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의 제야
고종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문학시간, 소설이란 장르를 접할 때 처음으로 배우는 것은 아마도 '소설은 허구다'라는 정의일 거다. 그렇지, 소설은 허구다. 그럼에도 난 이 단순명제를 종종 잊어먹곤 한다. 그리하여 가끔 어이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고종석의 두 번째 소설집. 제망매 이후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표면적으로 엘리아의 제야는 제망매의 연작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아니 내게는 그렇게 읽힌다. 표제작 속에 등장하는 누이들을 비롯하여 피터 버갓씨의 한국일기는 찬기파랑을, 아빠와 크레파스는 반사적으로 서유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고백하자면, 제망매에선 찬기파랑 이야기가 도저히 거짓말 같지가 않아서 실존인물은 아닐까, 적어도 모델은 있지 않을까 해서 인터넷을 뒤져본 경험도 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라서 마치 퍼즐 맞추기라도 하는 듯 몇몇 사람들의 이름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경험을 한다. 그의 소설을 ‘사소설’의 범주에 넣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그것이 황당한 일로만은 여겨지지 않을 만큼 그의 작품들은 적지 않은 유추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가 작중인물들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마치 현실 속의 누군가를 슬쩍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착각을 하게끔 하는..

그래서일까, 어떤 사람들은 읽는 재미가 덜 하다고 하는 그의 소설들을 난 더 겸허한 마음으로 마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그는 해박하다. 여전히 마이너리티를 지향하고 있다. 그는 나의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고, 탐심을 동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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