕이지 않으면서도 그저 독신의 생활에 남편을 대신하는 것으로 ‘우렁총각’을 실체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재현된 ‘우렁 총각’에게도 여전히 넘지 못하는 한계는 존재한다. ‘우렁 각시’는 ‘아내’를 완벽히 대체하는, 아니 ‘아내’를 수행하는 바람직한 모범사례로 존재했던 반면 ‘우렁 총각’은 여전히 완벽히 ‘남편’을 대체할 수 없으며, 결코 인간‘남성’이 되지 못한다. 그러한 한계가 생기는 지점에 대한 분석이 이 글의 주요 논점이 될 것이다.







설화가 창조한 무급, 무저항의 봉사녀들




어린시절 줄기차게 들어온, 읽어온 설화들에서 공통되게 우리가 학습했던 것은 착한 여자는  권력있는 남성으로부터 온갖 역경을 물리치고 구원받는 다는 것이었다. 그럼 착한 남자는 어떻게 구원받았을까. 바로 하늘로부터 ‘착하고 능력있는’여자를 하사받는 것으로 구원을 받았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전자의 예로 심청이가 그랬고, 후자의 예로는 선녀와 나뭇꾼이 있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바로 후자의 이야기들이다.

가난하지만 착하고 효성 깊은 남성은 무조건적으로 그에게 봉사하는 여인을 얻게 된다.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우렁각시’이다. 이 이야기는 다양한 형태로 전해지는 ‘민담’의 유형에 속하는 것이다. <한국민족설화의 연구>6)에 따르면 “우렁 각시‘유형의 민담은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이야기로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담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으로 변한 동물‘이라는 변신담(變身談)에 속하는 이 유형의 설화는 대체로 가난한 총각이 우렁이 속에서 나온 여자를 금기를 어기면서 혼인하였으나, 임금 혹은 관리가 색시를 빼앗아 파탄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큰 틀이다. ’우렁각시‘는 가난한 사내에게 각시의 역할을 한다. 매일 들에 나가 일을 하고 돌아오면 맛있는 밥상이 차려져 있고, 집의 온갖 궂은 일이 다 해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 우렁이가 변한 예쁜 처녀임을 알고 사내는 이 처녀를 아내로 삼는다.

이러한 변신담에 등장하는 변신녀들은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오직 사내의 착한 심성 때문에 그들에게 지극정성을 다한다. 우렁이였거나, 달팽이였거나, 잉어였거나 무엇이었든 그들은 자신들을 사로잡은 남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받친다. 물론 착한 여성을 도와주는 이와 유사한 설화가 있다. <콩쥐, 팥쥐>에서 구박받는 마음 착한 콩쥐를 돕기 위해 여러 동물이 나오지만 그들은 그저 동물에 머무를 뿐이고 그들의 역할도 결국은 콩쥐가 멋진 남성을 만나기 위해 도울 뿐 동물이 남자로 변하진 않았다.

외국동화에는 남성이 되는 동물은 애초에 멋진 남성이었으나 악마의 사주로 잠시 외형만 바뀐 것일뿐 본질은 인간이었다. 이러한 예는 <개구리 왕자>, <미녀와 야수>에서 볼 수 있다. 즉 이러한 변신형의 설화에서 여성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고, 그 힘을 이용해 남성을 위해 무급의 봉사녀를 자처하지만 그녀의 본질은 그저 한낱 미물일 뿐이다. 그래서 그녀를 한낱 미물이 아닌 여자가 되게끔 해준 인간 남자에 대해 무조건적인 헌신을 하면서 항상 남성의 삶을 채우는 완벽한 보조자가 되는 것이다.

이들 변신형 설화의 주인공 남자와 우렁 각시는 결혼해서 산다. 즉 그들은 자식을 생산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논의를 진전시키면 그들의 자식은 ‘인간’인 것일까. 설화는 그렇다고 생각했으리라. 여자는 그저 씨를 받아 아기를 키우기만 하는 단지 ‘용기’일 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자가 본디 인간이 아닌 ‘괴물’이어도 상관없고, 설화가 만들어지던 시대에 여성은 자연의 일부였을 뿐이다. 오로지 ‘남성’만이 인간의 영역에 있었고, 재생산의 부분에서도 인간을 배태할 씨는 오직 인간 남성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총각’이라는 봉사남, 그는 왜 괴물인가




‘우렁각시’류의 변신형 설화에 등장하는 각시는 벌을 받거나 해서 동물로 변신한 것이 아니라, 원래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이 아닌데 인간으로 변신하는 것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우리가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 인간의 조상이 유인원이라는 것이라는 과학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은 ‘인간’에 의해서만 창조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몸에서 만들어진 정자와 난자가 만나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 ‘인간’이라 불리운다.




인간과 동물의 구별에 관해서 일관된 답이 주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제 철학자들이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았을 뿐입니다. 유가에서라면 사람과 동물은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이(理)에서 나왔으나 그 기(氣)가 다르다고 설명할 것이며(성리학), 인간에게는 사덕과 사단이 있어 나서부터 선하지만, 동물은 사덕과 사단을 가지지 못했고(맹자), 인간에게는 인(仁), 예(禮)가 있는데 동물에게는 없다(공자)라고 했습니다. 즉, 유학에서는 동물과 인간의 구별 기준의 '윤리'와 '도덕'으로 나누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양철학에서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라고 하며 '이성'이 인간과 동물을 나누는 기준이 될 것이다라고 했으며, 데카르트는 여기에 관해서 '인간과 가장 닮은 기계와 인간의 차이라면 '창조성'이다'라고 했습니다. 칸트는 인간이 가진 본유적 이성인 '순수이성'으로 인간과 동물을 나누었습니다. 플라톤은 그 유명한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제시했습니다. 즉, 서양 철학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구별 기준으로 '이성'을 내놓았습니다. 어떠한 학설, 학자의 주장을 따르더라도 '철학적 의미'에서 동물과 인간을 나누는 것은

결국 '필연'이 아니라 '당위' 즉 규범적 판단(~해야만 한다)이므로 완전한 구별에는 무리가

있겠지요. 생물학적 의미에서 인간은 '동물계' '척추동물문'에 속하며 '영장동물과'인 생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동물로 구분해야겠지요.7)






그렇다, ‘인간’이란 개념 또한 규범일 뿐이다. 때문에 시대마다 인간의 범위, 즉 ‘인간’으로 대접받는 범위는 매우 달랐다. 노예와 여성이 동급의 소유물로 존재하던 시대에 여성, 즉 ‘아내’들은 재산목록이었을 뿐이고 노예와 같이 평생 봉사와 헌신을 바치는 위치에 있었다. 때문에 그녀들은 우렁이와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우렁각시에서 ‘우렁’과 ‘각시’는 전혀 모순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우렁이이면서 각시일 수 있고, 따라서 실제의 ‘아내’와 같은 지위와 역할을 수행한다. 그 역할 수행은 헌신성에서 칭송을 받는 것이었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었지 누군가의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남우세스럽게 그게 무슨 짓이야? 남자가 필요하면 차라리 결혼을 해라, 결혼을. 이건 동거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냐. 너 그러다가 혼삿길 막혀. 지영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선물을 했다니? 당장 돌려줘!”8)



11) 신경아,  앞의 책, 22-23P.




<나의 우렁 총각 이야기>에서 주인공 이소현의 엄마는 배달된 ‘우렁 총각’에 대해 처음부터 무조건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 인간도 아닌 우렁이에게조차 엄마는 ‘총각’이라는 성별 하나만을 문제 삼아 이를 부정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총각은 그저 생물학적 숫컷의 느낌이지 결코 인간 남자가 아니다. 때문에 주인공 이소현조차 그의 역할을 가정부로 한정시키고 있다. 그래서 “나랑 있을 때는 그냥 좀 큰 우렁이야. 자, 봐. 가정부 하나뒀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동거는 무슨 동거야? 그냥 우렁인데.”라며 엄마를 안심시킨다. 만약 이것이 ‘우렁 총각’이 아니고 ‘우렁 각시’이고,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였다면 어떤 대화가 오갔을까? 아마도 상당히 다른 차원의 내용이었을 것이다.

‘우렁 총각’은 결코 남성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어야만 이 모녀는 안심할 수 있스며, 엄마는 그가 수컷의 느낌을 주는 것까지도 혹시 딸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 아닐까 걱겅한다. 그래서 우렁이가 자신을 보았으니 결혼해달라 애원할 때 소현은 결혼할 수 없다고 차갑게 얘기하는 것이다.




“이제 와서 우렁이 따위에게 포획될 수야 없지. 시댁도 없고 부담도 없지만 사회에서 아무런 지위도 가질 수 없는 우렁이. 그런 주제에 나에게 애정을 품었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새로운 관계의 부담을 지우려는 우렁이. 지금까지 나한테 손을 내밀었던 사람들에게 말했듯이, 나는 잘라 말했다. 아직까지 나는 우렁이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더 쉬웠다.”9)



10) 신경아, 앞의 책, 16-17p.










왜 ‘섹스’는 ‘총각’의 봉사목록에 없는가




‘우렁 총각’과 ‘우렁 각시’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각시는 ‘아내’의 역할과 동급인데 비해 총각은 ‘아내’만큼 성실히 일하는데도 그녀의 파트너가 되지 못한다. 전통적인 남녀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일까? 여자는 집안일을 하고 남자는 바깥일을 해야 한다는. 이것도 중요한 차이이겠지만 지금은 2006년이다. 집안에서 집안일이라도 완벽히 해줄 수 있는 남성이 있다면 기꺼이 여성은 동반자로 그를 택하려 할 것이다. 그럼 왜일까? 여기엔 바로 ‘섹스’라는 영역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닐까.




결혼은 백년가약이 아니라, 떠난 사람의 절반 이상이 실망하고 길을 되돌아오는 불편하고 지루한 관광코스 같았다....나는 결혼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어영부영 영어 공부나 하면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면서 언제까지라도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선을 보거나 연애를 해서 결혼을 할 수는 있겠지만,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다 해도, 결혼한 친구들을 보니 결혼할 수는 있겠지만,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다 해도, 결혼한 친구들을 보니 결혼은 과연 그 사람 하나하고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댁이 잘나면 잘난 대로 못나면 못난 대로 결혼한 친구들은 모두 시댁 스트레스를 겪고 살았다. 정말 나는 결혼할 이유가 없었다.10)



9) 신경아, 앞의 책, 31p.




주인공 소현은 결혼에 대해서 냉소적이다. 그렇다고 성녀처럼 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우렁 총각’이야말로 그녀가 필요로하는 부분만을 채워줄 수 있는 유용한 것이 될 수도 있을텐데 소현은 우렁 총각의 결혼해달라는 말에 결국 되팔아버리고 만다.




우렁 총각은 놀라웠다. 일주일이 지나자 집안이 머리카락이나 먼지 하나 없이 반들반들해졌다. 재활용 쓰레기도 종이, 병, 캔 등으로 나뉘어 차곡차곡 묶였고, 냉장고에는 우렁 총각이 만들어 두는 밑반찬이 가득했다....우렁 총각이 만든 음식은 맵거나 짜지 않고 깔끔하고 정갈했다. 가끔 몇 시에 일어난다고 말해 두면 아침을 차려놓고 사라지는 적도 있었는데, 어떻게 하는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고 국을 끓여, 우리는 귀잖아서 잘 TM지 않는 장식장 속의 고급 그릇들을 꺼내 맛깔스럽게 담아 놓고....개수대에 설거지거리를 담아 놓고 나갔다 오면 식기 건조대에 말끔히 정리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고, 빨래는 빨래통에 쌓일 틈이 없이 베란다 건조대에서 햇빛에 반짝거리며 펄럭였다. 힌 빨래는 모두 한 번씩 삶는 것인지, 얼룩 하나 없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11)



8) 신경아, 앞의 책, 21p.




살림을 완벽히 하는 것으로도 남성들은 충분히 ‘아내’로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천운으로 여기면서 그렇지만 ‘우렁 총각’은 이것만이 아니다. 소현은 우렁 총각에 대해 “객관적으로 우렁이는 나쁜 남자가 아니었다. 얼굴은 잘생긴 편이고 키도 컸으며, 무엇보다 우렁이 특유의 자상한 성격이 여전했다.”고 말한다. 이런 조건인데도 ‘우렁 총각’에 대한 욕망은 털 끝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난 처녀도 아니야! 연애할 때 그런 건 다 끝냈다”면서도 우렁이를 성적 끌림이 있는 존재로 보지 않고, 느끼지도 못하는 듯하다. 

남성들에게 ‘아내’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가장 큰 부분은 성적 서비스이다. 물론 때로는 주부로서 ‘가사’역할 분담이 크기도 하고, 요즘은 경제적 책임을 함께 지는 것을 더 크게 여기기도 하지만 남성이 여성에게 바라는 서비스에서 가장 큰 부분이 아마도 성적서비스일 것이다. 때문에 ‘성매매방지법’이 서슬퍼런 시국에도 여전히 전국의 성매매업소는 남성들의 지갑으로부터 끊임 없이 돈을 긁어낸다. 요즘은 신종 성매매업소로 인형방12)이라는 것까지 등장했다. 손으로 또는 입으로 남성의 성기를 흥분시켜 사정하게 해주는 ‘대딸방’도 있다. 남성은 자신에게 서비스를 하는 여성에게 감성노동을 기대하고 성적서비스는 당연한 권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소현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우렁 총각’에게 그저 가정부의 역할만 기대할 뿐이다. 아마도 이것은 여전히 남성이 가지는 아우라 때문이 아닐까? 오랜 역사가 만들어 놓은 규범으로서의 아우라. 우렁이는 결코 여성에게 남성을 대체하지 못한다. 때문에 재생산으로 이어질 섹스를 나눌 수는 없었을 것이다. 거기서 태어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괴물과 섹스하기에 여성은 너무 ‘인간다운’것일까.







나오는 글 - 영웅의 서사에서 성찰의 서사로




<나의 우렁총각 이야기>에서 소현은 결혼에 냉소적이고,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 포스트모던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보인다. 하지만 ‘우렁 총각’ 에 대해서는 아주 순결한 포즈를 취하며 관계 맺기를 적극 거부한다. 그에게서 받는 서비스는 그저 가정부로서 집안일을 말끔히 해주는 것만 바랄 뿐 유체적, 정서적 교감에 대해서는 진저리를 치는 것이다. 이 것은 여전히 여성은 남자와의 관계 맺기에서 자유로운 입장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그저 ‘섹스’를 즐기는 상대조차도 남자들이 만든 그 규범에 드는, ‘인간’이라 명명된 남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일반적 남성이 아니면 결코 그녀의 파트너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누구에게 치욕이 되는 것일까? ‘우렁 총각’과 동거하거나 ‘섹스’를 한다면 그것은 분명 인간 ‘남성’에게 버림받는 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 아닐까, 즉 ‘우렁 총각’을 ‘남편’과 동격으로 놓는 순간 인간‘남성’에게 그것은 치욕스러운 걱, 자신이 수행해온 남성 역할을 모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소현은 ‘우렁 총각’과의 관계에서 그토록 소극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글의 미덕은 일반적인 선한 의지를 가진 주인공이 고난과 어려움을 겪다 결국 승리하거나, 결국 실패하더라도 미래의 영광을 약속하는 희생자가 되는 영웅서사(로망스)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성찰로 미래를 열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우렁 각시’설화에는 주인공 사내는 착한 심성으로 ‘우렁 각시’를 얻었으나 우렁각시를 탐내는 권력자에 의해 시련을 겪지만 결국 이겨내고 ‘우렁 각시’와 행복하게 살았다거나, 비극적 결말로 끝나는 얘기에서는 결국 우렁 각시를 잃고 자신은 파랑새가 된다는 것으로 끝난다. 이 것은 전형적인 로망스 서사의 틀이다. 하지만 송경아는 <나의 우렁 총각 이야기>에서 ‘우렁 총각’의 애원을 밀어내고 자신에 대한 성찰로 끝 이야기를 한다.




결혼을 아닌데, 세상하고 관계를 조금 바꿔보긴 해야 할 것 같아. 내가 근 일주일을 우렁이를 등 뒤에 두고 지냈잖아. 아무리 사람 형상이 아니라도, 일 주일 동안 원망의 눈빛이 등뒤에서 번쩍거리는데 그거 참 못할 짓이더라. 그런데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책임질 있고 책임져야 하는 관계를 계속 피해다닌다면, 늘 이 모양 이 꼴이 아닐까. 항상 제로 상태인 것고, 주는 것과 받는 것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상태를 이루는게 정말 같은 것일까. 어쩌면 상처를 주거나 받더라도 생활이라는 구덩이에 빠져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13)






여성주의가 추구하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남성지배가 가져온 패권주의와 자본주의의 이전투구에 개입해 같은 방법으로 자리를 차지하거나 그러한 삶에서 타인의 피를 딛고 승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규범에서 소외되는 또 다른 자리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 그 것이 이러한 성찰적 서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때의 성찰은 ‘반성’과는 다른 의미이다. 이전에 여성이 강요당한 부족한 생물학적 운명에 대한 반성이었다면, 그러한 비주체적이고 비자율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생산적 미래를 창조하고자 하는 자세가 바로 성찰적 서사를 만드는 본질일 것이다.




우렁이의 원망의 눈초리가, 내가 응당 해야 할 일을 남한테 미룬 사람이 받는 업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어. 내가 먹고 자고 싸면서 나오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내가 어떻게든 책임져 보려고 해야 하는 것인데, 그걸 남한테 미루려면 돈 뿐 아니라 감정까지도 오가는 것을 허용해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우렁이가 나한테 결혼하자고 한 건 오버였지.....‘돈을 냇으니 서비스를 받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그 못지 않은 오버일 수 있는 것 같아서.




‘우렁 각시’를 그저 ‘이게 웬 횡재’냐며 냉큼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는 남성의 위치와 여성의 위치는 이렇게나 다르다. 단지 ‘가사서비스’만 받고는 여성은 이렇듯 불편해한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우렁 총각’을 남성의 지위에 올려놓고 주종 관계가 아닌 동반자 관계로까지 밀고 나가볼 수는 없었을까 하는 것 말이다. 사랑이 있어야만 ‘섹스’가 가능한 게 아닌데 감히 우렁이랑 어떻게라고만 생각하는 순결함도 아직은 여성이 부여잡고 있는 틀 또는 함정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우렁 총각’, ‘우렁 각시’가 결코 다르지 않은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 환골탈퇴할 그 날이 기다려진다.




1) 거다 러너, <가부장제의 창조>, 당대, 2004, 143p.

 

http://bc8937.pe.ne.kr/’」, 2006/2/17(금).










7) 인터넷, <네이버지식인>,  http://kin.naver.com/db/

 

 

 

 

 



13) 신경아, 앞의 책, 34-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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