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유난히 책이 읽히질 않았었다.

화장대 위에 쌓인 책들이 사이사이 눈에 들어오면서 신경을 거스르곤 했으나

손빨래를 하려고 세제에 담근 빨래를 계속 미뤄두고 있는 것처럼 내내 찜찜하긴 했으나

그랬거나 말거나, 마음은 너무 멀리 있었다.


크리스토프 바타이유의 ‘지옥만세’를 펼쳤다가 채 100페이지도 읽질 못하고 놔 버렸고

(난‘다다를 수 없는 나라’의 바타이유가 좋다. 부당한 요구라 하더라도 난 그에게서 또 다른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새로운 문체에의 실험이란 ‘지옥만세’에선 번역의 벽도 한 몫을 했겠지만 특유의 울림이 없다.)

‘김남주 평전’을 곁에 두고 보다 말다 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작가가 참 재미없게도 썼다 싶다. 물론 그 가치판단 기준이 ‘재미’가 될 수는 없지만, 감안하더라도 작가의 필력이 너무 엉성하다. 문건도 아닌 것이, 소설도 아닌 것이.. 못내 아쉽다.)


핑계를 찾으라면.. 그래, 봄이었으니까.


이젠 슬며시 봄이 물러나고 있나?

지난 주말, 짧은 여행길에 함께 했던 조정래의 산문집은 간만에 읽는 재미, 몰입하는 재미를 되찾아 주었다.

간만에 탄 밤 기차의 감흥도, 짧았던 만남의 아쉬움도 모조리 삼켜 버렸고

그 순간이 아까워서 나를 실은 기차가 종착역 없이 계속 달려주기를 바라는 마음마저 들었다.


이렇게 봄이 가려나?


새 책이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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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 전2권 세트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소위 말하는 이름값을 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황석영도 그들 중의 한 사람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처음 ‘심청’의 출간예정 소식을 들었을 때, 적지 않은 기대를 했었고 아주 많은 이야기 꺼리들을 제공 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다시 쓰는 심청 이야기, 게다가 황석영이라는 필자가 가진 아우라.

힘겹게 두 권의 책을 마저 읽고난 후, 참으로 복잡 미묘한 심정이다. 상권을 보는 내내 툭툭 걸려 넘어지길 수차례 그냥 읽자, 생각을 하지 말자, 읽기만 하자, 생각은 나중에 하자.. 그렇게 마음을 다지고 다졌다.

그럼에도 어린 나이에 낯설고 물선 곳으로 팔려간 소녀가 가졌을 불안과 공포에 관한 묘사는 턱없이 빈약하다 여겨지고 노골적인 성애 장면의 묘사는 필요 이상이라고 의심의 눈초리로 꼬나보게 만든다. 상권에서 그려지는 즉물화된 청이와 하권에서의 배포 있고 넉넉한 관음보살 이미지의 청이는 동일인물로 인식하기엔 그 괴리감이 상당하며,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이기엔 개연성이 부족하지 않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물론 황석영이 뛰어난 문필가이고 대단히 해박한 사람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개화기 당시의 동아시아 주변 정세와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 침략과정에 관한 조명 당시의 생활상과 지명, 언어 등에의 고증과 자유로운 구사는 감탄스럽기까지 하다.(읽기엔 불편하지만)

이쯤에서 꺼림칙한 부분은 상권에서의 불편했던 심기가 <심청>을 제대로 감상하는데 방해로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그래서 기약할 순 없으나 지금의 감정이 말끔히 삭을 즈음에 다시보기를 해야겠단 생각을 한다.

무심히 여겨왔던 부분인데 문득 황석영은 예인기질이 강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심청>은 그의 그런 기질이 많이 드러난 소설이 아닌가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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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야구에 대해 잘 모른다. 좋아하지도 않는다. 내 사는 도시에 유일무이하게 있는 스포츠 시설인 야구장에도 야구 관람을 목적으로 가 본 적은 여태 한 번도 없었을 뿐더러 야구시즌이면 공중파 채널에서 심심찮게 잡히곤 하는 중계에도 별 흥미가 없다. 고로 난 이제는 몇몇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나 전설로 남은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해선 좀체 아는 바가 없다.

문제의 책을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란 간판이 적잖은 몫을 했고
뒷표지에 실린 황석영의 짧은 코멘트도 한 몫을 했다. 그리고 입소문 덕인지, 대대적인 광고가 있었는지 어쨌는지, 어느 날 보니 화제작이 되어 있길래 의아해했던 적이 있다.

그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는 내게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선물했던 작품이다. ‘그랬거나 말거나’ 류의, 그가 즐기는 언어의 유희도 덩달아 즐겨줄 만하고 (실은 아주 재밌었고 난 줄기차게 키득거렸다.) 소속팀의 승패에 따라 너무 일찍 삶의 희노애락을 경험하게 된 소년응원단원들의 모습도 호탕하게 웃으며 봐줄 만했다.

아니다.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가 못함에도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가볍게 읽히고 있다. 마치 문장이 폴폴거리며 날아다니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어쩜 그게 함정은 아닐까. 키득거리는 있는 내가 오히려 조롱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 재밌어? 하지만 잘 봐. 그건 바로 너야. 오늘도 넌 ...’

재창단된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 멤버들은 프로가 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이류나 삼류의 삶을 살기를 자청하고, 오로지 즐기기 위한 야구, 지들 맘대로의 야구를 하며 신나 하는데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매일 아침 이불 속에서 밍기적거릴대로 밍기적거리다 피곤하고 부산한 하루를 시작하고 온종일 종종거리고, 두리뭉실하지 못한 성미 탓을 하며 스스로를 들볶고..

아, 저들처럼 저렇게 사는 방법도 있는데.. 그러다보면 실컷 웃고 즐기긴 했지만 뒷끝이 개운치만은 않은 것이다.

[사족] 이 책에 관한 재밌는 사실 하나는, 읽고 즐거워하는 이들은 야구라고는 문외한인 여성들이 태반이고 삼미 슈퍼스타즈를 기억하고, 그 시절의 야구와 선수들과 승률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재미없어 한다는 거다. 물론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어떤 코드로 즐거워하는지 당체 이해를 못하겠다며 툴툴거리던 사람도 별로였다고. 여자들은 아마 좋아하기 힘들 거라고 말했던 사람도 남자였던 반면 뭐라 말하기 전에 일단 웃고부터 보는 이들은 모두 동성의 친구들이었단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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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
노혜경 지음 / 아웃사이더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가만히 손끝으로 책 표지를 쓸어보노라면 빨갛게 도드라진 매혹적인 자태의 '악랄’이란 말에서 잠시 쉬어가게 된다.

이 책을 마주함에 있어 시대를 사는 역사를 창조하는 한 개인으로서의 자기 성찰적 기록으로 읽어도 무방하리라. 더러는 아무리 많은 세월을 흘려보낸다 해도 쉬이 아물 것 같지 않은 아직도 빨간 독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생채기를 마주하며 나도 아프고 부당한 폭력에 대항하는 그녀의 분노에서 건강한 분노를 배우고 ‘한 사람의 힘’을 설파하는 그녀의 메시지에 덩달아 신이 난다.

총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내용 중 조금만 언급하자면

‘여성이라는 전율’의 장에선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동성애자들의 아픔을 짚어본다. 특히 ‘밥,꽃,양’에 관한 대목에선 어쩌면 예전의 나라면 모르쇠하거나 ‘어쩔 수 없는’ 내지는 ‘최선의 차선’이란 명목 하에 그들을 재물로 삼는데 암묵적 동조를 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면서 그 시절의 경직성과 그럴싸하게 포장된 폭력성이 감지돼 경악스럽다.

더불어 간간이 불거지고 있는 진보진영과 여성운동진영간의 불유쾌한 마찰이 떠오르는데 여성운동을 부문운동으로 치부하며 문제를 축소하거나 부르조아주의, 이기주의로 매도하는 세력들이 만만찮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어떤 사안들에 있어선 비난받기에 충분한 빌미를 제공하고 있음도 묵과할 수 없다. 일테면 박근혜 지지론이나 여성운동 지도자들의 한나라당 입당처럼. 언제나 기본의 문제는 타협을 논할 수 없는 사안이 아닌가.

흉하게 서로를 헐뜯기에 바쁜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더디 가도 함께 가지요’

'아버지와의 전쟁‘은 여성문인으로서의 자기정체성에 관한 장. 미당을 둘러싼 논쟁에 관한 견해와, 지성인으로서의 문인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관한 물음 문학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가부장적 폭력에 관한 고발들.

개인적인 바램으학계나 문인들의 발언이 이렇게 수면위로 많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그들이 가진 지식을 무기로, 논리와 성찰로. 더 많이, 더 빈번하게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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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의 제야
고종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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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문학시간, 소설이란 장르를 접할 때 처음으로 배우는 것은 아마도 '소설은 허구다'라는 정의일 거다. 그렇지, 소설은 허구다. 그럼에도 난 이 단순명제를 종종 잊어먹곤 한다. 그리하여 가끔 어이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고종석의 두 번째 소설집. 제망매 이후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표면적으로 엘리아의 제야는 제망매의 연작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아니 내게는 그렇게 읽힌다. 표제작 속에 등장하는 누이들을 비롯하여 피터 버갓씨의 한국일기는 찬기파랑을, 아빠와 크레파스는 반사적으로 서유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고백하자면, 제망매에선 찬기파랑 이야기가 도저히 거짓말 같지가 않아서 실존인물은 아닐까, 적어도 모델은 있지 않을까 해서 인터넷을 뒤져본 경험도 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라서 마치 퍼즐 맞추기라도 하는 듯 몇몇 사람들의 이름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경험을 한다. 그의 소설을 ‘사소설’의 범주에 넣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그것이 황당한 일로만은 여겨지지 않을 만큼 그의 작품들은 적지 않은 유추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가 작중인물들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마치 현실 속의 누군가를 슬쩍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착각을 하게끔 하는..

그래서일까, 어떤 사람들은 읽는 재미가 덜 하다고 하는 그의 소설들을 난 더 겸허한 마음으로 마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그는 해박하다. 여전히 마이너리티를 지향하고 있다. 그는 나의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고, 탐심을 동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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