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
노혜경 지음 / 아웃사이더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가만히 손끝으로 책 표지를 쓸어보노라면 빨갛게 도드라진 매혹적인 자태의 '악랄’이란 말에서 잠시 쉬어가게 된다.

이 책을 마주함에 있어 시대를 사는 역사를 창조하는 한 개인으로서의 자기 성찰적 기록으로 읽어도 무방하리라. 더러는 아무리 많은 세월을 흘려보낸다 해도 쉬이 아물 것 같지 않은 아직도 빨간 독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생채기를 마주하며 나도 아프고 부당한 폭력에 대항하는 그녀의 분노에서 건강한 분노를 배우고 ‘한 사람의 힘’을 설파하는 그녀의 메시지에 덩달아 신이 난다.

총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내용 중 조금만 언급하자면

‘여성이라는 전율’의 장에선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동성애자들의 아픔을 짚어본다. 특히 ‘밥,꽃,양’에 관한 대목에선 어쩌면 예전의 나라면 모르쇠하거나 ‘어쩔 수 없는’ 내지는 ‘최선의 차선’이란 명목 하에 그들을 재물로 삼는데 암묵적 동조를 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면서 그 시절의 경직성과 그럴싸하게 포장된 폭력성이 감지돼 경악스럽다.

더불어 간간이 불거지고 있는 진보진영과 여성운동진영간의 불유쾌한 마찰이 떠오르는데 여성운동을 부문운동으로 치부하며 문제를 축소하거나 부르조아주의, 이기주의로 매도하는 세력들이 만만찮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어떤 사안들에 있어선 비난받기에 충분한 빌미를 제공하고 있음도 묵과할 수 없다. 일테면 박근혜 지지론이나 여성운동 지도자들의 한나라당 입당처럼. 언제나 기본의 문제는 타협을 논할 수 없는 사안이 아닌가.

흉하게 서로를 헐뜯기에 바쁜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더디 가도 함께 가지요’

'아버지와의 전쟁‘은 여성문인으로서의 자기정체성에 관한 장. 미당을 둘러싼 논쟁에 관한 견해와, 지성인으로서의 문인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관한 물음 문학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가부장적 폭력에 관한 고발들.

개인적인 바램으학계나 문인들의 발언이 이렇게 수면위로 많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그들이 가진 지식을 무기로, 논리와 성찰로. 더 많이, 더 빈번하게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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